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어찌 하다보니 거의 1달 만에 이 책을 집어들었다. 지난번 포스팅 막판에 받아 적는 것과 관련한 요 근래의 논쟁(서울대 우등생들이 좋은 학점을 따기 위해 교수님의 얘기를 글자 한토시도 빼놓지 않고 모조리 받아 적는 행위)을 다뤘었는데, 모든 것이 일장일단이 있듯이 받아 적는 행위도 일장일단이 있음을 저자의 글을 통해 보게 되었다. 이것이 창의성이 중요시되는 요즘 시대에 맞지 않다는 의견도 있었고, 온전한 지식 습득을 위해서 마땅히 거쳐야 하는 행위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이 논쟁과 관련하여 사람마다 각자의 상황 혹은 목적에 따라 지지하는 의견이 갈릴 것으로 보여지는데, 저자는 이 내용과 관련해서 딱히 부정적으로만 볼 것도 없지 않느냐는 식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
.
.
뒤이어 나오는 글에는 목표와 방법이라는 것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나온다. 개인적으로는 이 글을 읽으면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논쟁이 생각났다. 어떤 것이 목적이고 어떤 것이 수단인지 헷갈리는 경우들이 있는데, 저자는 방법이 올바르다면 목표는 저절로 달성되어야 하는거 아니냐는 말과 함께 각종 공부법 책들의 저자들이 강조하는 노하우를 얻는 것 자체가 목표가 되어버린 현실에 대해 얘기한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끊임없이 돌고 도는 생각의 꼬리가 이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서 나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글이었다.
.
.
.
이어 읽다가 닉 드레이크 라는 가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사람은 살아 생전에는 가수로서 철저한 무명이었는데 죽은 뒤 어떤 계기로 인해 갑자기 그의 곡이 인기를 끌면서 소위 말하는 사후 성공을 하게 된다. 개인적으론 처음 알게 된 얘기였는데, 참 이런 걸 보면 사람일이라는 거는 진짜 알다가도 모를 일인 듯 하다.
.
.
.
뒤에 연이어 나오는 내용 중에 11월에 대한 느낌을 얘기한 에세이도 개인적으로 흥미로웠고, 오늘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 나온 ‘고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는 고전에 대해 또다른 시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예전에 이탈로 칼비노가 쓴 ‘왜 고전을 읽는가‘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둘 다 고전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 책과 뭔가 유사한 느낌을 받았다. 오늘 알게 된 이 책을 읽을 기회가 있기를 바래본다.

오늘 포스팅의 마지막에는 환상문학과 관련된 내용이 잠깐 나온다. 이와 관련하여 ‘츠베탕 토도로프‘ 라는 사람이 쓴 《환상문학 서설》에 나오는 내용들이 언급되는데, 환상문학이 가지고 있는 특징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또한 별도로 밑줄치지는 않았지만 이 분야에도 보르헤스, 드 퀸시, 러브크래프트, 렘, 우드하우스, 셀린 등 정말 많은 작가들이 활동했거나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하게 된 작가들인데 기회가 되면 이 작가들이 쓴 책들도 읽어보면 좋겠다.

받아 적기를 스트레스 상황에 대한 임시방편쯤으로 폄하할 수도 없을 것 같다. 1513년 마키아벨리는 친구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단테가 말했듯이, 배운 것을 잘 붙잡아 두지 않는다면 지식이 되지 않기 때문에, 나는 현인들과의 대화에서 얻은 배움을 적어 두었다. - P100

지식은 새로운 것의 생산이고, 생산에는 재료와 창고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잘 붙잡아 둔 배움의 모습은 필기일 수도 있고 암기일 수도 있다. 암기를 위해서라도 필기는 해 두어야 할 것 같다. 생각해 보니 받아 적기 자체에는 별로 죄가 없는 것 같다. - P100

그저 삶은 누구에게나 고생스러운 것이고 선택의 결과는 각자가 감당할 몫이라는 진실 - P102

주어진 과제를 그냥 수행하지 않고 자신의 언어로 재구성한 다음 최적화된 방법을 찾아내는 사람의 통찰 - P102

방법이 올바르다면 목표는 저절로 달성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저절로 달성되는 것들은 중요성이 0으로 수렴되는 게 맞지 않을까? 그들이 목표보다 방법을 더 중시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당연하다. 왜냐하면 딱히 목표를 따로 강조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 P104

우리는 어릴 때 목표가 우선이고 방법은 부차적이라고 배워 왔다. 살아갈수록 어설픈 목표나 기획은 결국 사람의 노력이나 인내에 의지하려 할 뿐이라는 걸 알게 된다.  - P104

목표가 좋은 것보다 좋은 방법을 찾아내는 게 더 중요한 문제로 보인다. 생각해 보면 좋은 방법을 찾아낼 능력이 있었던 목표는 이미 실현되어 우리가 더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상태가 되어 있을 것 같다. - P104

작업 분할의 시간적 이득은 작업 변경을 억제 또는 연기해서 생기는데, 공간이 이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이득은 시간에 지불할 것을 공간에 떠넘김으로써, 공간을 시간과 맞바꿈으로써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 P107

일본의 요리 고수들은 요리가 끝났을 때 주방 정리도 같이 끝나 있다고 한다. 매순간 치우는 것을 병행하는데, 어떤 일이든 최대 공간을 확보한 상태에서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 P107

최대 공간 확보의 실질적인 의미는 뭘까? 정신 집중? 안전? 궁금했는데, 이제 이유를 알 것 같다. 급할 때 무엇이든 늘어놓을 수 있기 위해서가 아닐까? 즉, 필요시 시간과 교환할 공간을 갖기 위해서 말이다. - P107

어떤 일이든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생각지 못했던 것들을 늘어놓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 P107

접어서 봉할 때 나는 소리들이 아주 일정하고 규칙적인 리듬에 도달하는 순간이 있었다. 그러면 손의 움직임은 이미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고 마음은 잡념이 사라져 평화로웠다. - P110

나는 삶이 피곤해질 때마다 평화롭게 봉투 붙이던 기억으로 되돌아가곤 했는데, 결국 깨닫게 되었다. 단순 작업이 가져다주었다고 믿은 마음의 평형 상태가 실은 그 직장의 안정성을 반영하고 있었을 뿐이라는 걸 말이다. - P110

