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기회가 되어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총 6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일단 가장 먼저 나온 ‘TV피플‘은 글 자체가 어려운 것은 아니었지만 개인적으로 저자가 이 작품을 통해 독자들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명확히 파악하기 힘든 다소 난해한 작품이었다.
그나마 밑줄친 문장들과 독자인 나의 상상력을 좀 덧붙여서 나름대로 해석을 해보자면, 전반적으로 작품 속 화자가 현실과 꿈 속을 넘나들며 경험했던 일들을 바탕으로 TV피플이라고 나오는 3명의 사람과 관점을 바꿔가면서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처음에는 화자가 TV 밖에서 TV피플들을 바라보는 시청자처럼 느껴졌지만 어느순간부터는 TV피플들이 현실이라는 TV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화자를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는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일까?‘(p.51)라는 문장을 통해 독자인 내가 단지 추론해본 것일뿐이라 조심스럽긴 하지만, 나름대로 객관적인 근거를 가지고 추론해보았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싶다.
또한 일반적으로 TV속에 나오는 인물들은 연예인이든 아나운서든 아니면 다른 누가 되었든 간에 말을 하지 않으면 존재감이 희박해지기 마련인데, 이러한 속성을 잘 표현한 것이 p.50에 내가 밑줄친 문장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TV에 나오는 사람들 뿐만아니라 그냥 평범한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경우에도 회사든 학교든 어디든 간에 말을 하지 않으면 그들 역시 존재감이 희박해지는 건 얼추 비슷하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가 아예 없진 않겠지만 대체로 그렇다는 말이다.)
소설 속 화자의 경우도 회사에서 말을 하지 않았을 때 자신의 영향력 또는 회사에서 자신의 입지가 줄어들 것을 염려하여 적절한 타이밍에 주변 동료들에게 나름대로 영양가 있는 말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화자가 일하는 장소가 비록 방송국은 아니지만 TV에 나오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기 위치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본능적인 행동으로 말하기를 선택한다는 점에서는 일정부분 공통된 모습을 보여준다고도 볼 수 있겠다.
이외에도 여기 별도로 밑줄치진 않았지만, 소설 속에서 TV피플들이 TV를 놓기 위해 화자의 집에 있는 테이블 위에 있던 각종 잡지들을 치우는 장면도 나오는데, 이것은 마치 종이로 된 매체를 영상 매체가 대체해 나가고 있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도 책 읽는 사람보다는 영상 콘텐츠를 시청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게 현실인 것을 생각하다보니 이런 생각도 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와 비슷한 성격을 가진 소설 속 에피소드 중 하나로 소설 중반부에 화자가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는 장면이 있다. 회사 동료들은 화자를 유별난 사람으로 취급하는데, 독자인 나는 이 부분에서 엘리베이터와 계단이 각각 상징하는 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주관적인 해석이긴 하지만 바로 앞문단에서 언급했던 책(텍스트)과 영상 콘텐츠를 각각 계단과 엘리베이터에 연동시켜 생각해보게 된 것이다. 계단은 뭔가 아날로그적이라면 엘리베이터는 디지털적인 것이라고나 할까... 대다수의 사람들이 디지털 시대의 최신 문명을 누리며 살아가는 와중에 아날로그적인 것들을 고수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고리타분한 별종들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물론 각자 사람마다 취향의 차이는 있겠지만,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을 고수하며 살아가는 속칭 비주류인 사람들을 사회의 변화에 나름대로 잘 적응한 속칭 주류인 사람들이 바라보는 듯한 시선이라고나 할까. 뭐 그런 비슷한 시선들을 계단과 엘리베이터 에피소드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소설 중간중간에 시간이 가는 것을 상징하는 듯한 별다른 뜻은 없어보이는 의성어인 ‘타룹푸ㆍ쿠ㆍ샤우스ㆍ타룹푸ㆍ쿠ㆍ샤우스‘ (p.22) 같은 말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이는 TV를 보든 TV밖의 실제 인생에서 무엇을 하든 관계없이 시간이라는 건 계속해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듯하다.
어느덧 소설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TV피플은 화자에게 화자의 부인이 안 돌아올거라고 말한다. 처음엔 갑자기 생뚱맞게 이게 무슨 전개지 싶었는데, 다시 한 번 읽어보면서 이 말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짐작해볼 수 있었다.
위에서 살짝 언급했던 키워드 중에 ‘잡지‘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것은 원래 화자의 부인이 주로 읽어보던 것이었다. 그런데 앞서 독자인 내가 이 잡지라는 것을 영상 콘텐츠같은 최신식의 콘텐츠라기보다는 조금은 구시대적인 콘텐츠를 상징하는 것이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었다. 다시 말해 이것은 실제로 화자의 부인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의미보다는 구시대적인 콘텐츠들이 점점 설 자리가 줄어들거나 궁극에는 없어질 것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해볼 수 있을 듯하다. 결론적으로 ‘부인은 안 돌아온다‘고 말한 TV피플의 말은 ‘이제 아날로그의 시대가 저물고 디지털의 시대가 왔다‘ 정도로 치환해서 해석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는 좀 더 나아가서 요즘 4차 산업 혁명의 키워드인 ‘AI 인공지능‘이라는 용어를 넣어서 적용해보자면 ‘인공지능 이전의 시대는 이제 완전히 끝나서 더이상 돌아오지 않는다.‘ 같은 말로도 표현해볼 수 있을 듯하다.
