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Johnnie Ray & The Four Lads가 부른 Cry 라는 곡을 처음 들어봤다. 보컬이 상당히 독특하면서도 애절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처음 밑줄친 문장처럼 울고싶을 땐 마음놓고 찐하게 울어야 그 응어리졌던 감정이 말끔하게 해소되지 않을까 싶다. 괜히 어설프게 울었다가는 나중에 뭔가 해소되지 못한 일말의 감정이 내 마음속에 남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So let your hair down and go right on and cry(그러니 모든 걸 털어놓고, 주저 말고 울어버려)" - P51

컨트리 음악은 오랫동안 ‘기술‘과 ‘고백‘, 그리고 ‘예술성‘과 ‘신실성‘을 별개로 치는 원칙을 따라왔다. 하지만 어느 날 행크 윌리엄스가 등장했고, 그는 극과 극을 한데 묶는 데 성공한다. 윌리엄스는 작곡 기술에 숙련된 대가였고, 재능있는 싱어였다. 그 이전에 활동했던 그 어떤 컨트리 싱어보다 더, 그는 자신의 노래에 자신의 삶을 깊이 새겨 넣을 줄 알았고, - P44

미국 음악계는 인종에 따라 분열되어 있어서 흑인 재즈에서 백인 팝으로 ‘크로스오버‘해 대중의 호응을 산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 P43

"God bless the child that‘s got his own (가진 것이 있는 아이는 신의 축복을 받은 것)" - P36

홀리데이는 마태복음 25:29과 관련이 있는 듯한 말로 곡의 첫 마디를 시작한다: "Them that‘s got shall get /Them that‘s not shall lose (돈은 친구를 부르지만 / 가난은 친구를 떠나가게 한다." 그러나 자신의 두 발로 당당히 서 있는 신의 자녀는 운명의 변덕에도 끄떡없고, 진정 축복받은 존재이다. - P36

"빌리 홀리데이는 노래 한 마디 한 마디에 담은 의도와 내용에 귀 기울이게 만든다. 설령 음정과 톤을 희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_조니 미첼 - P36

팝 뮤직은 허구를 먹고 산다. - P35

"Would they be angry if I thought of joining you (내가 당신을 뒤따라간다 하면 그들이 화를 낼까요)?" - P35

"Southern trees bear a strange fruit(남쪽 나무에는 이상한 과일이 열려 있네)" - P30

(로버트)존슨은 블루스의 명인이 되는 대가로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 - P29

"Mal Hombre"(나쁜 남자) - P28

지쳐버린, 그러나 포기하지 않는 아메리칸 드림의 간절함 - P26

"Lagrimas negras (검은 눈물)" - P22

"라파예트으로 가자(Allons a Lafayette)" - P22

"Ma man‘s got a heart like a rock cast in da sea(내 사랑은 바다를 내던진 바위 같은 마음을 가졌지)" - P20

하바네라 리듬ㅡ"스페인적 빛깔(Spanish Tinge)"로 알려진, 박자에 불규칙으로 악센트를 주는 것 - P20

찰리 패튼과 로버트 존슨이 미시시피 델타 지역을 전 세계에 알렸듯, 엔리코 카루소는 자신의 고향 나폴리에 이태리의 총애 받는 도시인 로마와 피렌체조차 넘보지 못할 높은 지위를 선사했다. - P20

카루소는 ‘칸초네 나폴레타나(canzone napoletana-나폴리의 노래)‘의 위대한 아이콘이며, 대중 가요와 오페라를 자연스럽게 융화시킨 발라드 대작 "O sole mio"는 변함없는 나폴리의 성가로 남아 있다. 칸초네 나폴레타나의 대가들은 시나트라/마틴이 주축을 이루는 계보의 선조 격이다. 실제로 카루소는 모든 남성 발라드 싱어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만든 "O sole mio" 버전은 위대한 나폴리적 색채가 살아 숨 쉰다. 카루소가 오페라 계에서 가장 탁월한 테너 중 하나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청중은 그를 자신의 고향 나폴리의 성가를 부른 가수로 기억하고 있다. - P20

"오 나의 태양"으로 해석할 수 있는 "O sole mio"는 햇살 따스한 날을 향한 찬미에서 시작해 위대한 사랑 노래로 전개해간다. - P20

여정을 밟아가며 독자는 재즈와 블루스가 성장해온 과정을 되짚어볼 수 있게 될 것이며, R&B와 웨스턴 스윙이 로큰롤로 진화해간 발자취를 더듬어보게 될 것이다. - P10

이 책의 진미 중 하나는 여기 담겨 있는 흥미진진한 일화들이라 할 수 있다. 그중 가장 눈길을 끄는 폭로의 이야기들은 주로 여기 실린 작품들을 직접 불러 이름을 떨치게 된 유명인들보다는 그 배후에서 일했던 이들과 관련되어 있는 경우가 더 많다. - P11

이 노래들은 세계를 바꿔놓았다. 그 이유를 발견하고 이 곡들을 직접 들어보시길 바란다. - P11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독자는 관심을 기울여 볼 만한 또 다른 긴 곡목 리스트를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에 열거된 곡의 가짓수는 10,001곡에 달한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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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기회가 되어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저자는 소설의 서두에서 등장인물들의 이름만 바꿨을뿐 그 밖의 내용은 모두 사실이라고 말한다.