의미도 없고 파편화된 노동의 종착역은 정신병원이라는 것이다. - P110

물건 하나를 혼자서 완성해야 ‘유기적인 노동‘이고 분업으로 일부만 담당하는 것은 ‘물화(物化)된 노동‘이라고 폄하한 20세기 철학자들의 교설 - P111

주인공의 정신을 파괴하는 주범은 파편화된 노동의 반복 자체라기보다는 미친 듯이 변하는 컨베이어 벨트의 속도임이 곧 드러나기 때문이다. 관리자가 모니터로 노동 과정을 감시하면서 컨베이어 벨트의 속도를 한계 이상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 적나라한 통제 앞에서는 유기적인 노동도 무력하기는 마찬가지다. - P111

노동의 온전함을 해체하는 것은 단순화가 아니라 관리와 통제라는 것을 받아들이면 우리는 단순 노동 자체를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 P111

‘오직 단순화하라‘가 일터의 모토가 되면 좋지 않을까.
단순화된 일 속에서 우리는 창의적일 수 있고 때로는 정신적 휴식도 취할 수 있으니 말이다. 좋은 일이란 아마 그 두가지를 다 주는 일을 말하는 것일 게다. - P112

발터 베냐민에 따르면 나쁜 작가의 특성은 "아이디어가 많이 떠올라서 허우적대는" 것이다. 글을 쓸 때면 이런 경향을 피하기 어렵다. 펜대를 잡으면 누구나 조금씩은 문학가가 되기 때문이다. 글의 이상형은 문학이고, 문학은 ‘뭔가를 예쁘게 말하는 것‘이라는 통념이 있으니 이런 경향이 자연스럽다 할 수도 있겠다. - P114

통제력은 훈련의 결과 - P114

토마스 만에 따르면 모든 개성적인 것은 이국적인 것으로 여겨진다고 하는데, 특출한 능력도 비슷한 운명인 듯하다. - P119

좋다고 팔리지는 않아. - P123

오디오북은 타인의 낭독을 듣는 것인데, 이것이 묵독과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묵독 역시 자기 머릿속에 울리는 음성을 듣는다는 건 같기 때문이다. - P127

"이번 11월에는 너한테 전해 줄 소식이 없구나."

미국 시인 앤 섹스턴이 친구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이다. 이유는 알 수 없는데, 이 평이한 구절이 소셜네트워크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섹스턴의 문구 중 하나가 되었다. - P129

11월은 옆으로 비켜서 회고하는 달이다. 비키는 건 우리지 11월이 아니다. 이때가 되면 각 매체들은 올해의 기억들을 정리해서 보여 주기 시작한다. 대체로 ‘올해의 책‘ 목록이 가장 먼저 나오고, 이어 올해의 영화, 공연, 히트 상품 등이 차례로 게재되는 것이 보통이다. - P130

나는 점점 더 한 해를 열 달만 있는 척하고 빨리 마무리하는 게 꽤 사리에 맞는 일이라고 느끼게 되었다. 왜 12월 31일 쯤에 결산을 하지 않는 걸까? 새해의 입구이자 일부인 진짜 연말은 회고를 하기에 적당한 시점이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 P131

아마 우리는 산다는 것과 회고하는 것이 양립하기 어려운 활동이라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아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 해를 정리하기에 적당한 시점은 아무도 진짜 연말이라고 여기지 않는 시기, 늦가울의 어느 달일 수밖에 없다. - P131

두 달 빠른 결산 관행이 암시하는 교훈이 있다면 이런 것이다. 우리에게 별도의 시간이 주어지는 일은 영원히 없으며, 생각과 정리에 쓸 시간은 우리가 생활하는 시간을 헐어서 마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하필 11월을 회고의 달로 만든 것은 나쁜 선택 같아 보이지 않는다. 아마 우리의 회고는 11월 날씨 덕분에 좀 더 감정이 풍부하고 내면적인 것이 되어 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 P132

재앙은 긴급함과 나른함을 동시 발생시킨다. 재앙은 일상을 파괴하는데, 보통 일상은 우리에게 휴식을 주기보다는 닦달하는 쪽이므로, 일상이 멈춘 틈에 뜻밖의 나른함이 생긴다. - P134

케르테스의 홀로코스트 소설 『운명』에는 아버지가 수용소로 떠나는 날 학교에 결석계를 내러 가는 소년이 나온다. 가는 길에 소년은 봄날의 따사로움과 한가함에 태평해진다. - P134

장서가는 경험을 통해 자기 책들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달은 자이다. 그는 질서의 훼방꾼인 책의 물성을 존중해야 함을 안다. - P135

우리가 집에서 하는모든 책 정리는 일차적으로 크기에 지배된다. 이게 중력처럼 당연한 거라서 자각이 쉽지 않지만, 주제나 취향에 따른 의식적인 분류는 그 조건 위에 이차적으로, 부분적으로 가능할 뿐이다. - P135

포툠킨 마을은 18세기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의 지방 시찰에서 유래한다. 여제의 심복이자 연인이었던 포툠킨은 여제의 방문지마다 가짜 마을을 뚝딱 세웠다. 여제가 떠나면 마을은 재빨리 철거되어 다음 방문지로 운반되었다. 역사가들은 이 전설이 과장이라고 보나, 아무튼 포툠킨이라는 이름은 불멸이 되었다. - P138

바보들은 언제나 속아 넘어가기 마련이고, 안됐지만 내 책임은 없는 것이다. - P139

포툠킨 마을의 질문은 이런 것이었다. ‘가짜로 그렇게 진짜를 덮어도 되는가?‘ 포툠킨 서명은 그에 대한 답처럼 보인다. ‘괜찮아! 내가 아니더라도 권력을 쥐면 누구든 똑같이할 거거든.‘ - P139

감성이라는 말이 엉성해 보여도 그게 가리키는 문제까지 시시해지는 건 아니다. - P143

더 이상의 발전은 없을 것이고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이미 발명되어 있다는 식의 단언은 늘 나를 놀라게 한다. 그걸 어떻게 아는지? - P143

