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抱天) 2막
유승진 지음 / 애니북스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포천>2막은, 1막에서 딸을 찾고, 다시 길을 떠나는 이시경의 지난 과거가 펼쳐진다.


화담 선생의 아래서 수행을 하다가, 책을 훔치고 그 책의 비결을 이용해 사람들의 점을 봐주고 번 돈으로 제 어미와 동생의 묘를 찾아 제대로 묻어주려 했던 시경은 관가에 붙잡혀 민심을 흉흉하게 했단 죄목으로 온갖 고초를 겪다 결국 양쪽 눈을 다 실명위기에 놓이지만, 스승인 화담 선생의 의해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다. 소경이 될 뻔한 위기도 돌부처상을 도굴꾼으로부터 지키며 깨우침을 얻어, 한쪽 눈을 기적적으로 지킬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시경은 자신을 가둔 포교에게 앙심을 품고있던 다른이들에 의해 옥이 불타면서, 죽은 자로 기록되게 된다. 1막에서 이시경을 죽였었다고 고백한 이야기의 내막이 풀리는 것이다.


후에 화담 선생이 죽은 후, 이시경은 화담선생의 제자였던 전우치에게서 거두어져 수행을 쌓게 된다. 같은 화담 서경덕의 제자였던 정희량은 반란을 꾀함에있어 은둔하는 전우치를 찾으려 이시경에게 딸을 해치겠다는 협박을 하고 전우치를 찾아내라 한다. 그로인해 이시경은 딸을 지켜내기 위해 온갖 허망한 소문을 퍼뜨려 스승을 불러내려 여기저기를 떠돌고 있는 것이었는데..



이시경의 과거와 화담선생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아련한 느낌을 자아낸다. 못난 제자를 포기하지 않고 거둔 스승, 그리고 그를 따르는 수많은 재목들의 모습들, 그리고 그 끝에서 결국 한쪽 눈을 잃고 깨우침을 얻은 이시경의 옛 과거는 항상 능글맞은 그의 깊이를 짐작케 한다. 겉으로는 자신의 딸을 위해서 아무런 고민없이 스승을 불러내는 듯 보이지만, 그 또한 많은 수를 내다보고 있을 터. 아마도 스승을 찾는 일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반란이 구체적으로 그려질 것 같은 기대다. 역사적 사실과 상상이 교묘하게 맞물려 가는 이야기, 3막이 기대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몬 라
빅토르 펠레빈 지음, 최건영 옮김 / 고즈윈 / 201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늘에 대한, 우주에 대한 동경은 먼 옛날부터 끊임없이 있어왔던 인간의 욕망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신에 대한 존재 혹은 거처는 인간이 닿을 수 없는 하늘로 상징되어왔고, 온갖 자연현상 또한 하늘의 뜻으로 통했고, 천체의 변화를 통해서 인간의 앞날을 내다보려는 시도 또한 쭉 있어왔다. 그러므로 지구에서 살아가는 모든 인간이 결국 하늘 아래 땅 위에 존재함에도 대부분 가 닿을 수 없는 하늘은 늘 어떤 기쁨과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중력을 거스를 수 없었던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인간 지식의 발현을 통해서 우주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 현대에도 여전히 하늘과 우주는 동경의 대상이고, 수많은 감성의 원천이다. 하늘과 우주를 떼어 구분할 수 없었던 시대를 지나, 항공기를 통해 하늘을 가로지를 수 있게 되면서 인간의 관심은 우주라는 명칭을 향해 더 높게 뻗어나간다.


