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 세상에 첫발을 내디딘 어른아이에게
김난도 지음 / 오우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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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다는것과, 어른 그자체를 다시금 고민하게 만들어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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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4페이지 미스터리
아오이 우에타카 지음, 현정수 옮김 / 포레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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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때문에 전개의 아쉬운점이 없진 않겠지만, 번뜩이는 기발함이 충분히 엿보인다. E북 매체엔 딱인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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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된 죽음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8
장-자크 피슈테르 지음, 최경란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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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우리 모두는 행하지 않은 살인, 아슬아슬하게 피한 살육,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파괴적 증오의 세계 속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구라도 한번은 들어봄직한 학교괴담. 만년 2등에 머무르는 학생이 1등을 살해한 이야기. 이것이 그렇게 보편화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이야기의 단순성 때문일까? 그 2등을 했던 학생의 감정에 대하여 우리가 최소한의 수긍을 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사회가 발달할 수록, 모두가 다 원하는 얻을 수 있는 것처럼 포장되기 싶다. 인간이 희소한 것에 가치를 두는지, 우연찮게 가치를 둔것이 희소한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모두가 동등하게 갖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을 이룰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2등을 하는 학생의 문제는 자기 자신이었을까. 아니면 1등을 하는 학생 때문일까. 둘 다 라고 생각되어진다. 한 사람의 삶이 바뀌는데에 타인의 존재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으니깐. 우린 결국 스스로를 책임져야만 하는 존재이지만, 그렇다고 그 영향을 준 타자에 대한 대응이 없어질 순 없다. 만약 그것이 마찰과 파괴라면, 우리는 증오의 감정을 갖게 된다. 그리고 으레 거기서 멈추며 살아간다. 하지만 증오의 감정이 그렇게 간단한게 아니라면, 영향이 컸다면, 혹은 그렇게 느꼈다면...? 자신의 삶이 지녀온 그림자의 발단은 타인에게서 찾은 존재, 에드워드가 니콜라에게 행하는 복수, 추리, 그 심리의 묘사가 바로 이 <편집된 죽음>의 이야기다.

 

사교능력이 좋진 않았지만, 절친한 친구 둘과 뜻을 모아 문학잡지를 펴냈던 에드워드는 재정적 어려움을 니콜라에게 의존함으로 인해 니콜라의 글을 싣게 되며 절친했던 친구 둘을 잃는다. 또한 니콜라를 위한 잡지가 되어가며 결국 발간은 중지된다. 애초부터 잡지에 대한 권한을 쥐고싶던 니콜라는 당연히 에드워드가 기댈 곳이 되지 못했고, 에드워드는 지하묘지에서 만나게 된 야스미나에게 마음을 열고 사랑했지만, 얼마 후 그녀는 죽음을 맞는다. 그것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며 자책과 절망으로 어긋나 살아온 30년의 세월, 하지만 콩쿠르 수상이 확정된 니콜라의 소설이 그 진실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에드워드는 이제 남은 니콜라의 삶을 편집할 것이다. 그 죽음 까지도.

 

그동안의 세월을 보상받기 위한, 에드워드의 복수는 유년시절에서부터, 그 현재까지의 심리, 그리고 책의 제작과정을 이용한 범행으로 '비블리오 미스테리'에 대한 놀라움을 가져다 주기에 충분하다. 특히, (현대와는 다르지만, 어쨌든) 이전 책의 제작과정을 잘 모르는 이에게, 책을 활용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흥미를 끌지만, 그것보다 더 두드러지는 점은, 바로 열등감과 배신감, 복수와 열등의식, 그리고 그럼에도 차분히 범행의 장치를 하나하나 완성해 나가는 에드워드의 심리에 대한 것일 것이다.

