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은 부분에선 국제 공용어인 영어에 관한 이야기와 더불어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통일과 관련된 저자의 의견이 인상적이었다. 특별히 통일과 관련해서 주의해야 할 점들을 지적하고, 궁극적으로는 문화적인 이질감을 해소한 상태에서의 통일을 추구하자는 저자의 주장이 마음에 와닿게 느껴졌다.

또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통일의 장점만을 크게 보고 통일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힘든 점 혹은 사회문제에 대해 막연히 생각하는 경향을 지적하면서, 통일을 신중히 추진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지난 수십년간 문화적으로 이질적이게 된 남과 북이 갑작스레 통일이 될 경우 우리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이슈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올 수 있음을 각종 사례를 통해 보여줌으로써 저자 본인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나는 그 목적 있는 ‘목소리‘ 를 따라가다가 결국에는 하수구에 처박히는 처참한 내일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그 ‘목소리‘ 주변의 힘있고, 능력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국민들이 그들이 시키는대로 하고 있는 동안 나름의 대비책을 마련하면서 항상 살아남았다. 6·25 때 정부와 이승만은 서울을 버리고 내빼면서도 서울을 사수하자고 외쳐댔다. 그뿐인가? 정부가 우리를 속여먹던 일이.
때문에 그러한 학습 효과가 살아 있는 한, 닥쳐올 험난한 21세기에도 실험실의 흰쥐 꼴이 되고 싶지는 않다. - P247

문명의 이기들은 이름 및 개념과 함께 유입되는 법, 이들 외래어들은 그 해당 물건들과 함께 한국어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마치 고대 사회에, 중국 문물이 들어오면서 우리 고유의 언어가 적당한 의미와 문물들을 표현할 방법이 없자 한자를 우리 언어 속에 심어놓았듯이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한자어로 가득한 우리말을 붙들고 이것이 진정한 우리 것이라고 울부짖을 이유도 없어져버린다.

영어가 라틴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을 받아들이면서 풍부한 어휘 영역을 구축할 수 있었듯이, 세계를 향해 열린 언어는 결국 경쟁력을 갖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또 인도 영어, 싱가포르 영어, 홍콩 영어에서 보듯이 모국어와 함께 공용어로 사용되는 영어들은 모국어의 영역을 축소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모국어에 물들며 독특한 발음과 표현들을 낳고 있음도 순수국어 수비대 들이 눈여겨볼 대목이다. - P250

하버드의 헌팅턴은 영어가 문화와 문화의 의사소통 수단으로 쓰이면서 서로 다른 문화적 정체성을 오히려 강화시키고 있다는 재미있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즉 어떤 문화권 사람들이 영어를 쓴다고 해서 생각마저 영어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언어학자 피시먼은 국제어의 조건으로 특정 종교나 이데올로기와 결부되지 않은 언어이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영어는 이제 세계어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특수한 의사소통 도구일 뿐, 특정 문화만을 대변하는 언어가 아니다. - P251

헌팅턴은 이제 영어는 인종적특성이 거의 탈색된 탈인종화된 언어라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외교관, 기업인, 과학자, 관광객, 관광업 종사자, 항공기 조종사, 관제 요원 등은 모두 효율적인 의사소통의 언어로서 영어를 사용하고 있을 뿐, 특정 문화에 종속되고 싶거나 종속되었기 때문에 영어를 사용하지는 않는다.
수영장에서는 수영복을 입는 것이 헤엄치기에 편하듯이 영어를 그저 편리한 의사소통 도구로 받아들이면 그뿐이다. 그것을 너무 민족적 입장에서 해석하면 할수록 우리는 점점 초라해진다. 물론 우리 것, 우리말을 외치는 몇몇은 강연도 하고 책도 팔면서 자신들의 희소가치를 만끽할 수도 있지만 별 볼일 없는 다수는 어떻게 하란 말인가? - P251

