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시간안에 읽어버릴만큼 분량이 짧다. 보통 소설의 1/3분량정도. 물론 흡인력도 나름 좋은편이다. 하지만 히스 레저가 연기한 조커를 기억하고 있다면, 비교가 되는건 어쩔수 없다..

이 <조커>는 감옥에서 출소한 조커의 활약(이라고는 해도 사실 영화와 비교했을땐 그리 스펙터클한 느낌을 받긴 힘들다. 비슷한 세계에 있는 이들끼리의 대립의 비중이 사실 더 크기도 하고)과 제 자신의 야망을 위해 그를 따르기 시작하는 주인공 프로스트의 이야기를 다뤘다.

일단 조커가 말이 많다.. 영화를 생각해보면 조커가 말이 없는 편이라고 하기에도 그렇지만, 그의 말 한마디는 확실히 광기가 묻어있고, 그로인해 공포감을 자아낸다. 물론 그것은 각본과 별개로 히스 레저라는 배우가 만든 캐릭터겠지만, 그래서인지 책으로는 그만큼의 싸이코적인 느낌을 받긴 힘든것같다. 말이 많고 조금 괴짜같은 범죄자 정도의 느낌이다.

이 책의 화자는 조커가 아니라 그의 출소와 함께 그의 부하가 된 조니 프로스트라는 인물이다. 출연 비중이라면 조커가 조금 많은듯 하다. 전체적으로는 이 조니 프로스트라는 인물이 보는 조커의 모습이 중심이라서 조니 프로스트가 주인공이면서도 또 조커가 주인공이기도 한 구성이랄까.

그저 뒷골목의 평범한(?) 프로스트가 야망을 갖고 조커의 옆에서 조커처럼 되기를 꿈꾸는 모습은 짧은 분량안에서 비교적 섬세하게 그려지는데, 그만큼 인물의 전사보다는, 감정과 의식변화에 집중한다.

둘의 차이가 분명해질수록, 조커의 존재감은 커져간다. 일반인-조커가 아닌자와 조커의 차이를 통해 조커에 대해 더 묘사하려는 시도는 충분히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전략은 짧은 분량안에서도 주인공 프로스트와 조커를 대비시키며 둘 모두를 잘 표현해냈다. 생각해보면 놀란의 조커처럼, 여기서도 조커는 조연의 분장을 하고있는 주연이다.

결국 요약하자면, 조커가 되고싶은 이의 섬세한 감정묘사는 결국 조커와의 대비를 더 부각시키며 그 둘 모두를 잘 그려냈다, 라고 말할 수 있겠다.

추측컨데 나처럼 히스 레저-조커의 아우라를 떨치지 못했으면서 배트맨에 관한 그래픽노블의 경험이 거의 전무하다면, 줄곧 영화를 떠올릴 수밖에 없지않을까 생각한다.

다만, 그런 선입견을 제외하면 꽤 볼만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나는 적어도 현재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래픽노블이라면 어느정도 다 그림의 퀄리티가 보장되겠지만) 여기의 조커도 그림과 디테일한 묘사의 인물과 배경들을 보는것 만으로도 충분히 눈이 즐겁다.

(아 절대 북플 어플로는 밑줄긋기만하고 글 은 안써야겠다.. 너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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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 뜨거운 기억, 6월민주항쟁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가 작품으로 보여준 것이 바르고, 직접적인 설명이 그것을 뒷받침 하고 있을 때 비로소 그 작가를 완전히 지지하게 된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의 문제로 고통받으면서도 제 탓만 하고 사는 사람들 앞에서 20년 전에 이룩한 민주화를 찬양하는 것은 삶의 질과 민주주의가 아무런 연관을 갖지 않는다고 선전하는 것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중략)

그럼에도 작업을 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은 이 작품이 전국의 중고등학교에 배포되기 때문이었다. 똑같은 얘기라 하더라도 그 대상이 청소년이라면 하나마나한 소리도 꼭 해야 하는 소리가 된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 아무것도 아닌 걸 위해 수 많은 사람들- 역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 지금의 우리처럼 터무니없이 약하고 겁 많고 평범한 사람들- 이 피와 땀을 흘렸고 제 삶의 기회를 포기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지키는 것이 생각보다 무척 어려운 일이고 우리 민주주의가 안심할 정도로 튼튼하지도 않으며 끊임없이 강화하고 보완하려는 노력 없이는 어느날 사람 좋아 보이는 도둑놈에 의해 순식간에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는 얘기까지 하고 싶었다.

