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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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6.소년이 온다-한강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 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 되니까 총을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17)
그녀는 인간을 믿지 않았다. 어떤 표정, 어떤 진실, 어떤 유려한 문장도 완전하게 신뢰하지 않았다. 오로지 끈질긴 의심과 차가운 질문들 속에서 살아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95~96)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114)
모든 사람이 기적처럼 자신의 껍데기 밖으로 걸어나와 연한 맨살을 맞댄 것 같던 그 순간들 사이로,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이, 부서져 피 흘렸던 그 심장이 다시 온전해져 맥박 치는 걸 느꼈습니다.(115~116)
죽음은 새 수의같이 서늘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때 생각했습니다. 지나간 여름이 삶이었다면, 피고름과 땀으로 얼룩진 몸뚱이가 삶이었다면, 아무리 신음해도 흐르지 않던 일초들이, 치욕적인 허기 속에서 쉰 콩나물을 씹던 순간들이 삶이었다면, 죽음은 그 모든 걸 한번에 지우는 깨끗한 붓질 같은 것이라고.(122)
예전에 우린 깨지지 않은 유리를 갖고 있었지. 그게 유린지 뭔지 확인도 안해본, 단단하고 투명한 진짜였지. 그러니까 우린, 부서지면서 우리가 영혼을 갖고 있었단 걸 보여준 거지. 진짜 유리로 만들어진 인간이었단 걸 증명한 거야.(130)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135)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어.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207)

G의 이야기
(앞부분 생략)
지금까지는 한강 작가에 대한 저의 생각을 말해봤습니다. 뭐 대단한 발표를 한 것은 아니지만 일종의 저만의 '한강론'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어디까지나 저만의 생각에 불과하지만. 이제는 저만의 작가론에 덧붙여서 <소년이 온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저는 한강 작가가 '서사'에 능한 작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한강 작가가 특유의 독특한 언어를 바탕으로 하는 스타일의 작가라고 생각하고 있는데요, 예상 밖으로 <소년이 온다>는 생생하게 '서사'가 살아 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궁금증이 생긴 저는 혼자서 계속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어떻게 이야기가 생생히 살아 남아 읽는 독자에게도 강력하게 전해지는 것일까? 이런 질문에 절대적인 해답은 없겠죠. 고민 끝에 저 나름의 해답은 나오더군요. 저는 <소년이 온다>의 서사가 생생히 살아 있는 건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서사에 작가의 창조력이 더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생생히 살아 있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이야기의 흐름 속에 한강 작가가 접속하여 그것을 토대로 자신의 소설을 써냈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펄떡이며 살아 숨쉬면서 여러 사람들과 우리의 역사에 자신의 흔적을 아로새긴 5.18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힘이 한강 작가가 써내려간 글속에서 굽이굽이 맺혀 있는거죠. 어쩌면 이 소설은 한강 작가가 쓴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사건이, 그 사건을 겪은 사람들의 정신적인 힘이, 한강 작가의 몸을 빌려서 <소년이 온다>라는 글로 나타난 것일지도 모르죠. 뭐 이것이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대답은 아닐지 모르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은 그렇다는 말입니다.^^

또 하나 생각한 것은 <소년이 온다>에 나오는 '소년'의 의미입니다.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질문도 저만의 대답을 가질 수밖에 없겠죠. 역시 고민끝에 저만의 해답이 나왔고, 그 얘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소년'은 이 소설에서 아주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의 마지막 날에 전남도청에 있다 죽은 소년 동호는 살아남은 사람들과 소년의 가족들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아무리 큰 사건을 겪은 이들이라도 일상이라는 관성에 매몰되다 보면 생물학적으로 죽어 있지만 정신적으로 죽어 있는 삶을 살 수 밖에 없는데, 이미 생물학적으로 죽은 소년은 그들의 기억 속에 생생히 살아 남아 그들에게 과거의 사건을 기억하게 만들고 그들의 삶을 살아 있게 만들거든요. 저는 그런 부분들을 보면서 문득 발터 벤야민의 <역사철학테제>의 '역사의 천사'가 떠올랐다.

"클레(P. Klee)가 그린 새로운 천사(Angelus Novus)라고 불리우는 그림이 하나 있다. 
 이 그림의 천사는, 마치 그가 응시하고 있는 어떤 것으로부터 금방이라도 떨어지려고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묘사되어 있다. 그 천사는 눈을 크게 뜨고 있고, 그의 입은 열려 있으며 또 그의 날개는 펼쳐져 있다.

역사의 천사도 바로 이렇게 보일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들 앞에서 일련의 사건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바로 그곳에서, 그는 잔해 위에 또 잔해를 쉬임없이 쌓이게 하고 또 이 잔해를 우리들 발 앞에 내팽개치는, 단 하나의 파국을 바라보고 있다.
천사는, 머물러 있고 싶어하고, 죽은 자들을 불러일깨우고, 또 산산히 부서진 것들을 모아서 다시 결합시키고 싶어한다. 
 그러나  천국으로부터는 폭풍이 불어오고 있고, 또 그 폭풍은 그의 날개를 꼼짝달싹 못하게 할 정도로 세차게 불어오기 때문에, 천사는 그의 날개를 더 이상 접을 수도 없다. 이 폭풍은 그가 등을 돌리고 있는 미래 쪽을 향하여 간단없이 그를 떠밀고 있으며, 반면 그의 앞에 쌓이는 잔해 더미는 하늘까지 치솟고 있다. 
우리가
진보라고 일컫는 것은 바로 이 폭풍을 두고 하는 말이다."
-반성완 편역,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중 <역사철학테제>, 민음사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 가능한 '역사의 천사'. 저는 <소년이 온다>의 '소년'에게서 나만의 방식으로 해석이 된 '역사의 천사'가 보였습니다. 과거를 거쳐 현재,미래로 일직석으로 나아가며 '발전'한다는 근대적 시간관속에서 미래로 떠미는 진보적인 시간의 폭풍을 견디면서 과거로 시선을 돌리고 날개짓을 하는 '역사의 천사'가 흡사 <소년이 온다>의 소년이 된 느낌이었습니다. 미래로 가면 발전하기에, 미래에 구원이 있다는 근대의 속삭임에 넘어가 정신적으로 죽어 있는 삶을 살다 과거로 눈을 돌리면 거기에서 날개짓을 하며 과거의 힘을 통해 우리를 살아 있게 하는. '소년'은 우리에게 미래가 아닌 과거에 구원이 있다고 말합니다. 과거를 잊지 않고 기억하여 현재를 더 낫게 만들고 미래까지 나아가는 방식의 구원으로. 그러니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과거를, 역사를, 죽은 소년 동호로 대변되는 희생자들을, 아직도 고통 받는 생존자들과 연관된 이들을, 이 사건을 일으킨 이들을. 이 사건을, 이 역사를, 이 사람들을 잊지 않아야 우리 사회의 구원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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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sun09 2017-12-14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전 책을 읽으면 그저 이야기를 중심으로 느낌만 갖게 되는데
이렇게 철학적 의미를 부여한 나름의 작가론까지 생각해보시는 자세가 대단하세요. 저도 이 책을 읽었지만 5.18이라는 역사적 의미만을 담았었는데 짜라 님께 배우고 갑니다.

짜라투스트라 2017-12-14 18:01   좋아요 1 | URL
아직 많이 부족한 저이지만 이런 글 써주서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