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있는 나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4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404.남아 있는 나날-가즈오 이시구로 

 

그러나 내게 위험을 무릅쓰고 추측해 보라고 한다면, 명백한 극적 효과나 화려함의 '결핍', 바로 그 점이 우리 땅의 아름다움을 독특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차분한 아름다움, 절제의 미라는 표현이 꼭 들어맞는다.(39)
위대한 집사들의 위대함은 자신의 전문 역할 속에서 살되 최선을 다해 사는 능력 때문이다.(58)
그는 아마추어이며, 오늘날의 국제 정세는 신사 아마추어들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유럽인 여러분들이 이 사실을 빨리 깨달을수록 좋을 겁니다.(132)
그러나 오락가락 소식을 전하고 차를 나르고 하는 당신 같은 사람들은 계속 필요하겠지요. 그런 사람조차 없다면 우리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141)
그 당시 우리에게 세상은 이 저명한 저택들을 중심축으로 돌아가는 하나의 바퀴였으며, 거기에서 내려진 막강한 결정들이 부자이든 가난뱅이든 바깥 주위를 돌고 있는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로 퍼져 나간다고 생각했다. 우리 중 직업적 야망을 품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각자 힘닿는 대로 이 중심축에 다가가려는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148)
품위는 단지 신사들만의 것이 아닙니다. 품위란 이 나라의 남녀 누구나 노력하면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229~230)
우리는 자유 시민으로 살 권리를 쟁취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신분이 무엇이냐, 부자냐 가난뱅이냐를 떠나서, 영국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자체가 일종의 특권입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자유인으로서 자신의 견해를 마음껏 표현하고 투표로 의원 나리들을 의사당에 앉혔다 빼냈다 할 수 있으니까요. 외람된 말씀이지만 선생님, 그게 바로 진정한 품위입니다.(230)
스티븐슨, 당신이 관심을 안 갖기 때문에 눈치채지 못한 거요. 이 모든 일이 당신 목전에서 진행되고 있는데도 당신은 실상을 볼 생각을 전혀 하지 않소?(276~277)
나는 '믿었어요.' 나리의 지혜를. 긴 세월 그분을 모셔 오면서 내가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지요. 나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말조차 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 정녕 무슨 품위가 있단 말인가 하고 나는 자문하지 않을 수 없어요.(299)

 

여러분은 기억을 확실하게 믿습니까? 내 기억이 확실하다고, 절대 틀릴리 없다고 믿을 수 있습니까? 자기 자신이라는 존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기억이 틀리지 않으니, 지금 여기 살아가는 '나' 혹은 '나의 삶'에 대한 인식이 틀리지 않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까? 저는 이 질문에 확실하게 '네'라고 대답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기억에 대해 다룬 책과 다른 여러 매체를 통해서 인간의 기억이 얼마나 쉽게 왜곡되는지 알게 되었거든요. 인간의 기억이 얼마나 쉽게 왜곡되고, 불확실한지를 심리학과 뇌과학이 밝혀내는 것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인간의 기억과 인간의 기억을 통해서 재구성되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허약한 토대위에 자리잡고 있는지 느껴집니다. <남아 있는 나날>을 읽어보니 더욱 더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남아 있는 나날>은 평생을 달링턴홀의 집사로 일하며, 하인으로성의 정체성을 지켜오던 집사 스티븐스가 과거에 인연이 있는 켄턴 양을 만나러 태어나서 처음으로 여행을 가면서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는 과정을 가즈오 이시구로 특유의 스타일로 그려낸 소설입니다. 영국 귀족이 쓰는 품격 있는 언어로 전개되는 소설은, 고전적인 스토리텔링의 흐름대로 흘러갑니다. 우리는 소설에서 이야기가 생생히 살아남아 한 남자의 삶을 전해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별다른 어려운 언어가 없어 물흐르듯 읽을 수 있고, 읽다 보면 어느새  위에서 적은 것처럼, 우리의 기억이 얼마나 불확실한지, 우리 삶과 우리 자신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불확실한 토대 위에 서있는지 자각하게 됩니다. 이 인생과 나에 대한 불확실성에 대한 자각은, 내가 아는 '나'라는 존재가 실제 현실과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나와 나의 삶이 얼마나 많은 자기정당화로 점철되어 있는지도 깨닫게 합니다. 고전적인 이야기의 끝에 다다르는 지점이 자기 정체성의 불확실함에 대한 자각이라는 점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문학관과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가즈오 이시구로 소설의 대부분은 어떤 인간이 나와서 기억을 회상하고, 마지막에 가서는 자신이 기억하고 인식하는 자기 정체성이 얼마나 불확실하고 허약한 토대 위에 있는지를 자각하고 자기 인식에 대한 변화를 받아들인 채 살아가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이것은 작가 자신의 정체성이 일본인과 영국인의 경계에 위치하여 불확실한 정체성을 가진 것에서 파생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낳게 합니다. 자기 존재의 불확실함에 대한 인식과 자각이 자기 문학의 토대가 되는 셈이죠. 동시에 이 불확실함에 대한 자각은 자기 정체성의 불확실함을 비추는 것에서 더 나아가서 소설의 불확실함, 예술의 불확실함에, 언어의 불확실함까지 나아간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자기 정체성의 허약함과 불확실함이 소설,예술,언어의 불확실함과 허약함을 비추는 등불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제 나름대로는 가즈오 이시구로를 고전적인 이야기 방식으로 기존의 문학,예술, 인간에 대한 관념을 해체하는 문학관을 가진 작가라고 정의 내리고 있습니다.

