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불평등 기원론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27
장 자크 루소 지음, 주경복 옮김 / 책세상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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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의 아버지로 불리는 장자크 루소.. 사실 이 책 내용의 전반적 해설이나 루소 사상의 핵심은 [들어가는 말]에  다 나와 있는 것 같다.

 

"필요한 양식을 자연에서 쉽게 얻을 수 있었던 인간은 각자 원하는 곳으로 가서 자유롭게 먹고 즐기고 생각하며 행복하게 살았다. 누구를 구속하지도 않고 누구로부터 구속받지도 않았으며,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았다. 그런데 사람의 수가 늘어나고, 자연 재해가 닥치고, 사람이 다른 동물들과 먹이 다툼을 벌이는 일들이 생기면서 자연과 인간 개개인의 독대를 통한 직접적 관계가 깨지고 점차 인간 사이의 관계가 밀접해지면서 공동체가 형성되어 갔다.

 

공동체 속에서 각 인간은 남을 의식하게 되었다. 그 존재가 상대화 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부터 좋고 나쁨이 생겨나고 선악이 나타나며 불평등의 씨앗이 뿌려졌다. 힘이 있거나 재주가 있거나 말 잘하는 사람이 돋보이면서 다른 사람들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기에게 유리한 조건을 차지하게 되었고, 드디어 사유물을 남보다 많이 지니게 되었다. 물건이나 땅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나누어 차지하면서 남보다 더 많은 힘을 갖게 되었다. 약삭빠르고 힘있는 자는 점점 더 많은 것을 소유하게 되고 약한자는 점점 더 상대적인 박탈을 겪게 되었다. 개인의 가치가 존재에서 소유의 개념으로 바뀌게 되었다. 생산수단의 사유화가 인간을 소외시키고, 인간을 소유에 종속시켰다. 루소가 볼때 사유재산제도야말로 인간 불평등의 뿌리이며 불행의 근원이다."(8쪽)

 

루소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인류에게 두 가지 불평등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자연적 또는 신체적  불평등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에 의해 정해지는 것으로, 나이. 건강. 체력의 차이와 정신이나 영혼의 자질 차이로 성립된다. 또 다른 불평등은 일종의 약속에 좌우되고, 사람들의 동의로 정해지거나 적어도 용납되는 것으로 도덕적 또는 정치적 불평등이고 할 수 있다."(45쪽) 

 

그렇다고, 루소는 인간 불평등의 뿌리와 불행의 근원에  대해서는 실증적 검증을 하지 못한다.(아마 가능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앞으로는 실증적 검증이 가능할까?) "그것은 인간의 기원과는 이미 떨어져 있는 영역으로 우리를 이끌어가는 것이다. 인간의 역사가 태어나는 것을 보기 위해서는 역사에서 벗어나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가야만 한다. 일체의 실증적 사실의 뒷받침이 배제된 상태의 기술, 그것은 추론이라는 방법에 의한 기술이 될 수 밖에 없다."(149쪽)

 

인간 불평등의 기원에 대한 속시원한 해답을 기대하며, 뻑뻑한 눈 비비고, 인공눈물 넣으면서 며칠동안 끙끙거리고 읽었는데, 결국은 추론에 불과 하다는 말인가?  밥벌이의 현장에서 현재도  계속 이어지는 불평등(합리적 차별인가?)을 묵묵히 감수하면서, 인간적 자존심을 뭉개가면서 버티었는데...그믐밤,누군가 어두운 길에 착한 불빛을  앞길에 비춰 주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기대나 무능하고, 비겁한 나는 차마 그 누군가가 되지는 못한다는 인식은 결국, 또다른 책을 찾아 헤매게 한다. 글쎄,과연 누가 이 욕구를 채워줄 만한 책을 썼을까? 스스로 이런 저런 책들을 읽고, 나 또한 그 기원에 대해 추론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그리하여, 막걸리에 찌들고, 녹이 좀 슬긴 했지만, 내 머리가 몸통위에 단순한 액세서리로 달려 있는게 아니라면, 그동안 읽고, 배운지식으로 한번 굴려보자.영차~

 

