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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피
마에카와 유타카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16년 3월
평점 :
한 여름밤 만약 이 소설을 집어 들었다면 분명 잠자리에 들지 못한 채 밤새워 읽어버릴지도 모릅니다. 일본 소설 《크리피》는 섬뜩함과 기묘함이 스멀스멀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공포를 느낄 수 있는 범죄. 추리 소설인데요. 제15회 일본 미스터리문학대상 신인상을 탄 '마에카와 유타카'의 데뷔작입니다. 우리나라에는 《크리피》로 처음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사실 일본 공포소설 작가들은 워낙 유명한 사람이 많기에 신인 작가의 책을 선뜻 집어 들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올해 부천국제영화제에 초청된 동명의 영화 <크리피> 때문에 미리 읽어보게 되었지요. 영화 <크리피>는 호러 영화의 귀재인 '구로사와 기요시'감독에 의해 일본에서 6월에 개봉했고, 우리나라에서는 8월 개봉 예정입니다. '일가족 연쇄 실종 사건'이라는 부제를 달았는데, '크리피'라는 낯선 제목에 해설을 붙인 좋은 예입니다.
'크리피(CREEPY)'는 공포로 인해 온몸의 털이 곤두설 만큼 오싹한, 섬뜩한 정도로 기이한 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책 속에 등장하는 범죄심리학 교수 '다카쿠라'가 강의하는 수업 내용에도 인용되며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할리우드에서 벌어진'샤론 테이트 사건'을 예로 들며 '찰스 맨슨' 신봉자들이 밤마다 할리우드를 배회하며 목표를 물색한 사례를 빗대기도 합니다. 자신들의 그런 행동을 스스로 '크리피 크롤(creepy crawl)' 즉, 음침한 배회라고 명했는데 기분 나쁘게 주변의 배회하는 벌레 같아 무서워졌습니다.
《크리피》는 공포 소설이자, 추리, 범죄 소설입니다. 성냥갑 같은 아파트에서도 앞집,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른 채 살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범죄자는 그 사실을 이용해 사기부터 살인까지 갖가지 범죄를 벌이는 '악의 천재'입니다. 소설 속에 '위장 살인'이라고 나와있는 수법을 교묘하게 쓰는 인물인데, 누구도 그의 표적이 되면 빠져나갈 재간이 없습니다.
"그 사람은 우리 아빠가 아니에요. 전혀 모르는 사람이에요."
가령 어떤 식이 냐면 남매가 살고 있는 4인 가족을 물색합니다. 그 가정에 어떤 수법일지라도 침범해 아빠를 해하고, 엄마와 남매들에게 겉으로는 죽은 아빠인 것처럼 행동하게끔 하는 겁니다. 가족마다 가지고 있는 약점이나 공포심을 조장하여, 범인은 계속 마인드 컨트롤 가합니다. 결국 겉으로 보기에는 한 가족이나 다름없는 위장가족이 된 채 살아가는 겁니다. 이게 정서상으로 가능한 지가 이 소설의 재미를 이끌어 나갈 원동력 중 하나인데요. 고립된 현대의 생활환경에서는 충분해 보입니다. 이웃에 누가 살고 있는지, 얼굴조차 보지 못한 상태는 위장 살인을 가능하게 돕고 있으니까요. 거기에 사건을 파헤치는 범죄심리학 교수라는 직업은 일면의 사건들의 신빙성을 불어 넣습니다.
단순한 일가족 연쇄 실종 사건뿐만이 아니라 현대사회에서 고질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사회문제가 집약되어 있는데요. 위장 살인, 롤리타 신드롬, 아동학대, 공소시효,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등 요즘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문제들을 건드립니다.
무엇보다 《크리피》는 우리 이웃의 범죄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평범하게 살아가는 나날들이 소름 끼치도록 무섭다는 겁니다. 자식을 살해한 후 토막내 냉장고에 아무렇지도 않게 방치 한 부모, 중학생 딸은 살해 한 후 11개월이나 방치한 사건이 종종 매스컴에 보도되었죠. '세상에나, 이렇게 잔악무도할 수가! 대체 그런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분명 감정이 없을 거야'라며 적성검사를 해봐도 경향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합니다. 결국 우리 이웃의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는 어떤 사람이건 간에 범죄의 표적이, 범죄의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직시하고자 합니다. 같은 동네 사람인지, 누가 이사 오고 가는지도 모른 채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이 범죄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이 《크리피》에서 경고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합니다.
아직도 섬뜩할 정도로 자신의 모습을 바꾸는 '악의 천재 야지마'가 음흉하게 웃고 있을 것 만 같아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여러분의 이웃을 조심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