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은 부분에선 국제 공용어인 영어에 관한 이야기와 더불어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통일과 관련된 저자의 의견이 인상적이었다. 특별히 통일과 관련해서 주의해야 할 점들을 지적하고, 궁극적으로는 문화적인 이질감을 해소한 상태에서의 통일을 추구하자는 저자의 주장이 마음에 와닿게 느껴졌다.

또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통일의 장점만을 크게 보고 통일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힘든 점 혹은 사회문제에 대해 막연히 생각하는 경향을 지적하면서, 통일을 신중히 추진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지난 수십년간 문화적으로 이질적이게 된 남과 북이 갑작스레 통일이 될 경우 우리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이슈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올 수 있음을 각종 사례를 통해 보여줌으로써 저자 본인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나는 그 목적 있는 ‘목소리‘ 를 따라가다가 결국에는 하수구에 처박히는 처참한 내일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그 ‘목소리‘ 주변의 힘있고, 능력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국민들이 그들이 시키는대로 하고 있는 동안 나름의 대비책을 마련하면서 항상 살아남았다. 6·25 때 정부와 이승만은 서울을 버리고 내빼면서도 서울을 사수하자고 외쳐댔다. 그뿐인가? 정부가 우리를 속여먹던 일이.
때문에 그러한 학습 효과가 살아 있는 한, 닥쳐올 험난한 21세기에도 실험실의 흰쥐 꼴이 되고 싶지는 않다. - P247

문명의 이기들은 이름 및 개념과 함께 유입되는 법, 이들 외래어들은 그 해당 물건들과 함께 한국어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마치 고대 사회에, 중국 문물이 들어오면서 우리 고유의 언어가 적당한 의미와 문물들을 표현할 방법이 없자 한자를 우리 언어 속에 심어놓았듯이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한자어로 가득한 우리말을 붙들고 이것이 진정한 우리 것이라고 울부짖을 이유도 없어져버린다.

영어가 라틴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을 받아들이면서 풍부한 어휘 영역을 구축할 수 있었듯이, 세계를 향해 열린 언어는 결국 경쟁력을 갖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또 인도 영어, 싱가포르 영어, 홍콩 영어에서 보듯이 모국어와 함께 공용어로 사용되는 영어들은 모국어의 영역을 축소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모국어에 물들며 독특한 발음과 표현들을 낳고 있음도 순수국어 수비대 들이 눈여겨볼 대목이다. - P250

하버드의 헌팅턴은 영어가 문화와 문화의 의사소통 수단으로 쓰이면서 서로 다른 문화적 정체성을 오히려 강화시키고 있다는 재미있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즉 어떤 문화권 사람들이 영어를 쓴다고 해서 생각마저 영어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언어학자 피시먼은 국제어의 조건으로 특정 종교나 이데올로기와 결부되지 않은 언어이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영어는 이제 세계어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특수한 의사소통 도구일 뿐, 특정 문화만을 대변하는 언어가 아니다. - P251

헌팅턴은 이제 영어는 인종적특성이 거의 탈색된 탈인종화된 언어라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외교관, 기업인, 과학자, 관광객, 관광업 종사자, 항공기 조종사, 관제 요원 등은 모두 효율적인 의사소통의 언어로서 영어를 사용하고 있을 뿐, 특정 문화에 종속되고 싶거나 종속되었기 때문에 영어를 사용하지는 않는다.
수영장에서는 수영복을 입는 것이 헤엄치기에 편하듯이 영어를 그저 편리한 의사소통 도구로 받아들이면 그뿐이다. 그것을 너무 민족적 입장에서 해석하면 할수록 우리는 점점 초라해진다. 물론 우리 것, 우리말을 외치는 몇몇은 강연도 하고 책도 팔면서 자신들의 희소가치를 만끽할 수도 있지만 별 볼일 없는 다수는 어떻게 하란 말인가? - P251

사회를 형성하는 주요 요소는 폭력 (질서 폭력, 즉 강제력과 무질서 폭력이 있다)과 자본과 지식이다. 그중에서도 지식은 정보 시대로 정의되고 있는 21세기에 인간의 가치를 구분짓게 될 가장 영향력 있는 요소로 꼽히고 있다. 어느 사회나 지식을 소유하는 계층이 그 사회의 상류층, 지배층으로 군림해왔다. 조선 유교 사회에서 유일한 문자인 한자를 지배한 지식인들이 권력과 자본 모두를 독점했음을 상기해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때문에 모든 정보와 지식을 가장 폭넓고 깊게 담고 있는 영어의 장악 여부는 이제 앞으로 각 개인의 몸값은 물론, 사회, 조직, 국가에 이르기까지 크게 영향을 줄 것이다. - P251

일부 여유 있는 계층의 영어 조기 교육은 그 아이들을 궁극적으로 좀더 새롭고 유용한 정보의 세계로 초대할 것이며, 보다 빠르게 가치 있는 정보와 문화에 익숙해지도록 할 것이다. 그것은 결국 사회 전체로 볼 때, 부모의 부와 사회적 힘이 영어라는 지식을 통해 문화적으로 상속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또 개인의 삶이 존중되는 열린 사회를 가로막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우려할 만한 것이다. - P252

이제 영어 조기 교육은 그 교육적 효과를 논할 시기를 넘긴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이미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 아니 다급한 필수가 되어버렸다. 일반적으로 7세까지는 프로그램과 환경에 따라(나는 단어나 스펠링 교육을 철저하게 반대한다. 소리 + 이미지만을 재미에 담아 전달해야 한다) 2개 정도의 언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습득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왜 애써 부인할까? 설사 2개가 모두 모국어 수준은 되지 않는다 해도 의사소통만이라도 불편이 없다면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고도 남지 않을까? - P252

그에 앞서 영어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각과 마음가짐이 달라져야 한다.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의 효과적 학습 방법은 앞서 말했듯이 사용해야 한다‘는 인식만 가지면 마련될 수 있다. 책을만드는 사람들끼리의 학연도 깨고 선후배도 깨고 제대로 된 프로들이 책을 만들고, 실력 있는 교사들이 과학적으로 설계된 프로그램을 가지고 강단에 서서 ‘써먹어야 한다‘는 의지로 가득한 아이들을 가르칠 때, 학습은 효과를 올릴 수 있다. - P253

하지만 솔직히 까놓고 지도할 수 없는 우리 교육 현장의 현실이 문제다. 영어 회화 가르칠 능력이 없다보니까 자꾸만 우리 것,
정체성만을 강조하면서 북 치고, 장구 치고, 효도 실습만 진행하는 것 아닌가? 누가 뭐래도 우리의 정체성은 무너지지 않는다. 김치, 된장이 모조리 사라지고, 우리들 머리털이 어느 날 갑자기 노래지지 않는 한 우리는 영원한 한국인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 것으로 무장된 한국인이 아닌 다른 것에 익숙한 한국인으로 거듭나야 한다. 우리 것이 그렇게 대단하면 적극적인 홍보를 위해서라도 외국어에 익숙해야 하지 않겠는가? 주변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반도의 지정학적 모습만을 가지고 냉정하게 생각해봐도 우리는 최소한 영어, 일어, 중국어 3개 국어는 할 줄 알아야 하는 사명(?)을 지고 이 땅에 태어났다.
힘이 약한 나라는 이래저래 숙제가 많은 법이다. - P253

도대체 4년 동안 같은 학교, 같은 학과에서 배운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풍경이 한국사회에서는 벌어지고 있다. 동문들로 구성된 이 ‘상아탑 마피아‘ 들은 또 다른 새끼 갱스터들을 낳는다. 살아남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리라. 하지만 그건 엄연한 폭력이다. 제도를 통해 국가로부터 부여받은, 겉으로 보기에는 대단히 젠틀해 보이지만 사실은 위장된 폭력이다.
- P254

원시 사회에서 폭력은 생산도구를 독점하고, 도구의 독점은생산을 다시 독점해 권력을 마련해주었다. 그리고 이 권력은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만든 이른바 제도에 의해 세습되게 마련이다.
그리고 이 세습은 마침내 계급을 만들게 된다. 한국사회에서 이른바 일류 대학들이 만들어내는 커넥션 역시 이런 순환 고리를 가지고 있다. 즉 위장된 폭력을 통해 지식을 독점하고, 지식 독점을 통해 발언권을 확보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멤버를 끊임없이 보완하며 세습해가는 과정이 동일한 것이다. - P257

그저 요즘 애들 버릇없는 것에 대해서만 걱정이다. 요즘 어른들 사랑 없는 것은 말하지 않고. - P263

어떻게 해야 하나? 방법이 있다. 인사를 바꾸어보라.
"사랑한다. 어서와."
‘어서와‘는 ‘너를 기다렸다.‘ ‘너는 환영받는 존재야.‘ 라는 의미가 숨어 있다. 물론 이런 인사를 어느 날 갑자기 하게 된다면 아이는 순간 닭살이 돋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싫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인사를 좀더 일찍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그 출발은 아이를 독립된 인격체로, 존경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로서 대하려는 부모의 태도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렇게 보면 기성 세대는 완전히 밑지는 장사가 될지도 모른다. 부모에게서 그런 사랑을 받지 못했는데 아이들에게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랑해야 하는 상황. 하지만 이러한 자세 전환이 세상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우리 아이들을 놓치지 않을 최선의 방법이라면 어찌하겠는가? 선택의 여지가 없지 않은가?
"더구나 아이들은 이제 온갖 문화권의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살아야 한다. 그들과 만날 때 첫번째로 건네야 하는 것이 바로 따뜻한 미소이고, 당신을 인격체로 인정한다는 마음이다. 인사에 이것을 담아야 한다. 그러면 더 따뜻하고 부드러운 인사를 선물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 P265

새로운 문화의 세대로 들어선 아이들에게 새로운 생존 전략을 가르쳐야 한다. 인사에 대해 다시 생각하자. 인사는 마음을 전할수 있는 좋은 기회다. 따뜻한 감정이 전달될 수 있는 사랑의 인터넷이다. 아이에게 고개 숙여 인사할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아이와 대화할 수 있다.
"그 따위로 하니까 요즘 것들이 점점 더 버릇이 없어지지!"
제발 그러지 마십시오. 이미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었습니다. - P265

한국 청소년들의 많은 불만중 하나가 자신들이 분명히 알고 있는 ‘문제‘ 들에 대해 어른들이 ‘얼버무리는 것‘이다.
아이들의 가슴에 ‘엄마는 아빠는 거짓말을 하고 있어. 말해봤자야‘라는 생각이 들게 되면 그때부터 그 아이는 이미 내 아이가 아니다. 집에 와서 밥만 먹지 생각은 또 다른 진실을 향해 나서게 되고 유혹에 쉽게 빠지고 만다.
‘권한‘으로 가르친다는 생각 자체가 아이들을 망친다. 잠재해있는 아이들의 재능을 최대한 열어주려는 서비스 정신이 없다면 월급은 받겠지만 존경은 받을 수 없다.
이제 가르치려고만 드는 선생님과 학부모는 아이들에게 더 이상 필요 없는 존재들이다. 우리는 함께 고민하고 잠재된 창의력을 끄집어낼 줄 아는 친구 같은 선생님과 학부모가 필요하다. 한 번 뿐인 인생을 무작정 맡기기에 인생은 너무도 값진 것이다.
"선생님,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 P271