 

한 사람의 삶은 정말 한 사람에 의서 좌우되는 것일까? 삶에, 편집의 개념을 대입해본다면, 우리가 주어진 삶이 어떻게 편집 되는가는, 오로지 개인의 몫이기만한 것일까? 에드워드는 문학잡지에서 니콜라의 글을 편집함으로써 니콜라가 니콜라가 아닌 것으로 편집 하였다. 그리고 니콜라는 야스미나를 사지로 내몰면서 에드워드의 삶을 편집한 것에 다름없다.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을 만들어,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는 일, 이것은 분명 편집의 개념과도 멀지 않다. 그리고 그것은 책임의 여부를 떠나, 적어도 수긍의 여부는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사랑의 편집, 감정의 편집, 결국, 삶의 중요한, 누군가에게는 전부일 수도 있는 것에 대한 편집. 하나의, 한명의, 삶은 어쩌면 수많은 편집자를 거쳐 앞으로 나아가는지도 모른다. 스스로 가장 큰 권한을 갖고 있지만, 때론 누군가에 의해서 방향이 바뀌기도 하듯 말이다. 잘 아는 분야긴 하지만 일단 책의 마케팅을 예로 들기만 해봐도, 출간된 책의 판매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이지, 그 방향으로 안내한 이에게 책임을 돌릴지, 아니면 그 방향으로 진행시킨 이에게 돌릴지 판단은 제각각이 될 수 있다.

 

한 개인의 삶을, 당사자의 책임으로 모는 것은 쉽다. 누가 그 삶을 대신 살아줄 순 없으니깐. 그리고 대부분은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그러니, 리 삶의 편집자는 바로 우리 각자이다. 하지만 그게 다일까. 삶의 가장 큰 특성중에 하나일, 누군가 대신 살아줄 수 없다는 불변의 사실때문에, 결국 우리는 우리 각자의 생을 책임지지만, 그 사실이 그 주변을 지나쳤던 타인들의 면책을 말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 각자는 자신의 삶을 모두 책임질 필요가 (적어도 개념적으로는)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결코 누구의, 혹은 어떤 것의 영향도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없다는 것. (적어도 문명사회에 이르러서는) 삶의 책임은 결코 거울속에 비친 존재에만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자신의 방향을 침범한, 그런 무례한 외부의 편집자들에게 책임을 묻거나, 혹은 적어도 자신만을 탓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닐까.

 

모든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스스로를 강하게 할 지도 모른다. 게다가 미덕처럼도 보인다. 하지만 만약 그런 괴로움이 자신의 하루를 더디게 한다면, 조금은 그 짊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그래야 앞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조금은 더 가벼울지도 모르니깐.

 

어쩌다보니 에드워드를 옹호하는 꼴이 되어버렸지만, 살인을 어떻게든 옹호할 순 없는 것이다. 결국 인생은, 자신의 몫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다만, 누군가 책임에 대한 '실행'이 없다고 해도, 그 원래의 몫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것처럼, 우리는 거기에 대해 인정하고 이해하는 일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한 개인의 탓으로 여길 필요가 없듯이 말이다. 우선시되야 할 것은 '구분'이진 않을까.

 

한 사람의, 한번의 삶은 그 자신이라는 책임편집자와 더불어 사는동안 만나는 수많은 편집자들과 함께 한다. 에드워드와 니콜라는, 서로가 서로의 삶을 의식, 혹은 무의식 중에 편집해왔다. 그것이 그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이것만으로도 이 소설은 재미와 동시에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만나고 헤어지는 타인의 존재를 얼마만큼, 어떻게 인식할지에 따라 삶은 매 순간 방향을 달리할 것이다. 에드워드의 인식이 달랐다면 이야기도 분명 달랐을 테니깐.

