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단발머리 > 가을날

가을날, 라이너 마리아 릴케…하면서 학창시절 애송했던 시. 기도문 같은 시구 중에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를 가장 좋아한다. 추석이 불과 며칠 전이었고, 가을이 가까이 와있음을 느낄 수 있는 즈음인 오늘, 단발머리 님이 올린 릴케의 가을날을 읊조리다가 문득 깨닫는다. 나이가 들면서 여유가 생기기는 커녕 애지중지했던 시가 있었다는 것조차 잊을 만큼 정신이 딴 데 팔려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지내오는 동안 나의 감성은 세월의 파도를 온몸으로 부딪히면서 바닷가 바윗돌처럼 굳어진 것 같다. 그래서 심신이 시리고 비걱거리나 보다… 고단하다는 말로 자신을 위로하기만 했지, 원래 모양을 잃어버린 지우개마냥 조금씩 닳아버린 줄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후회를 남기지 않겠다. 우연한 만남이 때로는 기쁨이 되듯이, 잊혀졌던 한때를 돌이켜 생각나게 해준 가을날에 감사한다. 올해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이 있었기에, 가을이 더욱 반가웁고, 릴케의 시는 전에 없이 뭉클거리는 감동을 남기는구나! 가을날이 가시기 전에, 혼자인 사람처럼 오래도록 이리저리 불안스레 헤매지 않도록 감사의 기도를 올리자꾸나.


.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9-28 09:0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