이후 TV피플이 자신이 ‘비행기‘를 만들고 있다는 얘기를 하는 장면이 있다. 독자인 나는 처음엔 이것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솔직히 전혀 감이 오지 않았었는데, 작가가 소설 속에 등장시킨 것들을 하나하나 해석해나가면서 이 ‘비행기‘라는 것이 요즘 가장 각광받고 있는 ‘AI, 인공지능‘을 상징하는 단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앞서 윗문단에서 언급한 ‘부인은 안 돌아온다‘는 것이 상징하는 바가 시대가 완전히 바뀌었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봤을 때, 소설 속에서 ‘비행기‘라는 최신 기술이 도입된 기계를 만드는 것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에서는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라는 내 나름의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이다.
소설 속에서 TV피플은 비행기를 개발하는데 끊임없는 노력을 쏟아붇고 있었고 이제 색칠만 하면 근사한 비행기가 완성된다는 말을 통해 비행기의 완성이 머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이것은 요즘 가장 핫한 기술인 ‘AI,인공지능‘ 개발과도 일맥상통하는 흐름이기에 독자인 나의 이러한 해석이 아예 근거가 없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TV피플‘의 맨 마지막에 나오는 문장 ‘나는 일어서서 무언가 말하려 했다. 하지만 일어선 순간 말은 지워져 사라지고 말았다.‘(p.51) 에서는 말이 사라짐과 동시에 그 음성이 유선상의 전기신호로 변환되어 상대방의 전화기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최대한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기술이 좀 더 진화해서 기계가 사람의 생각을 미리 읽고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자신의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는 상황을 표현한 것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이 모든 것은 독자인 나의 지극히 주관적인 해석일 뿐이기에 그냥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정도로 봐주시면 감사하겠다.

뒤섞이는 밀물과 썰물처럼, 예감이 기억을 끌어당기고 기억이 예감을 끌어당긴다. - P10
잠깐만, 나는 발언하고 싶다. 무언가 말해야 한다. 내게는 해야 할 말이 있다. 그러지 않으면 나는 작아지고, 메말라버리고, 이윽고 돌이 되고 만다. 다른 모두와 마찬가지로. - P50
눈앞의 타인에게 그렇게 철두철미 존재를 무시당하면 스스로도 자신이 그곳에 있는지 어떤지 차츰 확신할 수 없어진다. - P22
시계는 계속 시간을 새긴다. 타룸푸 · 쿠· 샤우스 • 타룹푸 · 쿠·샤우스, 하고. - P22
시계가 묵직한 소리로 침묵을 분할하고 있었다. 타룹푸 · 쿠ㆍ 샤우스 • 타룹푸 · 쿠· 샤우스, 나는 그 소리를 듣지 않으려 했다. 귀에 넣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소리는 속수무책으로 무겁고 거대했다. 싫어도 귀에 들어왔다. - P25
나는 리모컨을 테이블에 놓고 다시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긴 소설을 계속 읽으려고 생각했다. 나는 저녁을 먹고 나면 늘 책을 읽는다. 삼십 분쯤 읽다 말 때도 있고, 두 시간 읽을 때도 있다. 어쨌거나 매일 읽는다. 하지만 그날은 한 페이지의 절반도 읽지 못했다. 아무리 책에 의식을 집중하려 해도 신경이 바로 텔레비전으로 향했다. 자꾸 텔레비전으로 눈이 가고 만다. 텔레비전 화면은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자리 잡고 있었다. - P27
눈을 감으면 TV피플의 모습이 떠올랐다. 텔레비전을 운반했던 TV피플, 시계를 치웠던 TV피플, 잡지를 테이블 위로 옮겼던 TV 피플, 콘센트에 플러그를 꽂았던 TV피플, 화상을 점검했던 TV피플, 문을 열고 말없이 나갔던 TV피플. 그들은 줄곧 내 머릿속에 있었다. 그들이 내 머릿속을 걸어다녔다. - P28
나는 엘리베이터 타는 걸 싫어한다. 그래서 언제나 걸어서 계단을 오르내린다. 사무실은 빌딩 9층에 있으니 편한 작업이 아니다. 특히 급한 용건이라도 있을 때는 땀에 푹 젖어버린다. 그래도 나로서는 엘리베이터를 타느니 땀에 젖는 편이 훨씬 낫다. 그 일로 모두 농담을 한다. 내가 텔레비전도 비디오도 가지고 있지 않고 엘리베이터도 이용하지 않는 탓에 그들은 나를 별종 취급한다. 어쩌면 내가 어떤 의미에서 아직 미성숙 단계에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기묘한 사고방식이다. 그들이 왜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 P30
