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이, 대디, 플라이 더 좀비스 시리즈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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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네시로 가즈키 세계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박순신이다. 다른 이의 등을 밟고 올라서려 해서는 안 된다는 니체의 말과 설령 인사를 할 때라도 적에게서 눈을 떼지 마라는 드래곤볼의 대사를 동시에 인용할 줄 아는 이 소년은 정말 내 가슴을 설레게 한다. 대학생일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순신의 여러 명대사 중에 가장 내 마음을 흔들고 공감했던 말은 바로 이것 - 그 아픔을 그리워할 날이 올거야. 

그때 그 말이 생각보다 깊게 내 마음에 박혔던지 나는 절망과 좌절을 맛볼 때마다 순신의 말을 되뇌었다. 이 아픔도 결국 그리워하게 될 추억이 될 것이라고 그러니 아쉬움이 남지 않게 맘껏 슬퍼하자고. 사실 나는 대책없이 낙천적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웬만해서는 우울해하지 않는데, 사회에 나오면서 알게 되었다. 사회에 나오면,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든 '어른'으로 보여야 하는 나이가 되면 우울한 일들이 생각보다 많아진다는 것을. 하지만 잘 안다. 그것 또한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된다는 것을. 사람이란, 사람의 마음이란 참으로 간사해서 시간이 지나면 지나간 시간 을 그리워하게 된다는것을. 그리하여 한숨 하나 눈물 한모금 쏟아낼 때마다 순신의 말을 읊어본다. 모두 추억이 될거야, 라고. 

생각해보면 그 전부터 이 모든 게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나는 어렴풋하게나마 느껴왔다. 가까운 이의 죽음 같은 엄청난 일뿐만 아니라 마음 맞는 아이와 너무 늦게 친구가 되어 헤어지게 되었던 일들로. 모든 건 결국 추억이 된다. 내가 그렇게 일기를, 편지를 쓰며 수많은 시간을 글로 담아온 이유도 그거였나 보다. 나는 그 시간을 그때 그대로 갖고 싶었던 거다. 그리고 소설 속 이 구절을 읽었을 때 다시 한번 깨달았다. 좋았던 것뿐 아니라 그렇지 않다 생각했던 것 또한 그리워질 추억이 된다는 것을.  

내가 그리워하게 될 것은 특정한 사건이 아니라 이 시간 자체였다. 그러니 내 인생을, 내게 주어진 시간을 더욱 사랑하자 다짐했다. 실컷 좋아하고 실컷 부딪치고 실컷 웃고 실컷 울어보자고. 내게 주어진 것은 지나간 과거도 오지 않은 미래도 아닌 바로 지금이니까. 그래서 정말 그 다짐 그대로 실컷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아왔다. 앞날에 무엇이 기다릴지는 모르나 지금은 지금에 충실하며 살면 되는 거다. 계속 걸어가는 사람에게는 길이 보이는 법이니. 책 속을 뛰쳐나올 듯 펄펄 살아 움직이는 가네시로의 주인공들이 내게 건 최면, 생각보다 효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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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가족
공선옥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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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쩜 이리 촘촘하고 사실적으로 우리 시대의 아픔을 그려낼 수 있을까. 이 분의 글을 좋아하는 건 뒤로 물러서지 않는 뚝심 때문이다. 보면서 괴로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 괴로움조차 참아내지 못한다면 내 눈은 과연 어떤 현실을 마주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마음 다잡고 읽었지만 <유랑가족>은 너무나 아프다. 퍼즐을 맞추듯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가, 그 스산한 삶이 이야기 하나하나를 읽어갈 때마다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완벽하게 나쁜 이는 아무도 없다. 모두 가슴에 상처를 품고 살기 위해 버둥거릴 뿐이다. 하지만 그들이 한데 모였을 때, 아무런 바람막이가 없는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을 땐 진심이 아님에도 서로에게 또 다른 걸림돌이 된다. 아픔이 된다. 그러니 누굴 모든 것의 원인인냥 마녀 사냥을 한다 해도 아픔은 줄지 않을 것이다. 모두가 상처받은 약한 영혼이기에. 바람막이가 되어야 할 사회의 부재, 이것은 너무나 오래된 문제지만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 스스로 손을 내밀어 연대하는 것밖에는. 참 한숨 나오고 위로 안 되는 말이지만, 결국 그것밖에 없다.  

