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기는 트라우마 치료 전문가로서, 의학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동료 의사도 기겁할 만큼 으스러지고 뒤틀어지고 부러진 육체를 날마다 다뤘다. 갑작스럽고 충격적이고 잔인한 죽음이 그의 ‘밥줄’이었다. 헬기는 오래전부터 테러리스트의 행동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고 내게 말했다. 런던에서 테러 사건이 빈발했기 때문이 아니다. 합당한 이유도, 경고도 없이 갈가리 찢긴 인간의 비극적 모습을 날마다 접했기 때문이다.

"하필이면 그때 그 장소에 있다가 재수 없게 사고당한 사람들을 치료하는 게 내 일이죠." 헬기가 말했다. "그러다 보니 삶이란 게 얼마나 변덕스럽고 불안정한지 절감하죠. 한번은, 애인의 칼에 찔려 거의 죽을 뻔한 젊은 여자 환자에게 간호사가 그러더군요. 그런 일이 벌어진 데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내가 그랬죠. ‘아니, 그냥 재수가 더럽게 없었던 거야.’ 그 말이 우스웠는지, 환자가 깔깔 웃더군요. 난 진심으로 한 말이었어요. 우리는 언제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 있는 어이없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그 안에도 아름다움과 선함이 가득하죠."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안심하면서 21세기의 물질적 풍요를 양껏 누렸다. 그래서 엄마의 말이 쉽게 납득되지 않았다. (…)

하지만 1세기쯤 전 영국에서는 가정 내 사망이 아주 흔한 일이었다. 식구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고, 그걸 지극히 당연한 일로 여겼다. 오늘날 우리에게 두렵다 못해 불경하게까지 여겨지는 일이 당시엔 예삿일로 취급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