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에 예술적인 부분도 있고 게임적인 부분도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승부죠. 우리가 어떤 작품을 발표하고 누구한테 보여주는 게 아니잖아요. 승부를 통해 보여주는 거죠. 예술적으로 화려하게 마무리한다 해도 승부에서 지고 패자가 되면 그 작품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어요. 그런 걸 예술이라고 얘기하기는 힘들죠. 승부에서 이기고 높은 경지에 올라가는 과정에서 예술적으로 보이는 부분이 있는 거지, 그 전체를 예술이라고 하는 얘기는 좀 안 맞는 거 같아요." _유창혁 9단 - P151
우리는 인간 예술가와 완전히 무관한 풍경을 보면서도 ‘예술이네‘라고 말하며 감탄한다. 하지만 그 풍경 자체를 예술작품이라고 진지하게 여기면 곤란하다. - P151
최선을 다한 바둑은 다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_이희성 9단 - P152
"바둑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 승부에 임하는 기사의 마음가짐이나 태도가 더 중요해요. 바둑의 예술성은 대국자들에게 달려있는 거죠. 똑같은 그림이라도 혼신의 힘을 바쳐 성의 있게 그린 사람과 그걸 보고 베낀 모작의 작품성이 같지는 않잖아요. 기보가 작품이 된다 해도 거기에는 기사들의 서사가 있어야 해요." _김찬우 7단 - P163
"승부는 그걸로 끝나는 거고, 예술은 그 과정을 중시하는 거 아닌가 하는 어렴풋한 생각이에요. 그리고 예술은 당사자가 아닌 남이 평가하는 면이 중요한 것 같고요." _최명훈 9단 - P163
신분이 바뀌었다고 인식까지 한순간에 바뀐 것은 아니었다. 많은 프로기사가 ‘지원금 때문에 스포츠라고 말은 한다만 그래도 바둑은 예술이고 나는 예술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바둑은 스포츠‘라는 생각은 서서히, 확고하게 퍼졌다.‘ - P165
"다들 바둑을 스포츠라고 생각하시는 거 같아요. AI의 영향이 있다고 봐요. 예전에는 답이 없는 걸 연구하는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답이 나온걸 누가 더 잘하느냐로 바뀌었기 때문인 거 같아요." _이하진 4단 - P166
"예술은 정답이 없고, 그래서 우열을 가릴 수 없고, 예술가의 의도가 중요하죠. 스포츠는 우열을 가리는 대신에 참여자들이 최선을 다하면서 치열함을 보여줄때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고요." _정두호 4단 - P169
인공지능이 인간 소설가의 작품을 모방할 때, 그리고 문학 AI의 작품을 어떤 식으로든 평가할 때 문학이라는 장르 자체가 점수화한다. 숫자가 되고 나면 순위가 갈리며 경쟁이 벌어진다. - P170
숫자가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되면, 인간 시인과 소설가가 자신의 점수를 높이기 위해 경쟁하게 되면, 문학은 스포츠에 가까워진다. - P170
미술사에서 인상주의는 사진 기술에 대한 미술가들의 대응이었다. - P171
AI 시대 이후의 세계 최강자인 신진서 9단은 나와의 인터뷰에서 "인공지능 때문에 바둑이 단조로워졌다고 생각하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독특했다. 그가 보기에는 초반은 바둑의 핵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진서 9단은 "바둑의 꽃은 중반"이라며 "중반이 가장 재미있고 치열해요. 초반이 어느 정도 정형화된다 하더라도 중반은 결국 재미있는 바둑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바둑의 매력에 대한 감각이 변하는 중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 P173
예술과 스포츠라는 개념, 그리고 둘 사이의 경계는 모호하다 - P173
어떤 행위의 성격을 정의하는 일은 다음 세대의 가치관을 규정하는 일이 된다 - P173
"당신은 평생 해온 게임에 대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모른다" _야구 선수 미키 찰스 맨틀 - P173
인센티브는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욕구를 만들어 낸다" - P174
"많은 이들이 경제적 인센티브는 뿌리칠 수 있지만 문화적, 집단적 인센티브는 더 뿌리치기 힘들다" _모건 하우절 《불변의 법칙》 - P174
예술가들을 움직이는 인센티브에는 경제적 보상도 있지만, 그들은 뭔가 고상한 것, 의미 있는 것, 자신만이 만들 수 있는 것을 만들어 낸다고 인정받는 것에도 강하게 끌린다. 새로운 기술이 그 인정 욕구를 위협할 때 예술가들은 예술을 재정의해야한다는 강렬한 충동에 휩싸인다. - P174