사회를 형성하는 주요 요소는 폭력 (질서 폭력, 즉 강제력과 무질서 폭력이 있다)과 자본과 지식이다. 그중에서도 지식은 정보 시대로 정의되고 있는 21세기에 인간의 가치를 구분짓게 될 가장 영향력 있는 요소로 꼽히고 있다. 어느 사회나 지식을 소유하는 계층이 그 사회의 상류층, 지배층으로 군림해왔다. 조선 유교 사회에서 유일한 문자인 한자를 지배한 지식인들이 권력과 자본 모두를 독점했음을 상기해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때문에 모든 정보와 지식을 가장 폭넓고 깊게 담고 있는 영어의 장악 여부는 이제 앞으로 각 개인의 몸값은 물론, 사회, 조직, 국가에 이르기까지 크게 영향을 줄 것이다. - P251

일부 여유 있는 계층의 영어 조기 교육은 그 아이들을 궁극적으로 좀더 새롭고 유용한 정보의 세계로 초대할 것이며, 보다 빠르게 가치 있는 정보와 문화에 익숙해지도록 할 것이다. 그것은 결국 사회 전체로 볼 때, 부모의 부와 사회적 힘이 영어라는 지식을 통해 문화적으로 상속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또 개인의 삶이 존중되는 열린 사회를 가로막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우려할 만한 것이다. - P252

이제 영어 조기 교육은 그 교육적 효과를 논할 시기를 넘긴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이미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 아니 다급한 필수가 되어버렸다. 일반적으로 7세까지는 프로그램과 환경에 따라(나는 단어나 스펠링 교육을 철저하게 반대한다. 소리 + 이미지만을 재미에 담아 전달해야 한다) 2개 정도의 언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습득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왜 애써 부인할까? 설사 2개가 모두 모국어 수준은 되지 않는다 해도 의사소통만이라도 불편이 없다면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고도 남지 않을까? - P252

그에 앞서 영어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각과 마음가짐이 달라져야 한다.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의 효과적 학습 방법은 앞서 말했듯이 사용해야 한다‘는 인식만 가지면 마련될 수 있다. 책을만드는 사람들끼리의 학연도 깨고 선후배도 깨고 제대로 된 프로들이 책을 만들고, 실력 있는 교사들이 과학적으로 설계된 프로그램을 가지고 강단에 서서 ‘써먹어야 한다‘는 의지로 가득한 아이들을 가르칠 때, 학습은 효과를 올릴 수 있다. - P253

하지만 솔직히 까놓고 지도할 수 없는 우리 교육 현장의 현실이 문제다. 영어 회화 가르칠 능력이 없다보니까 자꾸만 우리 것,
정체성만을 강조하면서 북 치고, 장구 치고, 효도 실습만 진행하는 것 아닌가? 누가 뭐래도 우리의 정체성은 무너지지 않는다. 김치, 된장이 모조리 사라지고, 우리들 머리털이 어느 날 갑자기 노래지지 않는 한 우리는 영원한 한국인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 것으로 무장된 한국인이 아닌 다른 것에 익숙한 한국인으로 거듭나야 한다. 우리 것이 그렇게 대단하면 적극적인 홍보를 위해서라도 외국어에 익숙해야 하지 않겠는가? 주변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반도의 지정학적 모습만을 가지고 냉정하게 생각해봐도 우리는 최소한 영어, 일어, 중국어 3개 국어는 할 줄 알아야 하는 사명(?)을 지고 이 땅에 태어났다.
힘이 약한 나라는 이래저래 숙제가 많은 법이다. - P253

도대체 4년 동안 같은 학교, 같은 학과에서 배운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풍경이 한국사회에서는 벌어지고 있다. 동문들로 구성된 이 ‘상아탑 마피아‘ 들은 또 다른 새끼 갱스터들을 낳는다. 살아남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리라. 하지만 그건 엄연한 폭력이다. 제도를 통해 국가로부터 부여받은, 겉으로 보기에는 대단히 젠틀해 보이지만 사실은 위장된 폭력이다.
- P254

