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은 사고의 넓이와 깊이를 더하는 데 가장 중요한 학문을 철학과 역사로 여겼다. 조선에서 철학이라면 경학 곧 성리학이었다. 세종은 유교의 기본이자 핵심 교재인 4서(논어, 맹자, 중용, 대학)와 5경(시경, 서경, 역경, 춘추, 예기)에 달통했다. 당대의 석학으로 이름 높은 변계량, 이내와 같은 대학자들조차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세종의 학문은 높은 경지에 올랐다. 특히 주역에 해박한 것은 천문과 지리에도 전문가의 조예를 더하게 했다.

일찍이 성리학의 대가가 되었지만 세종은 오히려 성리학 공부에만 치우치는 당대 선비들의 학문 풍토에 불만을 제기했다. 구체적인 현실과 동떨어진 공부는 관념에 치우쳐서 공허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성리학과 함께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 23년(1441) 6월 28일, 임금은 정인지를 불러 일렀다.

"무릇 정치를 하려면 반드시 전대 치란의 자취를 보아야 하고, 그 자취를 보려면 오직 사적을 상고해야 한다."

세종은 이처럼 역사를 중시했다. 그래서 경연에서도 무엇보다 역사 공부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경연의 첫 교재로 《대학연의》를 선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학》은 순전히 성리학을 궁구하는 철학서지만, 송의 유학자 진덕수가 편찬한 《대학연의》는 거기에 역사 사실을 풍부하게 곁들여 역사에 비중을 둔 역사철학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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