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가 시작됨과 거의 동시에 읽기 시작한 <증오의 세기> 벽돌책을 차근차근 읽어서 두꺼운 부담감을 조금씩 줄여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벽돌책으로 머리를 두드려 맞는 느낌을 떨쳐내고 기분 전환을 위해 잠시 펼쳤던 <클래식의 발견>에서 언급된 <서·동 시집>으로 촉발된 페이퍼를 마치고서 벽돌책으로 서둘러 돌아가야 하거늘 연휴 마지막 날임에도 구물거리면서 나한테 있는, 안문영 외 16인이 우리말로 옮긴 <서·동 시집>을 펼쳐 놓고 있다. [주1]

다니엘 바렌보임이 상임 지휘자를 맡은 웨스트-이스트 디반 오케스트라 이름이 괴테의 <서·동 시집>을 따라 명명하였다고 해서 시집의 실체를 알고 싶어 구입한 책이었다. 나의 서가 한켠에 고이 모셔놓고 있을 뿐 끝까지 읽지는 못하였다. 가끔씩 웨스트-이스트 디반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을 기회가 생기면 시집을 펼쳐서 시 한 편 읽는 것이 만족스럽다.

괴테는 60대에 들어 방문한 고향에서 그를 환대해준 친지의 약혼녀를 연모하는 마음을 표현한 시를 백여 편 지었고, 괴테가 생전에 <서·동 시집>으로 출판하였다. 웨스트-이스트 디반 오케스트라 아니었다면 나는 그 존재를 미처 몰랐을 수도 있는 시집이지만, 내가 소장한 시집을 펼쳐서 수록된 시를 읊으면서 사랑은 무엇이든 초월하는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오늘은 웨스트-이스트 디반 오케스트라 연주 대신에 괴테의 시 한 편 골라서 읽는다.

고백

감추기 어려운 것은 무엇일까? 불이다!
낮에는 연기로 들통 나고
밤이면 불꽃을 드러내는 그것은 괴물이다.
또 감추기 어려운 것은
사랑. 가슴속에 살포시 품고 있어도
살며시 두 눈으로 나오는.
가장 감추기 힘든 것은 한 편의 시.
시를 말 아래 놓는 사람은 없으니.
새로운 시를 읊은 시인은
그 시에 흠뻑 젖어들어
멋들어진 글씨로 적어놓고
세상 사람 다 좋아하길 바란다.
시가 우리를 괴롭히든, 위로하든
누구에게나 흥겹게 큰 소리로 읽어준다.



주1. 옮긴이 명단에서 전영애 이름이 보인다. 전영애 교수가 새롭게 번역한 <서·동 시집>이 지난 7월에 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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