저자가 보스턴에 살던 시절 한 건축가와 알고 지냈는데 그 사람의 이름은 케이시이고 그와 함께 거주하는 제레미라는 사람은 피아노 조율사라고 한다. 케이시의 아버지는 과거 열렬한 재즈 팬이었던지라 재즈 레코드 컬렉션을 다수 소장했었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부모를 여읜 케이시는 자연스럽게 아버지가 소유했던 재즈 레코드 컬렉션을 물려받게 되었는데, 재즈를 좋아하는 저자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케이시는 출장으로 인해 집을 비우게 되었고 때마침 함께 있던 제레미 역시 어머님이 편찮으시다는 이유로 본가로 돌아가게 되면서 케이시의 집은 부재중이 된다. 근데 케이시의 집에는 마일스라는 개가 있어서 개를 봐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에 케이시는 저자에게 자기 집을 봐주면서 좋아하는 재즈 음악도 마음껏 들으라고 말한다. 저자도 때마침 여러 상황들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져서 케이시의 제안에 순순히 응한다.

이렇게 저자는 케이시의 집에 마일스(개)와 단 둘이 있게 되는데, 아래쪽 어디선가 인기척이 들린다. ‘렉싱턴의 유령‘ 이야기는 누군가가 아래층에 있다는 것을 인지한 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뭔가 긴장감이 조금씩 느껴진다.

누군가가 아래층에 있다. - P22

사람의 그림자는 없었다. - P24

--저건 유령인 것이다. - P27

그러니까 그들은 어디로부터도 들어오지는 않았던 것이다. - P28

"나는 삼십 년 가까운 세월을 건너뛰어, 과거가 그대로 되살아난 상태 속에 있었어. 다만 이번엔 아버지의 잠든 숨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뿐이었지." - P38

"정신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아버지와 난 단단히 결합되어 있었어. 그래서 이상한 얘기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나도 역시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의 아버지와 똑같이 침대에 누워 끝없는 잠의 나락 속으로 빠져들었어. 마치 혈통을 잇는 특별한 의식이라도 계승하는 것처럼 말이야." - P38

"나는 자고 자고 자고...... 시간이 썩어서 녹아 없어질 때까지 잤어. 얼마든지 끝없이 잘 수 있을 것 같았어. 아무리 자도 잠이 모자란 거야. 그때의 나에겐 잠의 세계가 진짜 세계고, 현실 세계는 덧없는, 잠시 스쳐 지나가는 세계에 지나지 않았어. 그건 색채를 잃은 천박한 세계였지. 그런 세계에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까지 생각했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을 때 아버지가 느끼셨을 심정을, 그때 나는 가까스로 이해할 수 있었던 거야.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어? 그러니까 어떤 종류의 사물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거야. 그것은 다른 형태로 나타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거지." - P39

"내가 지금 여기서 죽는다 해도,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나를 위해 그렇게 깊은 잠을 자주지는 않을 거야." - P39

무엇을 보든 이제 넌 아무 소용이 없어. 너는 이제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네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너란 존재는 이제 완전히 끝나버린 거야. 그러자 짐승의 눈마저 허공속으로 사라져버리고, 밤의 어둠만이 소리 없이 방 안에 가득 찼다. - P52

"내가 권투를 좋아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거기에 깊이가 있기 때문이에요. 그 깊이가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그것에 비하면 때리는 거나 맞는 것 따위는 그야말로 아무래도 좋은 것입니다. 그런 건 단지 결과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람은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깊이를 이해하고 있으면, 설사 진다고 하더라도 상처 받지는 않습니다. 사람이 모든 일에 이길 수만은 없는 법이지요. 사람이란 언젠가는 반드시 지게 마련입니다. 중요한 건 그 깊이를 이해하는 것이지요. 권투는ㅡ적어도 나한테 있어서는ㅡ그러한 행위였습니다. 글러브를 끼고 링 위에 오르면 때때로 나 자신이 깊은 구덩이의 밑바닥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끔찍하게도 깊은 구덩이입니다. 아무도 보이지 않고, 누구도 나를 볼 수 없을 만큼 깊습니다. 그 속에서 나는 어둠을 상대로 싸우고 있습니다. 고독합니다. 하지만 슬프진 않습니다." - P61