디지털 때문에 뭔가 상실되었다는 게 아날로그가 궁극의 형태라는 증명이 되지는 않는다. 단지 기술이 갈 길이 얼마나 먼지 보여 줄 뿐이다. - P143

"기술은 아직 충분히 발전되지 못했다. 기술은 아직 너무나 세련되지 못했다. 이것이 바로 상황의 진면목이다."『철학을 위한 선언』에서 알랭 바디우가 썼듯이 말이다. "기술은 더 노력해야한다." - P144

고전이란 무슨 뜻인가? 그(생트뵈브)는 먼저 라틴어 ‘클라시스(Classicus)‘의 뜻을 검토한다. 이는 원래 일정 수준 이상의 수입을 가진 시민 계층을 뜻하는 말이었다. 이는 자연스럽게 여타 평범한 작품들과는 다른 급으로 생각해야 할 특별한 작품들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보다시피 여기에는 오래되었기 때문에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은 들어 있지 않았다. 그 점에서 고전(古典)이라는 한자어는 딱히 좋은 번역어는 아니다. - P147

고전의 특징은 무엇인가? 그런 건 없다. 정확하게는, 고전을 써내는 공식 같은 건 없다. - P147

어떤 작품이 고전이 되는가? 아무도 모른다. 나중에 알게 될 뿐이다. 생트뵈브는 발표 당시 ‘현대의 고전‘ 같은 간지러운 소리를 들을수록 이십오년 뒤에 초라해질 가능성이 더 큰 것 같다고 말한다. - P147

고전의 순위는 유동적이다. 홍행작가였던 몰리에르는 원래 라신이나 코르네유와 동급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뒤 몰리에르는 그들을 넘어서는 천재로 떠올랐다. - P147

도대체 고전의 쓸모는 뭘까? 그의 답은 "모든 여행과 경험을 마친 이에게 찾아온 기쁨"이었다. - P147

고전을 수단이 아니라 문학 작품으로 관조할 수 있게 된 상태의 인간 - P148

아마 우리에게 필요한 고전 목록은 어린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닌, 늘그막의 인간을 위한 길잡이여야 할지 모르겠다. 권위로 지정한 텍스트들이 아닌, 지금이라도 읽지 않으면 후회할 작품들로 채워진 목록 말이다. - P148

엥겔스는 "정당의 명칭이 꼭 들어맞는 일은 없다."라고 한적이 있다. 그는 사업가이기도 했으므로, 간판과 본업 사이에 필연적으로 괴리가 생기는 문제에 대해 현실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 P149

이쪽 업계인들이다 마찬가지지만 제일 먼저 살펴보는 곳은 판권면이었는데(그렇다. 우리가 본업을 대하는 태도는 결코 정신적이지 않다.) 중쇄를 찍은 책이 잘 보이지 않았다. - P150

"환상적인 것은 망설임의 시간만큼만 지속된다."라는 토도로프의 유명한 정의 - P152

그(츠베탕 토도로프)에 따르면 환상문학은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애매성. 사건이 초자연적인 것인지 다른 합리적인 설명이 가능한지 독자가 망설여야 한다. 둘째, 동일시. 독자는 망설이는 등장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해야 한다. 셋째, 축어성. 사건은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시적, 알레고리적 해석은 금지된다. - P15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악스트 Axt 2024.1.2 - no.52 ㅣ 악스트 Axt
악스트 편집부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 리뷰, 작가 인터뷰, 평론가들 간의 담화, 에세이, 연재 소설 등 각종 읽을거리들을 통해 수많은 작가님들의 생각과 감성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잘 몰랐던 작가님들이나 작품들을 만날 수 있어서 독서의 폭이 좀 더 넓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문학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지난 포스팅에 연이어서 주인공인 이나을과 남자친구인 큐와의 대화가 이어진다. 두 사람의 성격이 조금은 다른 구석이 있어 보이긴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려는 모습이 나쁘지 않아 보인다.

위의 두 사람의 대화가 일단락되고 절을 바꿔서 소설의 앞쪽에선 등장하지 않았던 시나리오 작가인 연나진이 갑작스레 대화에 등장한다. 라이터스 헤븐과 액터스 헤븐이라는 약간은 생소한 용어와 함께.

한편 여기 별도로 밑줄치진 않았지만 주인공인 이나을은 신인 배우로 데뷔하려는 찰나에 인터넷 상에 올라온 정체불명의 한 인물로부터 학폭과 관련된 의혹을 제기받는데..

이번 호의 마지막에 나온 3명의 작가가 쓴 작품은 연재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이야기가 마무리되지 않고 중간에 끊어지는 데, 앞의 두 작품과는 달리 마지막에 나온 김나현 소설가의 작품은 특별히 더 뒷 얘기가 궁금해지는 시점에 끝나서 그 아쉬움이 좀 더 크게 느껴졌던 것 같다. 다음 호를 사서 읽어보라는 출판사의 고도의 전략이었다면 나름 배치가 잘 된 듯 하다. 독자들의 호기심이 슬슬 올라오는 적절한 타이밍에 to be continued 라는 메시지가 나왔으니 말이다.

"네가 먼저 잘돼서 정말 좋아. 나에게는 예행연습이 된다고 할까?" ‘네가 먼저 잘돼서 좋다‘는 그 말을 큐가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큐는 언젠가 자신에게도 그러한 미래가 예정되어 있다고 믿었다. 그 순수한 예견에서 오는 자신감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그 예견 뒤에 다른 방식의 꼬리표를 붙이고 있었다. 큐는 정말 배우가 될까?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언제? 도대체 언제쯤? - P252

"라이터스 헤븐, 그건 내가 가야 할 곳이고, 엑터스 헤븐은 두 사람이 가야할 곳이죠."
"작가의 천국? 배우의 천국?" - P253

"각자의 업마다 갈 수 있는 천국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천국에 가는 조건은 뭐예요?"
"작가라면 좋은 작품을 쓰고 배우라면 좋은 연기를 하는 거죠. 일생에 한 번이라도 그런 걸 해내면 천국행 티켓을 받는 거예요" - P253