우리들의 ‘공부‘는 이제 세계의 모든 문화를 파트너로 삼아야 한다는 차원에서 개혁되어야 한다. 책상에서 ‘쓰기‘ 만을 할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학생들 스스로 자신의 과제를 찾고, 그것에 숨어 있는 ‘왜(why)‘ 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동시에 자신만의 창의적인 해결책을 위해 정보를 어디에서(where) 찾아내고 ‘어떻게(how)‘ 해석할 것인가에 대해 가르쳐야 한다. - P275

모든 인간은 서로 다르다. 각기 서로 다른 가능성과 마음과 두뇌를 선물로 받고 태어난 아름다운 존재들이다. 그런데 이들을 하나의 기준으로 말 잘 듣게‘ 만들고 있는 것이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특히 엄마들이 (엄마들만 들먹여서 조금 죄송) 무심코 내뱉는 "네가 뭘 알아." "그게 아니라니까."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공부나 해." 라는 외마디들이 아이들의 창의력과 지적 의지 성장에 얼마나 큰 상처를 주고 있는지, 부모들은 너무도 모르고 있다.
창의력의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획일화다. 그리고 그 획일화는 강제적 질서 유지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 질서유지 콤플렉스는 유교 문화의 ‘도덕적 잣대‘ 때문에 만들어졌다. 더 나이 드신 분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지금 초등학생을 둔 30대, 40대의 부모님들도 유교적 교육 문화에 머리가 절어 있는 사람들이다. - P280

독일의 헤르만 헤세의 소설《유리알 유희》에는 인간 정신의 가장 아름답고 깊은 곳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한 장인이 등장한다. 늘 말이 없고 조용한 그 장인은 음악을 통해 인간 정신의 깊은 세계를 한 걸음씩 찾아 들어간다. - P281

인간은 스스로 생각하고, 그 생각에 스스로 감동하고, 생각과 감동을 손으로 빚어내어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 존재다.
따라서 스스로 생각할 수 있고,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하거나 그런 세계를 알지 못한다면, 아이의 ‘창조적 정신‘은 영원히 사장되고 말 것이다. - P281

억지로 지식의 양을 늘려주는 것이 아닌, 생명력 있고 아름다운 창의성을 길러주는 것이야말로 교육의 마지막 목표이자 희망이어야 한다. - P282

진짜 술꾼은 해장술로 술을 풀 듯이 책꾼은 책으로 피로를 푼다. - P282

학문의 즐거움. 그 안엔 학(學)과 문(門)의 두 즐거움이 존재한다. 몰랐던 것을 처음 알았을 때의 즐거움. ‘학‘의 즐거움이다. 인생의 활력은 때로 이런 ‘학‘ 에서 얻어진다. 그리고 ‘학‘의 즐거움은 대화를 통해 완성된다. 문(問), 바로 대화다. 배움의 즐거움은 바로 요 대화의 꽃씨 안에 숨어 있다. - P283

꿈이 없는 공부는 좌절 아니면 야비함만을 기르고 만다. 히로나카는 꿈을 가졌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스승들에게 끊임없이 물었다.
우리의 공부가 지겨운 이유는 선명하다. 즐거움의 핵심인 대화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일방적인 가르침은 배움의 본질이 아니다. 생각이 다 자라기도 전에 학문적 정답만을 머릿속에 쑤셔넣는 교실, 창조성을 도살하는 도살장이다. - P283

"창조라는 것의 출발은 언제나 유치하기 마련이다."
실패 속에서 터득한 히로나카의 이 말을 나는 좋아한다. - P284

한국인으로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땅 위에서 하늘 아래서 사람으로서의 가치와 생명의 존엄성을 인정받으며 사는 일이다. 즉 사람으로서의 아이덴티티는 한국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나 우리 문화 속의 한 구성원이라는 문화적 의무감보다 더 본질적이고 가치가 있는 그 무엇이다. - P288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이 땅에서 단 한 번의 생만을 부여받은 존재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때다. 이 한번의 생을 살아가는 동안 인간적 삶을 방해하고 사람으로서의 권리를 침해하는 모든 가치와 행위는 해체되고 비판받아야 하고 부정되어야 한다. 도덕의 가면을 쓴 유교는 물론이고, 국가 경영이라는 간판을 걸어놓고 국민들을 거덜내고 있는 정치, 그리고 우리들의 미래를 담보하겠다는 착각 속에서, 인간들을 옴짝달싹할 수 없는 제도 속으로 몰아넣고 아름다운 창의성을 말살하는 교육도 예외일 수 없다. - P289

유교는 윗사람으로서 아랫사람을 ‘가르치겠다‘는 오만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사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정치는 국가 경영의 허황된 청사진일랑 버리고 엎드려 봉사하겠다는 다짐을 해야 한다. 그리고 사람으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감시와 질책 앞에 마음을 열어야 한다. 평생 직업 한 번 없었던 실업자임에도 정치인이라는 타이틀때문에 수억의 재산 소유가 당연시되는 모습 역시 신성한 노동의가치 앞에 참회해야 한다. - P289

김치는, 된장은, 불고기는 한반도의 기후 조건과 환경에 의해만들어진 삶의 한 패턴일 뿐이다. 그런 면에서 쓰시도, 자장면도,
햄버거도, 피자도, 카레도 모두 동일한 삶의 한 단면일 뿐이다. 이제는 지구촌을 함께 경영하고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들의 먹거리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인정해야 한다. 그것들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문화적 알레르기를 자꾸 일으킬 필요는 없다. 모두 사람이 먹는 음식일 뿐이다. - P290

지구상의 모든 인간이 서로 사람임을 인정하면서 그의 국적이 어떻건 피부색이 어떻건 더불어 살 준비를 해야 한다. 검은 사람이건, 흰 사람이건 그 안에 살아 있는 생명을 생각하고, 사람임을 존중하면서 한 팀을 이루며 살아갈 생각을 해야 한다.
그것은 먹고살기 위해서는 그렇게라도 해야 한다는 비굴한 타협 때문이 아니다. 진정 서로를 삶의 동반자로 파트너로 생각하는 의식의 전환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물론 사회 곳곳에 보이는 수많은 문화적 반항과 자유선언을 위해 자행되는 그 ‘작위‘와 ‘흉내‘로부터도 우리는 자유스러워져야 할 필요가 있다. 서로가 서로의 공간을 존중하고, 서로가 생명체임을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어야한다.
이제는 모두 껍질을 벗었으면 한다. 옆 사람을 의식하지 말고 내가 사람임을 의식하면서 말이다.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권리와 생명으로 가득한 사람임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한국인을 넘어서자. 그리고 사람을 만나보자. 그곳에서 한국인의 문화가 아닌 사람들의 문화를 만들어보자. - P291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깨끗함(clean), 신용(credit), 야무짐(compact)의 3C다. 이제는 더 이상 탐욕과 질투, 그리고 권력욕에 의해 움직여지는 거대한 국가적 횡포와 정치적 속임수에 휘둘리지 말아야한다. - P292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 무슨 일인들 올바르게 할 수 있겠는가? - P293

왜 자꾸 주변의 나쁜 모습들을 의도적으로 찾으며 우리들의 못난 모습을 정당화시키고자 하는 것인가?
그럴 필요 없지 않은가? - P294

우리는 이제 ‘글로벌 스탠더드‘ 라는 새로운 가치 기준에 맞춰 살아야 한다. 이 새로운 가치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희망이다. - P295

글로벌 스탠더드란 다른 것이 아니다. 투명한 일처리, 깨끗한마음, 열린 가슴, 그리고 단단한 실력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을 외면하고 우리끼리 돌아앉아 형님 아우 나누어 먹겠다는 발상이 바뀌어야 한다. 학연과 지연과 혈연이 업무에 연결되어서는 곤란하다. 아니 그것은 이제 독약이다. 끼리끼리의 밀실 야합이 국가와사회를 거덜내고 만 현실 앞에서 우리가 선택해야 할 길은 오직 하나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깨끗함 (clean), 신용(credit), 야무짐(compact)의 3C다. - P295

우리 사회의 아픈 모습들을 지적하면 끝이 없지만 원인은 쉽게 찾아낼 수 있다. 모두가 공감할 시대정신이 이 사회에는 없다. 자신의 조그만 이익을 모두를 위해 양보할 수 있는 여유가 이 사회에는 없다. 잠시 기다리면 모두에게 기회가 온다는 신뢰를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다. 내일을 위해 인내할 만한 가치가 없다. 목소리 큰놈이 정의고 먼저 입에 틀어넣는 놈이 임자다. 국민들은 더 이상 순진을 떨 수가 없다. - P298

내겐 많은 외국인 친구들이 있다. 중국인, 일본인, 베트남인,
인도인, 미국인, 프랑스인 등등. 그들과 친구가 되는 방법은 단 하나다. 그것은 단순한 외국어 구사가 아니라 진실되고자 하는 태도와 말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진실을 듣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와 가정과 한국을 보여주고 말한다. 꾸미는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아버님은 늘 이런 교훈을 주셨다.
"솔직한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다." - P313

장점과 단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났을 때 처음 보이는 반응은 언제나 ‘감사‘ 였다. 매번 피드백을 위해 받는 그들의 소감에는 이런 말들이 적혀 있다.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접해주어 고맙다. 장점만을 들어 우리를 교육하려는 것이 아니고, 우리와 문제를 함께 풀어가려는 태도가 고맙다." - P313

우리 사회에는 이것이 없다. 서로를 인격체로 보면서 문제를 동일선상에서 풀어가려는 노력은 언제나 상대방을 감화시키게 마련이다. 그것을 악용하려는 몇몇에 대해서는 적당한 대비책을 세우면 그뿐이다.
더 나은 해결책을 위한 대화의 화술, 그것은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고, 오류가 수정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태도에서 가능한 것이다. 이제 정말 새로운 대화가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 P315

허리가 동강난 남녘에서 우리가 쓴 ‘역사‘와 잊혀진 땅북에서 쓴 그들의 ‘력사‘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말이 다르다는 것은 생각이 다르다는 뜻이다. 민족의 의사소통이란 단순한 열망이나 계량적 분석에 의존한 ‘플랜‘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민족의 만남이란 그 자체가 삶이다. 삶이란 때로 더럽고 때로 즐겁기도 한, 종합적으로 얼마나 유치찬란한 것인가? - P315

통일이라는 추상 명사는 어느 날 갑자기 구체적인 사실이 되어 우리 앞에 다가올 것이다. 마치 황장엽처럼 우리가 동포라고 맞닥뜨리게 될 사람들은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연 보호가 아닌 ‘사상 보호‘된 사람들이다. 그들을 우리는잘 포용할 수 있을 것인가?
조선족들을 만나고 두만강 너머 북을 바라보면서 나는 통일을 많이 생각했다. 걱정되는 것은 통일 비용도 아니고, 통일 방식도 아니었다. 바로 문화적 의사소통이었다. - P322