크건 작건 인간이라면 굳이 우주비행사까지 가지 않더라도, 밤하늘을 통해서 우주를 꿈꾸곤 한다. 그리고 그것은 특히나 수많은 꿈을 꾸고 지금은 '상상도 못할 것들을 상상'하던 유년시절에 특히 그렇다.  어릴적에 항상 공상과학그림을 그리거나 하면 일순위가 우주이고 두번째가 바닷속이지 않을까? 그때의 기억이 남들과 특별날게 없는 것 같으니 차치해도, 이 <오몬 라>를 읽으면서 내가 떠올린 것들은 (비교적) 최근의 기억들 이었다. (희안하게도 영화보다는) 애니메이션쪽이 강하게 기억에 남는데, 현재까지 가장 인상깊게 보았던 작품들이 모두 우주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이야기들 이었다. 애니메이션이 실사와 비교해서 지금보다 더 크게 우주를 동경했던 유년시절의 감성이 더 맞아떨어져서인지. 우주에서 벌어지는 2시간 내외의 이야기 (혹은 스타워즈 같은 시리즈 물과 같은 실사) 보다 그 태생부터 가공되어있는 애니메이션이 더 긴 시간, 큰 공간의 우주를 이야기 했기 때문인진 몰라도 그쪽 매체에 더 깊게 빠져들 수 있었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몇해전엔 우주비행사였던 고산씨가 했던 짧은 강의를 들으며 우주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기도 했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것은 무엇이든, 내가 깊히 기억하는 것들은 모두가 인간이 펼치는 이야기를 하며, 개인의 내면을 농밀하게 묘사해낸 작품들 이었다. 하지만 그것들과 별개로 이 <오몬 라>가 무척 인상깊었던 이유는 단순히 매체의 형태의 차이가 주는 다른 느낌 뿐만 아니라, 결국 그 우주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가 무엇을 통해서 무엇을 이야기 하느냐에 따른 차이였다. 이 작품은 무척 현실적으로 그려져 있는 사이를 몽환적으로 풀어내고 있었고, 우리가 아는 우주에 관한 시대적인 부분과 개인의 본질적인 부분을 동시에 그려내면서, 더 높은 차원의 이야기를, 더 높은 주제의식으로 끌어내고 있었다.


어렴풋하게 하늘을 동경했던 오몬 은 유년시절에 미쪽 이라는 친구를 만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우주에 대한 꿈을 꾸게 되었고, 둘은 항공학교에 입학하게 되지만, 그들은 곧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우주비행을 위한 시험에 들게 된다. 그리고 결국은 미쪽을 제외한 오몬 과 다른 동료들 만이 꿈꿔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우주비행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오몬 라>를 쉽게 표현해보면 외면과 내면의 우주비행을 이야기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선 오몬을 둘러싼 외면을 보면, 그는 미소간의 냉전시대에서 우주비행사의 꿈을 꾸었다. 꿈이란 것은 마치 개인의 전적인 선택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만도 않았기도 했을 시대이다. 오몬과 미쪽, 혹은 그들과 같은 꿈을 꾸던 많은 이들은, 순수한 우주탐험의 목적보다는 미사일 개발에 대한 대외적 위협으로 사용되었던 우주에 대한 선전활동에 충분히 영향을 받은 이들이었다. 아무것도 걸러지지 않은 순수한 눈으로 바라보는 이상과 꿈이 아닌, 마치 그 둘이 유년시절에 모형우주선안의 사람을 빼냈다가 받은 벌-방독면을 쓰고선 산소와 공포에 의한 눈물로 자욱한 렌즈너머로 바라본 듯한 모습이었다.


항공학교에 들어간 그들은 전혀 꿈꾸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의 우주비행을 목격한다. 사회주의 국가였던 소련의 우주개발은 곧 미국과의 긴장관계와 연결된다. 그들은 그곳에 들어가 우주인이 아닌 군인으로써의 대우와 사상검증을 받으며, 우주를 위한 헌신이 아닌, 국가를 위한 헌신을 강요받는다. 이름을 남길수도 없는 비밀요원인 그들은 발들인 그곳에서 빠져나갈수도, 벗어날 수도 없었다. 최고 높이까지 날아가서 비밀임무를 수행하는 특수요원과 다를 바 없던 것이다. 그 시대의 소련은 그것뿐만 아니라, 미국과의 어떤 협약을 위해서 곰의 탈을 쓴 인물을 사냥감으로 둔갑시키고, 또 그의 희생을 통해서 그 협약을 성공적으로 성사시키기도 할 정도다. 우주뿐만이 아니라 많은 곳에서도, 이데올로기의 증명과 실천, 나아가 국가를 위해서 모든 이들이 어둠속에서 자신의 생명을 바칠 수 밖에 없던 시대였던 것.