"아무리 나쁜 일을 저질러도 작품이든 연기든 훌륭하게 해내면 천국에 가는 거예요?"
오겸의 질문에 연 작가는 장난스럽게 눈을 흘렸다
"도대체 무슨 나쁜 일을 하셨길래?"
"아니요. 그런 일 없어요. 앞으로도 없을 거고."
"단언하지 말아요. 사람 일은 모르잖아." - P253

"연기를 훌륭하게 하기만 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 좋은데요? 그럼, 그 말에 매달려서 저는 연기만 생각하고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오겸이 술을 벌컥 들이켰다. 그가 연인과 헤어져야 하는 일에 죄책감을 느끼는 건 아닌가 싶었다. - P253

"나도 일에 전념하고 싶어서 지어낸 거죠. 라이터스 헤븐이니 액터스 헤븐이니." - P254

"그 규칙에 따르면 작가님은 무슨 짓을 저질러도 천국에 가겠네요. 이미 여러 영화를 흥행시켰으니까요."
"그래요? 흥행이 훌륭함의 기준이 되나요?"
달리 무엇이 있겠느냐고 물으며 오겸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 P254

"그럼 훌륭하다는 걸 어떻게 판단해요?"
"훌륭함은 시대의 변덕에 밀려나지 않고 계속 버티는 작품을 써내는거죠." - P254

"시간을 뛰어넘는 무언가를 보여줄 때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해봐요. 어떤 연기를 하든 천국에 가는 연기를 해 보이겠다, 그런 각오로 해보는 게 어때요?" - P254

테이블에 혼자 남아 앉아 있으니, 방금까지 일어난 일이 연극 장면처럼 여겨졌다. 각자 자신이 맡은 역할에 충실하다가 요령껏 무대를 떠났는데, 퇴장할 타이밍을 놓쳐버린 어리숙한 배우만 남아 있는 것 같았다. - P256

"앞으로 알게 되겠지만, 감독님이 말하는 10분은 절대 10분이 아니에요. 한 시간이 되고 어떤 때는 열 시간이 넘기도 하죠. 촬영 들어가면 잘 알게 될 거예요." - P256

시대를 뛰어넘을 만한 훌륭한 연기를 하는 것이 사람을 천국으로 보내준다?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한 후에도 그런 생각은 해본 적 없었다. 그냥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언가 좋은 걸 해야만 이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을 뿐이었다. - P257

"연기 수업이라고 해두죠. 누가 누굴 가르치는지 모르겠지만." - P257

나는 설명했다. 처음 읽을 때는 연필로, 두 번 읽을 때는 초록 볼펜으로, 세 번 읽을 때는 붉은 볼펜으로. 그게 내가 대본을 읽는 방법이야. 아주 꼼꼼하게 세 번 분석해. - P259

사실 이것은 큐가 알려준 공부법의 변형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큐는 한 변호사의 강연에서 그가 책을 볼 때 다섯 가지 색깔 펜으로 밑줄을 그으며 다섯 번 정독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그걸 따라 했고, 그방법이 자신과 잘 맞아 급격하게 성적이 오른 경험이 있었다. 혼자 도서관으로 공부하러 나간 어느 주말에, 앉아 있기가 싫어 막연히 건물을 둘러보다가 들어간 소강당에서 우연히 들은 강연이 큐의 다음 인생을 바꾸었다. 어떤 우연이 우리를 도약시킬지 모른다고, 큐는 그 경험에 빗대어 자주 말하곤 했다. - P25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지난 포스팅에 연이어서 나오는 내용인데, 인생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3가지 유형에 대한 것이다. 첫 번째 유형은 자신이 습관을 바꾼다든지 하는 행동의 변화만으로도 충분히 해결 가능한 유형의 문제 였는데 이는 지난 번 포스팅에서 언급하였고, 오늘은 나머지 2가지 유형에 대한 설명이다. 핵심은 간접적으로 통제가 가능한 것 하나와 애초에 내 손을 벗어난 범위에 있는 유형 이렇게 2가지다. 저자는 각각의 유형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
.
.
다음에 나오는 내용은 삶에서 고통이 주어지는 이유에 대한 얘기인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만약에 신이 있다고 한다면 사람들 개개인의 부족한 부분들을 다듬어 가기 위한 훈련을 시키려고 고통을 주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여기 일일이 밑줄 치진 않았지만 책에 나온 예시들을 살펴보면 사람의 성격적인 측면에서 모나거나 부족한 부분들에 대한 얘기들이 나온다. 이는 포괄적으로 본다면 개개인의 성격이 각자 다름에서 비롯된 인간관계에서의 부딪침과 관련된 내용인데, 이는 마치 물가에 있는 돌멩이들이 처음에는 각지고 날카로웠다가도 물살의 흐름을 타면서 각진 부분들이 깨어지고 차차 다듬어지면서 강 하류에 이르러서는 거의 대부분 둥글둥글해지는 모양을 띠는 것처럼 사람의 인생도 이와 유사하다는 얘기처럼 느껴졌다.


당사자가 간접적으로만 통제할 수 있는 문제. 이 경우에는 자신의 통제 영역을 확장시킴으로써 문제를 해결한다.

당사자가 전혀 통제할 수 없는 문제.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내면적 상태, 즉 자신의 감정이나 반응은 통제할 수 있다.

가장 좋은 태도는 여유있는 미소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면 자신이 처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

때때로 삶이 나에게 특정한 시그널을 보내주는 것 같을 때가 있다. 내가 그 시그널에 내포된 교훈을 제대로 이해할 때까지 삶은 계속해서 동일한 시그널을 보낸다. 이럴 경우 뭔가를 바꿔보고자 이사를 할 수도 있고, 직장이나 파트너를 바꿔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삶이 우리에게 시그널을 보낼 때는 피해가려 하지 말고, 그 시그널에 내포된 교훈이 뭔지 고민해보아야 한다. 어느 누구도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로부터 계속 도망다닐 수는 없다.

처음에는 작은 시그널이 다가오다가 이를 무시하면 망치같이 육중한 시그널이 닥쳐온다.

삶은 우리를 벌주지 않는다. 다만 우리를 가르칠 뿐이다.

