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반역실록 - 12개의 반역 사건으로 읽는 새로운 조선사
박영규 지음 / 김영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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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반역실록-박영규

독서노트 7603.

반역은 새로움에 대한 갈망에서부터 비롯된다. 반역은 그 시대를 부정하고, 다른 시대를 꿈꾸는 일이며, 다른 권력을 생산하는 일인 까닭에 그렇다. 따라서 조선의 역사를 반역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것은 숨겨진 조선의 속살을 들춰내는 일이기도 하다.

역사는 늘 이긴 자 입장에서 서술된다. 때문에 반역자는 항상 악인으로 기술될 수밖에 없다.하지만 그 서술의 행간을 자세히 살피고, 그 행간에 숨어 있는 또 다른 진실을 찾아내면 반역의 그늘 속에 숨겨진 그 시대의 진짜 모습이 드러난다.(p.5)

독서노트가 7603번까지 온 것을 보니 묘하다. 읽은 책들을 아무것도 적지 않고 그냥 흘려보내면 남는 것이 없어서 책을 읽고 나서 무언가 남기겠다는 각오로 시작한 독서노트가 여기까지 오다니. 포기할 수도, 그만둘 수도 있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꾸역꾸역 한자한자 적어내려가다 15년이 넘는 시간을 넘어 지금에까지 이르다니. 내가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뿌듯하면서도, 끈기가 부족하다고 여겼던 내 모습이 아닌 것 같아서 느낌이 이상하다. 앞으로도 이렇게 할 수 있을까. 갑자기 의구심이 들지만, 지금까지 내가 해온 것을 생각해보니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나는 나이니까.

뜬금없이 내 독서노트를 일부 공개한 까닭은, 내가 읽은 책들에 관한 글을 쓰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글을 써야한다는 생각은 있는데, 쓰지 않고 시간만 보내는 모습에서, 무언가 초조한 생각이 들었다. 글은 써지지 않고, 아니 쓰고 싶지 않는데, 어떻게든 글을 써야한다는 생각은 들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태에서 고민하다 내가 지금까지 써온 독서노트를 토대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5년이 넘는 시간동안 꾸준히 독서노트를 써왔는데, 그처럼 독서노트와 연계해서 글을 쓴다면 꾸준히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일종의 자구책으로 등장한 독서노트와의 연계를 통한 글쓰기가 독서노트처럼 꾸준한 글쓰기로 이어질 수 있을까.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다른 게 있다. 독서노트와 연계해서 글을 쓰자는 생각이 들자마자 이전까지 글을 쓸때마다 느껴졌던 글쓰기에 대한 부담감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점. 이 부분에서 꾸준한 글쓰기에 대한 미래는 긍정적이다. 물론 실제로 꾸준한 글쓰기로 이어질지는 해봐야 아는 일이지만.

이러저리니 해도 가장 중요한 건 일단 쓰는 것이다. 글을 써야 진짜 글을 쓰는 것이고, 쓰지 않고 말만 한다면 아무 소용 없는 일이다. 글을 쓰고 있다보니, 글쓰기에서 행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더 알 수 있다. 비록 지금 내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없는 횡설수설의 상황이라고 해도(^^;;). 쓴다는 생각만 하거나 말만 하는 것과 진짜 쓰는 것은, 하늘과 땅처럼 엄청난 차이가 있다. 둘의 차이는 어느 정도일까? 말과 생각은 말과 생각으로만 존재하고 다른 이에게 전해지거나 다른 매체로서 기록되지 않는다면, 어떠한 흔적을 남기지 않고 흩어지거나 소멸한다. 반대로 글은, 그 내용이 어떻든간에, 일단 글로써 써서 기록된다면 하나의 흔적으로 자신을 남길 수밖에 없다. 소멸하는 것과 소멸하지 않는 것의 차이. 앞에서 말했지만, 이 차이는 엄청나다.

<조선반역실록>을 들여다봐도 둘의 차이는 명확하다. 반역을 혼자서 생각만 하거나, 반역과 유사한 말을 혼자서 내뱉은 이는, 말과 생각의 특성상 반역자로서 역사에 기록될 확률이 낮다. 반대로 반역을 실제로 실행한 이들은 진짜 반역자로서 역사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 성공한 반역자가 되거나 실패한 반역자가 되는 것으로. 진짜 반역자에게는 죽거나 살거나의 길밖에 없고 결과에 따라 반드시 역사에 기록된다. 그에 비해 말과 생각만 하는 이는 최악의 상황을 피할 확률이 높다. 당연하게도 역사에 흔적을 남기지 않을 것이고. 정치적 목적에 의해 억울하게 반역자가 된 이들을 제외한다면, 역사에 글로써 남겨진 진짜 반역자들의 삶은, 어떤 식으로든 그 이전의 삶으로 되돌아 갈 수 없다. 글과 달리 말과 생각은 소멸하기 쉽기 때문에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위의 관점을 따른다면, 글은 말과 생각에 비해 무서운 면이 있다. 되돌릴 수 없는 무언가를 세상에 남김으로써 소멸을 거부하기 때문에. 소멸을 거부하며 세상에 흔적을 남기는 글을 쓴다는 건, 글을 쓰기 전의 삶과 글을 쓰고 나서의 삶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글에 따라서 그 영향력이 차이가 있지만, 글을 쓰고 나서의 삶은 글을 쓰기 전의 삶과 다른 건 확실하다. 글을 쓰는 사람은 누구나 그 '다름'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내가 글을 쓴다는 건, 글을 쓰기 전의 삶과의 다른 삶을 감수해야 한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글을 쓰며 앞으로도 계속 쓸 것이다. 지금의 삶과 조금 더 다른 삶을 꿈꾸며. 반역만큼의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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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4-09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003이요?? 역시 짜라님..... 만권하시옵소서...

짜라투스트라 2019-04-13 12:26   좋아요 0 | URL
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