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글의 제목은 ‘잠깐 쉬는 바람에‘라는 것인데, 앞선 포스팅에 나왔던 존 르카레에 관한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독자인 나는 글을 읽으면서 계속 존 르카레의《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라는 소설에 대한 설명과는 별개로 도대체 왜 제목이 ‘잠깐 쉬는 바람에‘ 일까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는데, p.295에 밑줄 친 문장에서 글쓴이의 의도를 비로소 짐작할 수 있었다. 글쓴이가 이 소설의 핵심 주제와 관련이 있어서 제목을 이렇게 지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제목에 대한 논의와는 별도로 p.296에 밑줄 친 문장은 조직이라는 것에 속해있는 개개인이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단지 자기자신의 생존의 차원을 뛰어넘어 조직에도 필요한 일이 진정 무엇인지를 독자들이 고민해보게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각국의 영문학자들이 주인공인 데이비드 로지의 소설 『교수들』(1984)에는 셰익스피어의 첫 일본어 번역의 희한한 제목들을 부끄러워하는 일본인 번역가가 나온다. - P286

유명한 고전의 상당수가 제목부터 번역이 잘못되었다는 식의 이야기를 우리는 주기적으로 접하게 된다. 존 르카레의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The Spy Who Came infrom the Cold)》도 그런 지목의 대상이 되었는데, 제목을 ‘현업에 복귀한 스파이‘로 해야 옳다는 주장이 있다. - P287

위대함은 보통 자기가 깨닫지 못할 때 달성되는 듯하다. - P287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이하 『추운 나라』) - P287

『추운 나라』는 영국 베스트셀러를 넘어 곧 국제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영국추리작가협회상(대거상)과 미국추리작가협회상(에드거상)을 다 받았다. 두 상을 석권한 건 이 소설이 처음이다. - P287

그레이엄 그린은 "내가 읽은 최고의 스파이 소설"이라고 찬양했다. 그 뒤 모든 판본의 표지를 장식하게 될 이 찬사는 원로 작가 J. B. 프리스틀리의 찬사("최고의 구성, 차가운 지옥의 분위기")와 함께 당대의 흥분을 간직하고 있다. - P288

초기의 장르 소설과 후기의 문학적인 소설이 상호 보증하면서 양자가 점진적으로 더 많은 신용을 획득하는 식으로 이루어진 것 - P289

‘순수함‘을 보증하는 쪽, 즉 더 많은 보증의 책임을 진 쪽은 초기의 소설 『추운 나라』이다. 그 이유는 단순한데, 이 책이 많은 사람들의 어린 시절의 기억과 얽혀 있다는 데 있다. - P289

cold는 여러 뜻을 가진 형용사이다. 춥다, 차갑다 말고도 은퇴했다. 현업에서 떠났다는 뜻도 있고, 길을 잃었다. 준비가되지 않았다는 뜻도 있다. ‘워밍업‘ 할 때 그 warm의 반대편의미로 말이다. 이런 용법은 컴퓨터를 전원이 꺼진 상태에서 처음부터 다시 켜는 ‘콜드 부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 P289

원어가 중의적이더라도 번역은 선택을 해야 한다.《추운 나라》는 cold의 가장 익숙한 뜻 ‘춥다‘를 택한 번역이다. 이런 선택의 강점은 일차적인 뜻이 파생시키는 여러 의미들을 가장 많이 붙들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차가움 - 냉혹-냉전으로 이어지는 의미의 연쇄는 이 소설이 냉전의 절정기에 등장했다는 시간적 맥락을 부여한다. - P290

‘나라‘의 추가는 스파이에게 국제적인 임무를 기대하는 독자들, 특히 스파이라는 말 자체를 외국어로 수입한 동양의 독자들의 상상에 부합했다. - P290

the cold라는 어구는 소설 초반 주인공 리머스와 상관 컨트롤의 두 번의 면담 중에 나온다. 컨트롤은 말한다. "사람이 영원히 추운 곳에만 있을 수는 없지 않겠나?" - P291

"이것이 자네의 마지막 임무일세. 그러고 나면 자네는 추운 곳에서 돌아올 수 있게 되는 거지." - P292

추운 곳은 고생스러운 정보부 업무 또는 직장 생활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 된 듯하다. - P292

(대부분의 모호한 제목들은 본문 속에서는 어떤 뜻인지 밝혀진다.) - P292

그(컨트롤)의 목적은 가능한 한 the cold라는 말의 편리함을 유지하는 것이고, 그 편리함은 모호함에서 나온다. 지금 그가 행하는 것은 ‘설득과 약속‘인데, 리머스의 동의를 받아 낼 수만 있다면 the cold가 무슨 뜻으로 받아들여지든 컨트롤로서는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 P293

컨트롤 덕분에 우리는 리머스의 직업적 상황이라는 주제에 눈을 돌리게 된다. 그때 떠오르는 또 하나의 번역이 서두에 적었던 ‘현업에 복귀한 스파이‘이다. - P293

‘현업에서 떠나 있다‘는 앞에 열거했던 cold의 여러 뜻 속에들어 있던 것이다. 여기에 ‘돌아오다‘를 붙이면 ‘현업에서 떠났다가 복귀한 스파이‘라는 제목이 얻어진다. 흥미로운 점은 컨트롤과 리머스의 면담에서 암시된 의미인 ‘외근, 바깥에서의 고생, 또는 직업 그 자체로부터의 해방‘과 정반대의 뜻이 되었다는 것이다. - P293

은퇴와 복직은 르카레의 전 작품에서 하나의 상수로 존재하는 주제 - P294

이 책은 인간이 공백기를 갖는다는 것, 정신이 해이해진다는 것에 얼마나 중대한 의미가 있는지에 관한 소설이다. 그가 계속 조직에 있었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해치웠을 일들이 있었다. 하지만 잠깐 인간으로 돌아온 뒤 그건 불가능한 일이된다. - P295

르카레는 말한다. 인간은 뜻하지 않게 서툴러진다. 그런데 그건 결함이라기보다 안전장치인 것이다. - P295

발표 당시《추운 나라》는 비도덕적인 조직과 그에 철저히 농락당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단지 그 얘기뿐이었다면 이 소설의 긴 여행은 꽤 오래전에 멈추었을 것이다. - P295