무엇보다 흥미롭고, 실제적 이야기의 핵심이기도 한, 지금까지도 음모론으로 늘 떠오르는 미국의 달착륙 과도 견줄만한, 오몬이 참여한 프로젝트의 '수동성'이다. 그것은 각각 분리되는 로켓면과 달에 착륙해서 자동적으로 움직이는 탐사기계에 모두 사람이 탑승하고선 그것들을 수동으로 조작하는, 곧 탑승자의 희생이 필연적으로 따르는 잔인한 일이었다. 그것을 아는 최소한의 인원들을 제외한 모든 세계의 사람들이 그것들의 겉모양을 보고선, 소련의 기술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을 것임또한 분명한 일이다. 물론 이것에 대한 사실관계의 증명은 나로서는 아직 요원하다. 더 많은 정보의 검색을 요하기도 하고, 해설을 읽어보았지만 뾰족한 설명이 나와있지 않은 것 같다. 그도 당연한 것이 그것의 실제로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상상할 수 없는 극비의 사항이기 때문일 것이다. 여하튼, 이것의 사실관계증명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니, 작가가, 사상과 체제를 존속시켜야하는 국가와 그 속의 소수 대중들의 희생의 관계를 그려낸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다. 결국 떨어져나갈 부품속에 존재하는 죽음을 뒤집어쓴 대원들처럼 말이다.


마지막 부분인, 우주에서 오몬이 루노호뜨를 벗어나 마지막에 보게되는 환상 혹은 반대로 실제와도 같은, 조작된 것 같은 우주비행선과 발사 중계장면같은 경우를 보면 마치 그런 거짓과 같은 우주 비행을 그들이 인지하지 못하도록 오몬과 같은 비행사들을 세뇌시킨 것 같은 추측까지 해보게 만든다. 그런 세뇌에 현혹되서 실제 우주를 유영한다고 착각하게 만들고, 이전에 오몬이 보았던 그들의 관을 준비하듯 말이다. 나아가 그것은 사상의 허구, 더 나아가 그런 사상속에서 똬리를 틀 수밖에 없던 한 개인의 가련한 꿈의 허구와 껍데기, 거짓을 위한 일련의 규제와 현상과 희생이 대중이 믿는 진실을 만들어가는 시대적 현상에 대한 비꼼일지도 모르겠다. 실제 우주비행과는 무관하게 말이다. 


진실인줄 알았던 자동기계가 실은 인간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것을 보면, 그런 일련의 진실처럼 포장된 사회의 전망이나 이데올로기또한 결국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겉껍데기에 불과함을, 그리고 그 안의 사람과 그 사람의 꿈또한 껍데기처럼 전락할 수 있음을 암시하지만, 그런 가련한 상황에서도 끝끝내 자신의 꿈을 자신의 우주를 탐험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 길고긴 사상의 허상위의 선로를 벗어났을때 진정 자신의 우주로 뻗어나갈 수 있는일인지도 모른다. 사실 <오몬 라>의 이야기는 거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표면적으로 시대와 국가, 사상에 대한 테두리를 구축하지만 그 속에서 한 개인이 유년에서부터 가져온 꿈을 통한 존재에 대한 질문, 밖과 안의 충돌과 혼란으로 이루어지는 이 이야기는 사회주의국가 뿐만 아니라 모든 사상과 국가에서의 역할과 꿈에 대한 일정한 합의와 어긋남을 통해 자신의 내면의 우주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 안에서 결국 외적으로는 승복한 듯 보이지만, 그 영혼은 결코 무릎꿇지않고 나아가 현실인지 환각인지 알 수 없는 곳에서의 그의 마지막 몸부림은, 끝끝내 그가 자신의 이상을 지배하려햇던 사상을 벗어나 영혼이 정말로 원했던, (그 사상의 지배에 있건 아니건 그 속에서 꿈꾸었던) 순수의 꿈을 계속 이어가려 하는지도 모르겠다. 현실과 꿈에 대한 열린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작가는, 한 시대와 사상, 국가가 어떻게 개인을 침범하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꿈꾸는 개인이 어떻게 다시 자신안의 우주로 뻗어나가게 되는지 그려낸다. (사실상 오몬의 외적, 내적 성공에 대한 여부를 결말에 이르러서도 가타부타 하긴 어렵지만) 이 작품은 확실히, 촘촘하게 시대를 그려내며, 유연하고 몽환적으로 개인을 들여다보는 수작임에 틀림없다. 