 

자신에 대한 인식, 자존감, 나 자신의 삶에는 어떤 수많은 편집자들이 거쳐갔을까. 진심으로 고마운 이도, 미웠던 이의 이름도 하나씩 떠오른다. 그리고 나는, 누군가의 삶에 어떤 편집자로 기록되어 있을까 하는 물음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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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요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크레이그 톰슨 지음, 박여영 옮김 / 미메시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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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소위 '대야', '다라이'라고 부르던 갈색의 통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 목욕할 때가 있었다. 어쩌면 '본격 아파트'의 시대 이전, 골목 이곳저곳을 뛰어놀며 누비던 유년의 기억을 가진 이들은 비슷한 경험들을 갖고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해본다. 겨울철, 그 좁은 부엌 가운데서 그렇게 목욕을 하고 수건으로 젖은 몸을 닦아낼 때 스며드는 한기는, 본능적으로 가장 따뜻한 곳으로 나를 달려가게 했다. 어쩌면 물기가 채 닦아내지 않았음에도 견딜 수 없는 지금에서 도망치기 위해 달려야만 했던 곳, 그곳이 바로 크고 두껍고 무거운, 그리고 무엇보다 따뜻하고 부드러웠던 담요 속 이었다.

 

 

주인공 크레이그의 유년은 조금은 가련하게 펼쳐진다. 집에서는 권위적인 부모님에게, 학교에서는 친구들에게 따롤림을 당하기 일쑤다. 기독교를 믿는 집안, 그리고 똑같이 기독교를 믿고 그런 학교였음에도 아랑 곳 않는 친구들의 따돌림과 험상궂은 장난들은 가끔은 회의감을 들게 했다. 그런 그에게 집에서 동생과 보내는 시간은 어쩌면 오아시스와 같았을지도 모른다. 때로는 서로가 짖궃은 장난을 하기도 하지만, 무한한 상상력을 펼치며, 서로가 자신들만의 왕국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작은 방, 그 안에서도 침대 위의 담요 안과 밖은 작은 아이가 생의 전부처럼 느꼈을 매서운 바람들 속에서 따뜻한 안식처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런 그가 훌쩍 자라 레이나 라는 자신의 뮤즈를 만나고부터 삶은 변화한다. 너무나 과분해서 때로는 그녀와 함께하는게 비현실적이고, 죄악으로 느껴질 정도로, 아름다웠던 그녀의 존재는, 그에게 그때까지와는 다른 괴로운 마음과 고민들을 안겨줄때도 있지만, 그에게 새로운 담요로써 더할 나위 없는 따뜻한 안식처였다.

 

 

레이라 로 모습을 바꾼, 그 새로운 담요 안에서의 안정과, 더 깊이 그것을 끌어당기고자 하는 본능은, 그동안 줄곧 배워왔더 기독교의 배움과 때로는 배치되어, 그에게 많은 혼란을 주지만, 그는 무엇보다, 누군가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품 안에서 따뜻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그렇게 사랑했던 그녀가 주었던 가장 소중한 선물 또한 그녀가 손수 한땀한땀 만들었던 담요였으니깐.

 

 

방학동안 그녀와 함께 했던, 그동안 알지 못했던 눈부시고 따뜻했던 행복이었기에 더 짧았던 시간은 결국 지나가고, 너무도 멀리 떨어진 거리속에, 각자가 짊어져야할 각자의 삶의 무게로 인해 그들은 시간이 지나, 서로에게 안녕을 이야기 하게 된다. 더 이상 서로의 따뜻한 품을 담요로 두고 살아갈 수 만은 없었다. 그럼에도, 비극적인 결말의 희미한 온도가 될 수도 있었을 그때의 한 순간, 아주 중요한 것을 가르쳐준 서로의 존재는 시간이 지난 후에 온전하게 흘려보낼 수 있게 된다. 그럼으로써 생의 한순간을 따뜻하게 데워주었던 그 순간은 비로소, 그 소중함이 결코 식지 않은 따뜻한 담요의 품같은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있었다.