원시 사회에서 폭력은 생산도구를 독점하고, 도구의 독점은생산을 다시 독점해 권력을 마련해주었다. 그리고 이 권력은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만든 이른바 제도에 의해 세습되게 마련이다.
그리고 이 세습은 마침내 계급을 만들게 된다. 한국사회에서 이른바 일류 대학들이 만들어내는 커넥션 역시 이런 순환 고리를 가지고 있다. 즉 위장된 폭력을 통해 지식을 독점하고, 지식 독점을 통해 발언권을 확보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멤버를 끊임없이 보완하며 세습해가는 과정이 동일한 것이다. - P257

그저 요즘 애들 버릇없는 것에 대해서만 걱정이다. 요즘 어른들 사랑 없는 것은 말하지 않고. - P263

어떻게 해야 하나? 방법이 있다. 인사를 바꾸어보라.
"사랑한다. 어서와."
‘어서와‘는 ‘너를 기다렸다.‘ ‘너는 환영받는 존재야.‘ 라는 의미가 숨어 있다. 물론 이런 인사를 어느 날 갑자기 하게 된다면 아이는 순간 닭살이 돋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싫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인사를 좀더 일찍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그 출발은 아이를 독립된 인격체로, 존경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로서 대하려는 부모의 태도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렇게 보면 기성 세대는 완전히 밑지는 장사가 될지도 모른다. 부모에게서 그런 사랑을 받지 못했는데 아이들에게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랑해야 하는 상황. 하지만 이러한 자세 전환이 세상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우리 아이들을 놓치지 않을 최선의 방법이라면 어찌하겠는가? 선택의 여지가 없지 않은가?
"더구나 아이들은 이제 온갖 문화권의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살아야 한다. 그들과 만날 때 첫번째로 건네야 하는 것이 바로 따뜻한 미소이고, 당신을 인격체로 인정한다는 마음이다. 인사에 이것을 담아야 한다. 그러면 더 따뜻하고 부드러운 인사를 선물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 P265

새로운 문화의 세대로 들어선 아이들에게 새로운 생존 전략을 가르쳐야 한다. 인사에 대해 다시 생각하자. 인사는 마음을 전할수 있는 좋은 기회다. 따뜻한 감정이 전달될 수 있는 사랑의 인터넷이다. 아이에게 고개 숙여 인사할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아이와 대화할 수 있다.
"그 따위로 하니까 요즘 것들이 점점 더 버릇이 없어지지!"
제발 그러지 마십시오. 이미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었습니다. - P265

한국 청소년들의 많은 불만중 하나가 자신들이 분명히 알고 있는 ‘문제‘ 들에 대해 어른들이 ‘얼버무리는 것‘이다.
아이들의 가슴에 ‘엄마는 아빠는 거짓말을 하고 있어. 말해봤자야‘라는 생각이 들게 되면 그때부터 그 아이는 이미 내 아이가 아니다. 집에 와서 밥만 먹지 생각은 또 다른 진실을 향해 나서게 되고 유혹에 쉽게 빠지고 만다.
‘권한‘으로 가르친다는 생각 자체가 아이들을 망친다. 잠재해있는 아이들의 재능을 최대한 열어주려는 서비스 정신이 없다면 월급은 받겠지만 존경은 받을 수 없다.
이제 가르치려고만 드는 선생님과 학부모는 아이들에게 더 이상 필요 없는 존재들이다. 우리는 함께 고민하고 잠재된 창의력을 끄집어낼 줄 아는 친구 같은 선생님과 학부모가 필요하다. 한 번 뿐인 인생을 무작정 맡기기에 인생은 너무도 값진 것이다.
"선생님,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 P271

