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抱天) 1막
유승진 지음 / 애니북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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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풀어나가기 앞서, 

이 문장이 이 만화의 존재를 잘 말해주지 않을까 싶다.


"열 살 남짓한 네놈들도 알고싶어하는게 앞날이구나"


생귀(生鬼)라고도 불려지는, 이시경이라는 가상의 점술사를 조선시대에 만들어 놓음으로써 포천은 탄생한다. 훗날 대동여지도를 만들기위해서 백두산을 세번째 오르는 김정호가 비를 피해 들어갈 동굴에 글을 남기고, 흥선대원군을 비롯한 이토 히로부미와 박정희의 앞날을 아득히 예전에 이미 모두 예측한  이시경의 이야기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제 누이가 시집간덕에 얻어온 입막음 엿을 친구들과 나눠먹던 장돌이는 얼결에, 딸 하나 끼고선 옆에 있던 갓쓴 양반에게 엿점을 보게 된다. 허나 결과적으로 엿만 빼앗긴 꼴이 된 아이들은 울며 가버리고, 그 중에 남아서 말을 험악하게 했던 아이는 이 갓 쓴 '이시경'에게 붙들려 주막을 안내하게 된다. 국밥 두그릇 값대신 손님을 불러주겠다는 이시경은 손님들에게 점을 봐주고, 주막은 삽시간에 문전성시를 이룬다. 그 와중에 엿을 빼앗긴 장돌이의 고자질로 인해 으름장을 놓으려 온 장돌 아비를 통해 이시경은 장돌이의 대흉뿐만 아니라 호환으로 인해 상명(자식의 죽음)의 수를 읽는다. 이에 장돌 아비와 장돌이에게 일신의 안녕을 당부하러 아이 하나를 보내고, 이시경은 사람들에게 복채대신 산으로 돌을 가져오라고 이른다. 결국 장돌이의 누이는 호환을 당하고야 말지만, 이시경과 마을사람들은 벼락틀을 이용하고 서로 힘을 합해 겨우 호랑이를 잡고야 만다. 


하지만 범을 잡으려다 상처를 입은 이의 약초를 가지러 가는 이가 이시경의 딸인 초희를 대동하다가 산적들에게 붙잡히게되고, 20년후의 임진왜란을 예측하며 민심을 흉흉하게 한다는 혐의로 이시경은 관가에 붙잡히게 된다. 관가에서 함께 투옥되어 있던, 백성들을 수탈하는 벼슬아치를 죽인 사형수에게 호의를 베푼 것을 통해, 무사히 딸을 되찾고 여비까지 받게된 이시경은 딸을 데리고 다시 스승을 찾아 길을 떠난다.


사실, 중간마다, 과거 이시경이 점쳤던 일들의 결과들이라던가,(율곡 이이가 살던 집에 있는 화석정에 기름을 발라놓아 훗날 왜란때 임금의 배가 도하할 수 있게 도와주는 등), 실제로 고종의 즉위를 맞추어 벼슬을 지내기도 했던 관상가 박유붕 등 이시경이 죽고난 후의 이야기들도 (아마도 훗날을 예언하는 점술가 이시경에 대한 이야기의 특성을 고려한 구성이라고 생각된다) 중간에 포함되기 때문에 이야기를 이렇게 요약하긴 부족하지만, 어쨌든 작가가 그리고 있는 이시경의 '현재'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역사에 박식하진 않은지라, 어디까지가 완벽히 픽션이고 어디까지가 팩트인지는 정확히 가를 순 없지만 분명한건, 팩트의 뼈대를 갖고 기가막히게 이야기를 짜맞췄다는 점은 분명하다. 예언이라는 현 과학에 부합하지 않는 요소만 제외하고 본다면,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만큼 앞뒤가 촘촘하며, 그 재미가 어떤 옛날 이야기 듣는 것만 못지 않다. 