모두의 우주에서 시작해 자신의 우주로 이야기를 뻗어나가며 결국 한 개인적 우주의 팽창을 다루고 있는 이 책이 다시한번 우주와 인간에 대한 동시다발적 탐구열을 가져왔다. 문득,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하나의 우주를 이해하는 것과 같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포천(抱天) 1막
유승진 지음 / 애니북스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포천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풀어나가기 앞서, 

이 문장이 이 만화의 존재를 잘 말해주지 않을까 싶다.


"열 살 남짓한 네놈들도 알고싶어하는게 앞날이구나"


생귀(生鬼)라고도 불려지는, 이시경이라는 가상의 점술사를 조선시대에 만들어 놓음으로써 포천은 탄생한다. 훗날 대동여지도를 만들기위해서 백두산을 세번째 오르는 김정호가 비를 피해 들어갈 동굴에 글을 남기고, 흥선대원군을 비롯한 이토 히로부미와 박정희의 앞날을 아득히 예전에 이미 모두 예측한  이시경의 이야기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제 누이가 시집간덕에 얻어온 입막음 엿을 친구들과 나눠먹던 장돌이는 얼결에, 딸 하나 끼고선 옆에 있던 갓쓴 양반에게 엿점을 보게 된다. 허나 결과적으로 엿만 빼앗긴 꼴이 된 아이들은 울며 가버리고, 그 중에 남아서 말을 험악하게 했던 아이는 이 갓 쓴 '이시경'에게 붙들려 주막을 안내하게 된다. 국밥 두그릇 값대신 손님을 불러주겠다는 이시경은 손님들에게 점을 봐주고, 주막은 삽시간에 문전성시를 이룬다. 그 와중에 엿을 빼앗긴 장돌이의 고자질로 인해 으름장을 놓으려 온 장돌 아비를 통해 이시경은 장돌이의 대흉뿐만 아니라 호환으로 인해 상명(자식의 죽음)의 수를 읽는다. 이에 장돌 아비와 장돌이에게 일신의 안녕을 당부하러 아이 하나를 보내고, 이시경은 사람들에게 복채대신 산으로 돌을 가져오라고 이른다. 결국 장돌이의 누이는 호환을 당하고야 말지만, 이시경과 마을사람들은 벼락틀을 이용하고 서로 힘을 합해 겨우 호랑이를 잡고야 만다. 


하지만 범을 잡으려다 상처를 입은 이의 약초를 가지러 가는 이가 이시경의 딸인 초희를 대동하다가 산적들에게 붙잡히게되고, 20년후의 임진왜란을 예측하며 민심을 흉흉하게 한다는 혐의로 이시경은 관가에 붙잡히게 된다. 관가에서 함께 투옥되어 있던, 백성들을 수탈하는 벼슬아치를 죽인 사형수에게 호의를 베푼 것을 통해, 무사히 딸을 되찾고 여비까지 받게된 이시경은 딸을 데리고 다시 스승을 찾아 길을 떠난다.


사실, 중간마다, 과거 이시경이 점쳤던 일들의 결과들이라던가,(율곡 이이가 살던 집에 있는 화석정에 기름을 발라놓아 훗날 왜란때 임금의 배가 도하할 수 있게 도와주는 등), 실제로 고종의 즉위를 맞추어 벼슬을 지내기도 했던 관상가 박유붕 등 이시경이 죽고난 후의 이야기들도 (아마도 훗날을 예언하는 점술가 이시경에 대한 이야기의 특성을 고려한 구성이라고 생각된다) 중간에 포함되기 때문에 이야기를 이렇게 요약하긴 부족하지만, 어쨌든 작가가 그리고 있는 이시경의 '현재'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역사에 박식하진 않은지라, 어디까지가 완벽히 픽션이고 어디까지가 팩트인지는 정확히 가를 순 없지만 분명한건, 팩트의 뼈대를 갖고 기가막히게 이야기를 짜맞췄다는 점은 분명하다. 예언이라는 현 과학에 부합하지 않는 요소만 제외하고 본다면,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만큼 앞뒤가 촘촘하며, 그 재미가 어떤 옛날 이야기 듣는 것만 못지 않다. 


