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만들어진 위험 - 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당신에게
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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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61., 만들어진 위험-리처드 도킨스

 

 

제목: 나는 기독교를 왜 믿지 않는가....

 

 

서양의 무신론자들과 유신론자들이 쓴 책을 번갈아 읽으면서 하나의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서양 사람들이야 기독교 문화권에서 태어나고 성장했으니까 기독교를 믿냐 안 믿냐 혹은 신을 믿냐 안 믿냐가 중요한데, 저한테는 사실 ''이나 '기독교'라는 단어나 개념이 전혀 중요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저는 궁금해졌습니다. 왜 그런지...

 

 

제 삶을 한 번 곰곰히 되돌아봅니다. 아무리 생각하고 생각해도 ''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어린시절을 돌아보니 ''조차 제 삶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 교회는 등장하네요. 하지만 교회는 교회일 뿐, 그건 신이 아닙니다. 누가 일요일에 오라고 하는데 귀찮아서 교회를 안 갑니다. 그때뿐 학창시절에 신은 한 번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대학교에 가니 한 친구가 열성적으로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라 하도 오라고 해서 한 번 가봤습니다. 그런데 한 번 갔는데, 사람들이 기도를 하면서 막 우는 거에요. , 너무 무서웠습니다. 무섭고 이상하고 그래서 가기 싫었습니다. 그 친구랑 친해서 몇 번 더 가기는 했는데, 지속적으로 다니지는 못합니다. 기도할 때 마다 사람들이 하도 열성적인 분위기라, 저도 뭔가 해야 할 거 같아서, 슬픈 생각을 하며서 우는 척을 했는데, 우는 척을 올 때마다 하는 게 힘들 것 같아서요.^^;; 그 때도 신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목사님이 뭐라고 하는데 무슨 소리 하는지도 모르겠고, 잠오고, 사실 힘들었습니다. 제 기억에 신은 없고, 교회와 사람들의 열띤 기도, 친구와의 우정만 있네요. ㅎㅎㅎ

 

 

제 삶에 신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건, 20대 후반부터입니다. 그때부터 제가 책을 열심히 읽기 시작했거든요. 책을 읽으면서 신을 본격적으로 접했습니다. 하지만 그 때의 신은 종교로서의 신이 아닙니다. 사상과 문화, 철학, 역사에 등장하는 신입니다. 종교로서의 신을 제가 생각하게 된 건, 고전을 열심히 읽게 되면서 유럽 중세 책들을 읽으면서입니다. 그때서야 저는 신을 서양 사람들이 말하는 신으로서 생각하게 됩니다.

 

 

더 자세하게 써 볼께요. 제 어머니도, 아버지도, 친척들도, 제가 지속적으로 만나는 친구들도 기독교인이 없습니다. 고등학교 때, 대학교 때 기독교인 친구들을 만나거나, 사회 나가서 기독교인들을 만나긴 했지만 그들과의 친분은 깊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신은 제 삶에 등장한 적이 없습니다. 진짜 단 한 번도. 저는 신없이 살아왔고, 제 주변의 사람들도 저처럼 신 없이 다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건 무신론이나 유신론과 상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등장한 적이 없으니까요. 신이라는 단어가 삶에 등장하지 않는데, 왜 유신론과 무신론을 따지나요. 저는 신을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신이 있냐 없냐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제 삶에 얼마나 많은데, 2000년이 넘는 기간동안 싸우고도 답이 안 나오는 논쟁에 제가 왜 끼어드나요. 저는 그런 문제에 관심없습니다. 저한테 신은 무관심 그 자체입니다. 아니 등장하지 않으니까 공백이자 무네요. 신이 있냐 없냐는 신이 등장하는 기독교 문화권에서 따질 일입니다. 제가 책을 열심히 읽지 않았다면 저는 아마 신과 상관없이 살다 죽었을 겁니다.

 

 