인간 불평등의 기원은 아마 권력의 발생이나 형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인데, 그렇다면 호모사피엔스사회에서 계급이 처음 발생하게 되었다는 청동기시대로부터 잡아야 하나? 그런데 정말 청동기시대에 처음으로 계급이 발생했고, 그때부터 인간이 불평등하게 되었을까?  혹시, 청동기시대 이전 부터 계급은 있었고, 따라서 이미 불평등했지만 청동기시대에 이르러 좀더 체계화된 계급조직이 되고, 이를 바탕으로한 권력자의 대규모 정복전쟁이 시작된 시기였지 않았을까? 돌도끼들고 사냥나가던 구석기시대에도 사냥전술상 누군가의 지도(지혜 가진자)를 받는다든지, 혁혁한 공을 세운자(힘세고 용감한 자)가 있다든지 해서 사냥에 성공한 후 그 먹이분배에 차등과 불평등이 생기지 않았을까?  

 

루소처럼 나도 이렇게 추론할 뿐이다. 인간 불평등 기원의 시기가 언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불평등이 발생한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인류는 태어나자마자, 그 순간부터 불평등해졌다. 근데, 나는 그 불평등의 기원에 대해 왜 이리 집착하는가? 불평등한 현재의 삶에 대해 불만과 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염증때문에?  설사 그 인간 불평등의 기원, 그 진실을 알아낸다 한들 어쩔 것인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 밖에...그러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그 길이 너무 어둡다. 길잡이 별이 착한 별빛으로 인도해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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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10-20 15: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날에는 이 책을 비판하는 주장들이 나오지만, 18세기에 불평등의 기원을 추론하는 작업은 대단한 시도였습니다. 인류의 기원을 찾는 작업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요? ^^

sprenown 2017-10-20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그랬을 것 같아요.. 그래서 루소가 프랑스 혁명의 아버지라는 말까지 듣는걸 보면.^^
 
파묻힌 거인 - 가즈오 이시구로 장편소설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하윤숙 옮김 / 시공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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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오 이시구로의 올해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그의 작품에 대한 좋은 리뷰가 많다.(특히 cyrus님이 가즈오 덕후로 인정한 레삭매냐님의 리뷰는 매우 충실하고 훌륭하다) 그래서 리뷰를 쓰지 않을까도 생각했지만, 읽으면 쓴다는 원칙하에 암용 케리그의 입김이 내 독서에 대한 기억을 지우기 전에 리뷰를 남기기로 한다.

 

"당신이 그곳을 보았다면 구불구불한 오솔길이나 평온한 초원같은 것이 어디 있나 한참 찾았을 것이다."로 시작되는 문장이다. 이 이야기의 배경은 5~6세기의 영국, 황량한 황무지가 수킬로미터 펼쳐져 있고 바위투성이 산이나 음산한 황야가 펼쳐진 곳이다.('폭풍의 언덕'을 연상시킨다.) 이 소설은 황야의 거대한 습지주변에 살고 있는 노부부 액슬과 비어트리스의 아들을 찾기 위한 판타지 모험담이다. 그러나 그 여행의 과정은 결코 가볍지 않고, 그들 노부부가 도달한 여행의 끝은 묵직한 것이다.(결말에 아들 찾아 떠난 이 여행의 의미가 드러난다)

 

위의 첫 문장처럼 작가는 이 소설을 전지적 작가시점(예외적으로 후반부 가웨인의 몽상과 마지막부분 죽음의 사신 뱃사공편은 1인칭 시점임)에서 당시의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다 현재 시점으로 갑자기 끼어들기도 한다. 마치 어린 아이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 주듯이 "그 시절  드넓은 지역에서 길을 찾는다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며 그것이 단지 믿을 만한 나침반과 지도가 없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여기서 밝혀두어야 할 것이다. 오늘날 들판과 길과 목초지를 친절하게 구획해 놓은 산울타리가 그 당시에는 없었다."(47쪽) 

 

 

이것은 작가의 의도에 의한 것일 텐데, 사실 이런 개입이나 상황설명들은 독자의 책읽기에 방해된다. 아무튼, 위험을 무릅쓰고, 아들을 찾아 떠나는 길.. 두 노친네들은 다정하고, 사랑이 넘친다. "두려움이 밀려와 비어트리스는 이따금씩 "지금도 거기 있나요, 액슬? "이라고 물었다. 그러면 액슬은 늘 "지금도 여기 있어요, 공주"라고 답하곤 했다."(48쪽) 철없으나 듬직한 늙은 슈렉과 강하면서도 애교많은 피오나 공주가 떠오른다. 환상적인 닭살 커플인 것이다.(사랑과 헌신을 통한 아름다운 이 노년의 모습을 작가 스스로 꿈꾸는 것은 아닐까?) 