 

 

 

예술만화로 시리즈로 출간된 '담요'는 특히 크레이그가 레이나와 함께한 시간을 묘사하는 부분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실제 작가 자신의 이야기 였기 때문일까, 마치 레이나라는 그녀 삶 언젠가의 뮤즈에 대해서 헌사처럼도 여겨질 정도로 말이다. 자신의 뮤즈를 찾아낸다는 것, 그리고 그 존재가 비록 한때나마 자신의 삶을 따뜻하게 해주었던 사실에 대해 작가는 무척 아름답고, 섬세하게 추억한다. 레이나라는 뮤즈가 그 자신에게 선사했던 모든 아름다움에 대한 더할나위 없이 사랑스러운 묘사는, 그 청춘을 아름답게 칠해주었던 뮤즈라는 존재에 대해, 그리고 그렇게 누군가의 뮤즈가 될 수 있는 사실에 대해 행복한 상상, 혹은 추억할 수 있게 인도해준다.

 

 

누구나 크건 작건, 담요가 됐든 아니든 유년시절 혹은 학창시절, 이제는 아무것도 아닐 공포와 불안 속에서 자신을 감싸주었던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성인이라고 부를만한 나이가 되었을때에 그것은 아주 먼 얘기처럼 치부되어 버린다. 여전히 그런 따뜻한 곳을 그리워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하지만 그런 작은 기억의 따뜻함이, 마치 성냥팔이 소녀가 켜는 작은 성냥 하나의 따뜻함일지도 모르나, 그것을 계속 켜나가며 살아나가는 것이 삶의 모습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다 자란 후에 바라보는, 유년의, 학창시절의 따뜻한 품이 이제는 너무 작게만 보일지라도, 그것들이 삶의 한 순간을 온전히 버티게 해주었 듯, 우리가 그 약하고 불안했던 그 순간을 따뜻하게 돌아보는 것은 성인이 된 이에게 주는 따뜻한 담요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용된 이미지의 저작권은 작가와 출판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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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 1 -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 : 착수 미생 1
윤태호 글.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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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에서는 두 집을 지어야 완생 이라고 한단다. 두집을 짓지 못한 것은, 완생이 아닌 미생. 즉 아직 완전히 살지 못한 것이라 한다. 사는게 사는게 아니라는 흔한 넋두리가 얼핏 떠오른다. 그래서인지, 살아있지만 제대로 살아있지 못한 것을 비유한 그 바둑의 순리를 생각해보며 나를 돌아보니 적잖이 뜨끔거린다. 삶을 제대로 살아가기 위한 한 걸음이 한 수 한 수 바둑을 두듯 펼쳐지는 이야기는 어쩌면 특별한 환경, 특이한 과거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생각해보면 중요한 것은, 누군가와 크게 다를 것 없는 심정으로 시작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와 다르게 제대로 살겠다는, 흔하지만 중요한 그 마음가짐에서 부터.

 

 

1989년 세계 바둑대회의 유력한 우승후보였던 녜웨이핑과, 우승후보로 거론되지도 않았던 조훈현의 결승에 대한 이야기로 미생은 시작된다. 미생은 하나의 직장인 만화에서 차별화됨은 물론이거니와, 삶 전반을 통찰력 깊게 바라보는 만화인 것. 그래서 어쩌면, 당연히 미생이라는 지점에서 부터 시작하는, 장그래의 시작은 결연하지만, 쉽지는 않다. 아직은 떠오르지도 못한 잠룡이다. 그런 그가, 어떻게 자신을 누르고 있는 직장이라는, 세상이라는 수면위로 올라가 자태를 뽐낼 것인가. 펼쳐지는 그 한 수 한 수가 주옥같다. 그것은 장그래의 언행 뿐만이 아니라, 그와 함께하는 많은 이들의 모습에서 불쑥 드러난다.