모든 것에는 의미가 있다. 간혹 그 의미를 한 눈에 알아보기가 힘든 경우도 있긴 하다. 하지만 어떤 특정한 시점에 자신의 시야를 가리는 베일을 벗게 되면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보인다.

본인이 전달받은 시그널의 의미를 제대로 깨달아야만, 비로소 더 이상 이와 관련한 여러 일들을 겪을 필요가 없어진다.

모든 문제가 ‘삶이 우리에게 보내준 선물‘은 아니다. 많은 문제들은 당사자 스스로가 자초한 것들이다.

개개인의 생각들이 각자의 상황들을 만들어 낸다.

늘 그런 건 아니지만 삶은 때때로 고통스럽다. 삶이 이토록 고통스러운 이유 중 하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통을 겪어야만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고통이 개입되지 않는 한, 많은 것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진짜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 닥치면 사람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자신에게 필요한 변화를 받아들인다.

새로운 도전들이 인생을 강하게 만든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만일 자신에게 선택권이 있다면, 누구나 자신에게 과도하게 부담이 되지 않는 ‘일정한 한계‘내의 편안한 도전을 선택할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이 지향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겪어야 할 것들을 피하고 싶어한다.

여러 가지 도전과 문제들은 그 정의만 살펴보아도 편안함과는 거리가 멀다. 이들은 원천적으로 불편한 존재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역량을 극단적으로 요구하는 상황을 통해서만 성장하기 마련이다.

앞으로도 삶이 결코 ‘수월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를 계기로 성장할 수 있고, 자신에게 주어진 문제들을 예전보다 더 잘 극복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이 책에서 얘기하는 문제를 다루는 방법들은 쉬운 삶을 위한 레시피가 아니라, 드라마틱한 변화를 이끄는 삶을 위한 레시피다.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만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 위너들은 삶에는 늘 이런저런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는 사실을 꿰뜷고 있다.

커다란 성공을 거둔 사람일수록 더 많은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 따라서 그들의 선택은 한가지다. 자신에게 발생한 문제들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인생은 ‘그렇기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는 것이다."

성공하고 싶은가? 위너가 되고 싶은가? 더 큰 문제들을 찾아 떠나라.

내가 이 문제를 겪는 첫 번째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분명히 한다. 유사한 상황에서 성공적으로 행동한 본보기들을 찾아 그들에게서 배운다.

근본적인 문제는, 문제를 바라보는 나의 시각이라는 사실을 이해한다.

‘내 문제의 장점은 무엇일까?‘

나는 사람들이 문제를 발판으로 성장한다는 사실을 안다. 따라서 나는 문제를 피해가지 않는다. 어떤 문제를 극복할 때마다 나는 다음에 맞설 중요한 도전을 찾아나선다. 문제는 내게 일종의 스포츠다.

오랫동안 자신의 고용주를 부자로 만들어준 사람들이 왜 정작 자신은 부자로 만들지 못하는 것일까? 위너들은 이에 대한 답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타인의 통제와 압박이 있어야 비로소 목표를 이루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를 이끄는 방법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생계가 목표였던 사람이 그보다 더 큰 목표를 세웠다면 해야 할 일은 하나다. 오래된 습관을 떠나야 한다. 뛰어난 실력과 능력의 소유자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면 그 실력과 능력을 새롭게 담아낼 새로운 습관이 필요하다. 이 사실을 간과했기에 자신만만했던 독립과 창업이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마는 것이다.

학교 긍부에는 천재적인 소질을 보였던 사람이 사회에서는 낙제생을 면치 못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오랜 루틴, 익숙한 습관, 늘 하던 방식을 자신도 모르게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래된 칭찬과 인정에 푹 젖어 있기 때문이다.

"최악의 고용주는 나쁜 습관이다."

작은 차이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자기통제력이 강하다.

성공은 평범한 일을 특별하게 잘하는 사람이 얻을 수 있는 성취다.

"나의 성공비결은 간단하다. 가장 먼저 출근해서 가장 나중에 퇴근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이를 한번도 어긴 적이 없었다."

습관은 재능과 노력만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철저한 자기통제력, 그리고 자기결정력이 동반되어야 비로소 좋은 습관이 탄생한다.

"나쁜 습관이 없다고요? 좋은 습관이 없는 것이, 가장 나쁜 습관입니다."

목표를 향해 달리는 우리에게 고용주는 ‘습관‘이다. 최악의 고용주를 위해 일할 것인지, 최고의 고용주를 위해 일할 것인지는 오직 자기통제력과 자기결정력, 평범한 일을 특별하게 해내는 루틴에 달려 있다.

‘가장 빨리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한다.‘와 같이 당신의 의지와 통제력을 상징할 수 있는 슬로건을 만들어 본다.

‘나는 누구를 위해 일하고 있는가?‘

"지금 자네가 처해있는 현실을 바꾸려면 비현실적인 목표와 계획이 당연히 필요하지 않겠나? 현실을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삶은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네."

"삶에 목표를 맞추면 유리병 속 호박처럼 된다네. 목표에 삶을 맞춰야 한다네. 1달러를 열망하면 삶은 정확히 1달러만 주지."

위너가 되는데 필요한 것은 목표와 실행, 이 두 가지면 층분하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이 둘을 위한 툴tool과 팁tip일 뿐이다.

목표를 이루고자 할 때는 내가 그것을 이루고자 하는 열망의 크기부터 냉철하게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았고, 그것을 손에 넣고자 하는 열망의 크기를 알았기 때문에 그 열망의 규모에 맞는 돈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무리야‘라고 생각되는 것이 있는가? 그게 당신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목표를 이루려면 터닝포인트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터닝포인트가 목표를 세운 다음 차근차근 계단을 오르다 보면 정상까지 절반쯤 남았을 때 찾아온다고 막연히 생각한다. 틀렸다. 비현실적이고 무리한 목표를 세우는 순간, 즉시 당신 삶의 터닝포인트가 시작된다."

"터닝포인트는 어느 한 순간에 오는 것이 아니다. 손에 닿을 수 없는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손에 넣을 때까지의 전 구간을 성공한 사람들은 ‘터닝포인트‘라고 부른다."

