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외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가기로 한다. 심야 버스가 되기 전의 막차라서 사람들이 버스에 가득하다. 자신이 버스에 타지 못한다고 버스 기사 아저씨에게 화를 내며 신고하니 어쩌니 하며 떠들어대는 한 나이든 남자의 모습이 버스 문옆에서 어른거린다. 눈을 감고 생각해본다. 자연 앞에서 한낱 미물에 불과하며, 우주라는 거대한 시공간 앞에서 아주 미약한 시간밖에 살지 못하는 우리는 언제나 자기가 옳다고 믿고 있을 확률이 높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을 포함해서. '어리석음'이라는 표현이 여기에 가장 잘 어울릴 것이다. 나의 어리석음, 보편적인 인간들의 어리석음, 버스 옆에서 떠들다가 다른 승객들에게 욕먹는 저 인간의 어리석음. 그 어리석음들이 모여서 인간의 삶을 형성한다면, 우리의 삶은 '어리석음'에서 '어리석음'에서 건너다니는 것들이지 않을까. 아직 다 읽지 못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아연 소년들>이 머리 속으로 흘러들어온다. 이념의 색채로 무장하며 시작된 구소련의 '어리석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무수한 사람들의 삶을 파괴한다. 이념을 믿어서, 군인을 동경하여, 돈없고 빽없어서 같은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 수많은 이들의 삶이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손을 통해 다양한 목소리로서 떠다니며 파괴된 삶을 증언하는 책은 가슴 아프고도 처연하다. 전쟁이라는 무시무시한 거대한 '어리석음'의 늪에 빠진 이들이 주는 슬픔에 가슴이 저릿하다. 슬픔에 빠져있다 정신 차리고 주변을 보니, 욕먹고 버스도 못탄 채 신고하러 떠나는 나이든 남자와 겁먹은 버스 기사 아저씨와 버스 기사 아저씨를 응원하는 동료 버스 기사 아저씨들의 모습이 보인다. 스베틀라나가 알렉시예비치가 말하는 아연관의 형상이 갑자기 떠오른다. '헬리콥터에 올랐다... 하늘에서, 미리 준비해놓은 수백 개의 아연관들을 보았다. 아연관들은 햇빛을 받아 아름답고도 무섭게 빛났다.' 우리네 삶이란 저마다의 아연관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이것이 아연관이 아니라는 어리석음을 간직한 채. 버스는 출발하고 나는 집으로 향한다. 하루동안의 피로가 몰려들어 잠이 온다. 잠시 눈을 감아본다. 2017년 10월 21일이하는 낯선 하루는 그렇게 막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