_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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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 학생. 그렇게 슬퍼만 하는 것도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슬퍼하는 게 아니라 두려워하는 겁니다.

뭐가 두렵단 건가?

끝이 없을 거 같아서요. 처음 그 사람들 만났을 때는 그 열정에 반해서, 그런 사람 들이라면.... 정말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조직이 깨지고 사람들이 잡혀가고 죽어갈 때도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젠 모르겠어요. 정말 이길 수 있는 건지.... 끝이 있긴 있는 건지.

물은 100도씨가 되면 끓는다네. 그래서 온도계를 넣어보면 불을 얼마나 더 때야 할지, 언제쯤 끓을지 알 수가 있지. 하지만 사람의 온도는 잴 수가 없어. 지금 몇도인지, 얼마나 더 불을 때야 하는지, 그래서 불을 때다가 지레 겁을 먹기도 하고 원래 안 끓는 거야 하며 포기를 하지. 하지만 사람도 100도씨가 되면 분명히 끓어. 그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네.

그렇다 해도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남지 않습니까? 선생님은 어떻게 수십년을 버텨내셨습니까?

나라고 왜 흔들리지 않았겠나. 다만 그럴 때마다 지금이 99도다.... 그렇게 믿어야지. 99도에서 그만두면 너무 아깝잖아. 허허허.

_91-9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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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페이지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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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 지금+여기 3
오찬호 지음 / 개마고원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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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간된지는 일년이 조금 넘었지만, 언젠가 이 책을 본 처음부터 줄곧 기억하고 있었다. 기가 막힌 제목이었지만, 분명 내가 찾던 종류의 책이 었다. 그리고 개인적인 독서침체기를 지나서 다시 책을 좀 읽기 시작하고, 나는 드디어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보다 사회는 더 곪아서 이젠 고름이 나오고 보기에도 끔찍한 지경에 이르렀다. (내게 그건 바로 '세월호' 였다. 하지만 이 글에는 글의 내용만을 가지고 짧게 서평을 쓰려고 한다. '세월호' 사고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정확히는, 이해는 되지만 도저히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반응들에 나는 너무 지쳤고, 질렸다.)

 

 이 책은, 'KTX 여승무원들의 철도공사 정규직 전환 요구' 문제에, 대한 이십대 (대학생)들의 차가운 반응에 당황한 한 대학강사로 부터 시작했다. 이십대들의 논리는 간단하다. '정규직은 비정규직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서 들어오는데, 어떻게 비정규직이 날로 정규직이 되려 하느냐' 다.

 

 그럴 듯 하다. 자본주의 사회는 모든 것을 개인의 능력에 따라 보상하니깐. 아니 그런데 좀 이상하다. 그래도 이십대라면, 비정규직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 거의 동일한 노동의 양에 대한 차별 보상, 이 갈수록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는 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해서 뭐라도 할말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왜 이십대들은 모든 사회적 문제를, 개인의 역량과 능력의 탓으로 치부해 버리게 되었는가. 한 십년 정도만 거슬러 올라가도, 비정규직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했을 것 같은 이십대들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그 거침없던 이십대들이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겁이 많아져서? 아니다. 이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들을 개인에게 전가시켰기 때문이다. 저자는 구조적인 문제, 사회적인 문제까지 개인의 능력 고하의 탓을 해버리는 이십대의 세태를 '자기계발' 즉 '힐링' 문화에서부터 찾는다.

