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포스팅에 연이어서 주인공인 이나을과 남자친구인 큐와의 대화가 이어진다. 두 사람의 성격이 조금은 다른 구석이 있어 보이긴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려는 모습이 나쁘지 않아 보인다.

위의 두 사람의 대화가 일단락되고 절을 바꿔서 소설의 앞쪽에선 등장하지 않았던 시나리오 작가인 연나진이 갑작스레 대화에 등장한다. 라이터스 헤븐과 액터스 헤븐이라는 약간은 생소한 용어와 함께.

한편 여기 별도로 밑줄치진 않았지만 주인공인 이나을은 신인 배우로 데뷔하려는 찰나에 인터넷 상에 올라온 정체불명의 한 인물로부터 학폭과 관련된 의혹을 제기받는데..

이번 호의 마지막에 나온 3명의 작가가 쓴 작품은 연재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이야기가 마무리되지 않고 중간에 끊어지는 데, 앞의 두 작품과는 달리 마지막에 나온 김나현 소설가의 작품은 특별히 더 뒷 얘기가 궁금해지는 시점에 끝나서 그 아쉬움이 좀 더 크게 느껴졌던 것 같다. 다음 호를 사서 읽어보라는 출판사의 고도의 전략이었다면 나름 배치가 잘 된 듯 하다. 독자들의 호기심이 슬슬 올라오는 적절한 타이밍에 to be continued 라는 메시지가 나왔으니 말이다.

"네가 먼저 잘돼서 정말 좋아. 나에게는 예행연습이 된다고 할까?" ‘네가 먼저 잘돼서 좋다‘는 그 말을 큐가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큐는 언젠가 자신에게도 그러한 미래가 예정되어 있다고 믿었다. 그 순수한 예견에서 오는 자신감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그 예견 뒤에 다른 방식의 꼬리표를 붙이고 있었다. 큐는 정말 배우가 될까?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언제? 도대체 언제쯤? - P252

"라이터스 헤븐, 그건 내가 가야 할 곳이고, 엑터스 헤븐은 두 사람이 가야할 곳이죠."
"작가의 천국? 배우의 천국?" - P253

"각자의 업마다 갈 수 있는 천국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천국에 가는 조건은 뭐예요?"
"작가라면 좋은 작품을 쓰고 배우라면 좋은 연기를 하는 거죠. 일생에 한 번이라도 그런 걸 해내면 천국행 티켓을 받는 거예요" - P253

"아무리 나쁜 일을 저질러도 작품이든 연기든 훌륭하게 해내면 천국에 가는 거예요?"
오겸의 질문에 연 작가는 장난스럽게 눈을 흘렸다
"도대체 무슨 나쁜 일을 하셨길래?"
"아니요. 그런 일 없어요. 앞으로도 없을 거고."
"단언하지 말아요. 사람 일은 모르잖아." - P253

"연기를 훌륭하게 하기만 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 좋은데요? 그럼, 그 말에 매달려서 저는 연기만 생각하고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오겸이 술을 벌컥 들이켰다. 그가 연인과 헤어져야 하는 일에 죄책감을 느끼는 건 아닌가 싶었다. - P253

"나도 일에 전념하고 싶어서 지어낸 거죠. 라이터스 헤븐이니 액터스 헤븐이니." - P254

"그 규칙에 따르면 작가님은 무슨 짓을 저질러도 천국에 가겠네요. 이미 여러 영화를 흥행시켰으니까요."
"그래요? 흥행이 훌륭함의 기준이 되나요?"
달리 무엇이 있겠느냐고 물으며 오겸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 P254

"그럼 훌륭하다는 걸 어떻게 판단해요?"
"훌륭함은 시대의 변덕에 밀려나지 않고 계속 버티는 작품을 써내는거죠." - P254

"시간을 뛰어넘는 무언가를 보여줄 때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해봐요. 어떤 연기를 하든 천국에 가는 연기를 해 보이겠다, 그런 각오로 해보는 게 어때요?" - P254

테이블에 혼자 남아 앉아 있으니, 방금까지 일어난 일이 연극 장면처럼 여겨졌다. 각자 자신이 맡은 역할에 충실하다가 요령껏 무대를 떠났는데, 퇴장할 타이밍을 놓쳐버린 어리숙한 배우만 남아 있는 것 같았다. - P256

"앞으로 알게 되겠지만, 감독님이 말하는 10분은 절대 10분이 아니에요. 한 시간이 되고 어떤 때는 열 시간이 넘기도 하죠. 촬영 들어가면 잘 알게 될 거예요." - P256

시대를 뛰어넘을 만한 훌륭한 연기를 하는 것이 사람을 천국으로 보내준다?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한 후에도 그런 생각은 해본 적 없었다. 그냥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언가 좋은 걸 해야만 이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을 뿐이었다. - P257

"연기 수업이라고 해두죠. 누가 누굴 가르치는지 모르겠지만." - P257

나는 설명했다. 처음 읽을 때는 연필로, 두 번 읽을 때는 초록 볼펜으로, 세 번 읽을 때는 붉은 볼펜으로. 그게 내가 대본을 읽는 방법이야. 아주 꼼꼼하게 세 번 분석해. - P259

사실 이것은 큐가 알려준 공부법의 변형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큐는 한 변호사의 강연에서 그가 책을 볼 때 다섯 가지 색깔 펜으로 밑줄을 그으며 다섯 번 정독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그걸 따라 했고, 그방법이 자신과 잘 맞아 급격하게 성적이 오른 경험이 있었다. 혼자 도서관으로 공부하러 나간 어느 주말에, 앉아 있기가 싫어 막연히 건물을 둘러보다가 들어간 소강당에서 우연히 들은 강연이 큐의 다음 인생을 바꾸었다. 어떤 우연이 우리를 도약시킬지 모른다고, 큐는 그 경험에 빗대어 자주 말하곤 했다. -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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