지금 세상은 너무도 급박하게, 그것도 상상하지 못할 만큼 비정하게 돌아간다. 문학이 현실을 담아내지 못한다는 비판 속에서 가만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저자의 글을 앞으로도 쭉 보고 싶다. 눈앞의 현실을 피하지 않는 이 분의 글이 참, 너무나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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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덩이 창비청소년문학 2
루이스 새커 지음, 김영선 옮김 / 창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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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과 함께 이 말이 나올 법한 상황은 많다. 나는 정말 지독히도 운이 없나 봐 혹은 할 만큼 했는데 왜 이런 거야 라는 말이 뒤따라오겠지.  어쨌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것을 포기해봤다. 그 가운데는 폭풍 같은 후회가 밀려온 적도 있고 속이 후련해서 왜 진작 그러지 못했을까 생각하며 실컷 웃은 적도 있다. 포기는 바보나 하는 짓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내가 바보여서 그럴 수도 있겠지. 어쨌든 포기하는 것이 무조건 나쁜 것, 약한 것, 바보 같은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때론, 그것이 더 힘들 수도 있다는 걸 살면서 배웠으니까. 하지만 그런 나도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 삶에 대한 믿음, 인간에 대한 희망 같은 거. 물론 쉽지 않은 일이란 걸 잘 안다.  

그래서일까. <구덩이>의 스탠리와 그 가족이 정말 사랑스러웠다. 초록색이라곤 볼 수 없는 초록호수 캠프에서, 스탠리의 심장도 다른 아이들처럼 딱딱해져가지만, 내가 운이 없는 건 저 고조할아버지 때문이야 라는 노래를 부르는 이 아이는 곧 자신의 온기를 되찾는다. 그리고 별명처럼 아무도, 아무것도 갖지 못한 제로에게 손을 내민다. 거기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직접 읽어보시라.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며 이야기되다가 하나로 이어지는 지점에서 깜짝 놀랄 것이니. 희로애락이 뒤섞인 우리네 삶처럼, 이 이야기 역시 마냥 따뜻하지는 않다. 하지만 그렇기에 진짜라 느낄 수 있는 것 아닐까.  때때로 우울함이 찾아올 때, 가슴이 딱딱해지는 걸 느낄 때 펼쳐보면 참 좋다. 내가 읽은 루이스 쌔커의 첫 작품인데, 마음을 홀딱 빼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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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벌루션 No.3 더 좀비스 시리즈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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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지 못했던 일까지 죽 쑤게 되는 날이 있다. 이상하게 되는 일도 없고 되는 일이 없으니 아무것도 하기 싫고 하기 싫어 안 했는데 봉변당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날이다. 누구에게나 우울한 날이 있고 안 풀리는 날이 있는 법이라 생각해보지만 그것도 잠깐일뿐, 남의 우울까지 생각할 여유도 없어져 속좁아지는 때다. 그런 날은 그저 암 것도 안 하고 축 늘어져 있는 게 좋다. 적어도 나의 경우는 그렇다. 바닥에 누워 아무 생각 없이 고치처럼 누워 있는다. 그리고 손에 잡히는 책을 느릿느릿 펼치며 낄낄거리기 시작한다. 나의 피로회복제가 되어주는 몇 권의 책들. 쌍뻬의 <얼굴 빨개지는 아이>와 루이스 쌔커의 <구덩이>, 린드그렌의 <삐삐 시리즈>, 유은실의 <나의 린드그린 선생님> 등등으로 이어지는 리스트 한쪽에 자리한 가네시로 월드, <레볼루션 no.3> <GO> <연애소설> <스피드> <영화처럼>. 그 가운데 최고는 역시 이 책이다. 주황색의 멋없는 표지에 박힌 의미심장한 제목이 좀 웃겨서 무심코 집어든 책. 그리고 미끄러지듯 가네시로의 세계로 빠져들었지.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고딩 몇 녀석들이 주인공인데, 틀에 박히 않은 자유로움과 엉뚱함, 의외의 진지함, 빠지면 서운한 진한 우정 등은 어디서 많이 본듯한 인상이다. 하지만 경쾌하고 위트 넘치는 가네시로의 문체가 빚어낸 주인공들은 하나하나 볼 때도, 함께 모여 있을 때도 매력이 넘친다. 재일조선인, 오키나와인, 혼혈 등 역사가 낳은 이방인들뿐만 아니라 성적 하나로 멍청이라고 차별당하는 순수일본인들까지, 주류가 아닌 아이들이 모여 만드는 이야기에도 에너지가 넘친다. 무엇보다 재미있다. 모든 '성장'이야기가 그렇듯 눈물이 스며 있지만 이 쿨한 아이들은 그마저도 멋지게 극복한다. 가슴이 뻥 뚫린 상실감을, 흘러넘치는 눈물을 누구보다 깊게 느끼고 있음에도, 서로를 잘 알기에 웃어 넘어 보인다. 나는 펑펑 울었는데. 