인간의 감정은 코끼리이며 이성은 자기가 그 코끼리를 조종하고 있다고 믿는 기수에 불과하다. 코끼리가 방향을 정하고 기수는 그 방향을 합리화한다. _도덕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 - P174
어떤 예술 장르의 정의를 바꾸는 것은 어렵지 않고, 인간은 인센티브에 반응하니까. - P174
절대다수의 사람은 돈을 잃기보다는 벌기를 바라며, 불안해지기보다 안전해지기를 원하고, 미움받기보다 사랑받기를, 무시받기보다 인정받기를 소망한다. 신기술은 그런 개별 욕망의 방향을 뒤집는다기보다는 각각에 기대할 수 있는 인센티브의 크기를 바꾸는데, 어떤 인센티브가 압도적으로 커지면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은 드라마틱하게 변한다. - P175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많은 사람을 자극하는 인센티브는 수익성 강화다. 인공지능은 수익성 강화의 도구로 널리 보급될 것이다. 많은 경우 이것은 대중성 강화를 의미한다 (이는 몇몇 분야의 스포츠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 P175
빠르게 변화하는 초창기 신기술 앞에서 여러 주체는 서로 다른 단기 인센티브에 따라 즉흥적으로 행동하며, 한번 내린 선택은 다음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게 여러 선택이 뭉치고 엮인 결과는, 멀리서 조망하면 전혀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 선택들은 기술 발전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단단히 묶여 ‘기술-환경‘을 만든다. - P176
바둑과 달리 예술에는 명확한 규칙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상당수가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예술가를 매우 불편해한다. 일종의 반칙 행위로 보는 듯하다. - P182
나는 오히려 AI 이미지의 수준이 낮지 않고 사람이 그린 것 혹은 진짜 사람과 구분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올라왔기 때문에 적대감이 전보다 커졌다고 생각한다. - P186
내게는 사람들이 자기 부족의 중요한 토템을 모욕당해 화를내는 원주민처럼 보였다. - P186
그 그림(생성형 AI로 만든 그림)이 미술관에 걸리는 것은 인간이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소중히 여기는 ‘창조 행위‘를 훼손하는 일처럼 느껴졌다. - P187
그것(죽은 배우를 AI 기술로 되살린 것)은 어떤 사람이 고유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과 똑같이 생기고 똑같이 말하는 사람을 되찾을 수 없다는 기존의 믿음을 훼손하는 일처럼 느껴졌다. - P187
결국은 사람들이 인식을 바꿀 것이다. 어떤 기술은 사람들의 현실 인식을 바꾸고, 새로운 인식을 지닌 후손들은 과거의 인식을 낯설고 우스꽝스럽게 여기게 된다. 그러면 옛 토템은 하나둘 무너진다. 그 토템이 보호하던 가치도 흔들리거나 무너진다. - P187
인공지능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다른 사람들 때문에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변하고 뒤바뀐다. 나를 둘러싼 기술-환경이 바뀌기 때문이다. 내가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한 그 영향을 받는다. - P187
내가 수렵채집인으로서 성스럽게 여기는 나무를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베어 내면 나는 화가 날 것이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생활하는 방식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 P188
어떤 기술은 사람들의 인식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 기술은 사람들이 서로 관계 맺는 방식과 다른 사람의 성취를 평가하는 기준을 바꾸고, 공동체에 새로운 금기와 규칙을 만든다. 그 규칙들은 새로운 제도와 질서가 되고, 그 질서에 따라 새로운 계급과 문화를 지닌 새로운 사회구조가 탄생한다. - P188
기술이 모든 것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심오하고 근본적인 영향을 끼치는 기술이 존재한다. 강인공지능뿐 아니라 약인공지능도 그런 기술이다. - P189