이 <포천>은 그림체가 꽤나 독특한데, 시대적 배경처럼 겉은 묵직한 테두리를 갖고, 그 선 또한 각진 모양이 많다. 그럼에도 왠지 굉장히 친숙한 분위기의 캐릭터를 그려넣은 것이 특징인데, 그것들이 이 허구적인 이야기들이 더 팩트와 구분되지 않게하는 요소가 되는 듯 싶기도 하다. 심플한 그림과 배경이지만, 캐릭터의 디테일과 그 입심을 표출하는 대사들이 시원시원하고 호탕하니, 보면서 왠지 무릎이라도 치고 싶어진다.


어쨌든, 점이라는 것, 하늘을 보고 사람의 앞날을 예측하는 주인공인 이시경이 펼쳐나갈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아마 이후에 펼쳐질 이야기들은 그것들과 더불어, 


 "사주불여관상 관상불여심상" 201p

사주는 관상보다 못하고, 또 관상이 아무리 좋아도 마음바탕보다 못하다.


이런 방향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지 않을까 싶다. 결국 점을 거스르는 이야기를 할 순 없을테지만, 그 속에 이런 역설적인 이야기 또한 내포하고 있지 않겠는가. 


조선시대뿐만 아닌, 근현대사까지 망라하는 그(이시경)의 점괘는 이 이야기의 흥미를 극도로 끌어올림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것은 곧 독자에게 쏠쏠한 재미를 줌 또한 분명하다. 덧붙여, 우리가 흔히 잘못쓰거나, 혹은 어원을 모를만한 단어들이 극중 너무도 자연스럽게 등장하여 배움의 기회까지 제공하니, 역사적 사건과 인물에 대한 관심은 물론, 우리말을 가르치는 역할도 덤으로 톡톡히 하고 있다.


 "회자정리 거자필반" 206p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고,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 


점술가도 결국 제 사주에 엮여있다고 하니, 이시경의 앞날은 과연 어떻게 펼쳐질까.

서양의 점술보다 더 흥미로운 우리의 점술에 관한 이야기가 바로 여기에 펼쳐져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만화 서유요원전 대당편 7 만화 서유요원전
모로호시 다이지로 지음 / 애니북스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얼마전 운좋게 다소 저렴한 가격에 만화책을 구입할 수 있는 곳에서, 그동안 몇번 이름만 들었던 만화책을 꽤 큰맘먹고 질렀다. 여느 애장판들 못지않은 두께를 먼저 자랑해 주시는 이 <서유요원전>을 일단은 집의 한쪽에 두었다가, 요 며칠 짧은 시간들 틈틈이 읽어내려가다가 드디어 현재까지 출간된 가장 최신간인 7권까지 다 읽었다.

 

첫눈에 보기엔 요즈음의 세련된 만화들과는 조금 다른, 어떻게 보면 '구닥다리' 처럼도 보여질만한 그림들의 만화인지라 초반엔 왠지모를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당연히, 역사를 소재로 한 대하만화들을 떠올리게 했는데, 생각해보니 나는 그런 만화들을 접한 기억이 거의 없었다. 게다가 대사도 많고, 가끔은 컷 구성도 오밀조밀 모여있어서 답답함을 느낄때도 있었으나, 그래도 이 만화는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은 확실히 있는듯 보인다.

 

우선은, 아무래도 서유기를 토대로 구성된 이야기다보니 내가 알고있는 '최소한의' 서유기를 생각하며 보았다 당연히 서유기에 대해선 각색된 것들 (영화 혹은 만화)만 알고있어서 제대로 된 판단은 힘들지만, 이 <서유요원전>은 어떤 부분에선 크게 원작의 설정을 바꾸면서도(손오공이 원숭이가 아니라는 초기 설정과 같은) 이야기의 큰 뼈대의 초점은 어긋나지 않으며, 그럼에도 요괴와 같은 환상적인 이야기들이 적절히 섞여있어, 원작과 비교하면서 보든, 혹은 아니든 양쪽 모두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만화인 듯 싶다.

 

만화치고는 대사가 많고, 실제적인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적지않은 부분을 포함하지만, 이야기 흐름을 적재적소에서 작게 모여줬다가 크게 풀어주고, 제때에 시원시원하게 달리고 때론 서정적이기도 한 구성으로 인해서 이 만화는 그 분량이 무색하게 읽혔다.

