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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 수필
최민자 지음 / 연암서가 / 201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열정도 도전의식도 없이, 젊음의 푸르른 모퉁이를 청처짐하게 돌아 나온 다음에야 나는 비로소 이 불가해한 생이 조금씩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일상이라는 평면 안에 얼마나 무수한 함정과 돌기들이 시치미를 떼고 숨어 있는지, 어둡고 밋밋한 생의 액정에 얼마나 다양한 화소들이 깜박이고 두근대며 살고 있는지, 뒤늦은 호기심이 생겨나기도 하였다. 구석에 숨고 뒷걸음질만 치던 나에게도 한줌의 광기와 시답잖은 열정이 숨어 있었음을 눈치 챈 것도 내 생의 시곗바늘이 삶의 영마루를 한참이나 지나쳐 온 다음의 일이었다.(?와 ! 사이, 28쪽)
이 수필집속에서 오랫만에 많은 사유을 하게 만들어준 글이다. ‘인생은 무엇인가?’ ‘왜 사는가?’라는 근원적 거대 담론처럼 느껴진다.
떨림도 울림도 흔들림도 없는 삶. 육신과 영혼이 동시에 늙지 않는 것은 행인가 불행인가? 사람들은 스스로 만들어낸 사고의 틀에 자신을 맞추려는 경향이 있다. 그 틀은 살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논리적이거나 합리적인 것이 결코 아니다. 그저 습관화된 것일 뿐이다. 그런 틀안에 자신을 가준다는 것은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예전의 사진이나 일기장을 보면 까맣게 잊었던 일들도 금방 그때의 기억과 느낌이 되살아 난다. 마치 책상속 서랍을 빼서 뒤집듯이 순식간에 기억이라는 것이 쏟아져 나오듯 모든 책은 사유라는 기쁨을 준다. 내 인생의 가장 힘든 시절을 함께 버텨 준 작가들, 그 작가가 그 힘든 기억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길 바라면서도, 한편으론 계속 그 길에 머물러주길, 그래서 언제든 내 옛병이 다시 도질 때마다 찾아갈 굳건한 버팀목으로 남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두서없이 뒤섞여있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가두어 놓은 사람도 어떤 때는 '자유'를 원할 때가 있다. 그러니 언젠가 하루는 생전 가보지 않은 장소에 가보고 그 속에 사는 다양한 인간들을 만나보고 자기 속에 가둔 자신을 꺼낼 필요가 있다.
나를 버리고 나를 세우는 길 사람들에게 이미 친숙한 일상적인 삶의 모습이 그 속에 담겨 있기에 수필이라는 장르는 친숙하게 다가온다. 그렇더라도 도전해 보고 싶은 분야가 이 수필분야다. 언젠가 내 이름으로 글쓰기를 한다면 그 분야는 분명 수필이라는 장르에 포함되는 글쓰기일 것이다. 수필이라는 글쓰기는 솔직하게 저자의 내면을 그대로 드러낼 수도 있고 어떠한 형식에도 구애받지 않아도 된다는 글쓰기의 열린 공간처럼 느껴져서 좋다. 하지만 만만해 보이는 수필이라는 글쓰기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님을 글쓰기를 시도해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알고 있다. 그렇더라도 도전해 보고 싶은 분야가 이 수필분야다. 언젠가 내 이름으로 글쓰기를 한다면 그 분야는 분명 수필이라는 장르에 포함되는 글쓰기일 것이다.
'수필은 모든 글쓰기의 완성이다'라는 말이 있다. 글 속에 무엇을 담고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를 알게 하는 의미로 다가온다. 비록 분량이 많지도 않은 작은 글들이 모인 책이지만 작가의 자연과 인생, 사물의 이치에 대한 깊은 통찰에서 느껴지는 생각이 생각 속으로 깊이 파고들던가 생각이 생각들을 확장시키며 증폭의 과정이 있었던 책으로 기억될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