이 <포천>은 그림체가 꽤나 독특한데, 시대적 배경처럼 겉은 묵직한 테두리를 갖고, 그 선 또한 각진 모양이 많다. 그럼에도 왠지 굉장히 친숙한 분위기의 캐릭터를 그려넣은 것이 특징인데, 그것들이 이 허구적인 이야기들이 더 팩트와 구분되지 않게하는 요소가 되는 듯 싶기도 하다. 심플한 그림과 배경이지만, 캐릭터의 디테일과 그 입심을 표출하는 대사들이 시원시원하고 호탕하니, 보면서 왠지 무릎이라도 치고 싶어진다.


어쨌든, 점이라는 것, 하늘을 보고 사람의 앞날을 예측하는 주인공인 이시경이 펼쳐나갈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아마 이후에 펼쳐질 이야기들은 그것들과 더불어, 


 "사주불여관상 관상불여심상" 201p

사주는 관상보다 못하고, 또 관상이 아무리 좋아도 마음바탕보다 못하다.


이런 방향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지 않을까 싶다. 결국 점을 거스르는 이야기를 할 순 없을테지만, 그 속에 이런 역설적인 이야기 또한 내포하고 있지 않겠는가. 


조선시대뿐만 아닌, 근현대사까지 망라하는 그(이시경)의 점괘는 이 이야기의 흥미를 극도로 끌어올림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것은 곧 독자에게 쏠쏠한 재미를 줌 또한 분명하다. 덧붙여, 우리가 흔히 잘못쓰거나, 혹은 어원을 모를만한 단어들이 극중 너무도 자연스럽게 등장하여 배움의 기회까지 제공하니, 역사적 사건과 인물에 대한 관심은 물론, 우리말을 가르치는 역할도 덤으로 톡톡히 하고 있다.


 "회자정리 거자필반" 206p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고,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 


점술가도 결국 제 사주에 엮여있다고 하니, 이시경의 앞날은 과연 어떻게 펼쳐질까.

서양의 점술보다 더 흥미로운 우리의 점술에 관한 이야기가 바로 여기에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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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서유요원전 대당편 7 만화 서유요원전
모로호시 다이지로 지음 / 애니북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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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운좋게 다소 저렴한 가격에 만화책을 구입할 수 있는 곳에서, 그동안 몇번 이름만 들었던 만화책을 꽤 큰맘먹고 질렀다. 여느 애장판들 못지않은 두께를 먼저 자랑해 주시는 이 <서유요원전>을 일단은 집의 한쪽에 두었다가, 요 며칠 짧은 시간들 틈틈이 읽어내려가다가 드디어 현재까지 출간된 가장 최신간인 7권까지 다 읽었다.

 

첫눈에 보기엔 요즈음의 세련된 만화들과는 조금 다른, 어떻게 보면 '구닥다리' 처럼도 보여질만한 그림들의 만화인지라 초반엔 왠지모를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당연히, 역사를 소재로 한 대하만화들을 떠올리게 했는데, 생각해보니 나는 그런 만화들을 접한 기억이 거의 없었다. 게다가 대사도 많고, 가끔은 컷 구성도 오밀조밀 모여있어서 답답함을 느낄때도 있었으나, 그래도 이 만화는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은 확실히 있는듯 보인다.

 

우선은, 아무래도 서유기를 토대로 구성된 이야기다보니 내가 알고있는 '최소한의' 서유기를 생각하며 보았다 당연히 서유기에 대해선 각색된 것들 (영화 혹은 만화)만 알고있어서 제대로 된 판단은 힘들지만, 이 <서유요원전>은 어떤 부분에선 크게 원작의 설정을 바꾸면서도(손오공이 원숭이가 아니라는 초기 설정과 같은) 이야기의 큰 뼈대의 초점은 어긋나지 않으며, 그럼에도 요괴와 같은 환상적인 이야기들이 적절히 섞여있어, 원작과 비교하면서 보든, 혹은 아니든 양쪽 모두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만화인 듯 싶다.

 

만화치고는 대사가 많고, 실제적인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적지않은 부분을 포함하지만, 이야기 흐름을 적재적소에서 작게 모여줬다가 크게 풀어주고, 제때에 시원시원하게 달리고 때론 서정적이기도 한 구성으로 인해서 이 만화는 그 분량이 무색하게 읽혔다.

