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전집 4 - 국가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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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17.국가-플라톤

상인 계급과 보조자 계급과 수호자 계급이 제 할 일을 함으로써 나라 안에서 제 구실을 하게 하는 능력, 이것이 정의일 것이며, 이것이 나라를 올바로 만들어주겠지?(238)

드디어 <국가>를 읽었습니다. 이 책을 읽겠다고 5년 전부터 말해왔는데(5년 전이 정확한지는 잘 모르겠네요.^^;;) 읽고 나니 감회가 새롭네요. 읽는다고, 읽는다고 말만 하고, 무시하고 놔둔 책을, 현실적으로 읽었다는 '행위' 자체가 좋은 것 같습니다. 하지 않고 놔두면 사라질 '가능성'이 현실화되는 것의 기쁨이라고 할까요? 제가 다시 고전 읽기에 몰두하면서, 인문서들을 함께 읽으면서 두꺼운 책 읽기에 익숙해진 것도 이 책 읽기에 도움이 됐습니다. 1000페이지 넘는 책부터, 900페이지,800페이지,700페이지 책들을 읽다 보니 592페이지의 <국가> 읽기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얇아 보였다고 한다면 오버인가요?^^;;;;;

책을 펼쳐서 읽어나가는데, 소크라테스가 다른 이들과 대화 나누는 것부터 마음에 들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과거에 익숙했다가 시간이 지나서 잊어버린 무언가를 되찾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한때 열심히 읽었던 플라톤의 '대화편'에 관한 기억이 제 머리속을 주마등처럼 지나쳤습니다. 어쩌면 저에게 <국가>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마들렌 과자' 역할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잠깐, 글을 쓰다가 위에 쓴 글들을 들여다봅니다. 너무 오랜만에 써서 그런지, '감정의 흐름'대로 마구 쓰는 경향이 있네요.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오랜만에 쓰는 글인만큼 내면에서 흘러넘치다 못해 분출하는 내적인 에너지의 흐름을 막을 수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동시에 좋은 점도 있습니다. 그 에너지를 따라가기만 하면 글이 써지니까요. 내적인 에너지의 흐름대로 쓰는 것만이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글쓰기 방법인 것처럼 느껴지니까요.

다시 <국가>로 돌아가봅시다. <국가>는 '대화편'답게 소크라테스와 다른 이의 대화로 시작합니다. 정의와 불의에서 시작한 이 책은, 소크라테스가 특유의 산파술을 발휘하여 자신의 정의 개념을 다른 이에게 설득시키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 설득에 불만을 품고 열정적인 반박을 하는 이를 다시 설득하는 과정까지 포함해서. 정의에 대한 논의는, 정의의 개념 정의를 넘어서서, 플라톤이 생각하는(<국가>에 나오는 화자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의 분신에 가까운 존재입니다.) 정의가 현실적으로 구현된 것처럼 보이는 가상 국가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원래 <국가>라는 제목보다 더 정확한 번역어인 '정체'라는 말을 써보자면, <국가>에 나오는 가상국가는 플라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정치 시스템이 구현된 국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의 논의는 계속 이어집니다. 그 가상국가를 지키고 운영하는 수호자 계급의 교육은 어찌해야 하는지, 수호자 계급의 삶은 어찌해야 하는지, 그들의 미덕은 무엇이고, 그들을 제외한 다른 계급의 미덕은 무엇인지. 소크라테스는 이 가상국가의 각 계급이 자신들의 미덕을 잘 간직한채 국가의 질서를 지켜나가는 것이 정의라 하며, 그렇게 된다면 국가가 잘 돌아간다고 말합니다. 이어서 그는 철학자들이 국가의 우두머리가 되어야 한다는 '철인정치론'을 주장합니다. '철인정치론'을 말하고 소크라테스는 다시 수호자 계급 이야기를 꺼냅니다. 여성도 수호자가 될 수 있다 부터 지금의 입장에서 보면 충격적인 '처자공유제'도 그 이야기 중에 언급됩니다. 원래 여성을 남성보다 불완전한 인간으로 생각했던 아테네 성인 남성의 시각을 생각한다면, 여성도 수호자 계급이 될 수 있다는 건 놀라운 이야기겠죠. 하지만 뒤에 이어지는 수호자 계급에서 여성이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가에 대한 언급부터 '처자공유제' 이야기를 읽다보면 <국가>는 다시 제가 아는 플라톤의 책이 됩니다. 벗어난 만큼 되돌아가는 이 놀라운 회복탄력성이란. ㅎㅎㅎ 어찌 됐든 그 부분을 넘기면 소크라테스는 '선의 이데아'를 언급하면서 '이데아론'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여기서 너무나도 유명한 '동굴의 우화' 가 나오죠. 동굴에서 벗어나면 수호자 계급을 구체적으로 어떤 과목으로 교육시켜야 하냐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부분을 벗어나면 예술이 이데아의 모방에 불과하다는 예술에 대한 비판 부분이 나옵니다. 마지막으로 사후 세계를 언급하며 선의 이데아를 추구하며 살면 죽어서 좋은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을 하며 책이 끝납니다.