"한마디로 고독이라고 말했지만 고독에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신경이 갈기갈기 찢기듯 쓰리고 아픈 고독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지 않은 고독도 있습니다. 그런 고독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육신을 깎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지만 노력하면 그만큼 돌아옵니다. 그것이 내가 권투에서 배운 것 중의 하나였습니다." - P61

"잊어버리고 싶은 건 절대로 잊히지 않죠." - P61

"누구에게나 어떤 사람에게나 일생에 한 번쯤은 그런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유 없이 누군가가 싫어지는 일 말이에요. 나는 이유 없이 남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역시 그런 상대가 있더군요. 딱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닙니다. 그런데 문제는 대개의 경우, 상대방도 이쪽과 비슷한 감정을 품고 있다는 거죠." - P62

어떤 부류의 인간은 성장도 후퇴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똑같은 일을 똑같이 반복할 뿐이지요. - P72

처음에 때릴 때는 기분이 좋습니다. 꼴 한번 좋구나 하면서 엄청 기분이 좋아집니다. 하지만 점점 언짢은 기분이 드는 거예요. - P84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말없이 참는 것뿐이었어요. - P85

‘정말 이 정도의 일로 사람은 의기양양해지거나 승리했다고 우쭐해질 수 있는 것인가? 이 정도의 일로 이 녀석은 만족하고 기뻐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자, 나도 모르게 깊은 슬픔 같은 것이 느껴졌던 것입니다. 이 녀석(아오키)은 아마도 진짜 기쁨이나 진짜 자존심 같은 것은 영원히 알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몸속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듯한 저 조용한 떨림을, 이 녀석은 절대 죽을 때까지 느낄 수 없을 거라고. - P88

어떤 종류의 인간에게는 깊음이라는 게 결정적으로 결여돼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나한테 그 깊음이 있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에요.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 깊음이라는 존재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오키에겐 그런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인생은 공허하고, 변화가 없고 단조롭습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주목해준다고 한들, 아무리 겉으로 으스댄다고 한들, 거기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 P88

충분히 잘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내겐 아직 자부심이란 게 남아 있었거든요. 아오키 같은 인간에게 이대로 질질 끌려갈수는 없다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 P89

권투를 오랫동안 하다 보면, 상대방의 눈의 움직임에 민감해지죠. 아오키의 눈은 다리를 꼼짝할 수 없게 된 권투 선수의 눈 같았습니다. 자신은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움직이지 않는 거죠. 자신은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발은 꿈쩍도 안 하는 거예요. 발이 움직이지 않으면 어깨를 원활하게 움직일 수 없게 됩니다. 그러면 펀치에 힘이 실리지 않습니다. 그런 눈이었습니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게 왜 그런지 본인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 P89

인생 그 자체에 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겁니다. 나 자신이 경멸하고 모멸하는 상대에게 간단히 짓눌려 찌부러질 수는 없다고 깨달은 거지요. - P90

나는 틀린 게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틀린 거다, 하고 자신을 계속 다독였지요. - P90

기회가 올 때까지 줄곧 몸을 낮추고 기다리는 능력, 기회를 확실하게 낚아채는 능력, 사람의 마음을 참으로 교묘하게 잡아쥐고 선동하는 능력ㅡ그런 건 아무나 갖출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구역질이 날 정도로 그런 걸 싫어하지만, 그래도 엄연한 능력이란 건 인정합니다. - P93

내가 정말 무섭다고 생각하는 건, 아오키 같은 인간이 내세우는 말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그대로 믿어버리는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스스로는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주제에, 입맛에 맞고 받아들이기 쉬운 다른 사람의 의견에 놀아나 집단으로 행동하는 무리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뭔가 잘못된 일을 저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손톱만큼도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한 무의미한 행동이 누군가에게 결정적인 상처를 입힐 수도 있다고는 짐작도 하지 못하는 무리들이지요. 그들은 그런 자신들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정말 무서운 건 그런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 P94

"침묵이 차가운 물처럼 모든 것에 조금씩 스며들어갑니다. 그리고 침묵 속에서 이거고 저거고 모든 것이 질척하게 녹아버리고 말지요. 그리고 어느 순간 내가 그 속으로 녹아들면서 아무리 소리를 쳐도 누구 하나 귀 기울여주지 않습니다." - P94

다른 사람의 마음 같은 걸 내가 어떻게 읽을 수 있겠어요.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어요. 그냥 알아요, 하고 얼음사나이는 말했다. 마치 투명한 얼음 속을 뚫어지게 들여다보는 것처럼 이렇게 가만히 당신을 보고 있으면, 당신에 관한 것이 환히 보인답니다. - P103