우리가 생각처럼 간단히 비인간화되지 않는 존재이며 늘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무수한 계기가 주어져있다는 건 희망을 준다기보다는 두려운 이야기이다. 그 계기가 존재하는 한, 인간은 더 이상 타인과 조직에 책임 전가를 할 수 없고 자기 행위를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 - P295

르카레의 윤리학을 응용하자면, 우리는 의식적으로도 서툴고 생경해질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인간이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조직에도 필요한 일이다. 숙련자와 동조자에만 익숙한 조직은 이미 병든 것이기 때문이다. - P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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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포스팅에서 조지 블레이크가 ‘자신이 봉사하는 사회 계급으로부터 소외되어 있었다‘는 글이 나왔었는데 그 내용과 관련된 내용이 이어진다. 읽으면서 배신의 참된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조지 블레이크의 말처럼 과연 ‘속한 적이 없으면 배신이 아닐까?‘ 이것은 조직 속에서의 존재감과도 연관지어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독자인 나는 조지 블레이크의 주장이 ‘자신은 원래 조직에서도 딱히 존재감없이 소외되어 있던 존재였기에 애초에 배신이라는 단어가 허용될 수 없는 존재이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이해했고, 아마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대부분 이런 식의 해석을 수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좀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조지 블레이크는 조직에서 실질적인 존재감이 미미했다 하더라도 어쨌든 자신이 명목상 속해있는 조직과 적대하고 있는 조직에 불리한 영향을 끼친 것은 분명하기에 이것이 배신이네 아니네 하면서 논란이 되는 것이다. 그냥 이것을 단순한 개인의 행동으로 치부할지 아니면 명목상 소속된 조직의 사람이니 배신이라고 봐야할지는 쉽사리 결정하기 힘든 논쟁거리가 아닐까 싶다.

위에 언급한 배신자 논쟁과는 별개로 애초에 논쟁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배신자들도 있었다. 이들은 ‘케임브리지 5인조‘ 라고 불린 사람들이었는데, 그중 필비나 버제스 같은 인물들은 오늘날 영화나 다큐멘터리의 인기 있는 소재가 되기도 했지만, 배신자 논쟁이 있었던 블레이크같은 인물의 경우에는 그렇지 못했다고 한다. 저자는 이러한 것과 관련하여 p.260에 밑줄 친 마지막 문장에서 블레이크의 어정쩡한 포지션에 대한 아쉬움을 살짝 나타내는데, 독자인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문득 우리나라 정치판이 생각났다. 어느 특정 당을 막론하고 정치인들을 보면 캐릭터가 확실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들은 그 캐릭터가 좋은 쪽이든 안좋은 쪽이든 관계없이 대중들에게 각인되고 인지도도 높아지는 반면 캐릭터가 어정쩡해서 그저 이리저리 눈치만 보는 사람들은 대중들의 눈밖에 나고 인지도도 그닥 없어서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미미한 경우들이 많다.

오늘 읽은 부분에 나오는 캐임브리지 5인조(배신자 혹은 간첩 집단)와 조지 블레이크의 이야기를 통해 좋은 이미지든 안 좋은 이미지든 관계없이 확실한 개성이 있는 캐릭터가 오래도록 대중들에게 기억될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 혹은 신념(?)같은게 생기게 되었다. 어정쩡한 포지션은 어찌어찌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대중들에게 높은 인지도를 얻기에는 쉽지 않은 포지션인듯 하다. 이런 걸 보면 다 좋은 것도 없고 다 나쁜 것도 없다는 말인 ‘모든 것에는 일장일단이 있다‘는 말이 다시금 떠오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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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나오는 ‘욕망의 리스트‘라는 제목의 글은 삶의 유한함이라는 제약하에서 우리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고 독자 개개인이 각자의 리스트를 정리해보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맥나마라 라는 사람의 말을 인용하여 생각을 종이에 쓰는 것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워런 버핏의 인생목표 정리법을 소개하며 우리 인생에 남아있는 시간이 결코 무한하지 않음을 상기시켜준다. 또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리스트업하는 와중에 자신이 미처 생각지도 못한 욕망들이 있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들도 있음을 독자들에게 소개하면서 앞서 소개한 맥나마라가 얘기했던 적는 것의 중요성을 독자들의 마음 속에 되새겨주고 있다.


뒤이어서 ‘아홉 개의 빈 방‘이라는 제목의 글이 나온다. 과거 유사과학에서 인간이 뇌의 10%만 사용한다는 것에 착안해 지은 제목인듯 한데, 근래의 연구에 따르면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얘기들이 나왔다고 한다. 글쓴이는 여기서 책에 대한 얘기로 논의를 이동시키는데 p.267에 밑줄친 문장 중에 집의 책 90퍼센트가 놀고 있다는 얘기를 읽으면서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아, 나만 그런게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바로 떠올랐다.

또한 이와 관련하여 공간을 차지하는 것에 대한 생각도 간단히 논하는데, 각종 정리니 무슨 미니멀리즘이니 하는 것들이 생각나는 글이었다. 과연 나는 내가 머물고 있는 공간을 얼마나 잘 활용하고 있는지, 잘 쓰지도 않는 불필요한 것들로 채우고 있지는 않은지 등을 점검하고 물건들을 사용목적에 맞게 정리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 하다.


다음에는 ‘현실감‘이라는 제목의 글이 나온다. 권투얘기부터 해서 이런저런 얘기들이 나오는데 특별히 p.271에 밑줄 친 문장이 뭔가 핵심적인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저자가 살아오면서 느꼈던 것이라고 하는데 일종의 직관적인 깨달음이라는 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현실감이라는 게 ‘충격적인 깨달음의 결과가 아닌 하나하나 노력해서 얻고 유지하는 것에 가깝다‘는 저자의 고백은 삶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매사에 성실해야 함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참고로 성실함에 있어서 방향성이 올바라야 한다는 전제는 디폴트 값이다. 아무리 성실해도 방향성에 일관성이 없으면 그 성실은 제자리걸음에 그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뒤이어서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에 대한 회상‘ 이라는 제목의 글이 나온다. 이것은 지금 읽고 있는 이 책의 제목인 『작가, 업계인, 철학자, 스파이』의 근원이 된 제목이기도 하다. 이는 저자가 이 책의 ‘들어가는 말‘에서 직접 밝힌 바 있다. 어찌됐든 껍데기는 그렇다 치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라는 책이 정말 일반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팔렸다는 점이다. 처음에 첫 인쇄본이 전량 소진되는데 무려 6년이라는 시간이 걸려서 절판도 진지하게 고려했던 책이었는데, 계약기간 말에 동일한 제목의 영화가 개봉하면서 이에 편승하여 책 판매도 증가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글쓴이는 출판사에 오랜 기간 근무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p.277에 밑줄 친 것처럼 책이란 게 어떻게 팔릴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책 판매의 성공을 위해서는 적절한 시기에 영화의 개봉과 같은 우연이라는 요소가 꼭 필요하다고 글쓴이는 말한다.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책 장사의 본질에 대해 간단히 언급한 뒤 우연의 중요성을 다시금 강조하며 글이 마무리된다.