우리들의 ‘공부‘는 이제 세계의 모든 문화를 파트너로 삼아야 한다는 차원에서 개혁되어야 한다. 책상에서 ‘쓰기‘ 만을 할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학생들 스스로 자신의 과제를 찾고, 그것에 숨어 있는 ‘왜(why)‘ 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동시에 자신만의 창의적인 해결책을 위해 정보를 어디에서(where) 찾아내고 ‘어떻게(how)‘ 해석할 것인가에 대해 가르쳐야 한다. - P275

모든 인간은 서로 다르다. 각기 서로 다른 가능성과 마음과 두뇌를 선물로 받고 태어난 아름다운 존재들이다. 그런데 이들을 하나의 기준으로 말 잘 듣게‘ 만들고 있는 것이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특히 엄마들이 (엄마들만 들먹여서 조금 죄송) 무심코 내뱉는 "네가 뭘 알아." "그게 아니라니까."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공부나 해." 라는 외마디들이 아이들의 창의력과 지적 의지 성장에 얼마나 큰 상처를 주고 있는지, 부모들은 너무도 모르고 있다.
창의력의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획일화다. 그리고 그 획일화는 강제적 질서 유지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 질서유지 콤플렉스는 유교 문화의 ‘도덕적 잣대‘ 때문에 만들어졌다. 더 나이 드신 분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지금 초등학생을 둔 30대, 40대의 부모님들도 유교적 교육 문화에 머리가 절어 있는 사람들이다. - P280

독일의 헤르만 헤세의 소설《유리알 유희》에는 인간 정신의 가장 아름답고 깊은 곳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한 장인이 등장한다. 늘 말이 없고 조용한 그 장인은 음악을 통해 인간 정신의 깊은 세계를 한 걸음씩 찾아 들어간다. - P281

인간은 스스로 생각하고, 그 생각에 스스로 감동하고, 생각과 감동을 손으로 빚어내어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 존재다.
따라서 스스로 생각할 수 있고,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하거나 그런 세계를 알지 못한다면, 아이의 ‘창조적 정신‘은 영원히 사장되고 말 것이다. - P281

억지로 지식의 양을 늘려주는 것이 아닌, 생명력 있고 아름다운 창의성을 길러주는 것이야말로 교육의 마지막 목표이자 희망이어야 한다. - P282

진짜 술꾼은 해장술로 술을 풀 듯이 책꾼은 책으로 피로를 푼다. - P282

학문의 즐거움. 그 안엔 학(學)과 문(門)의 두 즐거움이 존재한다. 몰랐던 것을 처음 알았을 때의 즐거움. ‘학‘의 즐거움이다. 인생의 활력은 때로 이런 ‘학‘ 에서 얻어진다. 그리고 ‘학‘의 즐거움은 대화를 통해 완성된다. 문(問), 바로 대화다. 배움의 즐거움은 바로 요 대화의 꽃씨 안에 숨어 있다. - P283

꿈이 없는 공부는 좌절 아니면 야비함만을 기르고 만다. 히로나카는 꿈을 가졌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스승들에게 끊임없이 물었다.
우리의 공부가 지겨운 이유는 선명하다. 즐거움의 핵심인 대화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일방적인 가르침은 배움의 본질이 아니다. 생각이 다 자라기도 전에 학문적 정답만을 머릿속에 쑤셔넣는 교실, 창조성을 도살하는 도살장이다. - P283

"창조라는 것의 출발은 언제나 유치하기 마련이다."
실패 속에서 터득한 히로나카의 이 말을 나는 좋아한다. - P284

한국인으로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땅 위에서 하늘 아래서 사람으로서의 가치와 생명의 존엄성을 인정받으며 사는 일이다. 즉 사람으로서의 아이덴티티는 한국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나 우리 문화 속의 한 구성원이라는 문화적 의무감보다 더 본질적이고 가치가 있는 그 무엇이다. - P288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이 땅에서 단 한 번의 생만을 부여받은 존재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때다. 이 한번의 생을 살아가는 동안 인간적 삶을 방해하고 사람으로서의 권리를 침해하는 모든 가치와 행위는 해체되고 비판받아야 하고 부정되어야 한다. 도덕의 가면을 쓴 유교는 물론이고, 국가 경영이라는 간판을 걸어놓고 국민들을 거덜내고 있는 정치, 그리고 우리들의 미래를 담보하겠다는 착각 속에서, 인간들을 옴짝달싹할 수 없는 제도 속으로 몰아넣고 아름다운 창의성을 말살하는 교육도 예외일 수 없다. - P289