조선족들의 정서와 우리 국민들의 태도, 그리고 정부의 조치들을 보면서 나는 통일 후의 갈등을 감지해본다. 북의 동포들은 크게 당황할 것임에 틀림없다. 중국의 조선족들이 알고 있는 ‘력사‘도 쉽사리 받아들이기 힘든 게 사실이다.
하물며 수십 년 동안 김일성, 사회주의, 전쟁 외에는 다른 생각은 해보지도 못했던 그들이 확신하고 있는 ‘력사‘ 는 또 얼마나 다를 것인가? 그리고 그들의 생각은 또 얼마나 다를 것인가? 그들은 땅투기, 뒷거래, 입시 경쟁, 외국 여행, 인터넷 등 긴장 속에서 살아남는 법을 체득한 우리들과 악수를 해야만 한다.
우리에게 과연 그들의 무지(?)를 인내하고 교육할 아량과 능력이 있을까? 내가 아는 남쪽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려 보면, 통일후 있게 될 남남북녀의 갈등과 충돌이 눈앞에 선하다. 과학 기술과 생산 기술의 차이로 북한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단순 노동직으로 전락할 가능성, 그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 등 역시 우리가 생각해야 할 부분이 아닐 수 없다. - P324

남과 북은, 그리고 북과 남은 핏줄은 비슷한지 몰라도 문화적으로는 전혀 다른 이질체다. 문화적 이질체가 성공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문화와 말을 배워야 한다. 그래서 문화공동체를 만들어내야 한다. 문화공동체는 구호나 기대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질적 문화를 융합해갈 수 있는 고도의 전문가들이 필요하고, 심리적 문제들을 차분히 다루어 갈 전문 컨설턴트들도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서로를 배워야 한다‘는 남북의 의식이 전제되지 않는 한 통일 논의는 소모적 정치 쇼의 함정에 빠지고 말 것이고, 남과 북은 계산에 빠른 장사꾼들의 장터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물론 그 와중에 정치꾼들도 한몫 볼 테고, 제 버릇 개 주겠나? - P324

너무 급작스럽게 갖다붙이는 정치적 모자이크가 모두에게 행복한 것이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정치적 경제적 아픔을 다 겪은 우리들이 아직도 시련이 부족해서 더 겪어야 할 항목이 있다면 그것은 환경 문제와 통일 실험이지 싶다. 그 중에서도 냉전의 최전방에서 살고 있고 냉전논리에 최후까지 묶여 있는우리들이기에 겪게 될지 모르는 통일 실험은 함부로 다룰 일이 아니다.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나, 민족 통합을 갈망하는 것은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동안 냉전 이데올로기 때문에 억눌려 있던 삶의 욕구들이 일순간 수면 위로 터져나올 가능성에 대한 대비가 없는 상황은 억눌려 있던 기간이 길었던 만큼 그 분출도 거칠수밖에 없음을 생각할 때 여간 걱정스럽지 않다. - P325

우리 앞에는 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다. 그 중에서도 통일은 예측 못할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통일이란 단순한 정치적 게임이어서는 안 된다. 통일비용만큼 중요한 것은 북의 동포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우리사회의 지적 문화적 성숙함이다. 현실을 바탕으로 한 아량과 이해가 먼저 생겨나야 통일비용을 아까워하지 않을것이다. 다가올 어려움과 부담에 대해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국민들에게 알려 대비토록 해야 한다. 때가 된 듯하다. - P325

우리 민족의 근대사는 언제나 예측하지 못하고 대비하지 못했던 사건들 때문에 곤두박질치곤 했다. 그리곤 한동안씩 뒷걸음질이었다. 나는 어느날 갑자기 황장엽처럼 들이닥칠 통일이 걱정된다. 하루 벌어 하루 먹느라고 바쁜 정치를 보면 더욱 그렇다. - P326

서양이 동양을 압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한 물질적 힘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을 사랑하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있도록 하겠다는 휴머니즘과 합리주의적인 정신 때문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동양의 지성인들이 서구의 정신들을 만나면서 미련 없이 유교를 내던질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P327

한반도의 21세기는 통일로 열어야 한다. 그러나 그 통일은 정치로 열려서는 안 된다. 더구나 정권의 ‘업적‘ 을 위해 만들어져서도 안된다. 물론 민족적 열망의 한탕 잔치로만 열려서도 안 된다. 그것온 더불어 살아야 하고 함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야 한다는 인간 중심의 생각으로 열려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진정한 통일을 이룰 수 있다. 사람이 살아 있고,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으로서의 통일을 말이다. - P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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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부분에선 유교사상이 지난 수백년간 우리들의 창의성을 억눌러왔음을 비판하는 저자의 의견이 인상적이었다. 유교사상 말고도 다른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이 책은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이니 유교사상 쪽에 국한해서 본다면 지극히 동의되는 부분이었다.

이와 더불어 일본 애니메이션과 관련된 이야기, 한자와 관련된 저자의 이야기들도 굉장히 설득력있게 느껴졌다.

핀란드의 세계적 핸드폰 회사인 노키야는 제품들을 마치 게임기처럼 만들었다. 그리고는 광고에서 세계적 정치인들의 우스꽝스런 장난기들을 순간적으로 잡아낸 뒤 이런 카피를 썼다.
"우리들 모두에게는 어린아이들이 숨어 있습니다.(There is little child in all of us.)" - P195

모든 사람들 마음속에는 사실 어린아이들이 하나씩 숨어 있다. 심리학적으로 볼때, 아이들은 13, 14세가 되면 ‘인간적인 나(에고)‘가 형성되고 그 이후로 심리적으로는 동갑이 된다. 그 동갑의 연령을 지난 후에는, 우리들이 키가 커지고 학년이 높아지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뭔가에 걸맞는 행동들을 해대느라 폼들을 잡고 있지만 우리들 마음속에 숨은 미키마우스와 빨강머리 앤은 언제든 빨주노초파남보의 스펙트럼을 통해 뛰쳐나올 때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 P195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바로 어른과 아이들 가슴속에 숨은 살아있는 색상들과 장난기를 효과적으로 끄집어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유난히 일본의 애니메이션에 빠져드는 이유는, 일본의 애니메이션이 바로 한국사회 전반에 드리운 유교적 칙칙함에서 찾아낸 시각적 위안이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의 스펙트럼 효과는 단순한 시각적 화사함에만 있지 않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정열과 활력과 에너지를 동반한다. 일본 애니메이션이 젊은 세대에게 폭발적으로 다가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P195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단순히 만화가들의 끄적거림의 결과물이 아니다. 그것은 그 사회 저층에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엉겨 있는 학문적 · 문화적 콘텐츠, 즉 내용물들을 기초로 탄생한 상상의 세계인 것이다. 이런 면에서 한국 애니메이션의 숙제는 그저 단순히 컷 몇 장을 흉내낸다고 해서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건 어깨에 힘을 뺀 학문적 봉사와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창조적 상상력. 그리고 냉정한 ‘장사꾼 기질‘이 합쳐질 때에만 비로소 이루어질 예술적 하모니이기 때문이다. - P197

유교의 가치관 중, 공자가 한 말로 이런 것이 있다. "괴이하고, 억지 쓰는 것, 상황을 어지럽게 만드는 것, 귀신에 관한 이야기들을 말하지 않는다." 뒤집어 말하면,
정상적이고, 순하고, 단순하고, 인간적인 것만 말하라는 뜻이다. 물론 이 상황들은 사회를 지탱해가는 가치관의 측면에서 다시 다루어져야겠지만 이로 인해 600년(조선 500년 근현대 이상 억압된 상상력은 21세기가 다가오는 오늘날에도 터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 P198

나는 갑골문을 연구하고 있는데, 원시인들 상상력의 집합체인 갑골문의 형태와 그것이 지니고 있는 ‘의미 영역 (meaningboundary)‘ 은 사실 애니메이션이 지니고 있는 만화 기호의 의미와 맥이 닿는다. 언젠가 갑골문의 고대 자형들을 본 디자이너 한 사람은 원시의 생명력이 가득 찬 그 형태들에 매료되어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었다며 좋아한 일이 있었다. - P199

4,000년 전의 글자들인 갑골문의 형태 속에는 원시 사회의 애니미즘과 토템의 성분이 다분히 담겨 있기 때문에 그것을 효과적으로 분석하면 우리는 초기 인간 사회의 다양한 정신적, 심리적,
문화적 특성들을 찾아낼 수 있게 된다. 일본의 애니메이션이 갑골문을 이용한 것은 아니지만 그 기저에는 갑골문이 지닌 ‘원시적 소박함과 시각적 흥미가 깔려 있다. - P199

이 ‘원시적 소박함‘ 이 바로 모든 사물에는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애니미즘과 특정 동물을 자신 또는 자신이 속한 집단과 일치시켜 생각하는 토템이다. 즉 자연계와 자신을 혼돈하여 사고하는 것이 원시적 사유의 특징인데,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바로 이 원시적사유를 매우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작품들을 창조해내고 있다. - P199

고대 메소포타미아 미술의 권위자인 발터 안드레는 토템과 미술의 관련성에 대해 이런 견해를 피력한다.
"정신적이고 신적인 세계를 감각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세계로끌어들이기 위해, 인간은 그것을 만질 수 있거나 느낄 수 있는 형태 속에 구체화시켜놓는다. 그것이 바로 토템 예술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마력이 단순히 현란한 테크닉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하는 중요한 대목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이 지닌 애니미즘과 토템의 정서는 사실 일본문화 저변에 깔린 애니미즘과 맥을 같이 한다. 흔히 800만 신이 있다는 일본의 무속 문화는 사실 원시 애니미즘의 연속선 위에 놓여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고는 아무리 작은 곳에도 신은 머문다. (이것이 바로 일본인의 혼을 강조하는 장인 의식의 모태다)는 의식과도 같은 범주에 속한다. - P200

이런 애니미즘적 무속 문화는 귀신과 혼령이 흔하게 등장하게 만드는 문화적 배경이 되고 있다. 바로 이러한 보편적 정서 때문에 <원령공주> 같은 애니미즘적 설정이 먹혀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이런 무속적 애니미즘 요소 때문에 일본 애니메이션은 악마적 요소와 악마적 세계관을 저변에 깔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짧은 순간 세계인들의 시선을 끌어모을 수는 있으나 인류가보편적으로 추구하는 사랑과 인간적 삶을 건강하고 효과적으로 담아내기 어렵다는 점에서 유효기간이 선명해진다. 또 영화 전반에 양념처럼 뿌려진 일본적인 남녀 갈등이나 칼싸움 장면들 역시 일본 애니메이션이 해결해야 할 숙제다. - P201

그러면 한국 애니메이션은 왜 건강하면서도 아름다운 상상으로 풍부한 나름의 콘텐츠를 창조해내지 못하는 것일까? 왜 일본것을 보고 나서야 힌트(?)를 얻고 자꾸만 악마적 세계관으로 빠져들고 마는 것일까?
그건 바로 유교적 가치관이 불러온 상상력의 빈곤과 유교를벗어 던지면서 일어나는 가치관의 공백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 P201

조금은 에로틱하고 조금은 은근한 분위기의 한국과 중국의 춘화에 비해 일본의 춘화들이 유달리 폭력성을 많이 띠는 이유는 사무라이들의 폭력적 성문화 때문에다. 강간과 윤간과 엿보기 상황들은 바로 전시 성폭력의 대표적 사례들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저질 성문화다. 사실은 저질이 아니라 괴로울 苦(고), 고질의 성문화다. - P203