책 장사의 본질은 허영과 욕망을 파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에 대해 좀 더 깊이있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우연이라는 우리가 소위 말하는 ‘운‘이라는 외부적인 요소도 책 장사의 성공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뒤이어 나오는 글은 앞서 언급한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작가인 존 르카레의 또다른 작품인 『실버뷰』라는 것과 관련된 글이다.

글쓴이는 먼저『실버뷰』에 등장하는 핵심인물들에 대해 간략히 설명한 뒤, 이 소설의 작가인 존 르카레에 관한 이야기들을 이어나간다. 이런저런 얘기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특별히 이『실버뷰』가 르카레 사후에 그의 아들에 의해 발표되었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르카레의 가족사를 보면 약간 비극인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르카레의 아버지가 사기 사건으로 체포되었다는 것인데, 르카레가 이러한 아버지 문제를 청산하기 위해 썼던 글이 바로 『실버뷰』라는 작품이었다고 한다. 근데 청산을 온전히 하지 못한채 죽음에 이르렀으니 이것도 참 안타까운 일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가 죽고난 후 그의 아들이 이 미완성의 작품을 유고작의 형식으로 출간했다고 하니 후대를 이어가는 것이 참 귀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만약에 르카레에게 자식이 없었다면 『실버뷰』라는 작품은 이 세상에 나오지도 못하고 사라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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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르카레와 관련하여 연이은 2개의 글로 인해 그의 작품을 찾아 읽어봐야 겠다는 호기심이 생겼다. 아마 이 에세이 집의 저자분께서도 이런 효과(?)를 어느정도는 의도하고 글을 쓰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뭐 아닐수도 있겠지만 내 주관적인 생각이 그렇다는 거다.) 근데 어쩌면 내가 그 미끼(?)를 제대로 문 것 같기도 하고 혹은 내가 낚인건가 싶기도 하다. 과정이 어떠했든 간에 결과적으로 지적 호기심에 불이 지펴진 것은 틀림없다. 인간의 호기심이라는 게 이렇게 강력한 힘이 있다는 걸 다시금 몸소 느낀다.

이런 말이 블레이크에게 큰 위안을 주지는 않았을 것같다. "아! 그는 비주류 출신이니 이해해 줘."가 당사자에게 좋게 들릴 수 있는 경우를 상상하기는 힘드니까. 그렇지만 블레이크 자신의 말 "속한 적이 없으니 배신이 아니다." 역시 수치스럽게도 그와 정확하게 같은 말이었다. 그건 설명이라기보다는 ‘양해의 말씀‘에 가까웠다. 확신범이라면 딱히 하지 않아도 될 얘기였다. - P259

오늘날 필비나 버제스 같은 5인조의 인물들은 영화나 다큐멘터리의 인기 있는 소재가 되었다. 그 인기는 아버지 세대에 반항하는 록스타에 대한 선호와 비슷한 점이 있다. - P259

이들(필비와 버제스)이 개인으로서 비정치적인 매력을 획득한 것, 블레이크는 그렇지 못한 것, 그 차이는 어디서 온 것일까. 필비와 버제스는 자신을 배신자라고 인정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도 않았고 정당화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아마 그래서 그들은 좋게든 나쁘게든 개인의 영역으로 진입할 수 있었나 보다. 그러나 자신이 정말 배신자가 아닐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어느 보호막 뒤에 서 있기를 선택한 인생에게는 그런 출구가 허락되지 않는 것 같다. - P260

말로 해 보거나 종이에 써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 - P261

케네디 행정부의 국방장관을 역임한 맥나마라는 포드사 사장 시절 이렇게 말하곤 했다. "생각을 종이에 적어라. 아직 종이에 쓰지 않았다면 너는 그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다." 명쾌하지만, 이건 종이에 적기 전의 생각이 전혀 그럴듯한 꼴이 아니라는 뜻일 뿐, 아예 없다는 판정이 아니다.
그 생각ㅡ부족하고 막연한 의식의 덩어리ㅡ도 존재는 한다. 단지 그 덩어리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려면 종이에 써보는 수고를 할 수밖에 없다. - P262

사업가 워런 버핏의 인생목표 정리법 - P262

먼저 자신의 인생의 목표 25가지를 적는다. 다 쓰고 나면 그중 가장 중요한 다섯 가지를 고른다. 이것이 ‘목표‘이다. 나머지 20개를 따로 옮겨 적는다. 그리고 제목을 이렇게 쓴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하지 말아야 할 20가지. - P262

즉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턱없이 짧다는 것이다. 생각했던 것의 5분의 1밖에 안 된다. - P262

보통 때는 잘 안 떠오르는, 예컨대 수줍은 나머지 여러 항목 속에 섞여서가 아니면 결코 혼자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욕망도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알아보고 이름을 불러 주는 것은 정신 건강에도 유익할 것이라 생각된다. - P263

나는 바르트의 다음과 같은 말이 늘 재밌었다. "상실 뒤에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느끼고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떠올린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욕망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 P263

욕망은 매우 수줍지만 교활하기도 하다. 스파이나 마피아 두목처럼 감시가 소홀한 틈을 정확히 이용할 줄 안다. - P263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 - P264

뇌의 90퍼센트가 놀고 있다는 것은 거짓이지만 집의 책 90퍼센트가 놀고 있다는 것은 매우 높은 확률로 진실이라는 것이다. - P267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자리만 차지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보편적인 적대감에 매우 익숙해졌다. 정치에서든 생활에서든 말이다. - P267