한 세대 뒤면 사람들의 현실 인식이 인공지능과 단단히 결합되어 있으리라고 예상한다. ...(중략)... 2020년대에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한 토템 몇 가지는 그때는 이미 무너져 있을지도 모른다. 개인의 창의성이라든가 고유성, 혹은 다른 개념들이 완전히 부서지거나, 기묘하게 왜곡되거나, 균열이 나 있을 것이다. - P189
"스포츠 경기에는 스코어가 항상 있는데, 바둑도 스포츠로 간 마당에 누가 이기고 있는지는 당연히 알려줘야죠." - P193
알파고 이전에는 인간 최강자끼리 바둑을 두는 동안 그 대국에 대해서는 당사자인 두 대국자가 가장 잘 알았다. 알파고 이후에는 자신이 두는 바둑의 형세를 가장 모르는 사람이 바로 그 두 대국자다. 해설을 맡은 프로기사나 그 해설을 듣는 시청자들은 인공지능 덕분에 실시간 형세와 다음에 두어야 할 수를 훨씬 더 정확히 안다. - P194
내가 운전을 할 때 늘 내비게이션이 제안하는 경로를 따라간다면, 나는 내비게이션의 도움을 받는 걸까, 내비게이션의 명령을 받는 걸까? - P197
내가 속한 조직이나 사회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릴 때 매번 인공지능의 제안을 충실히 따른다면, 내가 속한 조직과 사회는 인공지능의 지배를 받는 걸까? - P197
근본적으로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한계가 있다. 우리는 실제 세계를 상당한 정도로 추상화 · 범주화해서 이해한다. 그리고 거기에 언어는 큰 도구가 된다. 바닷가에 나가면 엄청나게 많은 숫자의 모래알이 있고, 그 모래알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다르게 생겼다. 저마다의 특징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모래알 각각에 이름을 붙이지는 않는다. 그냥 모래알이라고 뭉뚱그려 부른다. 그 모래알들을 모두 구분하려 하는 사람은 의미 있는 사고를 하지 못하게 된다 (보르헤스가 그런 상황을 소재로 「기억의 천재 푸네스」 라는 매력적인 단편소설을 쓴 바 있다). 그런데 어떤 대상은 그런 추상화 · 범주화가 언어로는 잘되지 않는다. - P200
자신이 어떤 일에 대단한 정신적 에너지를 들여 남들보다 나은 결과물을 내지만 어떻게 그렇게 하는 건지 제대로 설명할 수 없을 때, 그 과정은 영적 체험처럼 느껴진다. - P204
자신이 정상급이 될 수 있는지 아닌지를 빨리 파악해야 하는 시대가 온 건지도 모른다. - P211
"정답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정답까지 가는 추론 과정을 검증하는 식으로 수업 방식이 바뀌었어요." _김만수 8단 - P212
"뭔가 변화하면 거기에 맞게 사람도 변해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다른 길을 찾아서 더 좋게 가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_이희성 9단 - P213
"AI가 왜 이런 수를 제시하는지 생각하라" _한종진 9단 - P214
나는 소설을 쓸 때 무엇이 중요한지 안다. 내가 그 일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도 안다. 아무리 옆에서 누군가가 ‘당신은 중요한 존재‘라고 말해도, 내가 소설을 쓸 때 중요한 일을 하고 있지 않다면 나는 소설을 쓸 때 중요한 존재가 아닌 거다. - P221
"스스로 불쉿(bullshit job) 직업에 종사한다고 믿는 이들의 생각은 대체로 옳다". _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 - P222
불쉿 직업은 힘들고 보수와 처우가 형편없어서 인기 없는 일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레이버에 따르면 그것은 ‘쉿 직업(shit jobs)‘인데, 그런 쉿 직업들은 불쉿 직업과 반대로 사회적 가치와 의미가 있으며, 종사자들이 사라지면 사회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환경미화원이나 건설 현장의 잡부가 대표적 사례다. 반대로 보수와 처우가 괜찮고 노동 강도가 높지 않은데도 의미가 없는 일이라면 불쉿 직업이다. 그레이버는 인사관리 컨설턴트, 커뮤니케이션 코디네이터, 홍보 조사원, 금융 전략가, "불필요한 위원회의 문제를 처리할 직원위원회에 참석하는 것을 일상 업무로 하는 사람들의 일자리"를 그 예로 들었다. - P222
인공지능은 우리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 가치를 없애버린다. - P223
나는 ‘내 일의 주인‘이라는 생각 - P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