 

특히 이 7권에서는 천축으로 향하는 현장법사와 손오공, 팔계가 당군과 돌궐족 사이에 끼어 그 사면초가를 빠져나가는 장면이 아주 압권이었다. 만화로도 이정도인데, 이 부분이 혹 영상으로 만들어지면 얼마나 흥미진진한 장면이 될까 생각하면서 말이다. 이 현장법사와 오공이 관군을 포함한 여러 원수들에게 쫓기며 천축으로 향하는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제대로' 펼쳐지는 이 7권은, 사실 이전의 부분들 중에서 가장 스펙터클 하고 몰입감 있게 볼 수 있었다. 그 큰 맥락속에서 '인삼과'라는 어찌보면 섬뜩한 이야기의 마무리 또한 무척 인상깊다.

 

어쨌든 이전에 알고있던 서유기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거의 새로운 느낌의 이야기를 만든 이 <서유요원전>, 투박한 역사만화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8권도 기대가 되지만, 고우영 화백의 만화들도 새삼 눈독 들이고 있다. 기대를 훨씬 능가하는 만화가 그 만화 뿐만이 아니라 그 장르 전체를 나와 가깝게 하고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킬리만자로의 눈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덮고 표지를 바라봤다. 킬리만자로의 눈처럼, 큰 붓의 궤적처럼, 꼬아진 줄처럼도 보이는 그것은 분명 이 단편들이 그러하듯, 어느 꼭대기에서 매듭지어져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문득 해본다. 


여기에 수록된 단편들은 보편적으로 가장 우수한 평가를 받는 작품들이 편집자와 옮긴이의 재량껏 선택/배열되었다. 표제작인 ‘킬리만자로의 눈’이 제 죽음과 마주한다면, ‘인디언 마을’은 타인의 죽음과 마주한다. ‘알게되는 순간’이, ‘알았다고 생각하던 순간’으로 거슬러 가는 과정이다. 최후의 죽음에서 최초의 죽음을 더듬어가던 인물처럼, 배열은 죽음으로 연결된 최전방과 최후방의 꼭짓점 사이에서 의식의 흐름 그 자체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양쪽 세계의 죽음 사이에서, 살아있던 만물들의 우직한 ‘어떤 순간들’은 필연적이며 역설적으로 삶을 이야기한다.

 

'킬리만자로의 눈'의 해리처럼, 죽음의 경계에서 돌아본 삶은 마치 신기루 같다. 살아갈 날에 대한 맹목적 확신은 죽음을 거짓말로 받아들이게 하지만 그 경계 앞에 서는 순간, 흉내 낼 기회조차 허락되지 않을 지난 삶이 거짓말이 되고 오로지 남아있는 것, 죽음만이 참말이 된다. 

 

하지만 내가 느낀, 그(헤밍웨이)가 그려낸 죽음들은 여성의 세계를 파괴하고 나와 다시 여성의 세계로 들어가고야 마는 (대부분) 남성의 운명과, (거의) 필연적으로 다른 생명의 세계를 파괴하는 태도에 대한 대조로 확장되었다. ‘킬리만자로의 눈’의 해리와 ‘프랜시스 머콤버의 짧고 행복한 삶’ (이하 ‘프랜시스..’)의 머콤버는, 진작에 한 (자궁의) 세계를 빠져나오며 태아였던 자신과 죽음을 선언하지만 결국 같은 (여성의 품인) 세계로 돌아가고야 마는 (대부분의) 남성들이었다. 자신을 극복하거나 상대를 부정하려는 시도를 통해 그 세계의 균형을 깨트리고자 하는 그들은 결코 정복한 적도, 하나의 세계를 ‘창조할 수’도 없다. 죽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 세계를 벗어날 뿐이다. 이야기 사이의 공백을 재량껏 메우며 좀 더 되짚어 봤다. ‘인디언 마을’에서 최초와 최후의 죽음을 맞닥뜨리고 ‘어떤 일의 끝’에서 여성의 품에 들었다 벗어나지만 ‘사흘간의 바람’에서 결국 그것이 실패했음을 은연중 알고, ‘살인자들’에서는 스스로 자신을 가두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이를 보고 ‘가지 못할 길’을 통해 다시금 떠나, ‘이제 내 몸을 뉘며’에서 결혼이 모든 것을 고쳐줄 것이라고 믿는 이를 약간은 측은히 바라보며 ‘심장이 둘인 큰 강 1,2부’선 낚시를 즐길 수 있는 날이 앞으로도 많이 남았으리라 확신하지만 ‘온 땅의 눈’속에서 아내의 임신으로 인해 그런 날들을 약속할 수 없음을 알고 (닉 애덤스의 시리즈는 끝인듯 하지만 흐름을 이어가자면) ‘하얀 코끼리 같은 산’에서 위태로운 감정들을 건너기도 하며, ‘깨끗하고 불이 환한 곳’ 처럼 타인의 허무를 관조할 수 있게 된다. 결국은 ‘킬리만자로의 눈’이나 ‘프랜시스..’에서 처럼, 마지막 세계의 죽음을 지나서야 비로소 아무도 알 수 없을 자유로 향한다. 가장 멀리 왔을때, 가장 큰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처럼. 구원의 울타리를 원하면서도 또 벗어나고자 함은 자유를 갈망하는 모든 생명의 본능인걸까.

