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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고아였을 때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15년 3월
평점 :
추석연휴가 다 끝나간다. 아쉽다.. 이제까지 연휴 기간에 기껏 장강명 소설 3권 읽고, 가즈오 이시구로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기에 대출이 가능한 '우리가 고아였을때'와 '파묻힌 거인'을 빌려놨다. 그나마 다행이다. 내일까지 다 읽지 못할 것이다. 설사 내일까지 다 읽지 못하더라도 2주일 안에는 읽을 수 있을 것이고, 10일 회사에 출근하더라도 누구하나 읽어본 사람이 없어 화제가 되지도 않을 것이다.(읽기는 커녕 노벨문학상이란 것도 있냐고 묻지나 않을지..ㅋㅋ)무식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여서 '가즈오 이시구로'라는 처음 들어본데다,노벨상이 아니였으면 읽을 생각도 안했을 것이다. (이건 또 뭐야~ 왠지 가쓰오 우동을 먹으면서 허접한 시를 읽다, 이 시구려~ 하면서 던져버릴 것 처럼.)
수상발표이후 이 작가의 작품 매출이 어마어마하게 늘었다고 하니 노벨문학상이 대단하긴 하다.
뭐 부터 읽을까? 작가의 연보를 볼때 시기적으로 앞선 작품인 '우리가 고아였을때'을 먼저 펴든다. 어릴때 아버지와 어머니가 갑자기 실종된후 상하이에서 영국(이모집)으로 건너와 대학을 마치고, 유명 사립탐정이 된 남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일인칭 시점의 지적인 문체다. 과거에 대한 회상이 교차되는데, 아마 앞으로의 전개는 주인공(크리스토퍼 뱅크스)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실종사건을 파헤치면서 진실에 맞닥뜨리는 과정이 될 듯하다.(작가는 셜록홈즈의 팬이거나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일본 나가사끼에서 태어나 6살에 아버지를 따라 영국으로 건너간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 일본태생으로 영국에서 자라며 성장한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고민의 흔적이 보이는 문장들..
주인공인 영국인 크리스토퍼는 상하이에서 어린시절을 보내다 영국으로 건너와 성장한 후 탐정이 된다. 상하이에서 '아키라'(작가의 분신일수 있겠다)라는 일본인 친구와 친하게 지내는데,어느날 아버지와 어머니가 싸운후 대화가 없어 지자 이에 대한 고민을 아키라에게 털어놓는다.그러자 아키라가 말한다. " 그리스토퍼, 네가 진짜 영국인답지 않아서 그런 걸거야. 내 경우도 그렇거든. 엄마와 아빠, 두분이 서로 대화를 하지 않아. 내가 진짜 일본인답지 않다고 여길 때 말이야."(107쪽).근데, 아마 1910년대 일 것으로 생각되는 당시의 상하이에서 두 소년은 어느 나라 말로 대화하는지 궁금하다. 일어는 아닐테고, 중국어?영어?
아무튼, 크리스토퍼는 영국인다워 진다는 것에 대해 필립삼촌에게도 이러한 고민을 털어놓는다. 필립삼촌은 이렇게 말한다. " 네가 혼혈아처럼 자라는 것도 당연할지 모르지."나는 너 같은 소년들이 모두 온갖 것을 이것저것 경험하며 성장하는게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해. 그러면 사람들이 서로를 훨씬 더 잘 대할수 있게 될 테니까 말이야. 무엇보다 이런 전쟁도 줄어 들게 될거다. 아 , 그래 , 아마 언젠가는 이런 모든 갈등이 끝나는 날이 올거야." " 모든 것이 다 흩어질지 모른다고? 네 말이 맞을지도 몰라. 그건 우리가 쉽게 피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구나. 사람들은 어딘가에 속한다고 느낄 필요가 있어. 국가나 민족 같은 것 말이야. 그러지 않으면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112,113쪽)
그래, 정체성! 뿌리... 일본계 영국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소식을 듣고 그의 이 소설을 읽으면서 문득,'나는 고양이~' 한권 밖에 읽지 않았지만, 일본 근대문학의 아버지라는 나쓰메 소세키가 생각이 났다. 문화적 전통과 뿌리라는 것이 이렇게 면면히 이어져 오는 구나.. 우리나라 근대문학의 아버지는 누구였더라? 이광수란다. 친일파의 대표적 인물이다. 최남선도 그렇고...홍길동은 아니지만 차마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겠다. 친일파라고 지칭하지는 않지만, 이상은 또 어떤가? 그는 일본 근대문명에 탐닉하고, 신세계 일본을 동경해 일본으로 건너가서 얼마 뒤 죽었다. 일찍 죽었다는 것과 그의 작품에 스며있는 일본 근대문학의 냄새는 이후 그를 요절한 천재시인이며 작가라고 추숭하고 급기야 우리 근현대문학의 상징으로 가장 권위있다는 문학상에 이름 붙여졌다. 여자관계 복잡한 모던보이의 자유연애사상과 서구(일본)문화에의 경도가 우리나라 문학에 있어 근대성의 단초란 말인가? 이건 아니지 싶다.
아무리 우리나라 근대문학의 전통, 그 뿌리가 일제 식민지에서 싹텄다고 하다라도, 이승만을 우리나라 건국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는 것처럼 우리나라 근대문학에 있어도 이광수를 아버지, 최남선을 어머니라 할 수는 없지 않은가..그렇다면 이상은 형인가? 이육사나 윤동주, 한용운 같은 분들께 죄송할 따름이다. 엄밀히 말하면,근대문학에서 만큼은 우리 한국인 모두는 고아다. 늦었지만 가난하고, 못난 아버지라도 우리 근대문학의 진정한 아버지를 찾아 드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