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상상 한 번 해보자. 혈기왕성한 스무 여덟 살의 청년이 있다. 일곱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지만 첫째가 태어나자마자 죽는 바람에 맏이가 되었다. 음주와 폭언을 일삼는 아버지를 어릴 때부터 멀리하였고, 어머니를 잃은 후에 가족을 부양하면서 간신히 자립하는 데 성공한 지 얼마 되지 않는다. 청년한테 어느 날 갑자기 귀가 아프고 시간이 지나면서 소리가 들렸다가 말았다가 하는 증상이 생긴다면, 그리고 호전되지 않는다면… 그래도 서너 번까지는 참을 만큼 참았다가 같은 증상이 없어지지 않고 지속되면, 의사를 찾아가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귓병이 낫기 바라면서 의사의 진단과 처방에 따르지만 차도가 없다면, 음악 활동을 직업으로 삼는 경우에는 더더욱 절망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요즘은 첨단 의료 기기 덕분에 병원에서 정밀검사가 가능해졌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약 200 년 전이라면 분명히 사정이 다를 것이다. 그 당시 의술은 형편 없었다. 그 청년은 바로 베토벤이다.

베토벤은 1801 년에 친구들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의 증상을 말하고 그 때문에 음악 활동과 사회 생활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알렸다. 베토벤은 의사의 조언에 따라 요양을 위해서 1802 년 4 월부터 10 월까지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 하일리겐슈타트에서 머물렀다. 그러나 전혀 차도를 보이지 않는 귓병이 나을 수 없음을 깨닫고, 죽음을 예감하게 되었다.

베토벤은 1802 년 10 월에 두 동생 앞으로 유서를 썼다. 바로 하일리겐슈타트 유서이다. 그러나 유서가 동생에게 전해지지는 않았다. 베토벤이 유서를 다른 문서 속에 숨겨두어서 사후에 발견되었다. 비록 베토벤이 자살을 기도하지 않았지만, 죽음을 대비하고 있음을 유서에 기록해 두었다.

당시 베토벤이 작곡한 작품들은 이런 암울한 분위기와는 딴판이다. 그 중에서, 초기 작품에 속하는 교향곡 제 2 번에 젊은 시절 연정이 반영되었음을 이미 말했었다. 그리고, 하일리겐슈타트에서 묵었던 집 근처 산책로를 거닐면서 구상하여 6 년 뒤에 완성한 작품이 ˝전원˝ 교향곡이다.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는 베토벤 생애에서 중요한 사건이 된다. 귓병이 악화되면서 청력이 점차 약화 일로에 있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베토벤은 창작 활동에 매진한다. 죽음을 직면하였기 때문인지 몰라도 유서 이후 베토벤은 불치병과 싸우면서 인류의 이상을 추구하는 예술가로서 삶을 이어나가게 된다. 그리고 불굴의 의지가 아니면 불가능해 보이는 업적들을 이루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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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클래식 음악 감상, 베토벤 교향곡 제 6 번 "전원" - 카라얀
    from 五車書 2016-08-18 13:23 
    https://youtu.be/fNXCZXrlX7I 베토벤 교향곡 제 6 번 F 장조, Op. 68 "전원"I. 시골에 도착했을 때 느끼는 즐거운 감정 - Allegro ma non troppo II. 시냇가의 풍경 - Andante molto mossoIII. 시골 사람들의 즐거운 모임 - Allegro IV. 폭풍우 - Allegro V. 목동의 노래, 폭풍이 지나간 뒤의 기쁨과 감사 - Allegretto • 연주자필하모니아 관현악단 (Ph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