 

‘프랜시스..’를 다시 ‘심장이 두개인 큰 강’과 연결해보면, 끝과 끝의 연결을 통해 서로를 근사치의 힘으로 잡아당기는 낚시와 달리, 필연적으로 손을 벗어나 폭발적인 힘으로 찰나에 상대를 쓰러뜨리는 사냥의 차이를 본다. 사냥은 낚시처럼, 죽음 앞에서 서로의 생이 최대로 응축되어 발현될 순간이 생략되며 한 생이 한 생으로 밀려들어가는 것을 느낄 틈조차 없다. 죽음 바로 직전, 생명이 가장 강하게 빛을 발하는 그 순간이 부재한다. 낚시는 ‘당김’으로써 죽음을 만들지만, 사냥은 ‘밀어냄’으로써 죽음을 만든다. 거짓 같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순간에도 삶을 느끼는 방식과 삽시간에 삶과 죽음 모두 거짓 같은 일이 되어버리는 방식은 죽음과 자유의 연계를 생각게 한다.


생(生)이 사(死)로 넘어가는 순간이 어떻게 자유 혹은 파괴로 넘어가는가. 밀어내는 죽음은 자유를 느끼지 못한다. 서로의 생 간의 연결과 긴장이 없는 죽음은 그저 파괴로 전락할 뿐. 해리는 아내가 계속해서 그의 생을 바라고 당김으로써 평온한 자유로의 과정을 거쳤지만 머콤버의 삶은 그럴 기회가 없었다. 

 

해리가 [신의 집]에 도달하는 그 과정은, 거짓의 계단을 올라 이윽고 진실이라는 꼭대기에 닿고자하는, 헤밍웨이 자신처럼 거짓을 보태 진실을 그려나가는 창작자의 운명을 대변하는 걸까. 정말 ‘온 세상처럼 넓고, 크고, 높고, 햇빛을 받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하얗게 빛나는 킬리만자로의 평평한 꼭대기’는, 온갖 의미의 끝에서 무의미의 ‘낙원’을 발견한 자들에게만 허락된 곳은 아닐까. 무엇이 그들을 그곳으로 이끄는지, 얼어붙은 표범 시체를 보듯, 타자인 우리는 그저 올려다 볼 뿐이다. 해리의 죽음과 동시에 울먹이던 하이에나의 소리가 그녀를 깨웠음에도 이내 자신의 심장박동 소리 때문에 더 듣지 못하듯, 인간 또한 타자의 죽음으로 잠시 깨지만 이내 잊고 살아간다. 살아있는 자의 숙명이기라도 한 듯.

 

인간은 늘 단편의 죽음과 마주하고 언젠가 한번 장편의 죽음과 마주한다. 늘 한 순간의 소멸과 한 순간의 탄생으로 이루어진다. 수면이라는, 죽음과 가장 가까운 행위 전 하루를 돌아보듯 최후의 죽음은 삶을 돌아보게 할 것이다. 죽음이 가져다주는 것은 자유인가 소멸인가. 어쩌면 우리가 삶에서 갖는 많은 것들은 찰나의 빛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자유가 진정 발현되는 순간은 지난 시간을 추억하는 찰나의 순간인지도 모른다. 놓여진 것은 자유뿐인 그 죽음 직전의 순간, 지난 삶을 온전히 보낼 수 있는 그 순간이 진정 자유의 순간아닐까. 죽음 후의 삶을 결국 우리의 거짓말이 증명할 수 있다면 죽음 직전의 삶이야말로 우리의 진실이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자유의 순간인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