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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포토스의 배 - 제140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쓰무라 기쿠코 지음, 김선영 옮김 / 한겨레출판 / 2016년 6월
평점 :
전세계적인 경제불황 속 취업빙하기, 불안한 미래 등 비슷한 현실을 겪고 있는 일본의 젊은층을 다룬 소설입니다. 《라임포토스의 배》에는 대학동창 4명의 여성이 등장하는데요. 각자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일본 여성들의 단면을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할 일이 없으면 멍하니 쉬면 되지 않느냐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그런 시간이 나가세에게는 고통스러웠다. 뭔가를 하지 않으면 불안했고, 가능하다면 그 시간에 푼돈이라도 좋으니 돈을 벌고 싶었다.
P44
화장품 공장 계약직으로 일하는 스물아홉, '나가세 유키코'는 계약직 사원으로 홀어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습니다. 쉬는 날에는 어떻게 쉬는지를 몰라 차라리 일하는게 낫다라고 생각할 정도로 빡빡한 하루를 나눠살고 있습니다. 전 직장에서 정신적인 괴로움으로 퇴사한 후 나가세는 아무생각 없이 단순노동을 할 수 있는 화장품 공장을 택하고, 경력을 쌓을 수 있는 일 대신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 살게 됩니다. 어째 시간에 돈을 파는 기분이 들지언정 일은 계속 해야만 하니까요. 미래가 보이지 않는 일에 당장의 현실을 위해 적성에도 맞지 않는 일에 내몰리는 현실에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일본뿐만 아닌, 한국의 젊은층에게도 매우 공감가는 내용이란 생각도 듭니다.
살기 위해 박봉을 받으며 일하고 푼돈으로 생명을 유지한다. 동시에 공장에서 보내는 모든 시간을 세계일주라는 행위로 바꿀 수도 있다. 나가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세계일주가 자신의 생활에 돌맹이를 던지는 것 같았다. 위험하다. 하지만 뭐가 위험한지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중략) 지금까지 낡은 집을 수리한다는 명목으로 막연히 저금을 해왔다. 하지만 그 목적은 벌이에 비해 너무 높은 목표라 구체적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나는 집을 위해서만 사는 게 아니다.
P27-28
어느 날 사내 게시판에 붙은 세계일주 크루즈 여행 포스터를 보고 자석에 이끌린 듯 돈을 모으게 되는 나가세. 사실 낡은 집을 고치려는 목적으로 돈을 모으고 있었다지만 딱히 목적이 있었던 건 아니였어요. 집을 위해 사는 인생도 참 고달프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나가세는 스물 아홉이라는 인생의 첫 번째 분기점에 서 있습니다. 여자 나이 앞자리가 3으로 바뀐다는 것은 남자보다 훨씬 민감한 사항일테니까요. 크루즈 여행을 다녀온다면 다시 직장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려 다짐해도 자꾸만 눈에 아른거립니다.
책 속에 등장하는 '라임 포토스'는 생명력이 질긴 식물입니다. '라임 스킨답서스'라고도 불리는 공기정화식물은 줄기를 떼어 내 물에 담궈두기만 해도 자생하는 대단한 녀석이죠. 물을 오래 주지 않아도 시들지 않고 거침없이 자라나기에 '나가세'는 돈이 떨어지면 라임 포토스를 먹으면 어떨까? 공상을 하는 장면이 책 속에 등장합니다. 라임 포토스를 키워본 사람은 알겠지만 화수분처럼 잘라주어도 계속증식하는 생명력이 대단하거든요. 이런 특징에 나가세는 식용 여부도 모른 채 꿈에서까지 각양각생 요리법을 탐구합니다.
라임 포토스를 먹을 수 없다는 사실에 실망도 하고, 심해진 감기 탓에 직장을 쉬어야 했던 나가세는 한층 단단해진 느낌.크루즈 여행을 포기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목적 없는 삶도 나쁘지 않은 것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남들처럼 평범한 인생이 아니더라도, 어떤 것도 하지 않아도 뒤쳐지거나 낡은, 쓸모없는 인생은 없다는 메시지를 들을 수 있었던 소설입니다.
작가 '쓰무라 기쿠코'는 일본에서 140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고, 일과 여성을 소재로 한 소설과 에세이로 문단의 주목을 받는다고 하네요. 저자의 자전적인 경험을 담은 《12월의 창가》도 수록되어 있어 같이 보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