 

특히 이 7권에서는 천축으로 향하는 현장법사와 손오공, 팔계가 당군과 돌궐족 사이에 끼어 그 사면초가를 빠져나가는 장면이 아주 압권이었다. 만화로도 이정도인데, 이 부분이 혹 영상으로 만들어지면 얼마나 흥미진진한 장면이 될까 생각하면서 말이다. 이 현장법사와 오공이 관군을 포함한 여러 원수들에게 쫓기며 천축으로 향하는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제대로' 펼쳐지는 이 7권은, 사실 이전의 부분들 중에서 가장 스펙터클 하고 몰입감 있게 볼 수 있었다. 그 큰 맥락속에서 '인삼과'라는 어찌보면 섬뜩한 이야기의 마무리 또한 무척 인상깊다.

 

어쨌든 이전에 알고있던 서유기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거의 새로운 느낌의 이야기를 만든 이 <서유요원전>, 투박한 역사만화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8권도 기대가 되지만, 고우영 화백의 만화들도 새삼 눈독 들이고 있다. 기대를 훨씬 능가하는 만화가 그 만화 뿐만이 아니라 그 장르 전체를 나와 가깝게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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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의 눈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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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표지를 바라봤다. 킬리만자로의 눈처럼, 큰 붓의 궤적처럼, 꼬아진 줄처럼도 보이는 그것은 분명 이 단편들이 그러하듯, 어느 꼭대기에서 매듭지어져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문득 해본다. 


여기에 수록된 단편들은 보편적으로 가장 우수한 평가를 받는 작품들이 편집자와 옮긴이의 재량껏 선택/배열되었다. 표제작인 ‘킬리만자로의 눈’이 제 죽음과 마주한다면, ‘인디언 마을’은 타인의 죽음과 마주한다. ‘알게되는 순간’이, ‘알았다고 생각하던 순간’으로 거슬러 가는 과정이다. 최후의 죽음에서 최초의 죽음을 더듬어가던 인물처럼, 배열은 죽음으로 연결된 최전방과 최후방의 꼭짓점 사이에서 의식의 흐름 그 자체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양쪽 세계의 죽음 사이에서, 살아있던 만물들의 우직한 ‘어떤 순간들’은 필연적이며 역설적으로 삶을 이야기한다.

 

'킬리만자로의 눈'의 해리처럼, 죽음의 경계에서 돌아본 삶은 마치 신기루 같다. 살아갈 날에 대한 맹목적 확신은 죽음을 거짓말로 받아들이게 하지만 그 경계 앞에 서는 순간, 흉내 낼 기회조차 허락되지 않을 지난 삶이 거짓말이 되고 오로지 남아있는 것, 죽음만이 참말이 된다. 

 