 

이후 여행과정에서 토끼가 나오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와 '장미의 이름'에 등장하는 기괴한 수도원 분위기, 세익스피어 희곡 같은 대사, 브리튼족과 색슨족간의 전쟁과 복수에 대한 회상,아서왕을 매개로 한 가웨인과 액슬,위스턴의 복잡하게 얽힌 관계. 그리고 입김을 통해 모든 기억을 지우는 암용 케리그..

 

결말부분인 426쪽에 이르러 기사 가웨인(세르반테스의 바보같지만 순박,우직한 기사, 돈키호테를 연상시킨다)과 전사 위스턴(옮긴이는 영국의 고대서사시에 나오는 영웅, 베어울프를 연상시킨다고 한다) 의 대화를 통해 작가는 이 소설의 주제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이 일에서는 아서왕의 뜻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행한 거여. 이 암용의 입김이 아니었다면 평화가 올 수 있었겠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을 봐요! 이 마을 저 마을 모두 오랜 적들이 형제처럼 지내고 있지 않소. 저 입김이 끊긴다면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났다고 해도 이 땅 곳곳에서 어떤 기억들이 깨어나겠소! 좋소, 인정하오. 우린 강자든 약자든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을 학살했소. 하느님이 우리에게 미소를 보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우리는 이 땅에서 전쟁을 없앴소. 부탁하오 , 이 땅을 그냥 두고 떠나요."

"잘못된 일이 사람들에게 그냥 잊힌 채 벌받지 않기를 바라는 신은 어떤 신인가요?"

 

용을 무찌른 후 전사 위스턴는 어이없게도 정의와 복수를 위한 정복전쟁을 이야기한다.작가는 이처럼 독자들을 황당한 이야기의 구덩이 속으로 몰아넣는다. 그리고 작게는 액슬부부간의 소소한 애정문제에서부터 종족간의 전쟁에 이르기까지, 인류 전반에 걸친 '망각과 기억'의 문제를 끊임없이 환기시키려는 듯하다. 그러나 그 '망각과 기억'이라는것은 야심가에 의해 정치적으로 이용된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아서왕의 전설(정의의 이름으로 휘두르는 엑스칼리버와 피비린내 나는 영국의 왕위 계승싸움)을 차용하여 제국주의 시대의 영국과 일본의 침략,정복전쟁의 불가피성을 은유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일본인으로서 영국에서 성장한 작가의 피해의식이 반영된 게 아닐까? "까불지 마, 점잖은 척 하지만 너희 영국놈들도 마찬가지야") 

 

그리고, 작가는 이제 화해와 용서,헌신적 인류애를 이야기 한다. "더디게 낫는 상처도 결국 다 낫게 마련이지요."(468쪽) 이 소설이 할리우드에서 영화화하기로 결정되었다는데 서사가 빈약한 이 스토리가 어떻게 구성될 지 자못 궁금하다. 원작에 충실한다면 흥행에 실패하게 뻔하니 시나리오 단계에서 엄청난 수정과 가공이 필요할 듯 싶다.

 

책 뒷표지에 세계 유명언론들의 현란한 찬사!  그런데 솔직히 영국독자들이나 영국문화의 영향을 받은 서양인들에게는 모를까 우리 한국독자들에게는 크게 와 닿지 않는 이야기가 아닐런지? 취향의 문제이거나 이해부족 일수도 있겠으나 나는 이 지루한  이야기의 구덩이에서 빠져나와 차라리 장강명을 포함, 재기발랄한  우리 작가의 소설을 읽어야 겠다는 결심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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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10-16 2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른 분의 리뷰에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들,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솔직하게 표현하면 됩니다. ^^

sprenown 2017-10-16 21: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럴려구요.. 이제 이곳의 분위기에도 적응됐으니.. 자유로운 독서와 비판적 글쓰기를 힘 닿는데 까지 해보려 합니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창비시선 156
함민복 지음 / 창비 / 199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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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 시집[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를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샀다. 감명깊게 읽었던 시인의 산문집 제목인 [눈물은 왜 짠가]가 이 시집에 실려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 시다. 많이들 알고 있고, 다소 길지만 인용한다.