나는 미래라는 것에 전혀 흥미를 가질 수 없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게는 미래라는 개념 자체가 없습니다. 얼음에게는 미래라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얼음 속에는 과거만이 단단하게 봉해져 있을뿐입니다. 모든 것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선명하게 거기에 꽁꽁 가둬져 있는 겁니다. 얼음이란 건 많은 것들을 그런식으로 보관할 수 있습니다. 아주 깨끗이, 아주 선명하게 있는 그대로 말이죠. 그것이 얼음의 소임이고 본질입니다. - P104

나는 과거란 것을 갖고 있지 않아. 세상의 모든 과거를 알고는 있어. 그리고 모든 과거를 봉인하고 있지. 하지만 정작 나 자신에겐 과거라는 것이 없어. - P105

얼음사나이는 과거도 미래도 아닌, 오직 이 순간의 나를 사랑해주었다. 그리고 나 역시 과거도 미래도 아닌 바로 이 순간의 얼음사나이를 사랑했다. 그것은 정말 멋진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 P105

결혼이란 건 반드시 책임이 뒤따르는 거야. - P106

얼음사나이는 얼음으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었다. 얼음사나이는 단지 얼음처럼 차갑다는 것뿐이다. 그러니까 혹시 주위가 따뜻해지더라도 그 때문에 녹아버리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의 차가움은 확실히 얼음과 비슷하다. 하지만 그의 육체는 얼음과는 다르다. 분명히 엄청 차갑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의 체온을 빼앗아갈 정도로 차갑지는 않다. - P106

나 자신이 시시각각 과거로 변해가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게는 미래라는 것이 없다. 그저 과거를 쌓아가는 것뿐이다. 그리고 모두들 그런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다. 그들은 과거를 보고 있다. 나는 뒤쪽으로 스쳐 사라져가는 광경인 것이다. - P114

꿈은 과거에서 오는 거야. 미래에서 오는게 아니지. 꿈은 당신을 속박하거나 하지 않아. 당신이 꿈을 속박하고 있는 거지. 알겠어? - P114

나는 이제부터 여행을 떠난다는 흥분이나 기쁨 같은건 느낄 수 없었다. 그저 하기로 한 일을 어김없이 진행할 뿐이었다. - P115

남극에 있는 이 나의 남편은 예전의 나의 남편은 아닌 것이다. - P118

얼음사나이는, 스키장의 호텔에서 만났던 그 얼음사나이와는 다른 얼음사나이라는 것을. - P118

영원한 과거가, 그 헤아릴 수 없는 무게가, 우리의 발목을 꽉 옭아매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그 덫을 뿌리칠 수 없게 된 것이다. - P119

어디서인지 불어닥친 바람이 하얗게 얼어붙은 그의 말을 과거로 과거로 계속 날려버린다. - P120

대단한 능력도 때로는 예기치 않게 뒤틀릴 수 있다. - P126

어차피 사람이란 언젠가는 혼자가 될 수밖에 없는 법이다. - P128

다키타니 쇼자부로는 어찌 됐든 살아남았고, 살아남은 이상 앞으로도 계속 살아남을 수 있도록 머리를 쓰지 않으면 안 되었다. - P128

외롭지 않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 조금은 이상한 상황이었다. 고독하지 않게 됨으로써 다시 또 고독해지면 어쩌나 하는 공포를 마음속에서 떨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P142

그저, 그저 단순히 참을 수가 없었다. - P147

이렇게 많은 옷은 필요가 없다. 몸은 하나밖에 없는 것이다. - P148

말하자면 나는 주변 공기의 압력 같은 것을 조금씩 조정해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런 시기가 내겐 필요하다. - P151

그 옷들은 그에게 아내가 남기고 간 그림자처럼 보였다. 7사이즈의 아내 그림자들이 켜켜이 몇 줄로 열을 지어 옷걸이에 매달려 있었다. 그것은 인간이란 존재가 내포하고 있는 무한한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무한한) 가능성의 샘플들을 몇 개 모아 매달아놓은 것처럼 보였다. - P155

그 그림자들은 예전에는 아내의 몸에 찰싹 붙어서 그녀의 따뜻한 숨결을 받으며 아내와 함께 움직이던 그림자들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것은 생명의 뿌리를 상실한 채 시시각각으로 말라비틀어져가는, 볼품없는 그림자 더미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 그저 낡고 바랜 옷일 뿐이었다. - P155

고독이 미적지근한 어둠의 진액처럼 다시 그를 흠뻑 적시고 있었다. 이미 모두 끝난 일이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이제 와서 무슨 짓을 한다해도 모든 것은 완전히 끝나버린 것이다. - P156