체험되기 전에는 이해될 수 없기 때문 - P267

부재를 슬퍼하는 것보다는 옆에서 행복감을 얻는 편이 훨씬 나은 법 - P268

점수든 횟수든 뭔가를 세면서 보는 건 몰입도를 높이는 좋은 관전법 - P270

살아갈수록 현실감은 어떤 충격적인 깨달음의 결과라기보다는 하나하나 노력해서 얻고 유지하는 것에 가깝다고 느끼게 된다.  - P271

그저 그가 할 수밖에 없는 일을 한다는 느낌 - P272

그는 살려고 하기 때문에, 일단 익숙한 것에 집중하려고 최선을 다한다. 나는 이런 노력이 그리 높이 평가받지 못하리라는 걸 안다. - P272

아마 그렇겠지만, 다음 라운드에서도 현실감을 한 점 한 점 따내야 하는 과정은 다시 시작되고, 그 일에 딱히 아무도 면제되지 못하리라는 것 역시 진실이긴 하다. - P272

기획자에게는 상업적인 감각과 의사소통 능력이 요구되는데, - P274

편승이란 이미 잘되고 있는 것 위에 슬쩍 올라타는 일인데, - P274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와 『팅커』 - P275

업계인들이 알다시피 어떤 책이 출간되고 모두가 행복해지는 얘기 같은 건 없다. 진짜 민망함은 이제부터인데『팅커』가 너무 안 팔린 것이다. - P276

초쇄가 소진되는 데는 육 년이 걸렸다. 회사에 미안했다. 판매가 이 정도라면 저작권 계약 연장을 하지 않는 게 정상이다. 다른 일이 없었다면 책은 절판되었을 것이다. - P276

2011년 9월 게리 올드먼과 콜린 퍼스 등이 주연한 동명의 영화가 영국에서 개봉했다. 『팅커』라는 책의 운명은 다시 예정된 궤도를 벗어난다. 연말부터 반응이 달라지더니 2012년 2월 국내 개봉 후에는 외국 소설 베스트셀러 순위에 등장하게 되었다. - P276

몬티 파이선식의 개그로 표현하면, 잘생긴 영국 남자 배우가 두 명, 앗 아니 세명, 앗 아니 네 명, 앗 아니 다섯 명……… 출연해 준 덕이다.  - P276

내가 읽을 때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호모에로틱한 요소가 그렇게 강렬한 반응을 일으키고 새로운 르카레 독자 유입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될 줄은 상상 못했다. - P277

책이란 게 어떻게 팔릴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생각이든다. - P277

"무언가를 소망하기를 멈추는 순간 당신은 그것을 갖게 된다." 앤디 워홀의 말이다. 이 말은 점쟁이의 말과 비슷해서 누구나 자기 삶에서 적합한 예를 두어 개는 떠올릴 수 있다. - P277

어쨌든 우연은 꼭 필요한 것이다. 헌책방에서 《팅커》를 발견했을 때의 계시 같은 느낌은 그게 우연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발생한다. - P277

책 장사는 결국 허영과 욕망을 파는 것인데, 우연이라는 요소가 한 축이 되지 않으면 욕망은 성립하지 않고 무너진다. - P278

자신에게 중요한 책 몇 권과의 만남을 회고해 보는 사람은 그 책들이 실로 우연히, 난데없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 P278

존 르카레의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이하 『팅커』) - P273

르카레 소설의 리얼리티가 정보부 근무 경험에서 비롯된다고 흔히 말하지만, 작가 본인은 그걸 내세울 만한 일로 여기지 않았다는 것은 강조되어야 한다. 중요한 건 묘사되는 감정의 진실성이지, 조직 배치도나 용어의 사실 부합 여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 P281

르카레는 진짜보다도 더 그럴듯한 스파이 용어들을 창조해 냄으로써 이미 자신의 작가로서의 능력이 경력상의 이점을 초과함을 증명해 보였다. 그 용어들은 뒷날 실제 정보 세계에서 사용하는 말이 되었다. 결국 스파이 소설가가 되기 위해 정보부에 근무할 필요는 없다. 그건 이 장르의 역사가 보여 준다. - P281

현대스파이 소설의 아버지 에릭 앰블러도, 르카레의 동년배 라이벌 렌 데이턴도 상상으로 스파이 업무를 그렸을 뿐이다. 오히려 정보장교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이언 플레밍은 007시리즈라는, 리얼리티에 치중했다고 볼 수 없는 소설들을 써내고 있었다. - P281

『실버뷰』는 르카레 사후에 미완성 원고로 발견되었다.
2021년 역시 작가인 아들 닉의 손질을 거쳐 출간되었다. - P281

 닉에 따르면 『실버뷰』는 쓰다가 만 소설이 아니다. 원고는 완성되어 있었다. 단지 르카레가 육 년 가까이 이 원고를 계속 수정하면서도 발표할 결심을 하지 못한 것뿐이다. - P281

 이것은 어느 의미로 볼라뇨 사후 발견되는 미완성 작품들과도 비슷하다. 겉으로는 이미 완성되어 있고 정서까지 끝나 있지만, 좀 더 확장과 심화 작업이 있기를 기대하며 작가가 서랍 속에 넣어 놓은 작품 말이다. - P282

실버뷰는 데버라와 에드워드 부부가 살고 있는 저택 이름으로, 독일어 ‘질버블리크‘를 직역해서 에드워드가 붙인 것이다. 질버블리크는 니체가 미쳐 버린 뒤 여동생의 간호를 받으며 살던 집이다. 이곳에서 인종주의자인 엘리자베트는 오빠의 사상을 난도질하며 뒷날 민족사회주의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로 왜곡시켰다. - P282

에드워드/르카레의 경고는 이런 것이다. 영국인들은 나치와 싸웠지만, 이들도 자신들만의 과거에 집착해 섬 바깥으로 나오기를 거부하는 한 나치와 비슷하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 P282

데버라는 총명한 학자지만, 자신의 애국심이 자신의 부족에 대한 일체감에 기초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이는 불길한 징조이다. - P282

『워더링 하이츠(Wuthering Heights)』, 『하워즈 엔드(Howards End)』 등 집 이름을 제목으로 택한 영국 소설들이 그렇듯 『실버뷰』 역시 ‘누가 영국을 상속할 것인가?" 라는 문제를 다룬다. - P283

끝에 실버뷰를 물려받게 될 젊은이들은 앞 세대들보다 훨씬 솔직하고 관용적이며 다문화적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르카레의 기획이 그 이상 뚜렷하게 드러나기도 힘들겠다고 느끼게 되는 지점에 도달한다. 이 젊은이들의 영혼이 데버라와 에드워드 중 어느 쪽을 더 닮았는지, 작가는 오해의 여지가 없게 표시해 두었다. - P283

