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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의 도서관 - 황경신의 이야기노트
황경신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12월
평점 :

황경신 작가의 신작 《국경의 도서관》은 낯선 제목으로 눈길이 갑니다. 작가의 머리말에서 국경을 통과할 때 땅을 박차고 날아가는 새 한 마리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고 적고 있는데요. '무거움으로 가벼움을 껴안고 가벼움으로 무거움을 날아오르게 하면 좋겠다'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적었습니다. 어쩌면 국경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는 새가 무척이나 부러웠나 봅니다. 인간의 편의대로 나눠놓은 선을 작가는 자유로운 글을 통해 넘나들고 있는데요. 펜이 가지는 강력함과 자유를 이 책 한 권에 담았습니다.
총 (국경의 도서관을 제외하고) 38의 단편들로 구성된 《국경의 도서관》은 한반도가 나뉘는 국경인 3.8선을 의미심장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비로소 글 속에서 현실과 환상의 모호한 경계선을 넘나들게 됩니다. 그 작업의 최대 수혜자는 바로 독자! 그 의미와 성질을 알아차리는 데는 조금 시간이 걸렸습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그림이나 사진이 많이 들어가 있는 것인데, 불행히도 그림이나 사진이 많으면 많을수록 내가 할 일은 줄어든다. 그녀는 틈틈이 마음 내키는 대로 아무 페이지나 펼치고,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책장을 덮곤 했다. 순서 같은 건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 굳이 나를 꽂아둘 이유가 없는 것이다.
P46
우연히 주인의 책에서 떨어진 책갈피가 장미 씨앗을 만나게 되는 '나는 책갈피다'에서는 주인의 취향에 따라 안정과 불안, 공포, 슬픔과 건조함을 느꼈을 책갈피에게 생명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마치 책갈피가 나에게 말을 걸고 있는 듯 《국경의 도서관》에서는 모든 단어들이 춤을 춥니다. 가끔 책 속에서 힘들어하고 있을지도 모를 책갈피를 바꿔주어야겠어요. 더욱 다양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게 말이죠.
독특하고 기묘한 이야기가 가득한데요. 헤르만 헤세에게 초대받은 여자, 단단하거나 부드러운 마음을 골라서 살 수 있는 마음을 파는 가게, 여행을 대신해 주는 사람, 악마와 천사가 번갈아 찾아온 사람, 매년 11월 11일 밤 열한 시에 낭독회를 여는 셰익스피어 등 혼란스럽고 환상적인 동화 같기도 한 작품집은 신선함과 충격을 느끼게 합니다. 너무 짧게 끝난 이야기는 긴 여운을 남기는데, 뒷이야기를 더 알고 싶다는 궁금증까지 더해지더라고요. 중편이나 장편으로 만들었으면 이토록 오래도록 글을 곱씹고, 기억할 수 없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짧지만 강렬함을 선사하는 날카로운 키스처럼 아련한 맛, 황경선 작가 특유의 글맛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