아마도 <국가>를 두고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저의 역량상 많은 이야기를 할 능력도 안 되고, 글의 분량이 늘어나기 때문에 하기도 힘들 것 같습니다. 저는 그냥 제가 하고 싶은 말만 할께요. 이 이후로 서양 사상을 지배하게 되는 '본질주의'의 보고라고 할 수 있는 <국가>를 통해 이데아론을 읽고 책을 덮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현상 너머에 있는 이데아라는 본질을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본질주의'의 입장에서 본다면, 플라톤의 <국가>도 이데아의 모방이 아닐까 하는. 그러니까 제가 보기에는 플라톤의 <국가>도 이데아의 모방입니다. 본인이 비판하는 예술처럼, 본인이 쓴 <국가>도 이데아의 모방인 것이죠. 다만, 플라톤의 입장에서 본다면, 예술은 이데아라는 본질을 외면하지만, 자신이 쓴 책은 본질로 향하게 만든다는 게 다른 점이죠. (여기에 관해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제 의도와는 다르니 넘어가겠습니다.) 이상적인 가상국가 이야기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국가> 자체가 이데아의 모방이라고 한다면, <국가>의 영향을 받아 이후에 나오게 되는 많은 이상적인 가상국가 이야기들은 '이데아의 모방의 모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데아의 모방'이 만들어낸 무수히 많은 '모방의 모방'들. 무수히 많은 개념과 관념, 이야기를 탄생시켰다는 점에서 플라톤의 <국가>는 엄청난 침투력과 파급력을 가진 책입니다. 리처드 도킨스가 주장하는 '밈'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면, <국가>는 강한 밈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죠. 근데 생각을 조금 더 해보니 뭔가 궁금해지네요. 이상적인 가상국가 이야기의 원조인 <국가> 자체가 모방이라면, 그 모방을 가능하게 한 사고는 어디에서 흘러나온 것인가요? 당연하게도 그건 플라톤의 머리겠죠. 플라톤의 머리에서 흘러나온게 <국가>라면, <국가>는 플라톤의 정신의 모방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국가>가 '이데아의 모방'이자 '플라톤 뇌 속 사고의 모방'이 되는 가능성이 열린니다. 그래서 저는 책을 다 읽고 나니 플라톤이 정말 뛰어난 픽션 작가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밈: 고도의 인간 사유의 총체인 문화의 구조가 생물학에서 다루는 유전자의 특성과 닮아 있다는 이론. 그리스어로 모방을 뜻하는 단어인 '미메시스(Mimesis)'와 '유전자'(Gene)의 합성어로, 리처드 도킨스1976년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처음 주장하였다. 사상, 종교, 이념, 관습 등의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다양한 문화적 요소들이 유전자의 자기복제적 형태를 띤다고 이해하고 이들을 일종의 문화 유전자처럼 취급한 것이다. 도킨스는 문화 유전자의 전파는 뇌와 뇌 사이에서 이뤄진다고 언급한다.(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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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이카 2020-07-24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짜라투스트라님, 안녕하세요? 존경스럽습니다. 저도 읽고 싶은데, 핑계 같지만 나귀와 노새의 삶이 그걸 허락치 않네요. ㅠㅠ

짜라투스트라 2020-07-24 21:48   좋아요 0 | URL
ㅎㅎㅎ 저도 뭐 어찌어찌 읽어서.. 나중에 기회 되면 조금씩 조금씩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