르카레 소설의 독자들은 ‘나는 네 아버지를 알고 있다‘ 라는 말의 불길한 의미에 익숙하다. 실제로 로널드 콘월(르카레의 본명인 데이비드 콘월의 아버지)은 사기 사건으로 체포되어 수감되었고, 가족들을 수치와 경제적 곤란에 빠뜨렸다. - P284

르카레가 지배계급의 말석에 앉는 게 허락되었을 때 정체를 숨기는 직업, 스파이를 택한 것은 불가피한 선택처럼 보인다. - P284

르카레는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한 적이 있다. "내가 자주 느끼는 감정이 있습니다. 아마 많은 아버지들이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 같아요. 우리가 우리의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으려고 존재하는 것 같다는 감정." - P285

어쩌면 『실버뷰』는 르카레를 평생 괴롭힌 ‘아버지 문제‘
를 최종적으로 청산하기 위한 시도였고, 그는 이를 대작으로 완성시킬 영감이 찾아올 날을 조용히 기다렸던 건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날은 오지 않았고, 『실버뷰』 곳곳에 뿌려놓은 그의 아버지의 형상을 수습하는 일은 작가 르카레를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그의 아들의 손에 맡겨졌다. - P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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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바오가 대나무를 먹고 소화시킬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는 것이 비로소 완전한 성장을 이루었다는 것을 뜻한다는 사육사 할부지의 얘기를 읽으면서 문득 부모님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모든 부모님들이 자기가 길러낸 자식이 건강하게 무럭무럭 커가는 것을 볼 때 이와 유사한 마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녀들이 건강하게 자랄 때 부모의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는 것처럼 푸바오를 건강하게 길러낸 사육사 할부지의 마음에도 평화가 찾아온듯 합니다.

글 뒤에 푸바오가 대나무 잎을 손수 뜯어먹는 사진들이 나옵니다. 이 사진들을 보면서 자기 자식들이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만 봐도 사랑스럽다는 부모님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 보다는 그냥 본능적인 사랑의 감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작은 일상들이 모여 행복이 될 거야 - P81

드디어 대나무를 먹기 시작했지요. 그동안 엄마의 행동을 따라 하며 조금씩 느껴 본 대나무의 향과 맛, 감촉 들을 이제야 제대로 맛보게 되었습니다. - P83

푸바오가 대나무를 맛있게 먹는 모습뿐 아니라 대나무를 먹고 눈 푸른 고구마 응가까지 제 눈에는 모두 예쁘게만 보입니다. - P83

탄생부터 성장, 임신과 출산까지 모든 과정이 힘들고 조마조마한 판다의 삶 중에서 대나무를 먹고 소화시킬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는 것은 비로소 완전한 성장을 이루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 P83

마음이 한결 편해졌습니다. 무사히 유년기를 보냈다는 안도감과 아기 판다를 이만큼 잘 키워 냈다는 뿌듯함 때문입니다. 할부지의 이런 마음을 푸바오는 알고 있을까요? - P83

잘 먹고 잘 자라줘서 고마워.
네 덕분에 할부지는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 P83

푸바오, 도대체 너의 귀여움의 끝은 어디니?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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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포스팅 마지막 부분에서 슈레버라는 사람이 1903년에 출판한 《어느 신경병 환자의 회상록》이라는 작품을 간략하게 소개했었는데 그것과 관련된 내용이 이어진다. 개인적으로 처음 알게 된 사람인지라 아직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르지만, 전반적인 분위기상 슈레버라는 인물이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달리 정신적으로 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와 더불어 심리학과 정신분석학 분야의 대가로 유명한 프로이트가 위에 언급한 슈레버에 대해 분석한 내용들도 몇가지 나오는데, 프로이트가 어떤 식으로 사람들의 정신을 분석하는지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또한 이 챕터 막판에 자크 라캉, 질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 같은 철학자들도 잠깐 등장하는데 이쪽 분야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이 철학자들에 관하여 책이나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아봐도 나쁘지 않을 듯 하다.


철학자에 대한 이야기가 마무리되고 다음으로 스파이와 관련된 얘기들이 등장한다. 여기 별도로 밑줄치진 않았는데, ‘게오르크의 아들‘이라는 제목의 글이 나온다. 냉전 시대에 가장 유명했던 스파이 중 하나인 귄터 기욤이라는 사람에 관한 간단한 소개로 시작하는데, 그는 동독에서 서독으로 파견한 스파이였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아예 처음 알게 된 인물이라 궁금해서 인터넷에 검색해봤더니 관련된 내용들이 꽤나 등장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게오르크‘라는 것은 암호명이었는데, 서독 정보당국의 대처로 귄터 기욤은 스파이인 것이 들통나게 되어 장기간의 징역살이를 하는 지경에 이른다. 기욤과 그의 부인 사이에는 피에르라는 아들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아들이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난 뒤 자신의 혼란스러웠던 경험을 회고록 형식의 책으로 썼다고 한다. 이 책에서 피에르는 자신의 얘기임에도 불구하고 1인칭 대신 3인칭으로 화자를 설정하여 책을 쓴 뒤 편안함을 느꼈다고 하면서 얘기가 마무리 되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p.239에 밑줄 친 것처럼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일을 겪었을 때 자신의 경험을 3인칭으로 기록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이 느꼈던 위협이나 고통을 그 3인칭의 어떤 세계 속에 봉쇄시키는 심리적인 효과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것이 어찌보면 글이 가져다줄 수 있는 힘같은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떤 사람의 흔들리는 감정을 안정시켜 준다고나 할까.


다음에 이어지는 글은 ‘균형 맞추기‘라는 제목의 글이다. 맨 처음에 조지 오웰의 소설《1984》에 나오는 한 장면에 대한 설명과 함께 배신이라는 키워드를 도출한다. 저자는 배신 장면에서 돌변, 위장, 놀라움이라는 세 요소가 한 세트로 등장한다고 말하는데 이와 관련된 저자의 생각들이 쭉 이어진다.

글을 읽으면서 인상적으로 느껴졌던 문장 중 하나는 p.243에 밑줄 친 문장이다.