 

 

어릴적 부터 바둑을 배워왔던 장그래는, 그 초반엔 마치 영재처럼 대접받지만, 언젠가부터 더이상 이길 수 없었고, 바둑이 자신의 평생의 업이 되는 것을 포기하고 만다. 그리고 지인에게 소개받은 두번째 직장은 종합상사. 자신에게는 오히려 그림자와 같은, 바둑이라는 수식어를 떼고서 백지의 상태로 부딪히는 승부를 시작한다.  하지만 그것은 정식 취업이 아닌, 인턴사원의 자격. 짧은 시간 직장 상사가 내리는 업무를 수행해야하며, 같은 인턴들과 함께 입사P.T를 준비하고, 또 한편으론 경쟁해야 하는 상황.

 

 

아직 적응하지 못한 채로 받아들이는 직장상사들의 소위 '갈굼' 또한 있긴 하지만, 그보다 아직 더 큰 문제는 동지이자 적인 동료 인턴들. 적당히 인상좋고, 자기 주장이 강하지 않으며, 그래서 함께 팀을 이룸에도 자신의 공을 더 부각시킬 수 있는 캐릭터로 보여지는 장그래는. 소위 '폭탄'으로 여겨지는데, 어쩌다보니 그는 그와 같은 '폭탄'으로 여겨지는 현장중심형 인턴과 한팀이 된다. 약간은 졸린 그 눈 처럼, 초반에는 끌려가는 듯한 장그래의 모습도, 서서히 바둑을 두던 때처럼, 상대방의 의중을 간파하고, 집중력을 끌어모으기 시작한다. 분명한 듯 때로는 흔들거리는 준비과정은 물론이고, 스릴과 긴장감과 있게 펼쳐진 입사 P.T는 장그래와 그의 동료들과의 중요한 시발점이자, 의미있는 한걸음이다. 준비과정 이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가장 첫번째 시험 관문과 같던 인턴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집을 짓기 시작하는 셈이다.

 

 

어떻게 보면, 바둑이 아닌, 직장생활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동안은 사실 바둑을 의식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장그래와 입사 동료, 그리고 사회라는 정글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이 행동 하나 하나가 마치 바둑과 같이 느껴진다. 특히 장그래가 온갖 시험에 부딪히고, 깨지고, 극복해나가는 것은, 그 자신이 바둑을 두던 때의 갈고 닦던 집중력과 통찰력 과 같은 바둑의 덕목들임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바둑과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음에도, 여전히 그 단단한 힘들이 아래에서 그를 지탱하고 있던 것. 중간중간 계속해서 녜웨이핑과 조훈현의 대국을 중개하는 것과 그에 대한 전문가의 분석, 그리고 그것과 같이 나란히 성장해 가는 장그래의 모습은 직장인이든, 직장인이 아니든,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누군가와 이해관계로 얽히며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주목할 수 밖에 없게끔 하나의 성장드라마로써의 역할에도 충실하다.

 

바둑에서 시작했지만, 바둑이 전면을 지배하지 않는, 하지만 끊임없이 바둑에서 길러질 수 있는 작은 덕목들이 직장, 사회 뿐만이 아니라 삶 전반에 펼쳐지는 모습은, 바둑을 모르는 이에게도 충분한 재미를, 바둑을 아는 이에겐 어마어마한 재미를...(줄것이라 본다.) 바둑을 모르면서도 참 재밌게 읽었다. 그럼에도, 바둑을 둘 줄 모른다는게 이렇게 후회스러웠던 때가 없던 것 같다. 바둑을 알면 얼마나 더 재밌을까 하는 기대감에서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바둑을 모르는 독자들도 즐기고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지.

 

 

장그래는, 그의 동료들은 어떻게 완생을 찾아갈까. 어쩌면 완생이 아니어도 좋을지도 모른다. 미완이지만, 그래서 흔들리고 때로는 퍼지지만 멈추지 않는 것이 생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언가 자신의 삶에 갈무리 할 수 있는 큰 의미를 깨달은 그 후를 완생이라 한다면, 장그래가 펼쳐나갈 완생의 모습과, 그 과정은 정말로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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