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 없이 거래 없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태도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이 "전투 없이 거래 없다"라는 캐치프레이즈입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뿐 아니라 영국ㆍ프랑스ㆍ벨기에ㆍ독일ㆍ러시아 같은 유럽 문명권 국가들이 중세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세계를 상대로 해온 일들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자기들 이익을 얻기 위해서라면 무역이든 전쟁이든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 한다는 정신. 청나라 사람들에게 아편을 판매하려던 것을 청나라 관리들이 저지하자 영국인들이 1840~1842년에 일으킨 아편전쟁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덴하흐에서 보고 싶었던 두 번째 장소는 마우리츠하위스Mauritshuis 미술관입니다.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의 유명한 그림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지요. 처음에는 저도 마우리츠하위스를 이런 유명한 그림이 적잖이 소장되어 있는 미술관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브라질 총독을 역임한 요한 마우리츠Johan Maurits의 저택이던 이 미술관은 생활공간답게 작은 방이 많았고, 그 방 하나하나마다 렘브란트Rembrandt며 브뤼헐Brueghel 같은 네덜란드 유명 화가들의 그림이 걸려 있어서 감탄스러웠습니다. 이런 유명 화가의 그림 앞에는 당연히 사람들이 빼곡히 서 있었고요.

그러다가 어느 방으로 옮겨 갔는데, 신기하게도 그 방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른 방들과 달리 조명도 어두웠고, 그림을 담은 액자들도 전체적으로 검은빛으로 통일된 느낌이었습니다. 일종의 전율감이 느껴졌죠. 방 한쪽에는 붉은 전신상 하나가 세워져 있었는데, 바로 이 건물의 주인인 요한 마우리츠의 전신상이었습니다. 이 방에는 마우리츠가 인생 중반기인 1630년부터 1654년 사이에 총독으로 근무했던 네덜란드 서인도회사령 브라질의 풍경을 담은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1621년에 설립된 네덜란드 서인도회사는 오늘날의 브라질 동북부를 지배했습니다.

마우리츠가 살아 있을 당시에도 네덜란드 사람들은 식민지의 부富로 쌓아올린 이 건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들을 했습니다.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뒤 얼마 안 되어 ‘제국’을 건설한 자기 나라의 위상을 상징하는 건물이라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을 테고, 식민지 사람들을 착취해서 쌓은 부로 이런 으리으리한 건물을 짓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왈가왈부를 거치며 생활공간으로 쓰이다가 오늘날 미술관으로 바뀐 마우리츠하위스의 탄생 배경과 관련해, 미술관 공식 팸플릿이나 건물 안내판 어디에서도 식민지 통치의 역사를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곳을 찾는 네덜란드인이나 대부분의 관광객들도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비롯해 유명 화가의 그림들에만 주목할 뿐, 이 건물이 상징하는 유럽인의 세계 지배의 역사에는 무관심합니다.

마우리츠의 전신상과 함께 프란스 포스트의 남아메리카 그림이 걸려 있는 이 방에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마우리츠하위스에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만 보고 이 방의 숨겨진 뜻을 헤아리지 않는 것은 이 미술관을 절반만 보는 것이라고요. 마찬가지로 유럽 문명의 밝은 부분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똑같은 유럽인들이 무역과 전쟁이라는 두 개의 칼을 휘두르며 세계 전체를 식민지로 만들려 한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똑똑히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제가 유럽 문명의 폭력성과 이중성을 비판하기 위해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무역과 전쟁은 하나’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를 도덕적으로 부끄러워하거나 반성할 생각이 전혀 없는 유럽 세력이 오늘날의 글로벌 질서를 만들었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제가 덴하흐에서 본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세계〉 전시회, 그리고 네덜란드 서인도회사 관계자인 마우리츠가 세운 마우리츠하위스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뒤이어 식민지 쟁탈전에 뛰어든 17세기 네덜란드의 본질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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