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판타지아 C 장조, BWV 570


1698년부터 1704년 사이에 작곡한 것으로 추정. (위키피디아 참고)


1698년부터 1704년까지 시기는 바흐의 생애에서 격변이 시작되어 진행되는 과정이었다. 바흐 전기 등 관련 자료를 참고하여 정리하면 이러하다. (<바흐의 생애와 예술 그리고 작품>,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 <바흐 평전> 등을 주로 참고하였다.)


바흐가 9세가 되는 해(1694년)에 어머니를 여의었고, 이듬해에 아버지마저 돌아가시면서 맏형 크리스토프와 함께 살게 되었다. 고향인 아이제나흐를 떠나서 오어드루프로 이사할 수 밖에 없었다. 맏형이 오어드루프에서 오르가니스트로 일하였기 때문이다. 바흐는 맏형한테서 처음으로 클라비어(건반악기)를 배웠다. 형이 내주는 과제를 금방 해치우게 되자 형이 감춰놓은 고난도 연주곡의 악보를 밤중에 몰래 달빛 아래서 필사하다가 들키는 일이 있었을 정도로 향학열이 대단하였다.


1700년에 바흐는 15세가 되는데 친구 에르크만과 함께 뤼네부르크에 있는 성 미하엘 학교 합창단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유학길에 올랐다. 미하엘 교회에 있는 오르간이 바흐의 고향이 있는 튀링겐을 떠나 유학을 결심한 목적이 되기도 하였다. 바흐가 뤼네부르크에 있을 때 시내에 있는 요한 교회에 게오르크 뵘이 오르가니스트였는데 동향 출신이었다. 뵘은 바흐를 잘 대해 주었다. 또한 이 시절에 당대 유명했던 오르가니스트 요한 아담 라인켄의 연주를 듣기 위해 함부르크를 수차례 방문하였고, 인근 지방을 다니면서 음악적 경험을 넓히는 기회를 가졌다. 학교 성적이 우수하였지만 전문 음악인이 되겠다고 결심한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였다. 1702년에 학교를 졸업하였고, (다시 오어드루프에서 맏형과 같이 살았을 것이고,) 1703 년에 바이마르 궁정 악사가 되었다가 1704년에 아른슈타트 신교회(Neue Kirche) 소속 오르가니스트가 되었다. 바흐는 20세가 되기 전에 오르가니스트로서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고 한다. 물론 건반악기 연주에도 아주 능숙하였다.


요약하면, 1698년부터 1704년까지 기간은 바흐가 부모를 잃고서 고향을 떠났고,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오르가니스트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였던 격변기에 해당한다. 판타지아 C 장조는 이 시기에 작곡한 초기 작품 중 하나이다.


사이먼 프레스턴의 오르간 연주를 감상한다.


연주 시간: 약 2 분 10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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