 

     눈물은 왜 짠가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 입니다 어머니는 차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로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둬라"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 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 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그만 국물을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그러자 주인 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 만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 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 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이 시를 읽으면, 모자간의 애틋한 사랑과 설렁탕집 주인아저씨의 따스한 정이 느껴진다.

그런데, 사실 이 시집은 내가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제목만 보고 반가운 마음으로 얼른 산건데, 집에 와 겉표지를 넘기자 손글씨로 이런 글귀가 씌여 있었다.

 

    시를 읽고 싶어하는 oo야.. 항상,누군가에게 시집을 선물할 때면 한참을 서성거려야만

    한다. 이 시집이 그 사람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까. 이 시집을 선물하는 나는 그

    사람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 갈까? 시집을 고를 때면 항상 그랬다. 오늘도 한참을 망설

    이다, 내가 좋아하는 시인의 그것을 골랐다.  그냥 詩가 네 삶에 함께 했으면 한다.

    항상,네 삶에 건투.

    - choice  03.10.13.

 

처음에 이 글귀를 보는 순간, 왠지 내가 사서는 안될 책을 산 기분이랄까..oo와 choice 두사람만의 비밀공간에 잘못 끼어든 기분.. "어어, 죄송합니다!" 당황스럽다. 그러다가, 서서히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이 시집을 선물한 choice는 이렇게 버림받은 사실을 안다면 얼마나 상심이 클까? oo라는 녀석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었길래 이토록 정성들여 시집을 선물한 사람의 마음을 무참히 짓밟으며 알라딘 중고서점에 이 시집을 팔아 먹었을까? 값 5,000원.2003년 3월 20일 초판9쇄본이다. 아마 300원에서 기껏해야 700원 정도 받았을 것이다.(난 2,300원에 샀다.) 그래도 시집을 뒤적이다 위의 시를 읽고, 다시 마음이 가라앉았는데 94쪽에 있는 '긍정적인 밥'을 읽으면서는 화를 내었던 나, 반성하게 된다.

 

    긍정적인 밥

 

 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처음엔 정성들여 선물한 시집을 단돈 몇백원에 팔아 먹었다며 oo을 욕했던 나는 다시 생각해 본다. oo에게도 어떤 사정이 있지 않았을까? choice와의 관계가 이미 끝장 난 후 의도적으로 버린게 아니라면 그가 집정리하면서 버린 책에 함께 딸려온 것은 아니었을까? 아니면 이 시집을 소중히 간직하다 도둑을 맞은 것은 아닐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가 직접 알라딘 중고서점에 이 시집을 팔아야 할만큼 무슨 절박한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이 시집을 선물하고도 결국, 선택받지 못한 choice는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머리가 복잡해 진다. 그래서, 다짐한다. 시집 한권이 팔리면 삼백 원이 돌아오는 가난한 시인을 위해라도 시집만큼은  다시는 중고로 사지 않으리라! 

 

...  강화도에서 시인은 평안하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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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10-13 2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헌책방이나 중고서점에 시집을 고를 때 시집 속표지에 있는 손글씨 낙서를 유심히 살펴봅니다. 가끔 시보다 멋진 감성 폭발 손글씨를 만날 때가 있거든요. ^^

sprenown 2017-10-14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맞습니다. 오히려 사려던 시집의 시보다 더 주옥 같은 시예요..
 