 

과거에는 경영이라는 분야의 책들이 생산성 증대를 위한 논의나 마케팅 기법 등 전문서로서의 의미가 강했지만, 지금은 기업의 경영기법을 인간의 생애과정에다 적용해서 ˝노동자가 스스로에게 하는 최면적인 동기 부여를 위한 미사여구의 개발에 역량을 집중˝ 하는 내용이 사실상 전부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분류에 포함되지 않더라도, 결국에는 '스스로를 잘 관리하면 어떠어떠하게 살 수 있다' 는 식의 논의가 무수하다. (28p, 위의 밑줄은 필자가 임의로 표기함)

 

 나 또한 한때, 자기계발서를 좀 읽은적이 있다. 손에 꼽아봐도 너다섯권 정도긴 하지만 나는 분명 힘들때 그 책들을 찾았다. 내가 일반적인 구직자들과 조금 다른 길을 가고있어서 사실상 책에 나온 것들이 직접적으로 연관없음에도, 지금의 상태를 극복하고, 역전의 드라마가 '나'도 가능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누군가 말해주고 증명해주었으면 했기 때문이다. 그 응답으로, 그 책들은, 위의 말대로 온갖 미사여구로 최면을 걸었다. 그리고 최면은 마치, 우리가 앞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란 비참한 '희망' 을 심어주었다.  

 

 물론 나는 그들의 의도가 불순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사회가 정말로 공정한 경쟁을 하고 있고, 그에 따른 인간적이고 공정한 대우를 하고 있다면,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따뜻한 말들은 깊이 간직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들 '나름의 힐링' 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십대들이 처한 현실의 원인을 이십대 안으로 끌어들였다. '현실이 공정하지 않아도 잠깐 힐링하고 가면 되는것 아닌가? 그게 왜 이십대들이 사회문제를 자신의 탓으로 여기게 하는 것과 관계가 있나?' 라고 처음엔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나의 관심사는, 이미 경쟁사회에서 무감각해진 이십대가 어떻게 그렇게 자신들과 같은 처지의 이들을 비난하고, 자신도 통과할 확률이 미약한 그 좁은 문 안에서 권력을 부리는 자들을 옹호할 수 있을까 싶어서다. 나는 그 이유를, 그들이 언젠간 자신도 그 좁은문 안에 들어가 권력을 부리길 꿈꾸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자기계발 또는 힐링을 표방하는 책들이 사회적인 문제들을 간과하거나 혹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당장 사회적인 문제를 바꿀 수 없다면, 그렇게라도 개인이 자신 스스로를 추스려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자기계발_힐링의 무분별한 남용은 생각보다 큰 문제를 안고 있었다.

 

 다시 자기계발서가 어떻게 이십대를 지금처럼 바꾸는데 큰 역할을 했는지 이어서 얘기하겠다. 책에는 여러 자료와 근거들이 잘 나와있는데, 그것을 짧은 글에 선뜻 요약하기가 쉽진 않다. 나또한 책을 읽는 동안 저자의 주장과 충돌하는 지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차근차근 논리적인 설명과, 근거와, 반박의 반박을 통해서 해결된다. 그 구체적인 내용들은 이 허접한 서평보다는 책을 일독하길 권한다. 다만, 내가 찾은, 내가 찾던 해답은 (의외로 책에서도 길지않게 정리해놓은) 아래와 같다. 물론 이것은 일부의 내용이다. 저자는 이것을, 자기계발의 시대가 만들어 내고 있는 이십대의 고유한 특성 이라고 설명했지만, 이 짧은 내용은 자기계발이 이십대에게 미치는 영향을 나름 간결하고 순차적으로 설명한다.  

 

 

1.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지기

 - 자기계발의 논리로 무장할 때,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시중에 출간된 자기계발서들은 대다수가 자신의 고통은 스스로 이겨내야 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자신의 고통을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과연 남의 고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남의 고통까지 신경쓸 생각하지 못할 뿐더러, 타인의 고통과 극복을 그 자신 스스로의 몫으로만 치부하니 딱히 공감할 필요성을 못느끼며, 자연스럽게 공감능력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2. 편견의 확대 재생산

 - 고통에 대한 공감력이 떨어지면 필연적으로 특정 대상에 대한 기존의 편견이 더 강화된다. 기실 '공감' 이란 단지 함께 느낀다는 점에서 중요한게 아니라, 한 개인이 갖고 있는 고정관념의 오류를 발견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권장된다. 타인의 상황을 깊고 넓게 이해할 수록 타인의 상황을 이렇다 저렇다 재단할 수 없는 이유를 발견하게 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헌데, 공감력이 떨어지니, 타인의 상황을 이해할 생각도 전에 이렇다 저렇다 자신의 (세뇌된) 기준으로 이렇다 저렇다 판단한다. 자기계발서라면 대부분이 패자에 대한 편견을 강화해버리는 것이다.

