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불로 태워 죽이지 못합니다. 사람은 죽지만 책은 결코 죽지 않습니다. 그 어떤 사람이나 힘도 사상을 강제수용소에 영원히 가두어놓지 못합니다. 그 어떤 사람이나 힘도 이 세상으로부터 각종 독재에 맞서 싸우는 영원한 투쟁의 구현체인 책을 빼앗가 가지 못합니다. 우리는 이 전쟁에서 책이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p.8)

1933년 5월 10일 베를린. 수천 명의 대학생들이 번쩍거리는 횃불을 들고서 안개 낀 거리를 걸었다. 그들은 커다란 베벨 광장으로 걸어가는 중이었다. 광장에는 이제 벌어지려는 행사를 구경하기 위해 4만 명의 구경꾼들이 나와 있었다. 베벨 광장 한가운데는 길이 3.7미터, 높이 1.6미터의 거대한 장작더미가 있었다. 광장에 도달한 학생들은, 광장을 천천히 구불구불 기어다니던 차량에 다가가서 자동차 안에 가득 쌓여 있던 책들을 불길 속으로 던져넣었다. 군중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렇게 나치의 인종주의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유대인들이 썼다는 이유로, 무수한 책들이 불길 속에서 사라졌다. 나치의 지원을 받는 것이 확실한 학생 단체의 대표가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독일 문학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나치당의 전국적인 운동을 위협하는 '비독일적인' 책과 문헌은 전부 불태워 없애야 합니다. ... 그들은 독일 사상에 대한 이해가 깊지 못해 그 사상을 드높이지 못했고 결국에는 독일 정신을 해칠 것입니다."(p.18~19) 독일의 선전장관인 괴벨스도 현장에 도착해서 일장연설을 했다. "독일 민중의 영혼은 이제 그 자신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 화염은 옛 시대의 종언을 고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환히 밝히고 있습니다. 일찍이 젊은이들이 과거의 잔재를 이처럼 깨끗하게 청소하는 멋진 권리를 가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만약 늙은 사람들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들은 우리 젊은이들처럼 지금 한 일이 무엇인지 똑똑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옛것은 화염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이제 우리 가슴의 불꽃으로부터 새것이 만들어질 것입니다."(20) 이 책 불태우기 행사는 독일 전역으로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당연하게도 그와 함께 사상과 표현의 자유, 인권은 독일에서 서서히 사라져갔다. 이것은 1938년 폴란드 침공 이후에 2차 대전이 벌어지고, 독일이 대부분의 유럽 지역을 지배하게 되면서 계속해서 유지되었다. 무수한 책들이, 그림들이, 예술작품들이 비독일적이라는 이유로, 독일과 맞지 않다는 이유로, 아리안족을 모독한다는 이유로, 유대인이 만들었다는 이유로 사라져갔다.

대서양 건너편에 위치한 미국은 1933년의 분서 사건이 일어나자 작가들,언론인들,지식인들이 나서서 독일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헬런 켈러는 분서 사건을 일으킨 학생 단체에 편지를 보내 자신의 반감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당신들이 사상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당신들은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입니다. ... 폭군들이 예전에 이런 짓을 하려 했지만, 사상은 더욱 강력하게 되살아나서 오히려 폭군들을 죽였습니다. ... 당신들은 내 책과 유럽의 최고 지성인들의 책을 불태울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책들 속에 들어 있는 사상은 수많은 경로를 통해 흘러 들어와서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활성화시킬 겁니다."(p.22) 미국 지식인들의 독일에 대한 반감은, 독일이 2차 대전을 일으키고 반유대주의를 거침없이 드러내며 유럽을 어둠으로 물들이는 것이 알려지자 평범한 미국인들 사이로 퍼져나갔다. 이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1940년 미국이 독일과의 전쟁에 참전하며 많은 젊은이들이 징집되어 전선으로 나가는 상황에서 미국인들은 독일인들과 다른 반응을 보인다. 미국 육군과 도서관 사서들은 힘을 합쳐 전선에 나가는 미군들을 돕기 위해 책을 대규모로 보내는 운동을 벌인 것이다. 일명 전국 국방 도서 캠페인. 나중에 승리 도서 캠페인으로 이름이 변경되는 승리 도서 캠페인은 군인들에게 커다란 호응을 얻으며 계속되다가 '진중문고'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책의 관점에서 보자면, 2차 대전은 책을 불태우고 없애려한 독일군과 책을 읽으라고 권한 미국군의 대립으로도 볼 수 있다. 반문학적이고 반독서적인 독일군과 독서를 권장하는 미국군의 대립. 이 대립을 더 파고들어가보면 두 개의 대립하는 투쟁의 가치가 나타난다. 자신들의 인종적 우월성을 위해 책이나 예술은 없애버려도 된다는 독일군과 군인들에게도 책을 읽을 자유를 권하는 미국군의 대립은, 우리가 너희보다 우월하다는 우월감을 위한 투쟁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유를 빼앗길 수 없다는 투쟁의 대립인 것이다. 우월감을 위한 투쟁과 자유를 빼앗기지 않기 위한 투쟁. 대립하는 두 가치 사이에서 어느 가치가 나을지는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책을 좋아하는 나의 입장에서는 '자유를 빼앗길 수 없다는 투쟁'에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두 가치 사이의 투쟁에서 진중문고가 탄생했고 그 진중문고가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에게 여려모로 도움이 되었다는 점이다.

군인들에게 진중문고가 소중한만큼 내게도 진중문고가 소중하다. 2월 23일에 열린 책나루 모임에 진중문고의 탄생을 다룬 <전쟁터로 간 책들>을 읽고 모여서 우리들만의 이야기를 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2018년 2월 24일 토요일 오후 다섯 시. 전쟁과는 상관없이 살아가는(혹시라도 전쟁을 염원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우리는 전쟁 때문에 탄생한 진중문고의 탄생을 써내려간 <전쟁터로 간 책들> 읽고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기에 그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 내용을 적어본다.

몽당연필: 반양장이라는 책 자체의 형태가 좋았다.
진중문고의 탄생이라는 과정이 설명이 잘 되어있는 교양역사책이다.
새로운 접근이라서 우리 모두가 읽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소남발: 책에 리얼함이 떨어지는 면이 있다.
여러가지 책을 알 수 있어서 그 방면으로 도움을 받았다.
잿빛하늘: '전쟁은 야전에서 이기기 전에 마음속에서 먼저 이겨야 합니다'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다.
독일과의 전쟁이지만 미국 내부의 불평등도 문제가 있다는 점을 알려준 것도 인상 깊었다.
몽당연필,미소남발: 전쟁이 끝났다 여성들은 주방으로 돌아가라는 말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짜라투스트라: 책과 예술을 거부하는 편과 책과 예술의 자유를 주장하는 편의 싸움으로 2차 대전을
바라보는 시각이 신선했다.

우리는 그렇게 이야기를 끝냈다. 앞으로 '책나루문고'가 탄생할지 안할지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의 삶'이라는 제목의 자신의 인생을 담은 자신만의 문고본 책을 자신의 삶으로 써내려가는 인생의 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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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2-26 07: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쟁 경험이 많은 나라들은 전시 상황에서도 진중문고를 체계적으로 분류하는 시스템을 잘 활용해요. 제대하는 군인들을 위해서 취업 관련 도서 위주로 진중문고를 마련하는 군대의 모습이 좋았어요.

짜라투스트라 2018-02-26 13:30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