기억은 바람에 흔들리는 안개처럼 서서히 그 모습을 바꾸어가며, 모습이 바뀔 때마다 조금씩 희미해져갔다. 그것은 그림자의 그림자의, 또 그 그림자의 그림자가 되었다. 그리고 손에 만져지듯 느껴지는 것이라곤 예전에 존재했던 것이 뒤에 남기고 간 상실감뿐이었다. - P159

기억은 선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기억은 거기에, 꼭 걸맞은 무게를 지닌 채로 확실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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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칭 단수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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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분류상 소설로 되어있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소설보다는 에세이에 좀 더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일인칭 단수라는 제목처럼 저자가 주인공이 되어 젊은 시절 자신이 경험했던 일들을 풀어낸 것처럼 느껴졌다. 한편 실제 사실과 더불어 다소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허구적인 요소들이 혼재된 이야기들도 일부 나오는데, 어쩌면 이런 것들 때문에 소설로 분류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그동안 저자의 책을 쭉 읽어왔던 독자들이라면 하루키의 다른 책들에서 한 번쯤 봤을 법한 소재들이 다시금 반복되어 나온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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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처음 들어본 곡의 제목은 California Dreamin‘ 이고 The Mamas & The Papas 라는 밴드가 불렀다고 한다. 이 팀의 리더인 존 필립스(John Phillips)는 동종 업계 종사자들보다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은 편이었지만, 그에 걸맞는 남들이 갖지 못한 연륜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곡은 다수의 커버 버전이 나올 정도로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다만 밴드 멤버들의 말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는 말에 살짝 안타깝기도 했지만 뭐 어쩌겠는가. 인생에 좋은 일도 있으면 좋지 못한 일도 있기 마련이니 말이다. 문득 호사다마(好事多魔), 인생사 새옹지마(人生事 塞翁之馬) 같은 한자성어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존 필립스는 자신의 60년대 중반 포크록 동년배들보다 적어도 10살 이상 많았다. 하지만 세월과 경험은 그의 작곡 실력을 연마해주었고,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교훈을 심어주었다. - P154

"I‘d be safe and warm if I was in L.A (로스앤젤레스에 있었다면 안정되고 훈훈했을 텐데)." - P154

"How tears have filled the eyes / Of friends that you once had walked among (어찌나 눈물이 차오르던지 / 한때 함께했던 친구들의 눈에)." - P151

"Go ‘way from my window, go ‘way from my door (내 창문으로부터 떨어져, 내 문으로부터 떨어져)" - P148

헛수고한다는 의미의, "뉴캐슬에 석탄을 나른다"는 격언 - P146

"River Deep, Mountain High" - P144

"You never close your eyes anymore when I kiss your lips(내가 너의 입술에 키스할 때 넌 이제 더이상 눈을 감지 않지)" - P144

"all we need is music(우리에게 필요한 건 음악뿐)" - P142

"It‘s been a long, a long time coming / But I know a change gonna come / Oh yes it will (너무나 오랜 세월이 벌써 지났지 / 하지만 난 알아. 변화가 올 것임을 / 그럼, 그렇고말고)," - P141

"Desafinado" (음정이 맞지않는)" - P141

"E se domani"(그리고 어쩌면 내일) - P140

"E se domani / e sottolineo se / all‘improvviso / perdessi te / avrei perduto/il mondo intero /nonsolo te(만약 내일 / 정말 ‘만약‘에 말인데 / 갑자기 / 당신을 잃게 되면 / 난 잃게 될 거야 / 세상 모든 것을 / 단지 너만이 아니라)." - P140

"Lando"(그것은 이 곡[samba malato]에 쓰인, 독특하게 주저주저 절룩거리는 리듬의 명칭으로, 외설적 댄스에 쓰이기도 한다) - P138

파리의 표어인 라틴어 문구 ‘Fluctuat nec mergitur‘(‘파도에 흔들릴지언정 침몰하지 않는다) - P137

"Sapore di sale"(소금의 향미) - P135

"Taste of salt / Taste of sea / That you have on your skin / That you have on your lips / When you leave the water / And you come and lie down / Near to me (소금의 풍미 / 바다의 맛 / 네 살결 위의 / 네 입술 위의 / 네가 물속에서 나와 / 다가와 누울 때 / 내 옆 자리에)." - P135

("Where the world is different / Different from here (그 다른 세상 / 이곳과는 다른).") - P135

"roses they can‘t hurt you(장미꽃들은 널 아프게 할 수 없어)") - P134

("One fine day we‘ll meet once more / And then you‘ll want the love you threw away before (어느 화창한 날 우리는 다시 한 번 만나게 될 거야 / 그리고 넌 네가 전에 버렸던 사랑을 다시 한 번 원하게 될 거야)") - P132

브로드웨이는 뉴욕에 위치한 연극과 뮤지컬의 본거지이다. 브로드웨이에서 성공한다는 것은 "그 어디서든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P130