터닝포인트를 원한다면 목표를 유리병 속에 넣어서는 안 된다. 손에 닿는 목표만 이루는 사람에게는 획기적인 터닝포인트가 생겨나지 않는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것도 정말 큰 목표다. 기대하지 않으면 절대 좌절할 일도 없기 때문이다."

삶은 늘 두 갈래 길이다. 기대가 없는 삶, 그리고 기대가 충만한 삶이다.

인생은 자연법칙을 따른다. 무엇인가를 열망하고 그것을 위해 열심히 일하면, 그것을 얻게 된다. 따라서 열심히 일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먼저 열망의 사이즈를 키워야 한다.

열망을 키우려면 그 열망하는 대상이 위대한 것이어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지난번 포스팅에서 문학평론가 황예인 님의 리뷰를 중간정도까지 보다가 넘어왔었는데, 그 때 리뷰해주셨던 것이 오쿠다 히데오 작가의 《라디오 체조》라는 책이다. 그 내용에 이어지는 리뷰 내용인데, 시간이 1주일도 더 지나버려서 핵심 내용을 간단히 상기해보자면, 이 책에 나오는 ‘이라부‘라는 주인공은 기존에 존재하던 암묵적인 질서들을 뒤엎어버리거나 아예 무시함으로써 소설 속에서 핍박받는 인물들은 물론이고, 이 작품의 독자들에게도 쾌감을 주는 그런 독특한 인물이다. 이러한 배경 지식을 가지고 읽어보면 이해가 좀 더 용이할 듯 하다.
.
.
.
다음으로 소설가 권혜영 님의 연재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제목은 《얼지 마, 죽지 마, 사랑하게 될 거야》라고 한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처음에는 ‘상상 동물 대탐험‘ 이라는 제목이었다가 나중에 ‘종이의 감정‘으로 한 번 바뀌고, 최종적으로 위에 적어놓은 제목으로 정했다고 한다. 이는 영화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에서 가져온 제목이라고 한다.

제목과 관련하여 독자인 나의 시선에서 생각하다보니 저자가 저 영화를 굉장히 인상깊게 봐서 제목도 저기서 가져온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또한 저자가 자신이 쓴 이야기에 참고하기 위해 읽어봤다는 이치카와 사오의 소설《헌치백》이라든가 이 책 뒤에 나온 사카구치 안고의 인터뷰 등을 언급하는 내용도 나온다. 문학계에서는 이미 유명하신 분들인듯 한데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잘 몰랐던 분들이라 이번 기회에 처음 알게 되었다. 앞으로 이 분들의 작품들도 관심을 가져볼 수 있는 계기가 될 듯 하다.

이야기를 쭉 읽다보면 현실과 상상 사이에서 마치 줄타기를 하는 듯 한 느낌을 받는데, 이것은 소설 속 주인공이 만화를 그리는 작가로 나오는 것도 영향을 미친듯 하다. 처음에는 미즈키 시게루의 《농농할멈과 나》,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시오리와 시미코》라는 작품을 참조했다고 하는데 이러한 작품들과 무관하게 결국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나마 돈이 되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 중 하나인 성(性)과 관련된 만화를 그리게 되면서 소설 속 주인공이 순간 자괴감에 빠지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자신이 정말 그리고 싶은 작품은 다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생계를 위해 현실과 타협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소설 속 주인공은 잘나가는 동료 만화가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내적 갈등을 조금이나마 해소하는 듯 보인다.

대략적인 줄기되는 내용 정도만 끄적여봤는데 디테일한 내용들은 해당 부분을 찾아 읽어보시길 바란다.

소설 내용과는 별개로 이 소설 속에 나왔던 책 2권이 있어서 여기 간단히 기록만 남기자면,

하나는 다니구치 지로의《우연한 산보》이고, 다른 하나는 미란 보조비치의《암흑지점》이라는 작품인데 기회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향후에 혹시라도 시간이 허락한다면 찾아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싶다. 이렇게 의도치 않게 우연으로 만나는 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
.
.
뒤이어서는 소설가 이서수 님의《여로의 사랑》이라는 작품이 나온다. 맨 앞에 나왔던 각양각색의 사랑에 대한 얘기가 처음엔 무슨 얘기인지 감이 잘 오지 않았었는데,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배경이나 상황 그리고 대화 속에서 사랑의 모양이 참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진짜 순수한 사랑도 있지만 조금은 덜 순수한 사랑도 볼 수 있었고, 미안함이라는 감정도 사랑의 또다른 형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볼 수 있었다. 물론 미안함이라는 게 바람직한 사랑의 형태인지는 좀 더 생각해봐야겠지만 말이다.

등장인물들에 관해 간단히 기록만 남기자면 여로와 영한, 호태와 수선 그리고 여로의 동생들인 미로와 희로 등이 있는데 핵심 인물은 여로와 호태이고 이들은 부녀관계다. 호태가 아빠고, 여로는 그의 첫째 딸이다.

자세한 얘기를 일일이 다 쓰기는 좀 힘들 듯 하고 대략적인 분위기만 보자면 결코 평범한 가족은 아닌 것으로 나온다. 하긴 평범했으면 소설로 굳이 쓸 이유가 딱히 없을테지만 말이다. 막장이라면 막장인 느낌도 있지만, 어찌됐든 이러한 가족같지 않은 가족 안에서 각기 다른 형태이긴 하지만 서로를 사랑하는 일말의 마음들이 있는 것들을 볼 수 있는 소설이었다.
.
.
.
이번 호의 마지막에 나오는 작품은 소설가 김나현 님의 《모든 시간이 나에게 일어나》이다. 핵심 등장인물로는 영화 감독인 윤희재와 그녀의 딸이자 제작사 대표인 윤소이, 주인공인 이나을과 그녀의 남자친구인 큐, 주인공의 상대역인 허오겸 정도를 들 수 있을 듯 하다.

