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번 버스의 기적>, 제목과 표지만 봐서는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기적’이라고 하니까 실낱 같은 희망을 부여잡고 표지를 넘겨 보았다.
첫 장면은 1962년 4월. 클래펌 커먼 역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줄에 서 있는 한 여자가 버스에 타고 있는 남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여자는 88번 버스에 탔고 남자의 시야에서 잠시 사라졌다가 남자의 오른쪽에 자리를 잡는다. 여자가 눈을 감고 있은 채 꼼짝 않고 있고 남자는 여자 몰래 흘끔흘끔 훔쳐본다. 그러나 남자의 행동은 이내 들키고 만다. 그러면서 둘의 대화가 시작된다.
배우가 되기를 소원하지만 아버지의 바람대로 살고 있는 남자. 화가를 평생 직업으로 여기는 여자는 화가를 반대하는 집을 뛰쳐나온 미대생. 남자는 친구가 추천한 책을 손에 들었으나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읽고 있는 책인데도 저자 이름을 제대로 대지 못한다. (나도 작가의 이름을 모르고 있음을 깨닫고 확인해 보았다. )
여자는 버스 안에서 즉석 스케치를 즐긴다. 처음 만난 남자라고 예외일 수 없다. 남자는 자신을 그려준 데 보답하고자 읽고 있는 책을 즉석에서 선물한다. 저자의 이름이 낯선 책에 흥미를 잃었다면서. 그리고 주말에 내셔널 갤러리에서 데이트 하자고 용기를 낸다.
“”“
버스가 화이트홀에 닿자 트래펄가 광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진심으로 미술을 배워보고 싶으면 시작하기 제일 좋은 곳이 바로 여기예요.˝
버스가 넬슨 기념탑 앞에서 좌회전할 때 여자가 말했다.
˝트래펄가 광장요?˝
˝아니, 내셔널 갤러리요.˝
”“”
6월부터 내셔널 갤러리 명화전이 한국에서 열리고 있다. 나도 가보고 싶지만 때를 맞추지 못했다. 시간을 내기도 쉽지 않은데 예약을 해야만 입장이 가능하다고 한다. 주말 시간대의 입장권이 매주 매진이었다. 입장권을 구입하기가 어려우니 초반에 생겼던 관심이 점차 시들해지다가 이래저래 밀리고 어느덧 잊고 말았다.
지난 주말에 아내는 내셔널 갤러리 명화전에 갔다. 남쪽 지역에서 생활하는 친구들과 몇년만의 모임을 가지면서 한 친구가 문화생활이 고프다는 말에 미술관을 구경하기로 일정을 잡았다며 마침 내셔널 갤러리 명화전이어서 너무 좋다고 했었다. 지난 달에도 표를 구하기 힘들었다고. 이번 주말에도 매진이라고. 그런데 한번 본 걸 또 볼 필요는 없단다. 안타깝다, 그래도 웃음을 지었다. 내셔널 갤러리 명화전을 보고 싶지만 아내와 동행하기가 더 어려워진 것 같다. 그렇지, 이게 현실이지!
평범한 일상이 한순간 특별한 날이 되는 마법처럼 도르르… 다시 소설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