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작곡가들의 숨은 얼굴
이경미 지음 / 조선앤북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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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작곡가들의 숨은 얼굴.

책소개를 들여다보다가 ‘책속에서’ 밑줄 친 부분 중 사실을 곡해할 수 있는 내용이 있어서 자세한 설명을 덧붙이고자 한다.

바흐는 일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식 한 명도 먹여 살기 힘든 세상에 스무 명을 감당해야 했으니까요. (P. 22)

최초의 바흐 전기를 지은 요한 니콜라우스 포르켈이 <바흐의 생애와 예술 그리고 작품>에서 바흐의 생애를 정리한 끝에 덧붙인 내용은 이렇다.

내가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그는 두 번 결혼했고, 첫 번째 결혼으로 7명, 두 번째 결혼으로 13명, 즉 11명의 아들과 9명의 딸이 태어났다는 것이다. 아들들 모두가 음악에 뛰어난 소질을 갖고 있었지만, 그 소질은 윗 형제 몇 사람에게서만 완전한 발달을 보였다. (11명의 아들들 가운데 5명은 어려서 죽었고, 막내 아들 요한 크리스티안을 포함하여 4명은 유명한 음악가가 되었다. 딸은 모두 9명이었는데 5명은 일찍 죽었다.)

구체적인 사실로 재구성하면 이렇다. 바흐는 1707년 10월에 첫째 부인과 결혼했지만 1720년 7월에 사별했다. (쾨텐 영주를 모시는 여행에서 돌아와서 아내의 죽음을 전해듣는 남편의 심정이 어떠하였을까.) 둘째 부인은 안나 마크달레나로 1721년 12월에 결혼했다. 바흐가 재혼하던 당시 살아남은 자식은 넷이었다. 둘째 부인한테서 태어난 자식이 13명이지만 7명이 어려서 죽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에서 바흐 아버지가 갓난아기 바흐를 품에 안고서 어린 나이에 죽은 바흐의 형을 땅에 묻어야 했던 상황이 당시 생활상이었음을 설명하면서 당시 소아 사망률이 50%에 이르던 시절이었다고 언급한다. 한 세대가 지나기는 했지만 바흐의 자식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바흐의 두 부인이 낳은 자식을 모두 합치면 스무 명이 맞지만, 안타깝게도 생존한 자식은 열 명이었다. 그리고, 그 중 4명은 유명한 음악가가 되었다. 바흐가 가문의 전성기를 열었고 아들들이 아버지를 이어서 활짝 꽃피웠다.

바흐는 평생 독일 땅을 벗어난 적이 없다. 바흐만이 아니라 바흐 가문의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살았다고 전한다. 바흐는 66세에 눈을 감을 때까지 교회에 봉직하여 소명을 다하였다. 이러한 삶의 태도를 생계유지만으로 설명하는 것이 과연 타당할까. 자식 한 명도 먹여 살리기 힘든 세상이, 그때는 생사가 걸린 생존의 문제였다. 당시의 시대상을 지금의 잣대로 쉽게 재단할 수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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