어느 사회가 특이한 형태의 행동에 심하게 기울어지는 것은 그 사회 구성원들이 기본적으로 그런 성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비디오의 폭력은 일본 문화 저층에 깔린 죽음의 미화 의식 때문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일본은 칼의 나라다. 일본 중세 전국시대에는 약 280개의 봉건 국가들이 있었다. 때문에 이들에게는 싸움, 칼싸움이 일상적인 일이었다. 이 이야기는 늘 죽음이 일상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이 공포감을 해결하는 방법 중에 합리화라는 것이 있다.
공포를 당연히 있어야 할 걸로 합리화하여 공포에서 벗어나는 방법, 즉 공포와 타협하는 방법이다. 이 합리화가 좀더 진행되면 그것을 미화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원시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토템의 형성 과정이다.
즉, 주변의 동식물을 수호신 또는 조상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그들의 강인한 힘을 이용해 자신들의 연약함을 극복해보겠다는 심리 때문이다. 한국 프로야구팀들의 동물 상징은 바로 토템의 현대화라고 풀면 간단히 이해할 수 있다. - P204

일본인들은 늘 존재하고 수시로 자신에게 엄습하는 공포를 아름다운 것으로 바꾸어 놓으면서 죽음을 미화했다. 그래서 그들은 할복을 하고, 자살 특공대를 만드는 것이다. 죽음이 공포일 때는 두렵지만 한번 아름다운 것이 되고 난 후에는 앞을 다투어 기꺼이 그 아름다운 퍼포먼스에 뛰어들 수 있는 것이다. 죽음의 승화라고 표현할 수 있지만 사실은 죽음과 하는 슬픈 타협이다.
이건 우리 문화에도 있다. 수많은 좌절과 침략이 낳은 한의 역사, 우리는 그것을 우리 민족 고유의 에너지로 미화하고 있다. 그곳에 아름다움이 있노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는 우리 현실처럼 일본인들의 죽음의 미화 역시 딱한 구석이 있긴 매한가지다. - P205

일본의 성개방 문화는 기후와 칼 때문에 빚어진 것들이다. 더운 지역이기 때문에 노출이 많고, 그 끈적거리는 일본의 여름을 지내본 사람은 알겠지만 자주 씻어야 한다. 그러다보니 성적인 유혹과 접촉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은 일본만의 것은 아니다. 비슷한 기후대의 타이완이나 필리핀, 태국 등지에서 볼 수 있는 성 개방 분위기들은 그것이 그 민족의 도덕성과 꼭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것이 아님을 잘 보여준다. 물론 일본의 온천 문화도 한몫을 하는 건 사실이다.
한국인이 일본인들보다 더 도덕적이라면 (그런 것 같지도 않지만, 보기에) 그건 인격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순전히 기후 탓이다. 추운데 그게………? - P206

바로 이런 문화적 배경 차이 때문에 일본의 성문화 역시 우리에게는 낯선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만일 일본인들의 그런 저열한 성문화 때문에 걱정을 한다면, 그건 그 사람의 왜곡된 성의식 때문이다. 일본인들의 성의식을 초월할 수 있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우리만의 성문화를 우리 청소년들에게 심어주는 것이 일본의 저질 성문화를 극복하는 유일한 대안일 것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을 믿는다. 답은 우리가 제시해야 한다. - P207

오타쿠들은 사회의 주류에서 비껴나 자기만의 성취를 느끼는일종의 환자들이다. 도태를 선언받기 전에 미리 독립선언문을 낭독해버리는 꼴이다. 그들은 일종의 정신적 모라토리엄 선언자들이다. 경제적으로 지불 불능을 선언하듯이 자신들의 정신적 성장을 거부하는 행위자들이다. 애니메이션에는 바로 이런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이 함정은 누구나 빠질 수 있다. - P210

더욱이 오타쿠들도 자신들만의 성취감을 맛볼 수 있다는 측면을 놓고 본다면, 교육적, 사회적 좌절자들을 길러내고 있는 한국사회는 원하든 원하지 않는 오타쿠 성장의 비옥한 토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청소년층의 인디 문화 정서와도 주파수가 비슷하다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 P210

유교의 정신적 억압이 만든 빈약한 상상력과 새로운 대체 윤리를 마련하지 못한 데서 오는 공허감, 그로 인해 벌어지는 일본애니메이션 콘텐츠에 대한 무조건적 숭배.
유교의 스승관이 만든 왜곡된 교실에서 양산되는 수많은 좌절청소년들, 그들은 언제나 잠재적인 폭력배들이다. 기회만 있으면 자신들의 스트레스를 발산할 수밖에 없다. 뭔가를 찾던 중 일본미디어들의 폭력성에 감염되고 있는 것이다.
성의 문화 역시 같은 동기, 같은 이유로 왜곡되고 있다. 건강한성 의식과 부부의 아름다운 성이 자랑스러운 문화를 우리 스스로 마련하지 못한다면 그건 꼭 일본의 성문화가 아니더라도 어차피 무너지게 마련이다. 왜곡된 성이 일본적인 자극이 없다고 수면 아래로 가라앉겠는가? 결국 문제는 한마디로 허약한 우리 문화의 저항력에 있다. - P211

장사꾼은 장사해서 이문을 남기면 그만이다. 왜 거기서 ‘민족‘이나오는가? ‘민족‘과 ‘문화‘는 강자만이 말할 수 있는 아이템이다.
중국인들은 정치를 잘하는 지도자보다는 상치를 잘하는 인물을 영도자로 흠모하고 따른다. 떵시아오핑의 시장경제 도입.
현 국가주석인 짱저민의 외자유치, 농업경제학 박사인 타이완의 리명회이 총통 등은 모두 감각적인 상치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다.
홍콩의 초대 특구장 동씨엔화 역시 상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결국 지역은 다르지만 거대한 중국을 유기적으로 통치하는 인물들의 공통점은 장사꾼 기질이다. 우리는 그들은 너무 정치적으로만 관찰하고 있다. 게다가 민족 정서까지 곁들여 그들과 마주앉으니 답답한 일의 연속이다. - P213

정주영을 보라. 남북 대화의 물꼬는 정치학자들의 이론이나정치인들의 잔머리로 트인 것이 아니다. 무식해보이기까지 한 장사꾼의 아이디어로 열렸다. 나는 그를 ‘전위 예술가‘ 라고까지 표현한 일이 있다. - P214

중국인과의 대화는 철저하게 장사꾼 법칙에 따라 진행되어야한다. 이 법적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나름대로 관찰한 것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무엇이든 판다‘이다. - P214

서양인들을 만나보면 한국에 대해 관심을 지닌 사람들이 적지않다. 그리고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문화유산 중에는 상품성이 있는 것이 무척 많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잘 팔리도록 잘 포장하여 내놓을 수 있는 의식과 아이디어가 부족하다. 문화의 상품화 전략이 부족한 것이다. - P215

문화의 상품화 전략은 한국인들이 중국 시장을 극복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의식이다. 그것은 중국인들에게 한국 문화 상품을 팔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애지중지하고 ‘이건 절대 못해‘ 로 못 박아놓았던 존재들까지도 상품화하겠다는 마인드의 전환을 의미한다. 여기서 말하는 문화상품화 전략은 세부적 아이템에 대한 어드바이스가 아니다. 세종대왕의 친필이라도 팔 수만 있으면 팔아야 한다는 장사꾼 기질을 기르라는 뜻이다. 그래야 중국인들의 장사꾼 기질과 싸워 이길 수 있다. - P215

우아한 비즈니스라는 말은 중국인의 뇌리 속에는 없다. - P217

흔히 국한문 혼용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내면에는 한자교육을 통해 유교적 가치관을 재교육하고 싶은 의도가 숨겨져 있다. 버릇없는 요즘 젊은것들(?)에게 도덕을 심어주겠노라며 명심보감 따위를 새로 읽게 만드는 해프닝 등이 그것이다. 이것은 별 볼일 없는 상품을 조금 괜찮은 물건과 함께 파는 일종의 ‘유교 끼워 팔기‘
형식으로,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 P219

결론부터 말하면, 한자는 아시아에서의 의사소통 수단으로 받아들여 사용하면 되는 것일 뿐, 한자를 한글에 섞어쓸 필요는 없다. 또 학교에서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 가르칠 필요도 없다. 효과적인 프로그램만 있다면 한자 문제는 아주 간단하고 쉽게 해결할수 있기 때문이다. - P221

국한문을 혼용하자는 사람들의 논리는 이렇다.
우리 전통 문화의 계승을 생각해도 그렇고, 아시아 한자 문화권의 영향력을 고려해봐도 그렇고 한자는 필요하다. 그러니, 일본처럼 아예 한자를 한글 사이에 넣어 함께 사용하자는 것이다. 여기에는 우리가 한자 문화권에 자연스레 편입되면, 중국, 일본 등과 의사소통을 할 때 편리하다는 현실적 고려도 있긴 하지만, 어차피 중국 문화권의 영향 안에 있으니 적당히 묻어 살자는 변형된 사대주의적 심리도 들어 있다.
지금도 토씨 빼고는 거의 한자를 섞어 쓰는 변형된 사대주의자들은 의외로 많다. 관공서의 공문, 군대 용어, 법원의 용어 등에는 한자로 먹고사는 내가 봐도 알기 힘든 것들이 많이 있는데, 그들은 그런 글자들을 쓰면서 자신들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고 있는 듯하다. 거기에는 다름 아닌 한자를 모르는 세대나 사람들로부터 은근히 권위를 인정받으려는 조선시대 양반들의 왜곡된 심리가 숨어 있다. - P222

한자는 아시아인들 모두가 만들어낸 공동의 문화적 유산이다. 한글이 세종대왕의 개인 재산이 아니듯이 수천 년 전 여러 종족이 함께 교류하며 만들어낸 공동의 발명품이다. - P224

몇 가지 예를 들어 한자가 지니고 있는 문화적 배경에 대해 설명을 해보겠다.
귀신 鬼(귀)의 경우, 갑골문을 보면 이것은 얼굴에 가면을  쓴 이방 민족의 모습이다. 고대의 부족들은 사회적 분업 측면에서 각자 나름의 역할과 직업을 지니고 있었다. 예를 들면, 토기를 잘 만드는 부족, 마차를 잘 만드는 부족 등으로. 가면을 쓴 귀 부족은 장례를 전문적으로 치러주는 종족이었다. 때문에 사람의 혼백을 뜻하는 鬼가 된 것이다. - P227

또 가장 오해가 많은 글자로 글씨 文(문)이 있다. 모두들 잘못 알고 있는 이 문자는 사람의 몸에 심장을 그려넣은 모습이다. 즉 文(문)은 사람의 몸에 주술적 그림을 그려넣었던 문화를 알게 하는 중요한 단서이다. 좀더 자세히 말하면, 죽은 사람의 가슴에 심장을 그려넣음으로써 부활을 기원하는 의식의 한 과정이었다.
즉 우리가 지금 말하는 글자로서의 기록이 아닌 주술적 그림이라는 뜻이다. 당사자들의 모든 감정과 애원과 느낌이 듬뿍 담긴 그림으로 후일 인간의 모든 기록을 상징하게 된다. 그 기록 중에서도 감성이 담긴 기록을 말하는 학문이 바로 文學(문학)인 것이다. - P228

자신들도 잘 모르면서 학생들에게 잘못된 지식을 ‘권위있게‘ 전달하는 것은 일종의 죄악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각 한자가 지니고 있는 배경 지식에 관한 오해와 억지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따라서 나는 공연히 한자를 가르치면서 어설픈 문화 풀이를 곁들이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그건 문화적 이해도 아니고 전통의 계승도 아니다. 그렇다고 그걸 통해서 아시아의 커뮤니케이션 문화 속으로 손쉽게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우리는 전통으로서의 가치도, 의사소통 도구로서의 기능도 모두 배우지 못하고 있는 형국인 셈이다. - P229

