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과 위트가 만화의 핵심이라면, 유교의 핵심은 현실과 엄숙함이다. 둘의 사이가 좋을 리 없다. 유교적 가치관은 언제나 만화를 폄하하고 모함한다. 유교의 엄숙주의는 만화 자신이 지닌 두 가지 속성 때문에 일본만화를 거부한다. 하나는 일본 만화가 지닌 허풍과 경박성 때문이다. 그러나 허풍과 경박성은 뒤집어 말하면 놀라운 상상력과 위트이기도 하다. - P191
‘지브리‘, 사하라 사막의 열풍이란 뜻이다. - P192
한국사회가 일본 만화에 거부감을 갖는 이유는 일본 만화가갖는 폭력과 선정성에 앞서서 유교적인 엄숙주의의 가치관 때문이다. 맹자라는 사나이가 한 ‘충실함이야말로 아름다움‘이라는 선언은 유교 엄숙주의의 무게가 얼마만한 것인지를 가늠케 한다. - P192
요시로 요시타케는 『만화의 기호론』에서 만화의 미학을 이런 논조로 파헤치고 있다. "만화는 과장과 디포르메(변형), 생략을 통해 독자의 비위를 맞춘다. 이들 만화 기호는 사람들의 소망, 의지, 이상, 실의, 악의 형체를 띠고 나타난다. 허풍 속에 마침내 아름다움이 떠오른다. 바로 허풍의 미학이다." - P193
고정된 가치관을 기준으로 애니메이션이 지닌 풍부한 상상력과 섬세한 예술적 기능, 그리고 인간에 대한 애정과 삶에 대한 겸허를 간과해서는 곤란하다. 물론 이런 표현이 일부 싸구려 만화영화에 해당되는 것이 아님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 P193
유교의 엄숙주의가 애니메이션에 익숙해지지 못하는 두번째 이유는 색상에 있다. 잘 알다시피 동양의 그림은 산수화로 대표된다. 그리고 산수화에는 단 2가지의 색, 흑과 백만이 용납된다. 그리고 이 흑과 백은 사고의 흑백 논리를 낳게 된다. 사물을 단순하게 생각하고 옳고 그름만을 단순하게 가른다. 퍼지적인 유연성이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 바로 흑과 백의 배합이다. - P194
물론 이 흑과 백은 나름대로 깊은 의미가 있다. 먹이 주도하는 검정은 사실 단순한 무채색은 아니다. 그것은 모든 색채를 포용하는 종합색이다. 빛이 하나의 색처럼 보이지만 프리즘을 통해 볼 때 다양한 색상으로 나뉘는 것처럼 먹의 색 역시 다양함의 융합이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색채의 범주 안에 들지 않는 색이다. 우리의 일상으로부터 아주 멀리 있는 존재 아닌 존재다. 백색은 빛을 의미한다. 동양화에서 백색은 여백을 통해 표현된다. 그런데 이 여백은 단순히 먹이 닿지 않는 나머지의 공간만은 아니다. 먹의 흑색과 마찬가지로 우주적인 빛의 공간이며 조물주의 공간이다.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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