이 소설의 저자는 서두에서 자신이 쓴 소설이 자신이 원래 의도했던 이야기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는 점을 언급하며 ‘인간의 조건‘이라는 것이 갑작스럽게 키워드가 되었다는 얘기를 덧붙인다. 실제로 수록된 부분을 읽다보면 주인공 이나을의 남자친구로 나오는 큐라는 인물이 보통의 배우지망생들과는 다르게 의대생으로 설정되어 있어서 상대적으로 배우를 꼭 해야겠다는 간절함이 약간은 부족한 것으로 나오는 데 이러한 조건이 인물의 성격이나 이야기의 흐름에 어느정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면서 왜 저자가 ‘인간의 조건‘이라는 키워드를 서두에 제시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이외에도 서두 후반부에서 저자는 자기도 자기가 쓰는 이야기가 궁극에는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얘기를 하는데, 어쩌면 이런 점들이 소설의 매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뭔가 정해지지 않은, 끝을 알 수 없다는 게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간 정도 부분까지 읽었는데 뒤에 나오는 내용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다.

누군가 자신에게 잘못을 저지르고 불쾌하게 만들어도 전혀 화를 내지 못하던 사람이 마침내 그에 응대할 수 있는 자신만의 방식을 발견하게 되는 일 (라디오 체조2), 주식으로 억만장자가 되었지만 삶의 감각을 상실한 사람이 이를 되찾기 위해 과감한 결단을 내리는 일(어쩌다 억만장자), 지나친 책임감으로 자신을 억압해왔던 사람이 일탈을 통해 삶에 숨구멍을 내고 새로운 시간 감각을 마련하게 되는 일(「피아노 레슨」), 자의식과잉으로 좀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없었던 사람이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과 함께 수치심을 불러올 게 틀림없는 대규모 행동에 과감히 뛰어드는 일 (퍼레이드)이 모두 이라부의 이런 특별한 치료법 덕분에 가능해지는 거야. - P174

너는 오늘 혼자 회의에 들어갈 후배가 걱정되어 나와의 약속을 미뤄야 할 것 같다고 했지. 함께 회의에 들어가야겠다고. 나는 그 말에 기다렸다는 듯, 마감 때문에 오히려 잘되었다고 답했고, 이라부라면 틀림없이 되물었을 것이다. 후배가 고생하면 안 되나? 회의를 망치면 어때서? 마감을 미루면 큰일이라도 나나? 하고. - P174

책을 모두 읽었을 때, 장난처럼 결심한 건 ‘펑크‘였어. 이라부의 목소리를 불러내어선, 한 사람의 인생에서 정작 무엇이 중요한가? 그런 큰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고, 마감보다는 그간 해보지 않았던 걸 해보는 게, 그 뒷일을 감당해보는게 좋겠다고 답했었는데. - P174

소설을 읽는 건, 어떤 목소리를 내 안에 빌려오는 일. 너에게 이라부의 목소리가 심겼으면 좋겠다. - P175

인간 사카구치 안고는 「타락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살아내고, 인간은 타락한다. 그 외에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편한 지름길은 없다. - P177

온몸으로 살아내고, 온몸으로 타락하는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 구원은 글쎄, 나도 모르겠다. - P177

이 만화, 저 만화에서 공통으로 나오는 구도를 패턴화해서 가져오기만 하면 그뿐이다. 수학 공식 같은 거였다. - P196

수학 공식은 원리를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받아들이고 암기하면 문제는 풀린다. 인수분해 공식은 인수분해 공식인 거다. 인수란 무엇이고 분해는 왜 하는지 궁금해하면 그때부터 인생이 복잡해진다. - P197

그 마음들 덕분에 소연은 돈을 벌 수 있었지만 그 마음들 덕분에 소연은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했다. 마감을 못지켜서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몸을 돌보지 않아 암에 걸렸다. 갑상선절제술을 했다. 세상 사람들이 짝짓기하고 싶다는 욕망은 소연의 삶과 죽음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 P197

모차르트라도 들으면서 뇌를 정화해봐. - P198

히카루의 조언대로 모차르트 들었어. 교향곡 41번은 언제 들어도 장엄하고 고결한 음악이야. - P199

너무 낙담하지 마. 인간은 원래 그렇게 생겨 먹었는 걸. - P200

역시 대가는 기개가 남다르다. 누군가의 상상을 현실로 만드네. - P200

지금 이곳에서 아무것도 그릴 수 없고, 아무것도 쓸 수 없다면 앞날은 어떻게 되든 일단 확 떠나버리자. - P201

누군가는 단 한사람을, 누군가는 더 많은 사랑을, 누군가는 느린 사랑을, 누군가는 오롯이 자신을 향한 사랑을 원한다. - P203

소설을 쓰는 동안 이해가 오해를 낳고, 오해가 이해를 부르는 상황을 자주 마주했다. 사랑과 미움이 뒤엉켜 둘로 나눌 수 없었고, 오랜 미움 끝에 난데없이 사랑이 드러나기도 했다. 나는 결국 사랑 안에 미움도 포함시킬 수밖에 없었다. 미움이 사랑의 하위 감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어쩌면 미움만이 아니라 질투와 시기, 자조와 슬픔 역시 사랑에 포함될지도 모른다. 가족을 사랑하는 일 역시 그러할 것이다. - P203

랭보는 말했다. 사랑은 재발명되어야 한다고, 나는 사랑의 무한한 가능성을 들여다보던 중 가족 또한 재발명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혈연과 제도 기반의 가족은 지금의 우리에겐 너무나 작은 개념이고, 모든 결속의 공동체는 언젠가 이별의 공동체로 변모한다. 마음과 상황은 항상 유동하기에 앞으로 누굴 사랑하고, 누구와 결속될지는 알 수 없지만 언젠가 이별해야 한다는 숙명과 그럼에도 사랑을 계속하리라는 결심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 P203

이제와서, 이유가 중요한가. 과연 이유를 찾을 수가 있나. 아프면 이유부터 찾지만 정작 중요한 건 앞으로의 일인 것을…… - P215

결핍은 당사자만 크게 느끼는지도 모른다. - P217

모든 사랑이 좋은 게 아니라는 것을 여로는 지금 막 깨달았다. - P217

막막한 대양에 혼자 부표를 잡고 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배는 이미 한참 전에 가라앉았다는 사실을 혼자만 모르고서. - P218

"미로야, 가족은 떨어져 있더라도 가족이야.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아." - P219