전통 계승과 커뮤니케이션의 두 단층 사이에 걸터앉은 채 국가적으로 엄청난 경비와 노력을 낭비하고 있는 셈이다. 열심히 한다고는 하지만 방법이 전혀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보다는 보다 새로운 감각과 시각을 가지고, 동아시아 문화에서 가장 효과적인 의사소통 도구인 한자의 가치와 내면에 대해 생각하고 배우고 가르쳐야 한다. 그래서 나는 중국 한족의 언어라는 의미로 굳어진 한자라는 이름 대신에 21세기 미래 동양의 시그널을 상징하는 아시아 사인 (Asia Sign)이라는 명칭을 쓰고싶다.
한국의 미래 세대는 다가올 아시아 시대의 새로운 주역으로자리하기 위해 이 아시아 사인을 마스터해야 한다. 이 아시아 사인은 어떻게 보면 동아시아에 사는 우리 모두가 필히 갖추어야 할 문화적 패스포드일지도 모른다. - P229

입장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현재 중국이 일상의 기초 용어로 규정한 한자의 수는 2,205자다. 반면에 일본이 상용 한자로 사용하고 있는 한자의 수는 1,945자, 그 중에서 기초로 가르치고 있는 교육한자는 996자다. 여기에 우리나라의 현대 한자어들을 집어넣고 공통 집합을 내보면 약 1,500여 자 정도를 얻을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기본 부수, 역사, 정치, 경제, 문화 등의 갈래를토대로 보다 기본적인 글자들을 추리고 추리게 되면 약 1,000자 내외가 된다. (나는 이 작업을 하면서 한국 신문들과 방송, 일본NHK, 『아사히신문』, 중국의 CCTV, 『인민일보』,『베이징 청년보』 등을 참고했다.) - P231

이 1,000여 자의 글자는 다시 약 10종류의 부수 군, 5개의 문화적 분류를 통해 좀더 세밀하게 나눌 수 있다. 그리고는 다시 문자합성 요소의 단순성과 복합성을 고려해 차례로 나열한 후, 마지막으로 흥미 있는 설명을 더해서 교재로 완성된다. (중국 간체자와 일본식 약자의 경우, 그 자형을 정확하게 맞출 경우, 공통 집합의 수는100자 내외로 줄어들고 만다. 그렇게 되면 공통 문자로서의 의미는 사라지게 된다. 따라서 똑같은 자형은 아니지만 자형의 유사성과 내부적연관을 근거로 1,000여 자의 숫자를 뽑아낸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형이 다소 차이가 나기는 해도, 가장 기본적인 부수들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이들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고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나는 이 1,000여 자의 글자를 가지고 학생들을 가르칠 계획이다. 중국어와 일어의 공통 분모가 되는 이들 글자들은, 이것을 익힌 학생들이 중국어와 일어를 익히고 싶을 때, 또 개인적으로 한자의 깊은 세계로 들어가려고 할 때, 훌륭한 기초의 역할을 할 수있을 것이다. - P231

한 번만 더 고민하면 쉽고 경제적인 방법을 얻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왜 해보지 않는 것일까? 간단한 방법을 생각하지 않고 왜 온 나라가 천문학적인 숫자의 돈을 들여가며 고민을 하고 자라나는 신세대들에게 학습의 부담을 전가하려 할까? 의미도 불분명하고, 논리도 없는 상태에서 왕창 가르쳐놓고 알아서 하라는 것이 어떻게 교육일 수 있는가?
한자 교육이 우리의 미래를 진지하게 우려하는 차원이 아닌한문 교사들의 밥그릇 싸움 차원에서 맴돌거나, 보수주의자들의 ‘신세대 길들이기‘ 차원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 아시아적 가능성 운운은 먼 나라 이웃 나라 이야기가 될 뿐이다.
그런 무책임이 국가적으로 신세대들에게 저질러지고 있다는것은 너무도 수치스러운 일이다. 천년 묵은 낡은 방법으로 어린 학생들에게 한자 교육을 강요하면서 그들을 좌절의 악순환 속으로 빠뜨리는 우리는 많이 부끄러워해야 한다. - P233

이제 우리는 좁은 한국이 아닌, 아시아를 이야기하고 아시아 무대에 익숙해져야 한다. 한국인으로서의 문화적 정체성, 더 나아가서 아시아를 이해하고 아시아의 한 부분으로서 제 역할을 다 할수 있는 능력과 안목을 갖추는 데 한자는, 아니 아시아 사인은 필요한 것이다.
이제는 오랜 세월 권위를 누려온 우리 사회의 한자에 대한 잘못된 교육관과 풀이 문화를 7월의 소낙비처럼 씻어버리고 싶다. - P234

학부모들이 원하는 공부는 아주 간단한 것이다. 책상에 앉아서 뭔가를 읽거나 써야 한다. 또 적당한 체크를 위해 주로 쓰기를 강요한다. 체크하기 편하고, 써놔야 학습이 되었다는 안도감 때문이다. 더욱이 논술이 대학입시에 들어오면서 ‘쓰기‘는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우리는 큰 실수를 하고 있다. - P237

아이들이 성장하는 동안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바로 ‘공부해라‘ 지만 가장 효과 없는 주문 역시 ‘공부해라‘일 것이다. - P237

이제 사람들은 자신이 필요한 정보가 어디에 있고,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현재 당면한 문제와 어떻게 연결되어있는가를 감지하고 풀어낼 수 있어야 한다. - P239

이제 공부를 위한 공부는 끝나야 한다. 그것을 끝내지 못하면인생이 끝날지도 모른다. 이제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를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야 한다. 지식을 머릿속에 쑤셔박는 공부가 아닌 숨은 능력을 끌어내는 지혜를 이야기해야 한다. - P240

나는 한국의 영어 교육이 실패한 이유 중에 가장 큰 이유는 ‘반드시 써먹겠다‘는 의지가 부족한 데 있다고 본다. 선생과 학생 모두가 써먹겠다는 의지와 필요 때문에 영어를 가르치고 익히는 것이 아니라, ‘관문 통과‘를 위해 필요한 대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늘 골치만 아프다. 또 교과서를 만들 때도 아이들에게 도덕적 교훈‘을 주겠다는 유교적 ‘훈수‘의 가치관이 바닥에 깔려 있다. - P241

"영어 공부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영어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영어 때문에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었고 고생깨나 해본 사람은 위의 표현이 감춘 외국어 학습의 키포인트를 찾아냈을 것이다. 바로 그거다. ‘공부‘와 ‘사용‘은 전혀 별개다. 한국의 영어교육은 학생들에게 ‘공부‘ 만 강조했기 때문에 ‘사용‘할 수가 없다. 학습의 목표가 잘못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당연히 수반되는 결과다. - P241

내가 중국어를 마스터하면서 얻은 노하우를 영어 공부에 그대로 적용했다. 효과는 금방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의 방법은 간단하다. ‘사용‘ 하는 것이다. 그것도 철저히 소리로만 그리고 모든 쪽팔림에서 초연해지는 것이다. - P242

나는 매년 중문학과 1학년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여러분들 4년 동안 중국어 ‘공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중국어못한다. 단 한 달이라도 ‘사용‘ 해야 중국어를 할 수 있다. 쯔따오마? (알겠습니까?)" - P242

나는 처음 한달 정도는 학생들에게 외국어 학습에 필요한 기본 태도에 대해 집중적으로 교육을 한다. 그것은 이제까지 학교에서 해온 영어 ‘공부‘의 녹슨 방법을 철저히 버리도록 하는 일이다. 그래서 다음 세 가지를 먼저 주문한다.
첫째, 반드시 써먹겠다고 결심하라. 둘째, 글자를 버리고 소리로만 익혀라. 셋째, 머릿속에서 문장을 만들지 말고, 생각나면 일단 내뱉어라. - P242

아무리 멍청이라도 한 1년 소리만 듣고 동작을 익히다보면 웬만한 말은 알아듣고 할 줄안다. - P243

내 프로그램으로 가르친 아이와 기존의 전통적인 방법(글씨 쓰고, 따라 읽고, 문법시험 보고)으로 공부한 아이와는 6개월만 지나면 능력 차이가 크게 벌어진다. 이렇게 했을 때 얻게 되는 가장 큰 효과는 중국어 구사력이 아니라 학생들의 자신감이다. 자신감이야말로 존재의 이유‘다.
그리고 나서는 다른 프로그램으로 한 2, 3년 더 지도하면 중국어는 대충 마스터가 된다. 실제로 학생들 중에는 4학년 때 통역을 나가는 아이들이 있다. 아무 탈 없이 잘 해낸다. - P243

전통적으로 유교는 말에 대해서는 억제하는 태도를 가졌고, 시나 문장 등의 글 다루기에는 후한 점수를 주었다.
그러다보니 외국어 학습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의사소통은 무시되고 글 다루기 능력 위주로 교과서가 만들어진다. 또 선생님들은 그것을 가지고 역시 의사소통과는 관련이 없는 단어 스펠링이나 문법 등만을 가르친다. 그런데 이제 와서 가만히 생각해보면 교과서를 만들었던 사람들이나 가르쳤던 사람들 중에 영어를 마음껏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국가적으로 수십 년 동안 수백만 명이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댔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던가? 연습장이 새까맣게 되도록 단어를 외웠건만 ‘하이, 굿모닝‘이 튀어나오지 않았다. - P244

조기 교육에 대해서는 찬성과 반대의 의견이 만만치않다. 전문가들도 마찬가지지만 학부모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학부모들의 상황을 보면, 조기 찬성론자는 대부분 ‘여유 있는‘ 계층들이고, 반대론자는 대부분 ‘여유 없는‘ 계층들이다. 사실 이들 반대론자들은 구체적인 데이터나 이론에 근거한 것이라기보다는 자식들과의 민망한 상황을 조금 해소해보려는 의도에서 ‘전문가 의견‘을 뉴스에서 빌려온 것이 대부분이다. -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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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과 위트가 만화의 핵심이라면, 유교의 핵심은 현실과 엄숙함이다. 둘의 사이가 좋을 리 없다. 유교적 가치관은 언제나 만화를 폄하하고 모함한다. 유교의 엄숙주의는 만화 자신이 지닌 두 가지 속성 때문에 일본만화를 거부한다. 하나는 일본 만화가 지닌 허풍과 경박성 때문이다. 그러나 허풍과 경박성은 뒤집어 말하면 놀라운 상상력과 위트이기도 하다. - P191

‘지브리‘, 사하라 사막의 열풍이란 뜻이다. - P192

한국사회가 일본 만화에 거부감을 갖는 이유는 일본 만화가갖는 폭력과 선정성에 앞서서 유교적인 엄숙주의의 가치관 때문이다. 맹자라는 사나이가 한 ‘충실함이야말로 아름다움‘이라는 선언은 유교 엄숙주의의 무게가 얼마만한 것인지를 가늠케 한다. - P192

요시로 요시타케는 『만화의 기호론』에서 만화의 미학을 이런 논조로 파헤치고 있다.
"만화는 과장과 디포르메(변형), 생략을 통해 독자의 비위를 맞춘다. 이들 만화 기호는 사람들의 소망, 의지, 이상, 실의, 악의 형체를 띠고 나타난다. 허풍 속에 마침내 아름다움이 떠오른다. 바로 허풍의 미학이다." - P193