책을 읽고 나서야 저는 신의 개념을 머리로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근데 이건, 믿음의 존재로서의 신이 아닙니다. 이 신의 개념은 사상과 철학, 문화의 개념입니다. 어떻게 보면 저에게 신은 컬트적인 개념입니다. 너무 낯설고 특이해서 좀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생각하고 보면 신기하고 특별한 느낌이랄까. 그래서 저는 유신론자들의 책이 흥미롭습니다. 아 이런 삶의 방식이 있구나. 아 이런 생각과 사고방식이 있구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저한테 리처드 도킨스나 크리스토퍼 히친스, 다니엘 데닛은 전투적인 무신론자이면서 역설적으로 신에 얽매인 사람처럼 보입니다. '신이 없어'라는 외침을 너무 강하게 외치니까요. 너무 강한 외침은 역설적으로 자신이 없다고 주장하는 신 개념과 그들이 뗄려야 뗄 수 없는 관계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기독교 문화권인 서양 사람들이라 더 강하게 외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자신들 문화의 기반이 되는 걸 부정하려면 그런 강한 외침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다릅니다. 저의 삶에 신은 공백입니다. 신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기에, 언급할 필요도,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제가 책을 읽지 않았다면 제 친구들처럼 신이라는 개념 없이 잘 살아갔을 겁니다. 하지만 불운하게도 저는 책을 통해 신이라는 개념을 만났습니다.^^;; 신이라는 개념을 만났지만 믿기는 힘듭니다. 왜냐하면 그건 개념이지 삶의 문제는 아니니까요. 제가 왜 신을 안 믿냐구요? 삶에 등장한 적이 한 번도 없고, 신의 ''도 접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믿냐요. 그걸 믿는다면 그야말로 기적이죠. 저는 기적이 있어야 신을 믿을 것 같습니다. 기적 없이는 아마도 힘들 듯.^^;; 다 쓰고 보니 이거 서평 맞나요? ㅋㅋㅋ 책 이야기는 하나도 없고 제 이야기만 잔뜩 했네요. 그래도 이 책을 읽고 떠오른 생각이라 써보긴 했습니다. 뭐 서평의 정확한 형식이 없으니까 이런 것도 서평이라고 우기면 서평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어쨌든 말도 안 되지만 이 글도 서평이라고 우기면서 이상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 인생에 확신이 힘들기에, 제가 나중에 신을 믿는 기독교인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보면 그 확률이 무지 낮은 것은 확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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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21-11-10 13: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전투적인 무신론자...입니다만.^^

짜라투스트라 2021-11-10 19:32   좋아요 0 | URL
누구나 다 삶의 맥락과 이야기가 있죠.
아마 뒷북소녀님도 전투적인 무신론자가 된 자기만의 삶의 이야기가 있을 겁니다. 저 위에 적힌 글은 제가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에 대한 저만의 삶의 이야기입니다. 이왕 댓글을 다셨으니 조금 더 보충해서 글을 써볼께요. 글이 길더라도 이해바랍니다.^^;;

살아 생전 단 한번도 신이 삶에 등장한 적이 없기 때문에 저는 기독교인이 아니고
신을 믿지 않습니다. 학창시절 공부를 하면서 봤던 유럽의 중세는 시험문제로만 존재했고, 대학교 때 친구 따라 교회 가면서 들은 이야기들은 관심이 없어서 한 귀로 흘려버렸죠. 역설적으로 제가 종교적 실체로서의 신을 만난 건 책에서 만난 서양의 무신론자들 때문이었습니다.^^ 무신론을 통해서 종교적 실체로서의 유신론을 만났기 때문에 저한테는 서양의 무신론과 유신론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엮여 있는 것처럽 보입니다. 기독교 중심의 서양의 문화권에서 나고 자랐기에 그들이 무신론자로 살려면 자신이 무신론자임을 주장하고 증명해야 자신의 존재증명이 되는 것처럼 보여서요.

반면에 저한테는 무신론은 삶 그 자체입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 신이 존재했던 적이 한번도 없기 때문에 제 삶은 ‘유신론의 공백 상태‘죠, 가만히 있어도 그냥 신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 주변인들도 다 저랑 같아서 저랑 제 주변인들은 굳이 ‘나 무신론자야‘라는 말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말 안해도 다 신이 없는 삶을 살아왔기에 우리는 무신론자로서의 자신의 존재증명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 무신론자야‘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게 좀 특별하긴 했습니다. 말 안해도 아는 걸 주장하고, 그걸 논증하는 셈이니까요. 물론 위에서도 적었지만 그들이 사는 문화권에서 그들이 상대하는 유신론 진영의 힘을 생각해보면 그들의 강력한 주장이 어쩔 수 없는 일처럼 보이긴 합니다.

무신론을 통해서 종교적 실체로서의 유신론을 처음 만났고, 나중에 중세철학이나 종교학, 기독교 신학 책을 읽으며 바라본, 유신론은 저한테 아주 이상하고 특별한 문화적 현상에 가깝습니다. 이해할 수 없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삶의 양상이자 형식이고 그들한테는 너무나 소중한 종교적 믿음이기에, 저는 그런 삶을 하나의 사상이자 철학, 문화형식으로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이상을 넘어서기에는 유신론의 백지상태로 지냈던 저한테는 힘든 일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유신론이나 무신론이라는 말은 서양의 번역어이고 서양의 상황을 나타내는 말처럼 보입니다. 신이 있냐 없냐를 두고 싸우는 서양의 철학적 논쟁이 한국에서는 기독교가 맹위를 떨치고 나서야 있었다고 보면, 한국 역사는 대부분 ‘유신교의 공백상태에 있는 것처럽 여겨집니다. 저 역시도 유신론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고요. 그래서 저는 저와 저와 비슷한 삶을 살아온 이들을 위한, 나와 같은 사람을 위한 단어나 개념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위에서도 적었지만 서양인들의 번역어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삶을 맥락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나 개념.

아이고 적다보니 너무 말이 길어졌네요. 미안합니다.^^;; 이젠 말을 그만하겠습니다.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