하지만 내가 느낀, 그(헤밍웨이)가 그려낸 죽음들은 여성의 세계를 파괴하고 나와 다시 여성의 세계로 들어가고야 마는 (대부분) 남성의 운명과, (거의) 필연적으로 다른 생명의 세계를 파괴하는 태도에 대한 대조로 확장되었다. ‘킬리만자로의 눈’의 해리와 ‘프랜시스 머콤버의 짧고 행복한 삶’ (이하 ‘프랜시스..’)의 머콤버는, 진작에 한 (자궁의) 세계를 빠져나오며 태아였던 자신과 죽음을 선언하지만 결국 같은 (여성의 품인) 세계로 돌아가고야 마는 (대부분의) 남성들이었다. 자신을 극복하거나 상대를 부정하려는 시도를 통해 그 세계의 균형을 깨트리고자 하는 그들은 결코 정복한 적도, 하나의 세계를 ‘창조할 수’도 없다. 죽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 세계를 벗어날 뿐이다. 이야기 사이의 공백을 재량껏 메우며 좀 더 되짚어 봤다. ‘인디언 마을’에서 최초와 최후의 죽음을 맞닥뜨리고 ‘어떤 일의 끝’에서 여성의 품에 들었다 벗어나지만 ‘사흘간의 바람’에서 결국 그것이 실패했음을 은연중 알고, ‘살인자들’에서는 스스로 자신을 가두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이를 보고 ‘가지 못할 길’을 통해 다시금 떠나, ‘이제 내 몸을 뉘며’에서 결혼이 모든 것을 고쳐줄 것이라고 믿는 이를 약간은 측은히 바라보며 ‘심장이 둘인 큰 강 1,2부’선 낚시를 즐길 수 있는 날이 앞으로도 많이 남았으리라 확신하지만 ‘온 땅의 눈’속에서 아내의 임신으로 인해 그런 날들을 약속할 수 없음을 알고 (닉 애덤스의 시리즈는 끝인듯 하지만 흐름을 이어가자면) ‘하얀 코끼리 같은 산’에서 위태로운 감정들을 건너기도 하며, ‘깨끗하고 불이 환한 곳’ 처럼 타인의 허무를 관조할 수 있게 된다. 결국은 ‘킬리만자로의 눈’이나 ‘프랜시스..’에서 처럼, 마지막 세계의 죽음을 지나서야 비로소 아무도 알 수 없을 자유로 향한다. 가장 멀리 왔을때, 가장 큰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처럼. 구원의 울타리를 원하면서도 또 벗어나고자 함은 자유를 갈망하는 모든 생명의 본능인걸까.

 

‘프랜시스..’를 다시 ‘심장이 두개인 큰 강’과 연결해보면, 끝과 끝의 연결을 통해 서로를 근사치의 힘으로 잡아당기는 낚시와 달리, 필연적으로 손을 벗어나 폭발적인 힘으로 찰나에 상대를 쓰러뜨리는 사냥의 차이를 본다. 사냥은 낚시처럼, 죽음 앞에서 서로의 생이 최대로 응축되어 발현될 순간이 생략되며 한 생이 한 생으로 밀려들어가는 것을 느낄 틈조차 없다. 죽음 바로 직전, 생명이 가장 강하게 빛을 발하는 그 순간이 부재한다. 낚시는 ‘당김’으로써 죽음을 만들지만, 사냥은 ‘밀어냄’으로써 죽음을 만든다. 거짓 같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순간에도 삶을 느끼는 방식과 삽시간에 삶과 죽음 모두 거짓 같은 일이 되어버리는 방식은 죽음과 자유의 연계를 생각게 한다.


생(生)이 사(死)로 넘어가는 순간이 어떻게 자유 혹은 파괴로 넘어가는가. 밀어내는 죽음은 자유를 느끼지 못한다. 서로의 생 간의 연결과 긴장이 없는 죽음은 그저 파괴로 전락할 뿐. 해리는 아내가 계속해서 그의 생을 바라고 당김으로써 평온한 자유로의 과정을 거쳤지만 머콤버의 삶은 그럴 기회가 없었다. 

 

해리가 [신의 집]에 도달하는 그 과정은, 거짓의 계단을 올라 이윽고 진실이라는 꼭대기에 닿고자하는, 헤밍웨이 자신처럼 거짓을 보태 진실을 그려나가는 창작자의 운명을 대변하는 걸까. 정말 ‘온 세상처럼 넓고, 크고, 높고, 햇빛을 받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하얗게 빛나는 킬리만자로의 평평한 꼭대기’는, 온갖 의미의 끝에서 무의미의 ‘낙원’을 발견한 자들에게만 허락된 곳은 아닐까. 무엇이 그들을 그곳으로 이끄는지, 얼어붙은 표범 시체를 보듯, 타자인 우리는 그저 올려다 볼 뿐이다. 해리의 죽음과 동시에 울먹이던 하이에나의 소리가 그녀를 깨웠음에도 이내 자신의 심장박동 소리 때문에 더 듣지 못하듯, 인간 또한 타자의 죽음으로 잠시 깨지만 이내 잊고 살아간다. 살아있는 자의 숙명이기라도 한 듯.