유교는 윗사람으로서 아랫사람을 ‘가르치겠다‘는 오만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사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정치는 국가 경영의 허황된 청사진일랑 버리고 엎드려 봉사하겠다는 다짐을 해야 한다. 그리고 사람으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감시와 질책 앞에 마음을 열어야 한다. 평생 직업 한 번 없었던 실업자임에도 정치인이라는 타이틀때문에 수억의 재산 소유가 당연시되는 모습 역시 신성한 노동의가치 앞에 참회해야 한다. - P289

김치는, 된장은, 불고기는 한반도의 기후 조건과 환경에 의해만들어진 삶의 한 패턴일 뿐이다. 그런 면에서 쓰시도, 자장면도,
햄버거도, 피자도, 카레도 모두 동일한 삶의 한 단면일 뿐이다. 이제는 지구촌을 함께 경영하고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들의 먹거리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인정해야 한다. 그것들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문화적 알레르기를 자꾸 일으킬 필요는 없다. 모두 사람이 먹는 음식일 뿐이다. - P290

지구상의 모든 인간이 서로 사람임을 인정하면서 그의 국적이 어떻건 피부색이 어떻건 더불어 살 준비를 해야 한다. 검은 사람이건, 흰 사람이건 그 안에 살아 있는 생명을 생각하고, 사람임을 존중하면서 한 팀을 이루며 살아갈 생각을 해야 한다.
그것은 먹고살기 위해서는 그렇게라도 해야 한다는 비굴한 타협 때문이 아니다. 진정 서로를 삶의 동반자로 파트너로 생각하는 의식의 전환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물론 사회 곳곳에 보이는 수많은 문화적 반항과 자유선언을 위해 자행되는 그 ‘작위‘와 ‘흉내‘로부터도 우리는 자유스러워져야 할 필요가 있다. 서로가 서로의 공간을 존중하고, 서로가 생명체임을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어야한다.
이제는 모두 껍질을 벗었으면 한다. 옆 사람을 의식하지 말고 내가 사람임을 의식하면서 말이다.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권리와 생명으로 가득한 사람임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한국인을 넘어서자. 그리고 사람을 만나보자. 그곳에서 한국인의 문화가 아닌 사람들의 문화를 만들어보자. - P291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깨끗함(clean), 신용(credit), 야무짐(compact)의 3C다. 이제는 더 이상 탐욕과 질투, 그리고 권력욕에 의해 움직여지는 거대한 국가적 횡포와 정치적 속임수에 휘둘리지 말아야한다. - P292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 무슨 일인들 올바르게 할 수 있겠는가? - P293

왜 자꾸 주변의 나쁜 모습들을 의도적으로 찾으며 우리들의 못난 모습을 정당화시키고자 하는 것인가?
그럴 필요 없지 않은가? - P294

우리는 이제 ‘글로벌 스탠더드‘ 라는 새로운 가치 기준에 맞춰 살아야 한다. 이 새로운 가치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희망이다. - P295

글로벌 스탠더드란 다른 것이 아니다. 투명한 일처리, 깨끗한마음, 열린 가슴, 그리고 단단한 실력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을 외면하고 우리끼리 돌아앉아 형님 아우 나누어 먹겠다는 발상이 바뀌어야 한다. 학연과 지연과 혈연이 업무에 연결되어서는 곤란하다. 아니 그것은 이제 독약이다. 끼리끼리의 밀실 야합이 국가와사회를 거덜내고 만 현실 앞에서 우리가 선택해야 할 길은 오직 하나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깨끗함 (clean), 신용(credit), 야무짐(compact)의 3C다. - P295