(I‘ll always love you, darlin‘ / And I can see that you got some more tears to shed (항상 널 사랑할 거야, 달링 / 그리고 난 네가 아직 흘릴 눈물이 남아 있단 걸 알 수 있어)"). - P127

"저라는 사람같이 부를 뿐이죠" _레이 찰스 - P127

("I don‘t like you but I love you(난 네가 좋은 게 아니고 널 사랑해)") - P124

("When everybody‘s tryin‘ to sleep / I‘m somewhere making my midnight creep (모두들 잠들려 할 시간 / 난 어딘가에서 심야 잠입에 한창이지)) - P119

"She gives me quivers down the membranes (그녀를 보면 내 세포막이 떨려)." - P114

"Chaje shukarije" (로마니어로 "아름다운 소녀") - P110

("If he asks... can he take you home, you MUST tell him no(만일 그가 물으면… 당신과 오늘 밤 함께할 수 있냐고 물으면, 꼭 안 된다고 거절해야 돼)"). - P109

"You know you make me want to shout(너 때문에 난 소리치게 돼)!" - P103

음반이란 것은 이론을 가지고 만드는 것이 아니다. - P101

때때로 무엇을 연주하는지보다는 어떻게 연주하는지가 모든 걸 좌우한다. - P101

"Hangin‘ on Scotty, here we go (꽉 잡아 스카티 / 이제 간다)!" - P100

"Volare(날다)" - P99

"make the music easy and sad(조용하고 슬픈 음악을 들려줘)" - P96

"로큰롤‘은... 젊은이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죠. 왜냐하면 단순하고 기본적인 리듬에 주안점을 두니까요… 바로 ‘리듬‘이 중요해요."
페기 리, 1958 - P95

"Quem nao sentiuo swing de Henri Salvador(앙리 살바도르의 스윙을 느껴보지 않은 이가 있겠는가)?" - P93

"die young, leave a good-looking corpse (젊은 나이에 요절해 잘생긴 시체를 남긴)" - P93

진정한 사랑의 여정은 한 번도 평탄했던 적이 없다. 역대 가장 위대한 팝 러브 송 하나의 여정도 마찬가지였다. - P87

"I shot a man in Reno /Just to watch him die (난 리노에서 한남자를 쏘았지/그저 그가 죽는 것을 보고 싶어서)" - P79

"Ella"(그녀) - P78

란체라(싱어가 경험한 고난, 불운을 가사로 자세히 풀어나간다는 면에서 컨트리나 블루스와 유사한, 멕시코 대중가요 형태) 스타일 - P78

"가스펠 쇼에 나오면 5백 불을 받고, 컨트리 쇼에 나오면 2천5백 불을 받죠." - P78

"I find it very, very easy to be true (난 그게 진실이란 걸 너무 절실히 느껴)" - P76

"I keep a close watch on this heart of mine(난 내 마음을 항상 주의 깊게 살핀다네)" - P76

"I found my thrill (난 행복을 찾았네)..." - P75

"I walk a lonely street (난 외로운 거리를 걷지)." - P72

‘정말 거짓말 아닌("don‘t mean maybe")‘ - P72

("How I hate blue Monday / Got to work like a slave all day(난 우울한 월요일이 너무나 싫어 / 하루종일 노예마냥 일해야 하지)"). - P69

몇몇 곡은 그 음악 장르에서 앤섬으로 통한다. 레게에는 밥 말리 앤 더 웨일러스의 "One Love", 아프로팝에는 펠라 쿠티의 "O.D.O.O."가 있다. 그럼 두-왑의 하이라이트는 무엇일까? 플래터스의 "Only You (and You Alone)"라고 할 수 있다. - P67

‘컨셉트 앨범‘은 오늘에 와서 심하게 조롱받는 음악 상품으로 전락해버렸다. 대부분 지독하게 상업적인 과대포장의 도움을 받은, 도가 지나친 예술적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평가받는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한 주제나 분위기로 통합되고, 여기에 맞춰 수록 트랙을 계획하는 앨범이라는 개념은 프랭크 시나트라의 손을 거쳐 귀감이 될 만한 본보기를 낳았고, 시나트라는 이 포맷의 예술적 잠재성을 실현시켜 보인 최초의 싱어 가운데 한 명으로 남게 되었다. - P64