또 하나 제가 소설에서 주목한 것은 '신뢰할 수 없는 화자'에 대한 부분입니다. 영미 모더니즘의 대표작가인 헨리 제임스의 소설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현대 소설에서 책을 읽는 독자가 소설 속의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화자를 신뢰할 수 없는 것은 모더니즘 이후로 전통이 있습니다. <남아 있는 나날>도 헨리 제임스에서 이어지는 '신뢰할 수 없는 화자'의 전통에 서 있는 작품으로 볼 수 있습니다. 책의 화자인 스티븐스의 말과 행동이 괴리가 되는 부분에서 종종 보이기 때문입니다. 말로는 옛주인 달링턴을 존경한다고 하면서도 그는, 다른 이들이 달링턴에 대해 물으면 잘 모른다고 하거나 그의 하인이 아닌 척을 합니다. 어쩌면 자기 정체성과 자기 삶의 정당성을 지키기 위해서 온갖 변명을 늘어놓지만 그의 인식의 어떤 부분은 직관적으로 달링턴이 잘못했다고 여기고 있는지도 모르죠. 이런 성향은 켄턴 양과 만나서 대화하고  나서 마지막에 자기 삶에 대한 회한을 처음 만난 이에게 털어놓는 부분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자기가 켄턴 양과 이어져서 가족을 꾸릴 수도 있었는데 못한 것을 한탄하고, 자기 주인에게 자기 삶의 모든 것을 의탁했으나 자기 주인의 잘못으로 자기 삶마저 잘못된 것 같다는 마지막의 후회는 스티븐스가 계속해서 한 말과 달리 자기 삶을 잘못된 것으로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암시하죠. 말하는 부분의 중요성만큼이나 말하지 않은 부분이 중요하다는 식의 말하는 부분과 말하지 않은 부분의 괴리, 자기 정당화를 이끌어내는 정신의 어떤 부분과 자기 정당화의 허점을 파악하고 있는 정신의 다른 부분과의 공존이 불러 일으키는 한 인간의 정신적 분열상이 소설을 맴돌며, 이 소설이 화자가 말하는 부분만으로 파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단순히 말해지는 것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소설. 제가 파악하기로는 그게 가즈오 이시구로 모든 소설의 공통적인 특징 중 하나입니다.

고전적인 스토리텔링으로 독자를 이끌고 나가면서 고전적인 문학,소설,예술,인간에 대한 개념을 해체하고, 다양한 장르를 이용하면서 장르의 클리셰를 해체하고, 말하지 않는 부분의 중요성을 몰래 부각시키며 말해지는 것만으로 파악할 수 없는 소설을 영국적인 분위기와 어투, 언어로 말하는 가즈오 이시구로. 소설의 언어나 내용이 아니라 형식을 통해서 자기만의 문학관을 드러내보이는 가즈오 이시구로. 미천하지만 제가 나름대로 파악한 가즈오 이시구로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혹시나 가즈오 이시구로가 제 얘기를 듣게 된다면 '그건 아닌데'라는 생각으로 빙긋이 웃음짓지 않을까 하는. 몇마디 말로 정의할 수 없는 게 문학이라고 한다면 저같이 정리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라는 의미도 되겠죠. 그래도 저는 정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스티븐스와 자신의 삶을 벗어날 생각이 있지만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저도 정리하고 규정하는 저만의 삶의 관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죠. 그렇게 본다면 <남아 있는 나날>은 저의 또다른 모습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벗어날 수 있었으면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삶을 맴도는 인간의 슬픈 운명에 대한 문학적 오마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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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sun09 2017-12-30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항상 건강하세요~~

짜라투스트라 2017-12-30 14:53   좋아요 1 | URL
아 감사합니다^^ munsun09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지금행복하자 2017-12-30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즈오 이시구로 좋아하는 작가에요~
덕분에 읽으면서 행복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새해복많이 받으세요~^^

짜라투스트라 2017-12-30 15:24   좋아요 0 | URL
댓글 달아주셔서 제가 더 감사합니다.^^ 지금행복하자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