우리가 고아였을 때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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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연휴가 다 끝나간다. 아쉽다.. 이제까지 연휴 기간에 기껏 장강명 소설 3권 읽고, 가즈오 이시구로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기에 대출이 가능한 '우리가 고아였을때'와 '파묻힌 거인'을 빌려놨다. 그나마 다행이다. 내일까지 다 읽지 못할 것이다. 설사 내일까지 다 읽지 못하더라도 2주일 안에는 읽을 수 있을 것이고, 10일 회사에 출근하더라도 누구하나 읽어본 사람이 없어 화제가 되지도 않을 것이다.(읽기는 커녕 노벨문학상이란 것도 있냐고 묻지나 않을지..ㅋㅋ)무식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여서 '가즈오 이시구로'라는 처음 들어본데다,노벨상이 아니였으면 읽을 생각도 안했을 것이다. (이건 또 뭐야~ 왠지 가쓰오 우동을 먹으면서 허접한 시를 읽다,  이 시구려~ 하면서  던져버릴 것 처럼.)

 

 수상발표이후 이 작가의 작품 매출이 어마어마하게 늘었다고 하니 노벨문학상이 대단하긴 하다.

뭐 부터 읽을까? 작가의 연보를 볼때 시기적으로 앞선 작품인 '우리가 고아였을때'을 먼저 펴든다. 어릴때 아버지와 어머니가 갑자기 실종된후 상하이에서 영국(이모집)으로 건너와 대학을 마치고, 유명 사립탐정이 된 남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일인칭 시점의 지적인 문체다. 과거에 대한 회상이 교차되는데, 아마 앞으로의 전개는 주인공(크리스토퍼 뱅크스)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실종사건을 파헤치면서 진실에 맞닥뜨리는 과정이 될 듯하다.(작가는 셜록홈즈의 팬이거나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일본 나가사끼에서 태어나 6살에 아버지를 따라 영국으로 건너간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 일본태생으로 영국에서 자라며 성장한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고민의 흔적이 보이는 문장들..

 

주인공인 영국인 크리스토퍼는 상하이에서 어린시절을 보내다 영국으로 건너와 성장한 후 탐정이 된다. 상하이에서 '아키라'(작가의 분신일수 있겠다)라는 일본인 친구와 친하게 지내는데,어느날 아버지와 어머니가 싸운후 대화가 없어 지자 이에 대한 고민을 아키라에게 털어놓는다.그러자 아키라가 말한다. " 그리스토퍼, 네가 진짜 영국인답지 않아서 그런 걸거야. 내 경우도 그렇거든. 엄마와 아빠, 두분이 서로 대화를 하지 않아. 내가 진짜 일본인답지 않다고 여길 때 말이야."(107쪽).근데, 아마 1910년대 일 것으로 생각되는 당시의 상하이에서 두 소년은 어느 나라 말로 대화하는지 궁금하다. 일어는 아닐테고, 중국어?영어?

 

아무튼, 크리스토퍼는 영국인다워 진다는 것에 대해 필립삼촌에게도 이러한 고민을 털어놓는다. 필립삼촌은 이렇게 말한다. " 네가 혼혈아처럼 자라는 것도 당연할지 모르지."나는 너 같은 소년들이 모두 온갖 것을 이것저것 경험하며 성장하는게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해. 그러면 사람들이 서로를 훨씬 더 잘 대할수 있게 될 테니까 말이야. 무엇보다 이런 전쟁도 줄어 들게 될거다. 아 , 그래 , 아마 언젠가는 이런 모든 갈등이 끝나는 날이 올거야." " 모든 것이 다 흩어질지 모른다고? 네 말이 맞을지도 몰라. 그건 우리가 쉽게 피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구나. 사람들은 어딘가에 속한다고 느낄 필요가 있어. 국가나 민족 같은 것 말이야. 그러지 않으면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112,113쪽)

 

그래, 정체성! 뿌리... 일본계 영국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소식을 듣고 그의 이 소설을 읽으면서 문득,'나는 고양이~' 한권 밖에 읽지 않았지만, 일본 근대문학의 아버지라는 나쓰메 소세키가 생각이 났다. 문화적 전통과 뿌리라는 것이 이렇게 면면히 이어져 오는 구나.. 우리나라 근대문학의 아버지는 누구였더라? 이광수란다. 친일파의 대표적 인물이다. 최남선도 그렇고...홍길동은 아니지만 차마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겠다. 친일파라고 지칭하지는 않지만, 이상은 또 어떤가? 그는 일본 근대문명에 탐닉하고, 신세계 일본을 동경해 일본으로 건너가서 얼마 뒤 죽었다. 일찍 죽었다는 것과 그의 작품에 스며있는 일본 근대문학의 냄새는 이후 그를 요절한 천재시인이며 작가라고 추숭하고 급기야 우리 근현대문학의 상징으로 가장 권위있다는 문학상에 이름 붙여졌다. 여자관계 복잡한 모던보이의 자유연애사상과 서구(일본)문화에의 경도가 우리나라 문학에 있어 근대성의 단초란 말인가? 이건 아니지 싶다.