문자 그대로 ‘운명‘, ‘숙명‘이란 뜻의 파두(fado)는 포르투갈 특유의 민속음악이며, 대개 침울한 분위기가 감돈다. 오늘날, 역대 가장 위대한 ‘파디스타‘(파두 가수)로 인정받는 아말리아 로드리게스가 이미 포르투갈에서 스타로 이름을 날리고 있던 어느 날, 무명 작곡가 알베르토 자니스Alberto Janes가 그녀의 집 문을 두드린다. 자니스는 자작곡 "Foi Deus (그것은 신이었다)"를 팔기 위해 끈질기게 매달렸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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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상황에 순응할 것인가 아니면 그 상황을 스스로 변화시킬 것인가.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그냥 순응하며 살아가는 고통을 견디는 것보다는 차라리 좀 힘들더라도 상황과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면 그에 따른 댓가를 치르면 되는 것이고, 만약 그 댓가를 치를 자신이 없다면 마음 한구석에 불만의 씨앗을 잠재운 상태로 그냥 살아가는 것이다. 이 두 시나리오 가운데 어느 쪽이 옳다고 단정하긴 힘들다. 사람들마다 우선순위가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어떤 의미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거기에 합당한 노력과 희생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눈앞의 상황을 ‘원래 그런 것‘으로 무조건 수용하든가, 아니면 처음부터 아예 거부하든가, 두 가지 선택지뿐이다. 포로를 취하지 않기로 합의한 전쟁과도 같다. - P157

우리는 한 장 한 장의 음반을 면밀히 채점했지만, 물론 그런 순위에 중요한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그건 덤으로 따라오는 놀이 같은 것이었다. 우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했던 건 자신이 사랑하는 음악에 대해 주고받는 심도 있는 대화, 열의를 품을 수 있는 무언가를 거의 목적 없이 공유하고 있다는 감각이었다. - P166

"이 작품(슈만의《사육제》)은 어찌 보면 환락의 극치에 있는 음악이지만, 말하자면, 환락이 있기에 비로소 정신의 밑바닥에 생식生息하는 사악한 것들이 얼굴을 내밀 수 있는 거야. 그들은 암흑 속에 있다가 환락의 음색에 이끌려 밖으로 나오지." - P169

"우린 누구나 많건 적건 가면을 쓰고 살아가. 가면을 전혀 쓰지 않고 이 치열한 세상을 살아가기란 도저히 불가능하니까. 악령의 가면 밑에는 천사의 민낯이 있고, 천사의 가면 밑에는 악령의 민낯이 있어. 어느 한쪽만 있을 수는 없어. 그게 우리야. 그게 카니발이고, 그리고 슈만은 사람들의 그런 여러 얼굴을 동시에 볼 줄 알았어ㅡ가면과 민낯 양쪽을. 왜냐하면 스스로 영혼을 깊이 분열시킨 인간이었으니까. 가면과 민낯의 숨막히는 틈새에서 살던 사람이니까." - P169

"가면을 쓰고 있는 사이 얼굴에 들러붙어서 뗄 수 없어진 사람도 있을 수 있겠네." - P170

"하지만 설령 가면이 얼굴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해도, 그 아래 또다른 민낯이 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아."
"아무도 그것을 볼 수 없을 뿐이고."
그녀는 고개를 젓고 말했다. "그게 보이는 사람도 틀림없이 있을걸. 분명 어딘가에 있어." - P170

"하지만 그런 것을 볼 수 있었던 로베르트 슈만은, 결국 행복해지지 못했어. 매독과 분열증과 악령들 때문에."
"그래도 이렇게 환상적인 음악을 남겼잖아. 다른 사람들은 쓸 수 없을, 비범한 곡을 썼어."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크고 메마른 소리를 내면서 양쪽 손가락 관절을 하나하나 꺾었다. "매독과 분열증과 악령들 덕분에. 행복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거야. 그렇지 않아?"
"그럴지도 모르지." 내가 말했다. - P171

‘슈만은 미치기까지 했는데, 내가 다 소용없게 만들어버렸다‘ _블라디미르 호로비츠 - P171

내가 그녀와 자지 않았던 것은ㅡ실제로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던 것은ㅡ그 가면의 미추(美醜)보다는 오히려 그 안쪽에 마련되어 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기 두려웠던 탓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악령의 얼굴이건, 천사의 얼굴이건. - P172

많은 사람은 어째서인지 진부한 거짓말에 이끌린다. 혹은 거꾸로 그 진부함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는 사기꾼이 끊이지 않고, 사기에 걸려드는 사람 또한 끊이지 않는다. 텔레비전에서 패널들이 뭐라고 설명하건, 누구를 비판하건, 그것은 조수간만의 차처럼 명백한 사실이다. - P175

루빈스타인의 피아노는 사람들의 가면을 억지로 벗기려 하지 않는다. 그의 피아노는 가면과 민낮 사이를 바람처럼 부드럽고 경쾌하게 빠져나간다. - P178

말할 필요도 없이, 영원이란 매우 긴 시간이다. - P181

기억들은 어느 날, 아마도 멀고 긴 통로를 지나, 내가 있는 곳을 찾아온다. 그리고 내 마음을 신기할 정도로 강하게 뒤흔든다. 숲의 나뭇잎을 휘감아 올리고, 억새밭을 한꺼번에 눕혀버리고, 집집의 문을 거세게 두드리고 지나가는 가을 끄트머리의 밤바람처럼. - P181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읇는다. - P191