가네시로가 구축한 세계 가운데 최고인 이 일당을 작가도 무척 아끼는 것 같다. <레볼루션..> <플라이 대디 플라이> <스피드>가 그 증거인데, 사실 나도 작가의 신작에서 또 이 녀석들을 보았으면 싶다. 그 숨은 이야기가 아직도 많을 것 같아 궁금하다. 물론 하나의 캐릭터에 붙들리는 건 작가에게 좋지 않은 일이란 걸 알지만 그래도 가네시로니까, 쿨하게 한 편 더 써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제멋대로 품고 있다. 

+ 팬심에 별 다섯개 줬는데, 번역 문제 때문에 하나 뺐다. 다른 건 그렇다 치고 맨 마지막 장의 히로시 대사에서 잘못한 번역은 용서가 안 된다고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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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산문 산책 - 조선의 문장을 만나다
안대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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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문장가 이규보가 그랬단다. 천 년 뒤 누가 자신을 기억하겠느냐고. 그러니 자신의 작품이 2010년에도 전하는 것을 안다면 아마 엄청 기뻐할 것이다. 술로 여러번 곤욕을 치렀을 만큼 주당이니 술판을 벌이지는 않을까ㅎㅎ 

이렇듯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람조차 자신과 자신의 작품이 영원하지 않을 것을 예감하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니 그 당시에 혹은 세월이 흘러 천천히 지워진 작품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지금 우리가 고전을 감상한다는 것은 아마도 넓은 숲에 난 작은 길을 따라 걷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고 알려진 것보다 아직 묻혀 있는 것이 더 많은. 이것은 과거를 연구하는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일 터다.  

그래서 책의 제목이 멋도 없고 재미도 없지만 내용을 잘 설명해준다 생각했다. 또한 허균, 박지원, 박제가, 정약용, 이덕무, 조희룡 등 이미 잘 알려지고 나 역시 참 좋아하는 분들의 작품만이 아니라 심로숭, 장혼, 남종현 등 낯선 분들의 작품까지 감상할 수 있어 더욱 의미있었다. 시대나 처한 상황, 생각들은 달라도 흰 종이 위에 자신의 뜻을 펼쳐낸 점에서 모두 멋진 사람들. 하지만 대부분이 평탄하지 않은 삶을 살았기에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때때로 늦은 밤에 편안히 자리에 앉아 책을 읽는 것이 미안해질만큼. 그래도 기세등등한 허균에서 시작해 매화덕후 조희룡으로 끝을 맺는 차례 덕분에 기분좋게 책을 덮을 수 있었다. '창가에 뜬 봄볕을 오이처럼 따다가 답장 속에 넣어 바로 보내고 싶'다는 조희룡의 말에 웃음이 나왔다. 유배지의 궁핍한 생활을 전하는 척독이었음에도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여유.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은 행복보다 시련이라고 하지만, 그 힘든 삶은 견디게 하는 것은 일희일비하지 않는 평온함과 여유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원문을 제외하고 650쪽인 이 책은 꽤 두꺼운 편이다. 하지만 여러 사람의 작품이 서로 다른 맛을 내어 지루하지 않다. 또한 저자의 짧은 설명이 곁들어 있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저자의 책을 많이 읽은 것은 아니지만 과장되지 않고 담담한 서술이 마음에 들었다. 곧 도착할 다른 책들은 또 어떤 맛일지 기대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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