 

아무리 우리나라 근대문학의 전통, 그 뿌리가 일제 식민지에서 싹텄다고 하다라도, 이승만을 우리나라 건국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는 것처럼 우리나라 근대문학에 있어도 이광수를 아버지, 최남선을 어머니라 할 수는 없지 않은가..그렇다면 이상은 형인가? 이육사나 윤동주, 한용운 같은 분들께 죄송할 따름이다. 엄밀히 말하면,근대문학에서 만큼은 우리 한국인 모두는 고아다. 늦었지만 가난하고, 못난 아버지라도 우리 근대문학의 진정한 아버지를 찾아 드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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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7-10-09 10: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광수를 아버지라고 불러야 한다면, 전 국민을 홍길동으로 만드는 것이다. 촛불 혁명!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가자, 율도국 으로!

이게 뭐야? 야구보면서 라면에 막걸리 먹다...말이야 막걸리야? 니가 오은 이냐? 천박한 말장난...ㅎㅎ

섬나라 투어...영국에서 일본을 거쳐 율도국..노벨이 왜 율도국까지 가게 되었을까?

sprenown 2017-10-11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읽었다.후반부는 다소 황당하다.갑자기 실종되어 20여년간 억류되었던 부모님을 찾아가는 과정..1937년 7월 이후 중일전쟁이 진행중인 상하이(일본은 상하이 함락후 난징대학살을 저지른다.)에서 영국 사립탐정이 얼마나 대단하길래?(미국중심주의가 깔려 있는 헐리우드 영화 같다.) 중국군 중위의 입장에서는 건져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상황인거고, 우연히 포로가 되어있는 어릴적 친구 아키라를 구출하고, 일본말 도모다치를 배운다? 하긴, 영국과 일본은 친구였었지..(영일동맹.)같은 제국주의 국가였었던 나라들이고, 그때는 서로간 상황이 어쩔수 없었으니 이해하면서 서로 돕고 잘 살자는 건지.. 반전과 충격적인 결말이 흥미롭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작가의 영국에 대한 아부가 심하다.

레삭매냐 2017-10-11 14: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이 작품은 이시구로 선생
의 작품 중에서 데뷔작을 제외하고
가장 아쉽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적으신 대로 후반부 서사구조가 특히 -
대가의 게으름이었을까요?
 

노벨문학상도 이제는 일본이 쓸어가는 구나! 하루키도 남아있다. 정치와 경제력을 무시하진 못하지만 결국은 문화적 역량의 차이다.

인정할 건 인정하고, 솔직해지자. 우리나라는 한참 멀었다. 고은시인은 이제 곱게 보내드려야 한다.

분단과 한반도 위기로 어떻게 동정표 얻어 볼려는 거지근성은 버려야 한다. 눈물을 머금고 보내야 한다.

한강도 부커상 받았으니 이제는 그녀의 건투를 빌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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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10-05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즈오 이시구로는 영국인이고, 영어로 글을 쓰고, 현대 영문학을 대표한다는 소리를 듣는 영어권 문학가라는군요. 본인이 일본 문화는 잘 모른답니다. ㅎㅎㅎㅎ

sprenown 2017-10-07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계라는게 중요하지요.그의 책을 한권도 읽어보진 못했지만 뿌리..문학의 뿌리와 문화적 배경이나 글쓰기의 자양분은 무시하지 못 할 겁니다. 일본 문화의 힘! 천박한 우리 출판문화에서는 당장 날림으로 이 일본계 작가의 노벨상수상에 기대어, 묵혀뒀던 관련 서적을 여기저기서 출판할 것이고, 교보니 영풍문고 등 대형서점에서는 곧바로 특별 코너도 생기겠죠! 직원들은 추석연휴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