[바깥에 드러난 행위의 일관성이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는 자아상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게 관건인 것이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는 것은 내면이 아닌 겉으로 드러나는 말이나 행동같은 것이 될테지만, 내가 나 스스로를 볼 때는 겉으로 드러나는 말이나 행동이 아닌 내면에 숨겨져있는 나만이 아는 자아상에 따라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할 것이다.

별도로 책에 나온 말은 아니지만 이 부분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요즘 많이 쓰는 말 중에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문득 생각났다. 이는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을 부르기 쉽게 줄인 일종의 줄임말인데,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자기 연인이 아닌 다른 이성과의 외도 혹은 바람)은 동일해도 자신이 그 행동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좋고 나쁨을 결정한다는 게 이 말의 핵심 포인트이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자신이 갖고 있는 자아상이 세상의 일들을 바라보는 시각을 형성하는데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정도로 정리해볼 수 있을 듯 하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이 글의 마지막 부분에 저자는 본인만의 자아상에 매달리는 것이 타인의 신뢰를 지속적으로 침해하게 되는 경우에 대한 우려를 표한다. 이에 관해 개인적인 생각을 좀 보태자면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가 현실이라면 자아상은 일종의 이상같은 것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이 현실과 이상간의 괴리가 점점 커질수록 현실에서의 인간관계를 하는데 있어 나 외의 주변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잃고 점점 멀어지게 되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얘기인듯 하다.

결국 내가 생각하는 나의 자아상이라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기에 타인이 그것을 일일이 찾아봐주기를 기대해서도 안되고 그럴 수도 없다는 게 저자의 얘기였고 독자인 나 또한 이에 대해 동의하는 바이다.

다만 이와 관련하여 개개인이 해야 할 것은 자신이 꿈꾸는 이상적인 자아상과 현실의 삶을 가급적 일치시켜서 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갈 때 다른 사람들의 나에 대한 믿음도 함께 회복하면서 좀 더 행복에 가까워질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좀 힘들어도 노력하고 열심히 살면서 이상적인 자아상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기 위해 발버둥치는 게 우리들의 삶이지 않나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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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나오는 글은 ‘파란 셔츠에 빨간 스카프‘라는 제목의 글인데 책의 내용에 근거하면 이 제목에 나오는 말이 마누엘 푸익의《거미 여인의 키스》라는 작품에 나오는 문장에 있는 소재인 듯 하다. 이 작품의 대략적인 스토리들이 나오는데 일단은 p.248에 밑줄 친 내용처럼 환상이라는 것의 본질에 대해 잠시나마 곱씹어 생각해볼 수 있었다. 또한 스파이 파트에 이 글이 나온 것은 《거미 여인의 키스》속 등장 인물 중 한 명이 스파이 역할을 해서 그런 것 같은데, 나중에 시간이 허락한다면 마누엘 푸익의 작품을 한 번 찾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체를 봐야 좀 더 선명하고 입체적으로 작품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에 나오는 ‘가족 대여 서비스‘라는 제목의 글은 제목에서부터 뭔가 속이는 냄새가 난다고 느껴졌다. 유일무이한 존재인 가족을 어떻게 대여할 수 있다는 말인가? 역시나 독자인 내가 맡은 냄새가 틀린 것이 아니었음을 이어지는 글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자세한 내용을 일일이 언급하긴 힘들지만, 독자인 내가 여기서 느낀 이 글의 핵심은 트릭위에 트릭이 있을 수 있음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속고있는 사람을 본다고 하는 것이 내가 속지 않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글이었다. 만약 나를 속이려는 자가 이러한 트릭을 쓰는 사람이라면 아주 고단수의 사기꾼일 가능성이 농후해보인다. 내가 속지 않고 있다고 믿게 함으로써 사기꾼의 말을 믿게 하는 그런 유형의 인간들은 정말로 조심 또 조심하는 수 밖에 없어 보인다.

책 페이지로는 2장(4page)밖에 안되는 분량의 글임에도 독자인 나의 뇌리에는 엄청난 임팩트로 느껴진 글이었다.


다음에는 ‘비밀과 외국어‘라는 제목의 글이 나온다. 일기를 쓸 때 비밀유지를 위해 다른 사람들이 알아보기 힘든 외국어를 사용해서 일기를 썼다는 내용도 나오고, 근래에 있었던 정부 문서에 핀란드어가 등장했던 사건에 대한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도 결국 구글 번역기의 등장으로 인해 더 이상은 보기 힘들어질 듯 하다는 게 이 글의 결론이었다. 이 글을 보면서 앞으로 이 세상에 비밀이라는 게 과연 존재할 수 있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잠시 잠깐은 가릴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에는 모든 것이 드러나고 투명한 흐름으로 흘러가는 시대가 되어 가고 있지 않나 싶다.


오늘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어떤 배신‘이라는 제목의 글이 나온다. 조지 블레이크 라는 인물이 핵심 인물인데, p.257에 밑줄 친 문장에서 참조 할 수 있듯이 글을 읽으면서 배신이라는 것의 참된 본질이 무엇인지를 잠시나마 생각해볼 수 있었다. 여기 밑줄치지 못한 추가적인 내용들은 다음 포스팅에서 이어서 논해보겠다.

이 병은 ‘과거‘에 속하지 않았다. 처음 슈레버 사건을 접하는 독자는 이 책이 지금은 치료된 이가 자신의 과거 정신병을 회상한 것이리라고 무심코 가정했다가 나중에 깜짝 놀라기 마련이다. - P224

슈레버는 자신의 여성화나 태양광에 의한 임신 등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전혀 치료되지 않았다. - P224

프로이트가 사례 연구를 출판한 다섯 명의 환자는 다음과 같다.

도라(1905) - 히스테리

꼬마 한스(1909) - 거세 불안

쥐인간(1909) - 강박 신경증

슈레버(1911) - 편집증

늑대 인간(1918) - 유아기 신경증
(여기에 어느 여성 동성애자에 대한 짧은 보고(1920)를 포함시켜 ‘6개의 사례 연구‘라고 묶기도 한다.) - P226

프로이트가 말했듯, 정신분석은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는 지장이 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을 때"만 도움이 되는 것 - P226

슈레버는 둘 다 해당되지 않았고, 그의 망상은 정신분석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아득히 초월해 있었다. - P226

편집증 환자는 신경증 환자와 달리 거리낌 없이 하고싶은 말만 하기 때문에, 슈레버의 경우 그의《회상록》을 잘 읽어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 P227

프로이트의 결론은 슈레버의 억압된 동성애가 편집증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는 슈레버의 숨은 애정의 대상으로 그를 치료했던 닥터 플렉지히를 지목했다. - P228

슈레버의『회상록』이 호모에로틱한 분위기로 가득 차있음을 감안하면 프로이트가 동성애를 말한 것은 딱히 놀라운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회상록』에서 플렉지히가 시종일관 슈레버의 박해자로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 플렉지히를 슈레버의 사랑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은 극히 까다로운 트릭을 필요로 하는 일인데, 프로이트의 천재성은 이를 단 네개의 문장으로 해냈다는 데 있다. - P229

[그(플렉지히)는 나(슈레버)를 증오한다.]