고정된 가치관을 기준으로 애니메이션이 지닌 풍부한 상상력과 섬세한 예술적 기능, 그리고 인간에 대한 애정과 삶에 대한 겸허를 간과해서는 곤란하다. 물론 이런 표현이 일부 싸구려 만화영화에 해당되는 것이 아님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 P193

유교의 엄숙주의가 애니메이션에 익숙해지지 못하는 두번째 이유는 색상에 있다. 잘 알다시피 동양의 그림은 산수화로 대표된다. 그리고 산수화에는 단 2가지의 색, 흑과 백만이 용납된다. 그리고 이 흑과 백은 사고의 흑백 논리를 낳게 된다. 사물을 단순하게 생각하고 옳고 그름만을 단순하게 가른다. 퍼지적인 유연성이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 바로 흑과 백의 배합이다. - P194

물론 이 흑과 백은 나름대로 깊은 의미가 있다. 먹이 주도하는 검정은 사실 단순한 무채색은 아니다. 그것은 모든 색채를 포용하는 종합색이다. 빛이 하나의 색처럼 보이지만 프리즘을 통해 볼 때 다양한 색상으로 나뉘는 것처럼 먹의 색 역시 다양함의 융합이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색채의 범주 안에 들지 않는 색이다. 우리의 일상으로부터 아주 멀리 있는 존재 아닌 존재다.
백색은 빛을 의미한다. 동양화에서 백색은 여백을 통해 표현된다. 그런데 이 여백은 단순히 먹이 닿지 않는 나머지의 공간만은 아니다. 먹의 흑색과 마찬가지로 우주적인 빛의 공간이며 조물주의 공간이다.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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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행동 양식은 가치관에 영향을 주고, 그 가치관은 다시 활동에 필요한 공구 등의 생산에 영향을 주게 된다. 이런 상황은 우리가 차로 고속도로를 달릴 때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주행선을 타고 순하게 달리는 사람은 언제나 같은 패턴으로 추월도 하고 주행도 한다. 물론 깜박이도 미리미리 상대를 고려하며 켜곤 한다.
그러나 차와 차 사이를 겨우겨우 비껴나가며 앞으로 나가는차는, 올 때도 그렇고 지나갈 때도 그렇고 또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계속 지그재그다. 한번 머릿속에 주입된 의식은 지속적으로 사람의 행동을 지배하게 된다. 그 지그재그 운전자는 절대 차분하게 차를 몰 수가 없고, 차분히 차를 모는 사람은 누가 뭐래도 지그재그 운전을 따라하기 힘들다. - P175

중국 조리법의 대표는 ‘차오‘다. ‘차오‘란 볶는다는 뜻으로,
거칠게 토막을 낸 돼지비계를 넣고 야채와 착착 볶아내 커다란 접시 위에 던지는 중국 요리는 중국인들의 실용적이고 감각적인 특징을 잘 대변한다. 이 요리는 요리사의 감각과 생각에 따라 맛이 좌우되어 먹는 사람이 개인의 기호를 첨부할 기회가 없다. 그저주면 먹어야 한다. 짜면 짠대로 싱거우면 싱거운 대로 기껏 할 수있는 것이라곤 많이 먹고 적게 먹는 양의 조절뿐이다. 좋게 말해서 대국적이고 나쁘게 말해서 다소 오만한 말투며 태도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 - P176

일본 요리의 대표는 잘 알다시피 ‘사시미‘다. 살아 있는 생선의 살을 얇게 저며 먹도록 한 회는 일본인의 성격을 가장 잘 표현하는 요리다. 생선살의 결을 고려하는 칼질 부위별로 나누어 그맛의 차이를 예민하게 느끼도록 만든 설계, 여기에 각종 소스를 개인별로 두어 자신의 취향을 가능한 한 살리려는 배려가 회에는 들어 있다. 더구나 회는 자연 그대로의 음식이다. 어떠한 조미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먹는 각자의 개성이 첨가될 공간이 확보된 음식이다. 자연의 재료를 가지고 자기의 창조 공간에서 마음껏 자기 실현을 맛보는 음식이다. - P176

쓰시는 또 어떤가? 조그만 덩어리 안에는 밥과 밥을 보조하는 온갖 종류의 반찬들이 들어 있다. 그리고 색색의 반찬들은 칼로 잘라 단면을 노출시켰을 때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것은 언제든지 검증이 가능한 상태다. 뒤가 없는 일본인들의 진솔한 면(민족 감정 빼고 그들의 상거래와 개인적인 약속 이행만을 가만히 객관적으로 떠올려보자)을 상징하는 음식이 바로 이 쓰시다. - P177

민족의 특성이란 환경에 의해 만들어지는 후천적 습성의 복합체다. 그리고 그것은 그 문화권 내에서 형성되는 모든 유형 무형의 존재들의 특성을 결정짓는 데 결정적으로 영향을 준다.
무조건 우리 것이 좋다고 외칠 일이 아니다. 자신의 모습에서 부족한 것이 있다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곁에서 배워야 한다. 그것이 설사 자존심 싸움에서 지기 싫은 일본인의 것이라고 해도 말이다. 또 사실 거의 베껴오고 있지 않은가?
조금 솔직해지고 허심탄회해지자. 그래야 인생이 즐거워진다. - P180

남을 미워하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은 없다. 더구나 그가 이웃인 경우에는. - P182

"우린 다 용서했어. 미워하는 건 힘든 일이야." - P182

일본이나 한국이나 모두 역사적 ‘조각‘들에 기대 자존심 싸움을 벌이고 있는 형편이다. 당시 이 지역을 통해 일본에 문물을 전했던 백제인들의 배짱과 장사 수완, 이곳을 드나들며 이것저것 나름대로 신선한 것을 들고와 백제와 신라 사람들을 즐겁게 했을 왜인들의 장사꾼 기질에 비하면 양쪽 다 좀스러운 면이 없지 않다. 지금에 와서 역사나 문화로 쪼개보는 것들이 사실은 격식과 제약을 뛰어넘었던 ‘체험 삶의 현장‘ 그 자체였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 P184

모순을 가슴에 품고 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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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정도전이 왕권강화를 위해 수용하고 퍼트렸던 주자학이라는 것이 지금 이 시대까지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저자의 말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저자의 글을 통해 그동안 살아오면서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였던 생각이라든가 가치들에 대해 좀 더 비판적으로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책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미국의 저명한 무대 디자이너인 패트리샤는 자신의 창조적 활동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인간의 비전이란 칠판과 같죠. 한번 줄이 그어지면 여간해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저는 유사한 것을 미리 보지 않습니다." - P123

조선이라는 칠판에 한번 그어진 주자학은 결코 지워지지 않았고, 지우개로 지우면 지울수록 더욱더 지저분해지고 말았다. 후대의 중국 학자들조차도 "윤리와 과학을 혼란스럽도록 뒤섞어놓은사상"으로 평가하는 주자학은 정치적 필요에 의해 조선 왕조의기틀로 자리매김되면서 커다란 재앙을 잉태하게 된다. - P123

많은 학자들이 분석하듯이 주자학은 공자, 맹자가 말했던 순진한 윤리적 메시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과학적 검증도, 열린 토론도 거치지 않은 한 사나이의 깊은 사유가 만들어낸 불완전한 우주론적 에세이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우주를 담론의 대상으로 하는 도가적 발상에 불과할 뿐 더 이상의 우주적 통찰도 철학적 성찰도 아니었다.
이것은 주자학을 신봉하고 연구하며 500년을 보낸 조선시대의 불행했던 역사가 알려주는 우울한 결론이기도 하다. - P126

‘윤리와 과학을 혼란스럽도록 뒤섞어놓은 사상인 주자학의내용을 단순화시키면 이런 말이 된다.
"우주는 어떤 특정한 힘에 의해 논리적으로 움직인다. 인간은그 특정한 힘이 만든 존재다. 따라서 인간에게는 그 특정한 힘이 지니고 있는 특정한 논리가 내재되어 있다." - P126

그런데 주자는 자신이 이 논리의 체계를 알아냈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태극이며, 음양이며, 이(理)며, 기(氣)며하는 따위의 것들이 모두 주자에 의해 다시 해석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즉, ‘어떤 특정한 힘‘은 태극이며, 논리적으로 움직이는 상황은 음과 양이서로 순환한다는 설명과 동일한 의미다. 그리고 ‘인간에게 내재하는 특정한 논리‘를 풀어내겠다는 것이 바로 점술이다. 다소 지나치게 간소화한 느낌이 없진 않지만 그렇다고 틀린 점도 별로 없을 것이다. 현란한 수식과 포장이 없을 뿐이다. - P126

앞서도 언급했지만 나는 우리 사회 병폐의 원인을 유교에서찾았고, 그 중에서도 주자학을 주범으로 지목했다. 나는 그의 여러 담론과 책들을 읽어보았다. 하지만 주자가 살았던 깊은 산수(지금도 교통이 불편)와 그가 살았던 남송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나는 그의 우주론적 에세이에 담긴 조금은 서글픈 한 사내의 고독과 우울을 알게 되었다. - P127

정치적 좌절, 깊은 산, 지금도 밤이면 별들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중국의 내륙 지역, 이곳에서 사색에 익숙한 사내 주자는 무엇을 했을까? 그는 이런 독백을 하고 있다.

"맑고 높은 기를 받은 사람은 귀한 사람이 되고, 맑고 두터운기를 받은 사람은 부자가 된다. 그러나 약하고 얇으며 흐린 기를받은 사람은 어리석고 불초한 사람이 되고,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이 되며 일찍 죽게 된다."

너무도 허망하다. 한 사내의 한밤중의 사색이 만든 에세이 몇편을 두고 우리는 조선 500년 동안 허송세월을 했던 것이다. 그가 주해를 달았던 경서들을 가만히 보노라면 이러한 자신의 공상을 경서에 ‘덮어쓰기‘ 한 냄새가 물씬하다.