정확한 사실의 반복이야말로 진정한 예지로 가는 길이라고 - P191

"다른 원숭이들과는ㅡ물론 그들은 제 소중한 동포이긴 하지만ㅡ뭔가 잘 통하지 않았어요. 공통된 화제도 없고,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지요. ‘네 녀석 발성은 좀 이상하다‘면서 놀리기도 하고 따돌리기도 했어요. 암컷 원숭이들은 저를 보면 자기들끼리 쿡쿡 웃었고요. 원숭이는 작은 차이에도 무척 민감합니다. 그들 눈에는 제 거동에 어딘가 우스운 구석이, 혹은 불쾌감이나 짜증을 유발하는 부분이 비쳤겠지요. 그런저런 연유로 점점 같이 있기 거북해져서, 어느새 무리에서 벗어나 따로 생활하게 됐습니다. 이른바 ‘외톨이 원숭이‘입니다." - P196

"혼자 어떻게든 식량을 확보해서 살아남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제일 괴로운 건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원숭이와도, 사람과도 얘기할수 없어요. 고독하다는 건 정말 슬픈 일입니다." - P196

"사랑하는 여자의 이름을 내 것으로 삼는다ㅡ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분명 성적 욕망이 깔린 악행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지극히 깨끗하고 플라토닉한 행위이기도 합니다. 저는 마음속에 있는 그 이름을 그저 남몰래 혼자 사랑할 뿐입니다. 마치 부드러운 바람이 초원을 가만히 훑고 지나가듯이." - P201

"그것은 어찌 보면 궁극의 연애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동시에 궁극의 고독이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동전의 양면인 셈이지요. 그 둘은 꼭 달라붙어서 영원히 떨어지지 않습니다." - P202

"제가 생각하기에, 사랑이란 우리가 이렇게 계속 살아가기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연료입니다. 그 사랑은 언젠가 끝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결실을 맺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설령 사랑이 사라져도, 사랑을 이루지 못한다 해도, 내가 누군가를 사랑했다, 연모했다는 기억은 변함없이 간직할 수 있습니다. 그것 또한 우리에게 귀중한 열원이 됩니다. 만약 그런 열원이 없다면 사람의 마음은ㅡ그리고 원숭이의 마음도ㅡ풀 한 포기 없는 혹한의 황야가 되고 말겠지요. 그 대지에는 온종일 해가 비치지 않고, 안녕安寧이라는 풀꽃도, 희망이라는 수목도 자라지 않겠지요. 저는 이렇게 이 마음에 (라고 말하면서 원숭이는 털투성이 가슴에 손바닥을 댔다), 한때 연모했던 아름다운 일곱 명의 여자 이름을 소중히 품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저 나름의 소소한 연료삼아, 추운 밤이면 근근이 몸을 덥히면서, 남은 인생을 그럭저럭 살아볼 생각입니다." - P203

주제? 그런 게 있을라고. - P207

아무리 선명한 기억도 시간의 힘은 좀처럼 당해내지 못한다. - P208

뭐, 누구에게나 그런 날이 있는 법이라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장고 라인하르트가 코드를 틀리게 잡는 밤도 있고, 니키 라우다가 기어를 넣다가 실수하는 오후도 있다(아마 있을 거라고 본다). 그러니 더이상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 P221

‘나중에 보니‘ 그렇더라는 결과론 - P221

뭔가 미묘하게 어긋난 느낌이었다. 나라는 내용물이 지금의 그릇에 잘 맞지 않는다. 혹은 마땅히 존재해야 할 정합성이 어디서부턴가 손상돼버렸다는 감각이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 P223

나는 인생의 회로 어딘가에서 길을 잘못 들어서버렸는지도 모른다. - P223

나는 지금 여기 있다. 여기 이렇게, 일인칭 단수의 나로서 실재한다. 만약 한 번이라도 다른 방향을 선택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아마 여기 없었을 것이다. - P224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럴 수 없었다. 왜일까? 나는 아마 두려웠던 것이리라. 실제의 내가 아닌 내가, 삼 년 전 ‘어느 물가‘에서, 어떤 여자ㅡ아마 내가 모르는 누군가ㅡ에게 저지른 고약한 짓의 내용이 밝혀지는 것을. 그리고 또한 내 안에 있는 나 자신이 관지關知하지 못한 무언가가 그녀에 의해 눈에 보이는 장소로 끌려나올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그런 꼴을 당하느니 묵묵히 스툴에서 내려와, 이유 없는(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호된 비난을 달게 받으면서 자리를 뜨기를 나는 선택한 것이다. -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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