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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장, 키 큰 소나무에게 길을 묻다
이덕무 지음 / 국학자료원 / 2003년 4월
평점 :
조선 왕 중에 가장 좋아하는 세종대왕과 정조대왕. 그 중 특히 정조대왕 때는 변화의 바람과 함께 젊은 선비들이 많이 보이는 시기였으니, 요즘 방송 중인 <성균관 스캔들>도 이때를 배경으로 한다지 아마? <열하일기> 박지원, <북학의> 박제가 홀릭에서 시작된 정조대 훈남 선비훑기는 백탑파를 중심으로 그 범위를 넓혀갔다. 특히 박제가보다 아홉 살 많지만 마음을 주고 받은 절친 청장관 이덕무는 요즘 빠져 있는 사람이다. 그 분의 글이 담긴 절판된 책들을 찾는 게 쉽지는 않지만 즐겁다. 가장 좋은 건 전집을 사는 것일 텐데, 돈도 돈이지만 공간의 여유가 없는 지금으로선 좀 더 참아야지 싶다.
그의 글 가운데 <이목구심서>를 국역한 이 책은 전체를 국역한 데다 글도 나쁘지 않아서 괜찮았다. 사실 책 내용 전부가 흥미로운 건 아니어서 중간중간 살짝 지루한 부분도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차분한 듯 힘이 넘치고 기품있는 선비의 모습이 그대로 보이는 듯 흐뭇하기까지 했다. 어쩔꺼야 이 훈남 선비님!
둥글둥글한 성격은 아니었을 박제가와 둘도 없는 벗이었던 이덕무는 수많은 시와 산문과 척독에서 보이듯 다정하면서도 꼿꼿한, 이상적인 선비였을 것이다. 그가 죽었을 때 박제가가 얼마나 슬퍼했는지 보여 주는 글들을 보면서, 또 학식과 인품에 비해 뜻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그의 삶을 생각하면서 슬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허나 한편으로는 정조대왕이 살아 치세를 할 적에 눈을 감은 것이 복이란 생각도 든다. 특히 박제가의 죽음을 생각하면ㅜㅠ 삶의 자세, 학문을 하는 태도 등 새겨 들을 만한 구절이 참 많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구절이 있다.
'허공에 있는 빗발은 붙잡고 관찰할 수가 없는데, 만약 관찰해볼 수 있다면 원형으로 되었을까 육각으로 되었을까?' (148쪽)
길을 걸으며 혹은 방에 앉아 책을 읽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저것이 원형인지 육각인지 궁금해하는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다. 달을 바라보며 저 달에 사람이 산다면 이 지구를 달처럼 바라보지는 않을까 했던 박지원이나, 자신이 산속에서 들은 것은 물소리와 스님의 낙엽 밟는 소리였다 말했던 박제가처럼, 이덕무 역시 세상을 향한 애정과 호기심을 가진 낭만을 아는 선비였을 것이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을 날이 갈수록 실감한다. 이분들 모두 참 좋다. 정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