스스로 땅을 보고, 물을 보고, 사람을 보고, 세계를 보았어야했을 세월을 그렇게 허송세월로 다 날려버리고 만 것이었다. - P128

그러면 왜 500년 동안 이들은 이렇듯 황폐한 사상을 붙들고 마침내 파멸로 치달았는가?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 듯하다.
하나는 결론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건 당연했다. 가설에불과한 한 사내의 수상록을 종교로, 진실로 믿으며 분석을 해댔으니 답이 나올 리 만무했다.
다른 하나는 권력을 쥔 사람들의 사상 체계가 철저하게 주자학으로 무장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정도전에 의해 주자학으로 시작된 나라에서 주자학을 비판하는 것은 바로 체제비판 아닌가? 그것은 바로 주류에서 밀려나는 것을 의미하고 잘못 엮이면 삼족이 멸망하는 역적의 누명까지 뒤집어쓸 수 있는 무서운 재앙의 시작이 아닌가? 실제로 수많은 사화들이 유교와 주자학의 해석 논쟁에서 비롯되지 않았는가? 더구나 주자학의 정치적 이슈였던 ‘존왕양이‘ 사상은 조선시대 내내 왕실과 사대부들을 지배해 쇄국정책으로 이어졌고, 나라가 망하는 불행을 자초하기에 이르지 않았는가? - P130

도덕이며 우주론은 모두 허황된 이야기였다. 그건 가면에 불과했다. 그들은 그것을 매개로 정적들을 제거하는 데 혈안이 되어있었다. 어차피 황당한 논리였으니 결론이 날 리가 없었다. 그것은 정도전이 초기에 힘을 기르기 위해 이색, 권근, 정몽주, 우현보 등을 무자비하게 탄핵하면서부터 뿌린 씨앗이 맺은 열매이기도했다. 그리고 그것은 저 먼 옛날 은나라의 조갑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조상을 끌어들일 때부터 잉태된 씨앗이었고, 한무제를 위한 동중서의 계략 속에 감추어진 씨앗이었다. 또 자신의 철학적 사유를 《논어》,《맹자》에 덮어씌운 주자의 영민함과도 맥을 같이 한다. - P131

잘못된 출발, 정적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이 비열한 싸움, 당쟁으로 불리는 싸움의 시작은 처음부터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당쟁이 만드는 죽음들은 연극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사고사>처럼 우아하지도 않았다. 나라의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벌인 당쟁의 결과는 너무도 엄청났다. 짱시의 깊은 산 속에서 별을 헤며 끄적였던 한 불면증 환자의 에세이가 불러온 파국치고는 너무 비참한 것이었다.
그 파국의 그림자가 지금껏 길게 드리워져 있다. - P131

한국인과 중국인은 유난히 역사에 매달린다. 험난한 사건과문제에 맞닥뜨리기만 하면 바로 과거의 역사 속에서 해답을 찾아보고 비슷한 상황을 꺼내 위안의 말잔치를 풍성하게 차린다. 모든 정답은 과거에 있다는 답답한 문제 해석 의식 때문이다.
"옛것을 익혀 새로운 것을 안다(溫故知新)." - P132

물론 때로 과거를 참고할 필요는 있겠지만 동양인들은 이 논리를 천고 불변의 진리로 못 박아버렸다. 그리고 이를 증명하기위해 2,000여 년 이상 중국과 한국의 지식인들은 수많은 해석들을, 아니 억지들을 써왔다. 그리고는 새로운 현상이 나올 때마다 낡은 경전을 뒤적였다. 때문에 이 옛것에 맞지 않는 것들은 가치를 부정당했고, 새로운 것을 주장하는 문인, 지식인들은 경전을 펼쳐대는 지식인들에 의해 매장당해왔다. - P133

새로운 것은 새로운 곳에 있다. 현재보다 낮은 수면에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까지의 언어를 계속하는 한 새로운 미래는 만들어지지 않는 법. 물론 역사 전체를 부정하겠다는 억지를 부리려는 생각은 아니다. 하지만 동양인들, 그리고 한국인의 뇌리에 각인된 ‘온고지신‘의 ‘뒤돌아보기 문화‘는 미래를 지향하는 우리들의 발목을 수시로 붙잡는다. 뭣좀 해보려는 젊은이들의 발목을 꽉꽉 틀어잡는다. 도저히 앞으로 나갈 수가 없다. - P133

한자의 기원을 통해 볼 때, 조상의 祖(조)라는 글씨는 제단의 상형문인 ‘示(시)‘와 남성성기를 상형해낸 ‘且(차)‘로 구성되어있다. 즉 ‘祖‘는 남성 우월의 가부장제도가 자리잡기 시작하는 청동기시대 전반부터 형성된 개념으로, 이러한 발생론적 이유 때문에 제사 때는 여성이 제례에 참석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남성들만의 축제이며 남성이 사회의 모든 가치와 재산권력을 계승해가고 있다는 사내들만의 은밀한 축제였던 것이다. - P133

이 축제에는 대단히 내밀한 남성 우월의 문화적 설계가 숨겨져 있다. 즉 여성은 제례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철저하게 보조자로서의 문화적 위치만을 부여받게 된다. 그들의 공간은 마당보다 조금 낮은 부엌 (전통적으로 동양의 부엌은 마당보다 낮다)에 국한되며, 그곳에서 자신들의 참석이 허가되지 않을 마루 위의 제례 음식을 만드는 것이다. ‘남성우월‘과 ‘어르신네 말씀‘을 위한 세밀한 설계다. - P134

이 ‘뒤돌아보기 문화‘ 가 만든 또 하나의 악습은 주검 숭배 문화, 이른바 독특한 상례 문화다.
한국의 수많은 당쟁들이 바로 이 상례를 중심으로 전개되었음은 새삼스런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애도의 기간 상복의 종류, 상례 참가자 등의 결정을 ‘빌미‘로 서로의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긴 음모에 빠져들어간다. 주검을 둘러싼 권력과 돈의 쟁탈전은 지금도 그치지 않고 있다.
주검의 처리는 가족 구성원 사이에서 자신의 권위와 권력을확인할 수 있는 훌륭한 기회다. 거기에는 수많은 지식과 정보가 난무하게 마련이다. 주검을 어디에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소란은 언제나 상가집을 더욱 분주하게 만든다. 특히 주검을 주검으로 처리하지 않고 ‘또 다른 삶의 연장‘으로 해석하는 유교의 상례 문화는 주검 치장과 분묘 치장 문화를 만들었다. - P134

주검을 ‘또 다른 삶의 연장‘으로 보는 문화 역시 중국 은나라의 매장 문화에서부터 비롯된다. 은대의 묘지 내부를 위에서 내려다보면 모두 亞(아)‘자 형태로 되어 있다. 즉 가운데 시체를 두는 곳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길이 뻗은 형태이다. 주검의 혼백이 떠나갔다가 다시 어느 쪽 길을 통해서든지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모습이다. 또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주검을 생전의 모습과 동일하게 치장함과 동시에 그의 영혼 복귀를 기원하는 갖가지 장치들을 해놓았다. - P135

그 대표적인 것이 시신의 입 안에 목을 집어넣는 습속이었다. 고대부터 혹은 영원히 죽지 않는 영물로 여겨져왔으며, 인간을 부활시킬 수 있는 물체로 간주되었다. 때문에 옥을 시신의 입에 물려놓곤 했는데, 현재는 생략에 생략을 거듭한 끝에 입에 쌀을 퍼넣기도 한다. 뭔가를 집어넣긴 집어넣는데 혹은 비싸고 하니까 대체 상품으로 내놓은 것이 바로 저승길 도시락인 것이다.
이밖에도 수의나 부장품 등의 여러 복잡한 것들이 있는데, 이는 모두 주검 치장 문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우리의 매장 문화를 만든 배경이기도 하다. 동시에 이런 문화적 풍토는 장기 기증이나 이식 수술 같은 몸 나누기 문화, 심지어는 헌혈마저도 쉽지 않게 하는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묘지 안에는 생전에 쓰던 물품들을 비치해두었고심지어 사람들까지 생매장을 하기도 했다. 이것이 바로 순장이며, 분묘 치장이 극에 달했던 ‘제 정신이 아닌 상태‘ 였다. - P135

특히 공자가 『논어』에서 한 다음과 같은 대목은 분묘 치장 문화를 더욱 부추긴다.
"죽으면 예를 갖추어 장사를 지내고, 또 예를 갖추어 제례를지내야 한다."
물론 공자는 다음과 같은 말을 통해 호화스런 풍토에 나름의 안전장치를 해놓으려는 시도는 했다.
"예는 사치스러워서는 곤란하며 검소하게 해야 한다. 상례의 경우는 슬퍼하는 마음이 우선되어야 한다." - P136

도덕의 깃발(새로운 정치 세력의 초기)→과거 청산을 위한 초법적 힘→룰(rule)의 파괴→전문가 집단의 위치 박탈→ 객관적 경보 장치의 무력화→사회 각 계층의 전문 시스템 부식 시작→외부 충격 또는 내부적 혼란으로 인한 붕괴→수습을 위한 새로운 도덕의 깃발 - P144

이 사이클에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은 초법적 ‘힘‘ 의 발휘를 위해 각 분야의 스페셜리스트의 입지를 약화시키고 그들이 있어야 할 자리를 정치적으로 메움으로써 적절하게 작동해야할 전문가들의 경고 사이렌이 울리지 못한다는 점이다. 경고 사이렌이 울리지 못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기능들은 골다공증처럼 내부적으로 부식되어 조금의 충격만 주어지면 바로 붕괴로 치닫게되는 것이다. - P144

‘우리 민족은 하나‘ 라는 민족주의와 전체의 미래보다는 권력장악이 급선무였던 현실주의자의 충돌, 이어 벌어지는 이승만의 김구 밀어내기, 힘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친일파의 대거 등용은 새로운 정부가 깨끗한 출발이 될 수 없음을 밝히는 명백한 선언이었다. 원죄를 지고 있는 ‘힘‘ 들은 자신의 입지 강화를 위해 또 다시 ‘법‘을 초월하는 ‘힘‘을 사용하기에 이르렀고, 이는 또 사회전반의 도덕적 해이를 불러오게 된다. - P147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기업이나 대학, 연구소 등 조직을 들여다보면 외형은 좀 달라 보이지만 의사결정 구조나 정책 입안 등에서 거의 동일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있다. 기업 총수의 개인적 희망이나 취미로 인해 결정되는 사업아이템, 전문가의 분석을 재해석할 수 있는 정치적 결단(?), 연구소의 연구원이 능력보다는 여전히 ‘친구의 아들‘로 채워지는 현실, 연구비의 책정이 동문이나 스승, 제자의 학연 등에 영향을 받는 현실을 우리는 여전히 목도할 수 있다. - P148

컴퓨터에 내장된 프로그램은 순서만 되면 언제든 작동하게 마련이다. 우리 역사 속에 내장된 붕괴 사이클의 프로그램이 재작동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 P149

노인 문제를 연구하는 학자 브린에 의하면 노인은 "생리적, 신체적으로 쇠퇴기에 있는 사람이며, 심리적인 면에서 정신기능과 성격이 변하고, 사회적인 면에서 지위와 역할이 상실되어가는 사람"이다. 또 다른 학자는 노인을 "생활상의 장애를 경험하는 사람"이라고까지 정의하고 있다. - P150

우리 사회는 한번 굳어진 어휘에 대해서는 검증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언어란 변하고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 따라서 시대에 맞는 언어를 늘 새로운 마음으로 골라 사용해야 하는 법. 언어란 사회 공동의 가치를 담는 그릇, 따라서 언어를 새롭게 해석하고 선택한다는 뜻은 바로 사회 공동의 가치를 담을 그릇을 다시 씻고 다시 만들어간다는 유연한 태도를 의미한다. - P151

한자의 뜻으로 보면 老人(노인)은 ‘늙은 사람‘이 된다. 고대 갑골문을 통해 보면 老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서있는 모습이다. 이 노인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일관된 태도는 孝(효)다. 추는 노인을 아들(딸이 아니다)이 업고 있는 모습인데 이건 단순히 ‘어부바‘ 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건 동양이 만들어낸 일종의 불로장수 프로그램 중의 하나다.
즉, 효라는 한자의 모습은 조상이 아들인 자손을 통해 성씨를 이어가고 핏줄을 이어간다는 의미를 담은 그래픽으로, 이 핏줄의전수는 바로 짧은 생물학적 생을 극복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조금 철학적 설명이 되겠지만, 어쨌든 이 효라는 것은 인생의 허무를 일찌감치 깨달은 동양의 노인들이 찾아낸 ‘존재의 연속 기원 프로그램‘인 셈이다. 나는 죽어도 나의 존재는 자식들을 통해 연속되고 싶다는 기원이 담긴 것이 바로 효라는 글씨였다.
‘아들 못 낳는 것이 최대의 불효‘ 라는 유교의 단죄는 바로 여기서 기원한다. 분만실에 들어가는 며느리의 손을 붙들고 꼭 아들낳으라고 당부하는 시어머니의 눈물 어린 호소 역시 이런 분위기가 낳은 웃지 못할 문화적 해프닝이다. - P152