말을 멈추면 나는 죽고 만다. 그래서 중단할 수없다. 뜻도 모르는 이야기를 영원히 계속하는 수밖에 없다. 주위 인간은 이미 모두 죽고 말았다. 죽어서 돌이 되었다. 딱딱한 석상이 되었다. - P42
그는 형광등 불빛 같은 하얀 빛을 배경으로 가만히 서서 내 얼굴을 보고 있었다. 그것은 현실에 숨어든 꿈의 꼬리 같았다. 눈을 감았다 뜨면 훌쩍 사라져버릴 듯 느껴졌다. 하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화면 속 TV 피플의 모습은 외려 차츰 커졌다. 화면에 그의 얼굴이 가득 찼다. 멀리서부터 서서히 다가오는 느낌으로 TV피플의 얼굴이 차츰 클로즈업되었다. 이윽고 TV피플은 텔레비전 밖으로 나왔다. 마치 창문을 넘듯 손으로 테두리를 짚고 영차 하고 발을 내딛고 나왔다. 그가 나온 뒤 화면에는 하얗게 빛나는 배경만 남았다. - P43
"부인은 안 돌아와." 화면 밖 TV피플이 내게 말했다. - P46
"우린 비행기를 만들고 있어." TV피플이 말했다. 원근감없는 목소리였다. 얄팍해서 마치 종이에 적힌 소리 같았다. - P44
텔레비전 속 두 TV피플은 나와는 무관하게 부지런히 비행기를 만들고 있었다. 그들은 한시도 일손을 멈추지 않았다. 그 기계를 완성시킬 때까지 해야 할 작업은 무한히 있는 듯했다. 한 작업이 끝나면 지체 없이 바로 다음 작업이 시작됐다. 번듯한 공정표나 도면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자신들이 무얼 해야 하는지, 다음 작업이 무엇인지 숙지하고 있었다. 카메라는 그들의 그런 훌륭한 작업을 지극히 효율적으로 따라갔다. 알기 쉽고 적확한 카메라워크였다. 설득력 있는 화면이었다. 아마도 다른(제4인지 제5의) TV피플이 카메라와 컨트롤 패널 작업을 담당하고 있을 테다. - P49
신기한 얘기지만, TV피플의 완벽하다고 해도 좋을 작업을 지그시 보는 사이 내 눈에도 그것이 조금씩 비행기로 보이기 시작했다. 적어도 비행기라 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기분이 들었다.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인지, 그런 건 상관없지 않은가. 저렇게 멋지게 정밀 작업을 하고 있으니 비행기임이 분명하다. 설령 그렇게 보이지 않아도 그들에게는 비행기다. 확실히 이 남자가 말한 대로다. 비행기가 아니면, 이게 뭔데? - P49
텔레비전 밖 TV피플은 아까부터 조금도 자세를 무너뜨리지 않았다. 그는 오른쪽 팔꿈치를 텔레비전에 올리고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보여지고 있었다. 텔레비전 속 TV피플은 일을 계속했다. 시계 소리가 들렸다. 타룸푸 · 쿠·사우스ㆍ타룹푸·쿠·사우스. - P49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돌연 생각했다. 하긴 아내는 이제 이곳에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내는 이미 아주 멀리 가버린 것이다. 온갖 교통수단을 사용해 내 손이 닿지 않는 먼 곳으로 가버렸다. 분명 우리는 돌이킬 수 없게 틀려버렸는지도 모른다. 서로를 잃고 말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만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었다. 내안에서 여러 생각이 풀어졌다가 다시 합쳐졌다. 그럴지도 몰라, 나는 소리 내어 말했다. 목소리는 내 몸속에서 매우 공허하게 울렸다. - P50
"내일 색을 칠하면 더 잘 알게 돼." TV피플이 말했다. "색만 입히면 번듯한 비행기가 돼." - P50
나는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손바닥이 평소보다 조금 작아 보였다. 정말 조금. 기분 탓인지도 모른다. 빛 때문에 그렇게 보일 뿐인지도 모른다. 원근감의 밸런스가 살짝 뒤틀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손바닥은 확실히 작아진 것처럼 보인다. - P50
나는 전화기를 보았다. 전화선을 생각했다. 어디까지나 어디까지나 이어진 전화선. 그 무시무시한 회선 미로 어딘가의 단말기 앞에 아내가 있다. 한참 멀리, 내 손이 닿지 않을만큼 멀리. 나는 아내의 심장박동을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 오분, 나는 생각했다.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일까? 나는 일어서서 무언가 말하려 했다. 하지만 일어선 순간 말은 지워져 사라지고 말았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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