그런데 비극 다음에 오는 것이 소극이라면, 소극 다음에는 무엇이 오는가? 선명하게 드러난 것은 눈곱만큼에 불과했지만, 더불어 쏟아진 헛소리는 엄청나게 많았다. ... 거짓말쟁이는 거짓말을 다 알면서도 하는지라 진실과 관계를 유지하지만, 헛소리를 지껄이는 자는 진실성에 아무런 관심도 없는지라 진실을 한층 더 부식시킨다.(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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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지금의 내가 미처 기억하지 못하지만 과거에 읽었던 많은 책들이 어떤 식으로든 내 안에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책들은 내가 모르는 상황에도 나의 생각과 행동을 인도할 것이다. 나는 책이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읽힌 뒤에 결국 잊힌다 해도 잊어준 이에게 언제나 조용한 버팀목이 되어 주는 존재 말이다. 한 권을 여러 번 읽든, 여러 권을 한 번씩 읽든, 처음부터 끝까지 읽든, 내키는 대로 부분만을 읽든, 그저 제목과 표지만 감상하든, 사놓고도 잊어버리든, 책을 그저 곁에 두고 지낼 수 있다면 우리는 '가능성'을 품은 존재가 된다.(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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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너는 무엇을 원하나, 허조그?""문제는 바로 그거야. 내가 원하는 것은 없어. 존재만으로, 그러니까 신이 의도한 대로, 살아서 존재하는 것만으로 대단히 만족스러워."(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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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폐 착각'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또 다른 세금이란 것을 인지하기 어렵다.

2.역사적으로 인플레이션을 불러온 근원적인 문제는 부실한 재정이었다.

3.화폐는 해당 국가의 신용도를 보여주는 것이며, 지나치게 높은 인플레이션율은 정부에 대한 신로의 위기를 의미한다.

4.유사시 중앙은행은 정부의 영향력에서 독립적이기 어렵다.

5.정치, 경제적 격변기에는 정부의 금융 억압과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6.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정치적 현상이다.

7.1980년대 이후 인플레이션 통제는 중앙은행의 대담한 대응과 함께 강력한 사회적 합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8.닉슨 독트린 이후 신용 화폐 시대에는 위기 때마다 돈을 풀어서 문제를 해결했지만, 통화량과 인플레이션율의 상관관계는 일정하지 않았다.(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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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사하는 마음 - 김혜리 영화 산문집
김혜리 지음 / 마음산책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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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사하는 마음-김혜리

 

저는 김혜리 기자의 책들을 좋아합니다. 섬세하게 영화의 결을 살피며 자신이 바라보고 생각한 것들을 꼼꼼하게 말하는 모습도 좋고, 글 속에서 영화라는 장르에 대한 사랑이 전해지는 것도 좋습니다. 과격한 언사들이 넘쳐나는 현재의 시류에서 벗어난 듯한, 조곤조곤하게 차분하게 자신의 생각과 표현을 전하려는 것도 좋습니다. 이런저런 말로 표현했지만, 김혜리 기자의 영화 관련 글이 제가 생각하는 스타일과 너무 맞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겠죠.^^

 

언제나 그랬듯이 김혜리 기자다운 글을 기대하며 책을 펼칩니다. 제목은 <묘사하는 마음>.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씨네21>에 연재했던 개봉작 칼럼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를 모은 책이라고 합니다.(2017년에 이전에 쓴 글도 있다고 하네요.) 저자인 김혜리 기자는 그러면서 2020년 이후로는 개봉작 평을 팟캐스트 <김혜리의 필름클럽>과 오디오 매거진 <조용한 생활>을 통해 말로서 주로 전하고 있다고 하네요. 사실 저는 <성시경의 꿈꾸는 라디오> 때부터 김혜리 기자가 나오는 방송이나 팟캐스트들을 꾸준히 들어와서 알고 있는 사실이긴 했습니다. 목소리로 듣는 것만으로는 만족 못해서 책을 찾아서 읽기까지 했으니까요. 팬심이라는 표현이 맞겠네요. ㅎㅎㅎ 그러면서 김혜리 기자는 이 책에서 영화를 보면서 한 일을 묘사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영화에 이목구비가 있다면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그 초상을 그려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게 허락된 재료로 방금 본 영화와 비슷한 구조물을 짓고 싶었다.

...

내게 해석은 묘사의 길을 걷다 보면 종종 예기치 못하게 마주치는 전망 좋은 언덕과 같았다. 묘사하는 마음이란, 그런 요행에 대한 기대와 아님 말고. 이걸로도 족해하는 태평스러운 태도를 포함한다. 묘사는 미수에 그칠 수밖에 없지만, 제법 낙천적인 행위이기도 하다.‘(p.11)

 

배우들에 이야기부터 책은 시작합니다. 이자벨 위페르부터 시작된 책은 배우들을 거쳐 영화에 대한 평으로 이어집니다. 내가 보지 못한 영화부터 본 영화들을 포함해서 김혜리스러운, 김혜리다운 필치와 목소리로 영화에 대한 해석을 담은 묘사들이 펼쳐집니다. 섬세하면서도 차분하게 영화의 결을 훑은 평들을 읽으며 언제나처럼 만족을 느낍니다. 동시에 <매드맥스:분노의 도로>편에서는 차분하기보다는 열정을 담아 영화에 대한 해석을 전유하려는 이들을 논리적으로 반박합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다양한 면모가 있기에, 이런 면 또한 좋습니다. 마지막 부분에 가면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개봉작들에 대한 평이 있습니다. 이 영화평들에는 영화의 미래를 바라보는 김혜리 기자의 시선이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시네마가 아니라 TV 시리즈 같은 영화를 만들려는 이들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담아. 김혜리 기자의 말대로 영화가 단독자로 서는 것이 아니라 연속되는 작품으로서 이어지는 것에 종속된다면 그건 우리가 아는 영화가 맞는 것일까요? 어쩌면 그건 미래의 엔터테인먼트 상품으로서 존재하는 것 아닐까요? 엔터테인먼트 상품으로서의 영화란 우리가 아는 영화와는 다른 그 무엇이 아닐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김혜리 기자의 말대로 이런 방식이 지속된다면 영화의 미래는 제가 아는 영화와는 다른 무언가가 되겠죠. 하지만 예언가도 아니고, 영화평론가도 아닌 저는 이쯤에서 저의 사유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책이 다 끝나 버렸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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