프로이트의 억압 공식에 따라, 주어와 목적어는 위치가 바뀌어 있는 것이 보통이므로 이는,

[나는 그를 증오한다.]

가 된다. 그런데 이는 다음 문장에 대한 방어 작용이다.

[그는 나를 사랑한다.]

여기에 억압 공식을 다시 적용하면, 우리는 맨 밑바닥에 감춰진 최초의 형태를 얻는다.

[나는 그를 사랑한다.] - P229

슈레버가 여성으로 변한 것은 플렉지히의 사랑을 얻기 위함이었다. - P230

이런 추론 과정이 참신하기보다 뭔가 단순하고 익숙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프로이트가 우리 사고의 일부가 되어 있는 탓도 있다. 우리가 자신의 감정이나 꿈, 소설이나 영화 등을 관조할 때 주어, 목적어, 동사를 바뭐 끼워 보는 것은 기본적인 체크리스트의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 P230

학설의 타당성 논란과 무관하게 사람들이 아직도 프로이트를 읽는 이유 - P230

독자들은 프로이트가 환자의 혼란스러운 진술에서 하나의 명확한 문장을 추출한 뒤 이를 반대 방향으로 변주하는 것을 지켜보게 된다. 이는 진기한 구경거리이기도 하지만 독자의 머리에 모터가 달리는 경험이기도 한 것이다. - P230

「엠마순스」(1948) 마지막 문단에서 보르헤스는 감정의 진실은 언제나 "상황과 시간과 한두 개의 고유명사가 거짓인" 채로 나타난다고 썼다. 이는 프로이트가 먼저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한 문장이었다. - P230

편집증이 자신의 동성애를 억압하는 주체가 사랑의 대상으로부터 박해받는다고 느끼는 망상이라면, 사랑의 대상이자 박해자인 닥터 플렉지히의 의미는 무엇인가? 프로이트는 플렉지히의 의미가 슈레버의 남자 형제일 것이며, 나아가 그 인물은 "(동생이 아닌) 형이었을 것"이라 단정한다. 프로이트는 놀랍게도 아마 그 형은 죽었으리라고 추측했다.
이런 심증을 가지고 그는 『회상록』을 샅샅이 뒤진 끝에 "형에 대한 기억"이라는 지나가는 한 구절을 찾아낸다. - P231

신은 형보다 더 중요하고 강력한 사람, 아버지를 뜻한다. 전능한 그는 슈레버가 여자가 되는 책임을 전가하게 해주는 핑계이기도 하다. 여성으로 변하라는 신의 명령은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거세 위협의 반복일 것이다. 실제로 슈레버의 아버지는 아들들이 여성적인 행동을 보일때마다 그런 위협ㅡ흔히 체벌을 동반한ㅡ을 하며 사내답게 만들려고 애썼다. - P231

프로이트는 슈레버에게 만일 자식, 특히 아들이 있었다면 충족되지 못한 동성애적 애정을 쏟는 출구가 있었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의 여성화나 임신에 대한 망상은 자신이 여성이었다면 자식을 출산할 수도 있었을 거라는 무의식적인 기대도 반영한 것이었다. - P231

"나는 구체적인 자료를 모두 알고 있어야 분석적 해석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 P232

그(프로이트)는 결국 실험과 데이터를 중시하는 자연과학자로 훈련받았으며, 찾아온 환자의 말투나 옷차림의 구체적 디테일에 관한 그의 예리한 관심은 문학가, 더 나아가 영화 평론가를 떠올리게 하는 점이 있다. - P232

1932년 자크 라캉은 편집증에 관한 그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편집증이 동성애의 억압에서 비롯된다는 프로이트의 공식을 거의 그대로 수용했다. - P232

1972년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는 『안티 오이디푸스』에서 프로이트의 슈레버 해석을 비판했다. 요점은 프로이트가 정신질환을 집요하게 가족 구조 안에 가두려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것으로부터의 해방을 주장했다.) - P232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겪었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삼인칭으로 써 보기도 한다. 자신은 분리되어 안전해지고, 위협이나 고통은 삼인칭의 어떤 세계 속에 봉쇄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책이 되면, 그 거리는 영원한 것이 된다. - P239

왜 꼭 그래야 하는 것일까? 너무 애쓸 필요는 없다. - P240

우리가 상상하는 배신 장면이란 대개 이런 식이다. 돌변, 위장, 놀라움이라는 세 요소가 한 세트로 나온다. - P241

태도의 돌변과 인격을 위장해 왔다는 것은 엄밀히 말해서 같은 것은 아니다. 돌변은 순간적이고 위장은 오랫동안 갈고 닦는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당하는 쪽의 입장에선 대개 한 가지 사건으로 경험된다. - P242

배신감은 강렬할수록 놀라움을 동반하기 마련이지만, 이 놀라움이 역으로 배신의 정의를 흔들기도 하는 것 같다. ‘예상치 못했다‘는 것이 배신의 주요 내용인 것처럼 우리가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 말 없었다면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할 일인데, 단지 조금 미리 나에게 귀띔해 주었다는 이유만으로 용납 가능한 일처럼 보이게 되는일이 얼마나 많은지 놀라게 된다. 어째서 그렇게 되는지 이유는 모른다. - P242

아마 우리는 신뢰받는다는 느낌을 좋아하고, 덕분에 놀라지 않게 되었다는 데 안도하고, 그것에 터무니없는 대가를 지불하는 데 익숙해진 듯하다. - P242

우리는 돌변한 태도가 주는 놀라움이 위장된 인격의 본질이나 배신의 실제 내용보다 더 큰 관심사가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는 전적으로 겁에 질린 사람의 태도이다. - P242