 

3. 주어진 기존의 길만 맹목적으로 따라가기

 -  패자에 대한 편견의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 두려움이 클수록 '안전한 길'을 선택하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그리고 그 외에 길에 대해서는 부정적 편견을 생산하며, 다름에 대한 거부가 날카로워 진다.

 

(위의 내용들은 거의 대부분 책의 내용을 인용하다시피 해서  적었다.)

 

 '이러한 다름에 대한 거부감은 이십대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옥죈다. 자기 스스로 '달라진다'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뜻이며, 그만큼 정해진 '레일' 위에 안착하겠다는 의지를 굳건히 한다. 이런 경향 자체가 시대적 특징이 되어 '당연한 것' '어쩔 수 없는 것'으로 개인에게 강요된다. 그 결과 개인은 앞뒤 가리지 않고 레일 위를 달리기 위해 해야 될 자기계발을 찾고 있으며, 또 그런 자기계발의 일부 성공적인 결과를 보고 부러워하면서 더 적극적인 수행을 다짐하게 된다. 결국 이 모든 과정은 순환적으로 이어지고, 이로 말미암아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지고, 그로 인해 고정관념이 강화되는 현상은 더 가속된다. 이런 환경에 노출된 이십대는 당연히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이 '경직'될 수 밖에 없다. (98p)

 

 이 책은 나아가, 대학가에 팽배한 대학 서열화에 대해 파헤친다. 자기계발 시대에 대학생들이 스스로를 피해자이자 가해자로 만드는 이 폐단에 대해 진단한다. (그리고 그 노력은 최근에 새롭게 <진격의 대학교>라는 책으로 탄생했다.) 어쨌든, 책 내용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줄이겠다.

 

'희망', 그건 개인에게 강요할 것이 아니라 사회의 모순을 해결함으로써 자연스레 생겨나도록 해야 한다. 사회가 진정 공정해지면 절로 희망이 부풀기 마련이다. 기회의 균등은 그럴 때 '실재' 할 수 있는 것이다. (214p)

 

리뷰를 쓰면서, 이 책에 언급된 책 중에 하나가, 나와 약간 인연이 좀 있다는 생각이 났다. 행사에 참여했던 책도 있으며, 또 그와 관련한 이들도 떠오른다. 이 책이, 이 글이 그들에게 상처를 주진 않았으면 한다. 나는 그들이 가진 삶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하진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저자의 의견에 동의할 것이며, 우리가 어떤 의도를 갖고 있었건 간에 이제는, 우리가 무분별하게 남용하던 힐링과 희망이 어떻게 달라져야하는지 함께 고민해야만 한다고 말하고 싶다. 

 

 

 

덧, 최근의 예비군 총기난사 사건에 대한 네티즌 들의 적지않은 반응이 '작정하고 덤비는 놈을 어떻게 막냐' 였다. 이는 마치 인생의 한 논리처럼 보이지만, 나아가 생각해보면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씌우고, 그것을 둘러싼 사회와 시스템은 할것을 다한것처럼 여기게 한다. 일차적으로 개인의 고의적이고 돌발적인 행동이 원인이라지만,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대비해야하는 시스템은 분명 허술했고, 그것이 사고를 키웠다. 모든 것을 개인의 탓으로 돌려버리는게, 모든 것을 사회, 정부, 기관의 탓으로 하는 것보다 나을까? 더 책임있어 보일까? 좋은 시스템이 구축되어있었다고 해도 만약 사고가 난다면 문제점을 진단하고 보완해야 한다. 사회가 만들어내는 문제를 계속해서 개인에게 모두 책임전가 한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비슷한 사고들을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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