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사실은 베토벤의 강함과 자신의 처지에 대한 깊은 고뇌와 그것보다 더 깊고 강한 삶을 향한 욕구가 가득 찬 곡은 모두 다단조C minor라는 것이다. 1798년에서 1799년 사이에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1808년에 작곡한 교향곡 5번 <운명>이 베토벤의 대표적인 다단조 작품이다. 내가 생각하는 ‘다단조의 비밀‘은 이 세 작품이 작곡된 연도에 있다. 작곡가에게 제일 중요한 청력문제를 깊게 느끼기 시작한 시절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서른 즈음이라는, 작곡가로서는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다이내믹하면서도 잘 짜인 설계도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은 빈 고전주의를 넘어서 비극적 강렬함을 담은 심리적 표현을 최초로 시도한 작품이다. 그후 작곡한 바이올린 소나타 7번에 이어 교향곡 5번 <운명>까지 모두 그 심리적 표현을 계속 간직하여 다른 것 같으면서도 비슷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는 베토벤이 가장 좋아하는 어둡고 비장한 다단조를 사용해서 그의 생각을 더욱 정확하고 간결하며 깨끗하게 써내려 간 것 같다.
이 세 작품 가운데 바이올린 소나타와 피아노 소나타 2악장은 정말 너무 아름다워 슬프다고 할 수 있는 경지다. 교향곡의 2악장이 주는 장대함과 광활함은 없지만, 어느 것이 더 좋다고 말할 수 없을 만큼 모두 좋기 때문에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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