우리 사회의 아픈 모습들을 지적하면 끝이 없지만 원인은 쉽게 찾아낼 수 있다. 모두가 공감할 시대정신이 이 사회에는 없다. 자신의 조그만 이익을 모두를 위해 양보할 수 있는 여유가 이 사회에는 없다. 잠시 기다리면 모두에게 기회가 온다는 신뢰를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다. 내일을 위해 인내할 만한 가치가 없다. 목소리 큰놈이 정의고 먼저 입에 틀어넣는 놈이 임자다. 국민들은 더 이상 순진을 떨 수가 없다. - P298

내겐 많은 외국인 친구들이 있다. 중국인, 일본인, 베트남인,
인도인, 미국인, 프랑스인 등등. 그들과 친구가 되는 방법은 단 하나다. 그것은 단순한 외국어 구사가 아니라 진실되고자 하는 태도와 말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진실을 듣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와 가정과 한국을 보여주고 말한다. 꾸미는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아버님은 늘 이런 교훈을 주셨다.
"솔직한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다." - P313

장점과 단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났을 때 처음 보이는 반응은 언제나 ‘감사‘ 였다. 매번 피드백을 위해 받는 그들의 소감에는 이런 말들이 적혀 있다.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접해주어 고맙다. 장점만을 들어 우리를 교육하려는 것이 아니고, 우리와 문제를 함께 풀어가려는 태도가 고맙다." - P313

우리 사회에는 이것이 없다. 서로를 인격체로 보면서 문제를 동일선상에서 풀어가려는 노력은 언제나 상대방을 감화시키게 마련이다. 그것을 악용하려는 몇몇에 대해서는 적당한 대비책을 세우면 그뿐이다.
더 나은 해결책을 위한 대화의 화술, 그것은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고, 오류가 수정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태도에서 가능한 것이다. 이제 정말 새로운 대화가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 P315

허리가 동강난 남녘에서 우리가 쓴 ‘역사‘와 잊혀진 땅북에서 쓴 그들의 ‘력사‘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말이 다르다는 것은 생각이 다르다는 뜻이다. 민족의 의사소통이란 단순한 열망이나 계량적 분석에 의존한 ‘플랜‘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민족의 만남이란 그 자체가 삶이다. 삶이란 때로 더럽고 때로 즐겁기도 한, 종합적으로 얼마나 유치찬란한 것인가? - P315

통일이라는 추상 명사는 어느 날 갑자기 구체적인 사실이 되어 우리 앞에 다가올 것이다. 마치 황장엽처럼 우리가 동포라고 맞닥뜨리게 될 사람들은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연 보호가 아닌 ‘사상 보호‘된 사람들이다. 그들을 우리는잘 포용할 수 있을 것인가?
조선족들을 만나고 두만강 너머 북을 바라보면서 나는 통일을 많이 생각했다. 걱정되는 것은 통일 비용도 아니고, 통일 방식도 아니었다. 바로 문화적 의사소통이었다. - P322

조선족들의 정서와 우리 국민들의 태도, 그리고 정부의 조치들을 보면서 나는 통일 후의 갈등을 감지해본다. 북의 동포들은 크게 당황할 것임에 틀림없다. 중국의 조선족들이 알고 있는 ‘력사‘도 쉽사리 받아들이기 힘든 게 사실이다.
하물며 수십 년 동안 김일성, 사회주의, 전쟁 외에는 다른 생각은 해보지도 못했던 그들이 확신하고 있는 ‘력사‘ 는 또 얼마나 다를 것인가? 그리고 그들의 생각은 또 얼마나 다를 것인가? 그들은 땅투기, 뒷거래, 입시 경쟁, 외국 여행, 인터넷 등 긴장 속에서 살아남는 법을 체득한 우리들과 악수를 해야만 한다.
우리에게 과연 그들의 무지(?)를 인내하고 교육할 아량과 능력이 있을까? 내가 아는 남쪽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려 보면, 통일후 있게 될 남남북녀의 갈등과 충돌이 눈앞에 선하다. 과학 기술과 생산 기술의 차이로 북한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단순 노동직으로 전락할 가능성, 그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 등 역시 우리가 생각해야 할 부분이 아닐 수 없다. - P324

