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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4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평점 :
한 인생의 드라마는 항상 무거움의 은유로 표현될 수 있다. 사람들은 우리 어깨에 짐이 얹혔다고 말한다. 이 짐을 지고 견디거나, 또는 견디지 못하고 이것과 더불어 싸우다가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한다.(201)
사랑은 은유로 시작된다. 달리 말하자면, 한 여자가 언어를 통해 우리의 시적 기억에 아로새겨지는 순간, 사랑은 시작되는 것이다.(337)
한 번은 중요하지 않다. 한 번이면 그것으로 영원히 끝이다. 유럽 역사와 마찬가지로 보헤미아 역사도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보헤미아 역사와 유럽 역사는 인류의 치명적 체험 부재가 그려 낸 두 밑그림이다. 역사란 개인의 삶만큼이나 가벼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깃털처럼 가벼운,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가벼운, 내일이면 사라질 그 무엇처럼 가벼운 것이다.(358)
(생략)
한 인간의 삶을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태어나고 살았고 죽었다. 하지만 이 한 문장이 삶을 제대로 표현한 것일까요? 아닐 것입니다. 삶에는 무수하게 많은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삶을 표현하려면 이 문장에 많은 것들을 덧붙여야 할 것입니다. 성장과정, 살아가면서 한 경험, 살아가면서 한 생각, 살아가면서 느낀 감정들, 살아가면서 만난 사람들... 덧붙이고 덧붙이다 보면 깨닫게 될 것입니다. 언어로 삶을 완벽하게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언어는 삶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 없습니다. 삶의 무수한 요소들을 다 알 수도 없거니와 삶의 모든 것들을 표현하는 언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죠. 따라서 삶을 그리는 언어, 삶을 표현하는 언어들은 기본적으로 이미 실패를 품에 안고 있습니다. 언어로 삶을 표현한다는 것은 예정된 실패를 향한 발걸음입니다. 다만, 이 실패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불가능하지만, 실패가 예정되어 있지만, 삶을 표현하기 위해 몸부림치기에 이 실패는 의미가 있습니다.
삶을 표현하는 언어의 대표적인 예가 문학일 것입니다. 문학은 실패가 예정된 장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왜냐고요? 삶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학의 실패는 의미가 있습니다. 제한적이지만 삶을 표현하려고 몸부림치며 '삶의 의미'를 언어로서 구현해내기 때문이죠. 동시에 문학의 실패는 아름답습니다. 왜 아름다울까요? 예정된 실패를 향해 발길을 내딛으며 만들어지는 문학이 우리에게 정서적 울림을 주고, 놀라운 공감의 경험을 하게 만들고, 문학을 읽은 인간을 내적으로 풍요롭게 만들고, 예술작품으로서의 미적인 충족을 우리에게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문학을 아름다운 실패라고 부릅니다.
아름다운 실패로서의 문학은,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고, 표현하려고 노력합니다. 모순덩어리 삶을, 다양하기 그지없는 삶을, 하나의 문장이자 당위의 명제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모순덩어리 그 자체로, 다양성 그 자체로서 나타내려 한다는 말이죠. 삶을 단순한 한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인 것처럼, 문학은 삶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따라서 좋은 문학 작품은 삶이 말해질 수 없고,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되지 않는다고 독자에게 속삭입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도 하나로 정리되지 않는 작품입니다. 삶의 가벼움과 무거움을 왔다갔다하며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인간군상을 펼쳐 보이는 이 작품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무엇을 얘기하지 않습니다. 삶이란 모순투성이고 다양하기 그지없다는 것을 밀란 쿤데라는 특유의 에세이와 소설의 경계를 넘나드는 스타일과 잘 짜여진 구성으로 넌지시 보여줄 뿐입니다. 스타일만큼이나 소설은 삶의 가벼움과 무거움을 왔다갔다하며 책을 읽는 이에게 다층적 삶의 진실을 알려줍니다. 다 읽고나면 깨닫게 되겠죠. 우리 모두가 삶의 무거움과 가벼움을 왔다갔다한다는 소설 속 등장인물들과 다를 바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가벼움과 무거움 모두를 포함하는 게 우리네 삶이라는 진실을. 삶의 이 진실을 알려준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만으로도 저는 이 책이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