그러나 우리를 놀라게 하는 이들이 이 유리한 환경ㅡ놀라게 한 것만 사과하면 되는ㅡ을 잘 이용하는 것 같지도 않다. 채링턴 씨(조지 오웰의 소설《1984》에 등장하는 사상 경찰) 처럼 직업적인 기만가가 아니라면, 자신의 일관성에 대해 일말의 회의도 갖지 않는 게 보통인 듯하기 때문이다. - P242

자신이 타인을 기만했다는 생각은 고사하고 기대나 신뢰를저버렸다는 생각이 들 수가 없다. 기준이 다른 쪽에 있으니말이다. 바깥에 드러난 행위의 일관성이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는 자아상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게 관건인 것이다. - P243

무해한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저녁 모임에 참석한 사람이 다음 날 아침 ‘나답지 않게 실없는 말을 너무 많이 했다‘ 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고 하자. 그가 그날 말을 해도 되고 아껴도 되는 여러 선택 앞에서 어떤 방향을 택할지는 짐작이 어렵지 않다. - P243

우리의 언행은 기존의 자신의 언행에 무엇을 추가하거나 취소하려는 의도에서 나온다. - P243

남의 말은 알아듣기 힘든 법인데, 취소라는 차원 때문에 우리의 의사소통은 한층 복잡해진다. - P243

문제는 그가 주관적으로 뭘 취소하는지 타인이 알아차릴 길이 없다는 것이다. ‘이 사람이 오늘 거드름을 피우는 것은 어제의 경박한 언행을 취소하고 균형을 맞추기 위함이다‘ 라고 생각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제는 광대같더니 오늘은 더 바보 같다고 생각하게 될 뿐이다. 사실 그이상으로 깊이 헤아려 줄 의무가 타인에게 있을 리 없다. - P243

본인만의 자아상에 매달리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진부한 말이지만 우리는 연약한 존재이고 인격의 균형을 유지하는 건 누가 대신 해 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노력이 타인의 신뢰를 계속 침해하는 방식이라면 자문해 봐야 할 것 같다. - P244

자기 이미지라는 것도 결국 타인의 시선을, 관객을 가정하고 형성된 것이 아니었나? 아마 그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타인이 그가 기대하는 방향으로 그를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 P244

마누엘 푸익의 『거미여인의 키스』는 1976년 스페인에서 출간되었다. - P246

이야기는 바야흐로 폴린 케일을 격분시킨("비밀접선한다는 인간이, 파란 셔츠에 빨간 스카프를 매고 나가나?") 장면에 이른다. - P247

환상이란 그런 것이다. 자신은 아무것도 놓지 않고, 꼼짝하지 않고 있는데도 상대에게 다가갔다고 믿게 만들어 준다. - P248

가족 대여 서비스는 실용적인 목적 외에도 부재하거나 만날 수 없게 된 사람을 불러냄으로써 자신의 감정을 해결할 수 있게 도와주는 치료적인 서비스였던 것이다. 바투만은 역으로 심리 치료라는 것 자체가 치료자가 부모 역을 맡는 일종의 가족 대여 서비스가 아닌가 자문해 본다. - P250

"사람들은 가짜를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가?‘ - P250

결국 이들은 순진한 서방 방문자의 역할, 즉 주민들의 소박한 모습에 감탄하지만 마을 전체가 세트장인 건 눈치채지 못하고 나오는 유서 깊은 바보 역할을 재현한 셈이 됐다. - P251

알다시피 영화 「트루먼 쇼」에는 오직 한 사람을 속이기위해 존재하는 가짜 마을이 등장한다. 여기에서 끔찍한 것은 마을 사람 누구도 트루먼에게 진실을 알려 주지 않는 점이다. 어찌 이런 잔인한 공모가 가능한가 궁금했는데, 이제알 것 같다. 이건 리얼리티 쇼가 아니며, 속고 있는 건 트루먼이 아니라 시청자이기 때문이다. - P251

「트루먼 쇼」의 트릭은 이런 것이다. 트루먼이 속고 있는 한 그걸 바라보는 우리는속지 않는 자 편에 있다고 느낀다. 트루먼이 바보같이 속아 넘어갈수록 시청자는 더욱 이 쇼를 신뢰한다. 부당하게 피해를 입는 자를 봐도 본인은 해당되지 않는다고 느끼면 오히려 체제에 대한 신뢰가 높아지는 것과 비슷하다. 중요한 건 속거나 당하는 자가 있다는 게 아니라 내가 거기에 속하느냐일 뿐이니까. - P251

가짜 가족이라도 붙들어야 할 처지의 사람들은 대등한 존재가 아니었다. 이해해 줘야 할 대상이었을 따름이다. - P252

내려다볼 대상이 나타나면 우리 마음은 편해진다. 크게 속을 준비는 이런 식으로 마쳐진다. - P252

외국어가 정보의 방화벽 역할을 하던 시절은 빠르게 사라지는 중이다. 핀란드어 폴더 논란의 진정한 승자는 구글 번역기인 모양이다. - P256

뒷날 그(조지 블레이크)는 인터뷰에서 후회도 없고 죄책감도 없다고 했다. "배신하려면 먼저 거기에 속해야 한다. 나는 속한 적이 없다." 이 유명한 말은 영국의 민족적, 사회적 편협성에 대한 고발로 여겨졌다. - P257

스파이로서 블레이크의 최대 업적은 동베를린 지하에 미국과 영국이 땅굴을 파서 몰래 설치한 감청 시설을 소련에 알려준 것이다. 덕분에 소련은 이 시설을 계획 단계에서부터 알고 있었지만, 완공 후 일 년 넘게 운용되도록 모른 체하고 있었다. - P258

작가 존 르카레의 말은 어떤 일반적인 정서를 요약한 것이다. "나는 필비 (케임브리지 5인조의 한 명)를 아주 싫어하지만 블레이크에게는 동정심을 느낀다. 블레이크 같은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자신들이 봉사하는 사회 계급으로부터 소외되어 있었다." -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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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문학을 사랑한다면 - 잃어버린 감수성을 찾아 떠나는 열아홉 번의 문학 여행
이선재 지음 / 다산초당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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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인상깊게 읽었던 다양한 문학작품들을 19가지 키워드에 기반하여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특별히 각각의 작품들과 관련된 저자만의 경험담이 함께 담겨있어서 글이 더욱 더 진솔하게 느껴졌다. 또한 문학이 사람들에게 주는 가치와 그것이 가진 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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