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중 『고민하는 힘』 중 2 ~ 6 장
2. 돈이 세계의 전부인가?
나쓰메 소세키의 경우는 많은 작품에서 돈을 주요한 키워드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다른 작가들과 다른 점입니다.
앞 장에서 다룬 『마음』도 그러해서 돈이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근원처럼 묘사되어 있습니다. (47)
『그 후』에서는 다이스케가 자기 진퇴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되는 것이 돈이며, 『명암』 등에서도 생활비 문제가 부부 관계의 애로사항으로 묘사됩니다.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을 읽고 있으면 ˝결국 모든 것이 돈인가…˝라는 기분에 사로잡히게 될 정도입니다. (47)
그리고 등장인물 가운데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잔뜩 악취를 풍기는 속물 자산가`가 나옵니다. 이는 나쓰메 소세키 문학의 특징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 등장하는 가네다는 매우 희화화된 캐릭터지만 『그 후』에 나오는 다이스케의 아버지나 『행인』의 이치로의 아버지 등 은 사상적으로 용납하기 힘든 인종처럼 묘사되어 있습니다. 부자가 훌륭한 인물로 묘사된 것이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48)
3. 제대로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쓰메 소세키가 기묘한 꿈을 열 편 엮어서 쓴 『몽십야』에 이런 생각이 상징적으로 나타나 있는 곳이 있습니다. 제 7 화에 나오는 배를 타고 가는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70)
그 남자는 왜 큰 배의 승객이 되어 배를 타고 있는지,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모릅니다. 배는 배를 추월해서 지나가 앞쪽에서 지고 있는 태양의 뒤를 쫓아가겠다는 듯이 앞으로 나아갈 뿐입니다. 그래서 선장에게 행선지를 물어보았지만 대답을 해주지 않습니다. 배를 타고 있는 것은 대부분 외국인입니다. (70)
이런 와중에 우리는 어떤 지성을 믿거나 선택하면 좋을까요?
하나는 『몽십야』의 배를 탄 남자처럼 우리는 이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무엇을 좋아해야 하는가?˝와 같은 것들이 조화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수용하고 탐욕스럽게 지의 최첨단으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며 `알고 있잖아?!`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는 결연한 각오가 필요할 것입니다. (74)
4. 청춘은 아름다운가?
내 청춘을 생각할 때 늘 그립게 떠오르는 것이 나쓰메 소세키의 『산시로』입니다. (82)
2 장에서도 말했지만 그것은 나쓰메 소세키의 `말류 의식`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산시로』에는 그 후의 주인공 다이스케처럼 허무하게 시대를 비평하는 인물은 없지만, 많든 적든 그와 비슷한 생각을 품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83)
『산시로』 속에 매우 신경 쓰이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것은 산시로가 열차에 투신자살해 몸이 잘린 젊은 여성의 시체를 보는 장면입니다. 이야기의 흐름과 관계가 없이 조금은 갑자기 등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이 장면은 없어도 좋을 텐데`라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나쓰메 소세키가 ˝청춘이란 밝은 것만이 아니고 한 꺼풀 벗기면 죽음과 맞닿아 있는 잔혹한 것이다˝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86)
5. 믿는 사람은 구원 받을 수 있을까?
막스 베버는 자기를 가리켜 `종교적인 음치`라고 자조하듯이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신이 없는 시대에 믿음을 지닌 신자처럼 자기 지성을 믿고 절대로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104)
나쓰메 소세키 또한 그렇습니다. 예를 들면 『행인』이 그러한데, 주인공인 이치로는 과도한 자의식 때문에 아내를 믿지 못하고, 가족이나 친구들에게도 마음을 터놓지 못하고 산전수전을 다 겪습니다. 그렇지만, 그 어떤 것에도 그 괴로움을 기대지 못하고 고민만 깊어갑니다. 그 모습은 나쓰메 소세키를 떠올리게 합니다. (104)
또한 『문』은 ˝부처의 가르침을 믿고 구원을 받고 싶다˝고 갈망하며 종교에 귀의했지만 결국 믿음을 얻지 못하고 속세로 돌아오는 지식인의 이야기입니다. (105)
6.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가?
잠깐 이야기를 돌려서, 이와 반대로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에 일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의 예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 봅시다. 나쓰메 소세키의 『그 후』에 나오는 다이스케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110)
이 역시 독단적인 말이지만, 『그 후』는 나쓰메 소세키가 깊은 의도를 갖고 집필한 일종의 복수극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112)
『그 후』라는 제목과 달리 다이스케와 미치요가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나오지 않지만, 아마도 경제적 곤란에 시달리는 현실적인 생활자가 되었겠지요. (112)
나는 나쓰메 소세키가 『그 후』의 다이스케와 비슷한 경험, 또는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고 『그 후』는 그것을 모델로 삼아 쓴 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113)
그래서 나는 `사람은 왜 일을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타자로부터 배려` 그리고 `타자에 대한 배려`라고 말하겠습니다. 그것이 없다면 일하는 의미가 있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다시 『그 후』의 다이스케를 생각해 봅시다. 이전의 다이스케는 완전히 `자기 세계` 속에서 살았습니다. 즉 자기 완결이라는 원 안에서 살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미치요를 사랑하게 되면서 갑자기 원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현실 세계 속의 새로운 원과 연결하려고 할 때 아버지와 형이라는 가족으로부터 인연이 끊어집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구조입니다. (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