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창비시선 156
함민복 지음 / 창비 / 199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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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 시집[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를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샀다. 감명깊게 읽었던 시인의 산문집 제목인 [눈물은 왜 짠가]가 이 시집에 실려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 시다. 많이들 알고 있고, 다소 길지만 인용한다.

 

     눈물은 왜 짠가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 입니다 어머니는 차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로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둬라"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 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 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그만 국물을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그러자 주인 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 만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 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 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이 시를 읽으면, 모자간의 애틋한 사랑과 설렁탕집 주인아저씨의 따스한 정이 느껴진다.

그런데, 사실 이 시집은 내가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제목만 보고 반가운 마음으로 얼른 산건데, 집에 와 겉표지를 넘기자 손글씨로 이런 글귀가 씌여 있었다.

 

    시를 읽고 싶어하는 oo야.. 항상,누군가에게 시집을 선물할 때면 한참을 서성거려야만

    한다. 이 시집이 그 사람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까. 이 시집을 선물하는 나는 그

    사람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 갈까? 시집을 고를 때면 항상 그랬다. 오늘도 한참을 망설

    이다, 내가 좋아하는 시인의 그것을 골랐다.  그냥 詩가 네 삶에 함께 했으면 한다.

    항상,네 삶에 건투.

    - choice  03.10.13.

 

처음에 이 글귀를 보는 순간, 왠지 내가 사서는 안될 책을 산 기분이랄까..oo와 choice 두사람만의 비밀공간에 잘못 끼어든 기분.. "어어, 죄송합니다!" 당황스럽다. 그러다가, 서서히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이 시집을 선물한 choice는 이렇게 버림받은 사실을 안다면 얼마나 상심이 클까? oo라는 녀석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었길래 이토록 정성들여 시집을 선물한 사람의 마음을 무참히 짓밟으며 알라딘 중고서점에 이 시집을 팔아 먹었을까? 값 5,000원.2003년 3월 20일 초판9쇄본이다. 아마 300원에서 기껏해야 700원 정도 받았을 것이다.(난 2,300원에 샀다.) 그래도 시집을 뒤적이다 위의 시를 읽고, 다시 마음이 가라앉았는데 94쪽에 있는 '긍정적인 밥'을 읽으면서는 화를 내었던 나, 반성하게 된다.

 

    긍정적인 밥

 

 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처음엔 정성들여 선물한 시집을 단돈 몇백원에 팔아 먹었다며 oo을 욕했던 나는 다시 생각해 본다. oo에게도 어떤 사정이 있지 않았을까? choice와의 관계가 이미 끝장 난 후 의도적으로 버린게 아니라면 그가 집정리하면서 버린 책에 함께 딸려온 것은 아니었을까? 아니면 이 시집을 소중히 간직하다 도둑을 맞은 것은 아닐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가 직접 알라딘 중고서점에 이 시집을 팔아야 할만큼 무슨 절박한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이 시집을 선물하고도 결국, 선택받지 못한 choice는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머리가 복잡해 진다. 그래서, 다짐한다. 시집 한권이 팔리면 삼백 원이 돌아오는 가난한 시인을 위해라도 시집만큼은  다시는 중고로 사지 않으리라! 

 

...  강화도에서 시인은 평안하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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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10-13 2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헌책방이나 중고서점에 시집을 고를 때 시집 속표지에 있는 손글씨 낙서를 유심히 살펴봅니다. 가끔 시보다 멋진 감성 폭발 손글씨를 만날 때가 있거든요. ^^

sprenown 2017-10-14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맞습니다. 오히려 사려던 시집의 시보다 더 주옥 같은 시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