영한은 늘 그랬다. 웃지 말아야 할 때 꼭 웃었다. - P221

여로의 마음속엔 다른 감정이 숨어 있었다. 이제야 그걸 깨달았다. 언젠가 호태가 극적으로 변하리라는 기대. 생물학적 아버지에 대한 일말의 애정. 소위 말하는 ‘정상‘ 가족에 대한 끝없는 집착. 남편이 돌아오기만 하염없이 기다리는 근대 여성 같은 수선의 소망을 간간이 떠올리면서 여로는 호태에게 전화해 안부를 묻고, 푸념과 고민을 들어주었다. 그런 노동은 명백히 바라는 결말이 있어서 한 것이었다. - P221

"괜찮아?"
여로는 속으로만 답했다.
괜찮겠냐? - P223

"굳이 답하고 싶지 않은 질문이다. 패스할게." - P223

"괜히 같이 가자고 했다. 나 혼자 다녀올걸." - P223

깨진 조각을 이어 붙이려던 행동의 결과가 이것이라니. - P224

"사람들은 서로 더 노력해야 한다고 쉽게 말하겠지.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잖아." - P226

부정적인 말은 절대로 하지 말자. - P233

"하트도 그렸네."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빈정거림인지 감탄인지 알 수가 없었다. 여로는 그들의 감정을 투명하게 읽을 수 없었지만 시민의 입장에선 그게 더 나았다. 형사들의 감정이 투명하게 읽힌다면 도시의 치안이 걱정되었을 테니까. - P234

힘내. 사랑해♡ - P234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거야." - P234

어쩌면 쪽지 같은 건 쓰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럴 가능성이 더 높다. 쪽지가 무얼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 시절엔 무언가를 했다. 여로가 독사 같다고 생각했던 형사는 여로의 말을 믿어주었다. 여로는 호태가 통장에 모아놓은 300만 원을 인출해 이사 비용에 보탰다. 수선은 그 일을 아직까지도 모르고 있다. - P234

어쩌면 내가 모르는 것을 엄마가 알고, 엄마가 모르는 것을 내가 아는 이런 일들이 무수히 많을지도 몰라. 우리는 서로에게 얼마나 많은 것들을 감추었을까. - P235

여로는 더 이상 아무것도 감추고 싶지 않았다. - P235

여로는 직감했다. 눈앞에 열어보고 싶지 않은 상자 하나가 떨어져 있음을. 그것은 사랑에 관한 그들 가족의 실책과 실망, 기대와 상처, 모순되는 주장과 자기 연민이 가득 차 있는 상자였다. 여로는 그것을 못 본척하며 주방을 서성이다 결국 상자를 집어들고서 자신의 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 P235

일단 시작하면 어떻게든 되리란 믿음 - P237

이 소설은 어디에 도달하게 될까. 함께 지켜보는 가운데 서로에게 좋은 것을 발견해가면 좋겠다. - P237

신인을 기용하는 일은 윤희재 감독이 선호하는 방식이었다.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배우가 영화에 등장하면 다른 이미지가 겹치지 않고 캐릭터 그 자체로 보여진다는 이점 때문이었다. - P238

"이상하죠? 잘못한 건 없는데 잘못한 기분이 드는 거요." - P243

무언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연기 공부를 위해 수없이 많은 영화를 보면서 알아낸 공식이 있었다. 가장 불길한 장면은 가장 평화로운 장면 뒤에 붙어 온다. - P244

스캔들은 예방만이 답이었다. 그래서 지나치게 조심하는 태도는 필수였다. - P244

오전부터 줄곧 틀어둔 빌 에반스의 음반이 거실 한구석에 세워놓은 긴 스피커에서 울려퍼지고 있었다. 윤 대표와 나 사이에 침묵이 돌 때마다 아련한 피아노 선율이 어색하게 파고들었다. - P246

"나을 씨도 알겠지만, 이런 이슈가 생각보다 파장이 커요. 불이 난 거랑 똑같아요. 초기에 잡지 않으면 미친 듯이 번져가죠." - P246

나쁜 친구, 일진, 그런 단어를 곱씹어보는데 한 가지가 떠올랐다. 그러자 매듭지어진 기억이 풀려난 듯 누군가 떠올랐다. 내 기억에 그 아이는 ‘앵두‘라는 별칭으로 새겨져 있었다. 그 애가 정소민일까. 본명이 무엇인지 기억나진 않았다.
"최대한 빨리 이 일을 해결해야 해요."
윤소이 대표가 현실을 일깨웠다. 심각한 사안이고 느긋하게 관망할 일이 절대 아니었다. 주저앉아 울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 P247

그거 알아? 공벌레는 어디서 올지도 모를 공격을 막으려고 내내 몸을 말고 있다가 자신을 보호하기는커녕 그 상태로 어딘가 알 수 없는 곳으로 굴러가버린대. 공벌레한테 정말 무서운 건 바람이야. 그 바람이란 녀석 때문에 공벌레의 몸은 알 수 없는 곳으로 휩쓸려가버려. 그러다 바람이 멈추고 갑자기 몸을 폈을 때, 운이 나쁘면 뒤집힌 상태라서 어디로도 갈 수 없게 된대. 다시 몸을 말고 발이 땅에 닿을 때까지 바람이 자신을 다시 굴려줄때까지 기다려야 해. 스스로 몸을 굴릴 수 없는 게 공벌레의 비극이랄까. - P248

악몽은 우리를 다시 만나게 하려고 찾아온 걸까. 그렇다면 악몽에도 효용이 있는 것이다. 그날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큐의 다정한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안정되었다. - P250

전화를 끊자 다시금 오겸이 애인과 헤어진 일과 윤 대표의 불안하게 접힌 미간과 정소민이 쓴 글이 떠올랐다.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썼다. 이불을 덮어도 그런 일들이 덮어지진 않았다. - P250

큐의 느긋함과 친절한 분위기가 미친 듯이 그리웠다. 내가 어떻게 큐랑 헤어질 생각을 한 걸까? 왜 그때 연락을 받지 않았던 걸까? 큐에게 미안해서 한편으로는 자신이 한심해서 멍하니 눈만 뜨고 있었다. - P25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