문헌들에서 보듯이 효도는 ‘정‘에 의존한다. 전통의 효도는 부모와 자식이 같은 공간, 같은 시간대에 있어야만 가능한 가치 규범이다. 하지만 주택, 직장, 맞벌이, 자녀 교육 등의 문제를 안고 있는 현대 사회의 여러 상황들은 이를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게 한다.
유교적 교훈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정(情)‘과 ‘심(心)‘에 호소하는 이들 교훈들은 산업화가 가져온 가족 구성원들의 다양한 위치 변동과 상황 변화를 효과적으로 해석하고 대체할 수 없게 만든다. 또 이 교훈은 노인들의 경제 상황, 자녀들의 경제 상황, 노인들의 취향, 건강 상태, 심리적 특성 등을 전혀 고려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만들어진 그저 마음 편하게‘ 만을 강조하는 단점이 있다.
이것은 노인에게 필요한 수많은 보호 프로그램 중 하나인 ‘사랑의 보호(loving care)‘ 한 종목에만 해당될 뿐이다. - P154

내가 아는 정보통신 계통의 교수 하나는 학생이 만들어온 컴퓨터 프로그램이 작동을 하지 않으면 무조건 F를 준다. 그의 논리는 간단하다. 아무리 정성을 들이고 밤을 새워 만들었어도 그 프로그램이 작동하지 않으면 컴퓨터 안에서는 무용지물이다. 흔히 말하는 ‘성의 점수‘ 나 리포트 대체 같은 건 아예 말도 못 붙이는 항목이다. - P154

‘정성껏‘이라는 말이 대단히 따뜻해 보이지만 사실은 그것이 우리 사회를 엉망으로 만든 요인 중의 하나다. ‘성의를 봐서 봐주고‘ ‘정성을 봐서 봐준‘ 결과들이 만든 건 엉성한 조직력이다. 냉정한 프로들의 설 자리를 빼앗는 것이 바로 이 ‘성의‘문화다. - P155

이가 망가지고 혀의 점막이 퇴화해 미각이 둔해지며 내장 역시 기능이 떨어지고, 특히 소화기능도 낮아진 노인들을 펄펄 뛰는 손주들과 한 밥상에서 ‘진지‘를 드시게 하는 성의는 진지한 해결책이 아니다. 서로의 기호와 신체 기능에 따라 식단이 달라져야 하지 않겠는가? - P155

마찬가지로 미래에 대한 준비 없이 ‘효도할 자식만‘을 키워온 노인들은 이제 당혹해하고 있다. ‘효도할 자식들‘은 전혀 효도할 능력도, 시간도, 공간도 없다. 효도에 대한 생각과 수준이 서로 달라져 서로 사랑해야 할 두 세대는 오히려 갈등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며느리와 시어머니를 한 부엌에 넣는 일은 일종의 문화적 가학행위다. 한 부엌 두 여자의 ‘잘못된 만남‘은 어서어서 사라져야 한다. 부엌이란 단순히 반찬을 만드는 장소가 아니다. 그곳은 독특한 자기만의 삶의 공간이고, 창조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 P155

적지 않은 노인들이 버려지고 있고, 방 안에 수감되는가 하면, 때론 원치 않는 손주들까지 봐야 하는 사회 봉사(?) 명령까지 받고 있다. 노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실제로 그들은 손주들 뒷바라지를 즐기지 않는다. 많은 젊은이들이 노인들이 내 아이를 즉 손주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집에서 ‘노시면서‘ 아이들을 봐주시기를 희망한다. 때로는 이것을 효도의 한 덕목으로 착각하는 경우도있다. 손주를 안겨드렸다는 착각이다. - P155

노동력을 잃은 노인들의 노후문제는 진작부터 사회가 맡았어야 할 숙제였다. 서구의 양로원을 비웃으며 효도의 가치를 자랑스러워하던 우리 사회의 노인들. 이제 그들의 처지는 한여름 노래를 부르던 베짱이 신세가 되고 말았다. - P156

최근의 통계에 의하면 전체 노인의 85.9% 이상이 건강에 문제가 있음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효도가 아닌 구체적 의료 서비스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일본이 현재 약 30만 명의 양로 간호사를 국가 차원에서 배출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노인들에게 식사를 배달하도록 하겠다는 소식은 한없이 우리를 부럽게 만들고 있다. 일본인들은 양로원이라는 말 대신 ‘노인의 홈‘ 이라고 부른다. 장애자를 ‘챌린지맨‘으로 불러주듯이. 바로 이것이다. 노인들의 문제는 효도로 풀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국가와 사회에서 제도와 설비와 관심으로 풀어야 하는 것이다. - P157

우리가 이런 제도와 설비 마련에 더딘 것은 경제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바로 우리 사회가 이제껏 가장 아름다운 가치로 숭상해왔던 효도에 대한 터부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모두의 가슴속에서 거품처럼 부글대는 이 문제를 숨기면 숨길수록 희생자는 점점 많아져간다.
시대는 변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효도의 이름 아래 빚어지는 억지가 아니다. 노인과 자녀들 모두의 사랑이 상처를 입지 않을 균형 있는 제도다. 그것은 사람을 사랑할 줄 알고 사랑의 고귀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만이 빚어낼 수 있는 일종의 예술품일 것이다. - P157

아마존을 누비며 끝없이 연구 활동을 했던 레비스트로스, 그의 연구의 일관된 질문은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였다. 그는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것은 인간이 본래적으로 지니고 있는 원시의 자유스러운 창조 정신이라고 생각했다. - P159

유교 문화의 단점 중의 하나는 이렇듯 조그만 끈이라도 있으면 붙들고 매고 늘어지는 견강부회, 쉬운 말로 억지다. - P160

작품을 인격과 결부시키는 것이 동양적 그림과 글씨 품평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 P162

삶의 시간이 서로 달랐다 하더라도 인간의 감정은 언제나 동일한 법이니까 말이다. - P165

여성을 여성답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단순히 남성으로부터 독립되고, 성적인 해방감을 만끽하기 위해 수시로 섹스파트너를 바꾸어보고, 담배도 꼽아 피워보는 것이 여성을 여성답게 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일까? 정치적으로 안배되는 장관 자리 몇 개가 여성도 ‘인간‘임을 증명할 수 있는 키워드가 될까? 그건 역시 변변한 수영장 하나 없는 동네에 살면서 아시안 게임 수영 금메달리스트를 향해 박수를 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우리들의 모습만큼 공허한 것이 아닐까? - P167

여성을 여성답게 할 수 있는 열쇠는 이 원시의 순수 속에서
‘여성‘ 이라는 모델로 가공하기 시작한 틀을 찾아내 부수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 남성의 모럴로 특징지어지는 유교의 문화적 틀을 깨뜨리는 데서 해답을 찾아내야 하지 않을까? 발랄하고 건강했던 원시의 순수한 인간을 재능도, 자유도, 목소리도 없는 ‘여성‘으로 만들어버린 일방적 계약을 파기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유교 문화의 굴레 속에서 신음하던 자신들의 재능과 자유와 아름다움을 다시 찾아내야 하지 않을까? 결국 여성이 의지해야 할 자리는 폭력의 변사또도, 순정의 이도령도 아니다. 여성 자신이다. - P167

여성의 아름다움은 자유스러움에 있다. 신은 모든 자유분방한 아름다움을 여성 안에 감추어놓았다. 여성에게 인간을 탄생시킬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주었고, 자녀에 대한 다함없는 사랑을 심어 두었고, 남성들의 창조력을 촉발시킬 수 있는 매력을 넣어두었다. 때문에 모든 남성들은, 그가 아무리 둔감하고 능력이 없다 하더라도 한 여자를 사랑하는 순간부터 돌변하기 일쑤다. 숨겨졌던 모든 에너지가 일순에 분출하면저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하기 일쑤다. - P168

유교를 바탕으로 한 동양의 수많은 옛 예술품들, 음악과 미술, 서예 작품들이 여간해서는 평범한 우리들의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이유는, 그곳에는 건강한 여성들의 나부상이 자리할 만한 공간이 없어서였기 때문은 아닐까? - P168

성의 개방 문제를 윤리적 측면에서 풀어야 하는 당위성은 인정해야 하지만, 한국과 중국이 여성을 그 문화적 유배지에서 풀어사회로 진출시키던 근대에 이르러 비로소 사회적 발전을 이루고 있다는 현상을 그저 우연의 일치로만 해석하고 지나칠 수도 없을 것이다. 프로이트적인 측면에서 보아도 성의 억압은 다양한 성격결함과 소극적 특성을 야기한다. 중국과 한국의 폐쇄적 태도의 배경에는 정절이라는 성의 문화적 관리 제도가 숨어 있음을 간과해서는 곤란하다. - P169

모든 남성은 여성의 인격을 무의식중에 간직하고 있다. 남성들은 그것을 자신의 영혼처럼 느끼며 여성을 동경하고 사랑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아니마‘로 불리는 감정이다. 이 아니마는 최초에는 어머니를 통해 깊은 가슴속으로부터 나와 근친상간적인 모자일체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점차 자신만의 신비한 여성을 찾아가고 만들어가게 된다. 이 여성을 찾아가는 과정이 바로 남성들의 성취동기이며 에너지다. - P169

이런 점에서 유교는 남성들의 아니마를 억압하는 문화 구조를 갖추고 있다. 그들에게 주어진 여성은 신사임당과 황진이 그리고 춘향이에게서 볼 수 있듯이 단 세 가지의 여성이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쉽게 얻어지는 것들이었다. 권력과 돈을 통해서 성취동기이며 에너지인 아니마를 억압당한 유교 사회의 남성들이 자신의 분신인 여성을 위해 몸을 던지지 않을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 P169

그리고 그들의 의식과 행동이 불알 발린 내시의 그것과 유사함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여성을 잃어버린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 P170

남자들은 여성을 완벽하게 소유하기 위해 여성을 틀어쥐었지만 결국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여성을 완벽하게 소유하기 위해 만든 유교의 많은 장치들이 결국은 여성을 죽여버렸다. 유교 속의 여성은 더 이상 인간도 여성도 아니었다. 그것은 왜곡된 생명체에 불과했고 원한으로 뭉쳐진 카오스에 불과했다. 결국 여성들은 폭발해버렸고, 남자들을 떠났다. 원시 속의 순수한 여성을 잃어버린 동양의 남자들은 그래서 결국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있다. - P170

‘남녀 차별 금지법‘이 통과되었다. 하지만 남녀 차별의 오랜 문화가 만들어냈던 아니마의 억압은 아직 회복되지 못했다. 남성들은 아직 진정한 여성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 남과 여란 답답한 유교적 테두리 안에만 가두어 두기에는 에너지가 너무도 넘쳐나는 존재들이다. 테두리를 벗겨내야 한다. 인간으로서 서로를 보아야한다. 그리고 여성을 원시 속의 순수로 돌려보내야 한다. 거기에 남성의 위안이 있다.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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