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나는 노력하면 좀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근거는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믿어야 했다. 믿기 위해서라도 나 스스로 근거를 마련해야 했다. 나에게 없는 것을 인정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내 마음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마음의 법칙이란 것이 있다. 바뀌려면 죽기 살기로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가장 좋은 것, 믿음직한 것에서부터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다.

* 나의 관찰에 따르면 인간은 다시 시작하고 싶어서 발버둥치는 순간을 반드시 맞는다. 삶을 사랑한다는 말, 다시 시작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때 이후로 한 번도 변하지 않은 믿음이다. 그 뒤로도 무슨 일을 겪든 다시 시작할 마음만은 포기하지 않았다.

빈 공간에 단어를 써놓는 것의 의미는 생각보다 크다. ‘친구’라고 쓰면 나는 그 단어 속으로 들어가버리고 싶다. ‘무지개’라고 쓰면 그 단어를 보고 싶다. 그런 단어들은 아주 많다. 흑조, 4월의 눈, 호랑가시나무, 러시아식 꿀 커피…. 나는 그 단어들을 여행의 단어들이라고 불렀다. 내 몸이 아니라 내 마음을 움직이는 단어들이었다. (중략) 내 메모장의 여백이 현실보다 더 중요한 현실 같았다. 먼 훗날 나는 보르헤스가 이것을 아주 멋진 문장으로 표현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단어를 읽지만 그 단어를 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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