남과 북은, 그리고 북과 남은 핏줄은 비슷한지 몰라도 문화적으로는 전혀 다른 이질체다. 문화적 이질체가 성공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문화와 말을 배워야 한다. 그래서 문화공동체를 만들어내야 한다. 문화공동체는 구호나 기대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질적 문화를 융합해갈 수 있는 고도의 전문가들이 필요하고, 심리적 문제들을 차분히 다루어 갈 전문 컨설턴트들도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서로를 배워야 한다‘는 남북의 의식이 전제되지 않는 한 통일 논의는 소모적 정치 쇼의 함정에 빠지고 말 것이고, 남과 북은 계산에 빠른 장사꾼들의 장터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물론 그 와중에 정치꾼들도 한몫 볼 테고, 제 버릇 개 주겠나? - P324

너무 급작스럽게 갖다붙이는 정치적 모자이크가 모두에게 행복한 것이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정치적 경제적 아픔을 다 겪은 우리들이 아직도 시련이 부족해서 더 겪어야 할 항목이 있다면 그것은 환경 문제와 통일 실험이지 싶다. 그 중에서도 냉전의 최전방에서 살고 있고 냉전논리에 최후까지 묶여 있는우리들이기에 겪게 될지 모르는 통일 실험은 함부로 다룰 일이 아니다.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나, 민족 통합을 갈망하는 것은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동안 냉전 이데올로기 때문에 억눌려 있던 삶의 욕구들이 일순간 수면 위로 터져나올 가능성에 대한 대비가 없는 상황은 억눌려 있던 기간이 길었던 만큼 그 분출도 거칠수밖에 없음을 생각할 때 여간 걱정스럽지 않다. - P325

우리 앞에는 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다. 그 중에서도 통일은 예측 못할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통일이란 단순한 정치적 게임이어서는 안 된다. 통일비용만큼 중요한 것은 북의 동포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우리사회의 지적 문화적 성숙함이다. 현실을 바탕으로 한 아량과 이해가 먼저 생겨나야 통일비용을 아까워하지 않을것이다. 다가올 어려움과 부담에 대해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국민들에게 알려 대비토록 해야 한다. 때가 된 듯하다. - P325

우리 민족의 근대사는 언제나 예측하지 못하고 대비하지 못했던 사건들 때문에 곤두박질치곤 했다. 그리곤 한동안씩 뒷걸음질이었다. 나는 어느날 갑자기 황장엽처럼 들이닥칠 통일이 걱정된다. 하루 벌어 하루 먹느라고 바쁜 정치를 보면 더욱 그렇다. - P326

서양이 동양을 압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한 물질적 힘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을 사랑하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있도록 하겠다는 휴머니즘과 합리주의적인 정신 때문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동양의 지성인들이 서구의 정신들을 만나면서 미련 없이 유교를 내던질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P327

한반도의 21세기는 통일로 열어야 한다. 그러나 그 통일은 정치로 열려서는 안 된다. 더구나 정권의 ‘업적‘ 을 위해 만들어져서도 안된다. 물론 민족적 열망의 한탕 잔치로만 열려서도 안 된다. 그것온 더불어 살아야 하고 함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야 한다는 인간 중심의 생각으로 열려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진정한 통일을 이룰 수 있다. 사람이 살아 있고,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으로서의 통일을 말이다. - P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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