 

인간은 늘 단편의 죽음과 마주하고 언젠가 한번 장편의 죽음과 마주한다. 늘 한 순간의 소멸과 한 순간의 탄생으로 이루어진다. 수면이라는, 죽음과 가장 가까운 행위 전 하루를 돌아보듯 최후의 죽음은 삶을 돌아보게 할 것이다. 죽음이 가져다주는 것은 자유인가 소멸인가. 어쩌면 우리가 삶에서 갖는 많은 것들은 찰나의 빛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자유가 진정 발현되는 순간은 지난 시간을 추억하는 찰나의 순간인지도 모른다. 놓여진 것은 자유뿐인 그 죽음 직전의 순간, 지난 삶을 온전히 보낼 수 있는 그 순간이 진정 자유의 순간아닐까. 죽음 후의 삶을 결국 우리의 거짓말이 증명할 수 있다면 죽음 직전의 삶이야말로 우리의 진실이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자유의 순간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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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바다를 너와 함께 걷고 싶다 - 매물도, 섬놀이
최화성 지음 / 북노마드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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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하나는 좋다. (실제 표지색은 사진보다 당연히 좀 더 진하다) 사진도 좋고, 글자 폰트도 좋고, 책의 질감도 좋다. 헌데, 조금 난감한 부분이 있었다. 바로 책의 제목이다. 얼마전 짧은 여행길에 이 책을 들고갔더니, 친구가 내게 (사실 어지간하면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만한) '버스커 버스커'가 먼저인지 이 책이 먼저인지 물었다. 이 책이 그 이후에 나온거야. 라고 얘기했다. 솔직히 말해, 그닥 잘 지어진 제목이라는 생각까진 안들었다. 왜일까. 별 생각없이 '베낀것' 이라고 얘기를 하지 않아도 (버스커 버스커가 불러서 그 문장이 유명해진 것이지 어차피 거기서 처음 나온것은 당연 아닐테니깐) 그냥 내 마음엔 똑같은 이 제목이 왠지 성의 없어 보였다랄까. (책을 출간하는 입장에선 얼마나 고민이 있었겠냐만은) 그런데 지하철 같은 곳에서 책을 읽다 덮다 계속계속 제목을 한번씩 바라보니, 왜 내 마음에 안들었는지 알겠다. 내 생각에, 아니 내 입장에선, "이 바다를 '그들과 함께' 걷고 싶다." 가 이 책에 더 어울렸으니깐! 정말 이런 사람들 곁에 잠시 있는 것만으로도 놓쳤던 주변, 자연속 행복들을 다시금 들여다 볼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만큼,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너무나 마음이 푸근해졌으니깐. 최화정 작가가 만들어낸 두명의 시인과 한명의 소설가가 함께한 매물도 3박 4일은, 읽기에는 3시간 4분 처럼 읽히고, 음미하기엔 3년 40일 같았다. 책의 제목은 아무래도 독자에게 권하는, 희망하는 어투처럼 느껴지지만, 독자들은 분명 나와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이 바다를 그들과 함께 걷고싶다" 고.

 

"함께하는 사람의 반짝 빛나는 에너지에 물들 수 있다는 건 즐거움이다. 나는 그들의 에너지에 마음껏 물들기로 했다."

 

이야기는 어렵지 않다. 오토바이로 지구 열바퀴 되는 거리를 여행다닌 지리산 거주민 이원규 시인이나, 자연 하나 하나를 자식처럼 소중히 여기는 또 다른 지리산 거주민 박남준 시인, 그리고 소설가보다는 미스터가 어울릴 법한 소설계의 마도로스 한창훈 작가가, 최화성 작가를 중심으로 매물도에서 3박 4일 동안 봄나들이 하는 이야기가 이 책의 전부다.

 

"근데 뭔 짓을 하러 섬까지 가라는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별 그저그런 여행에세이 정도로 보았다간, 마음앓이를 할지도 모를 정도다. 무덤가에 앉았다 갈때도 이름모를 무덤 주인에게 인사를 잊지 않는, 달래를 켄 자리에 포자가 다시 생명을 틔울 수 있도록 다듬어주고 떠나는, 먹는 순간 까지도 그 (물고기의) 형태를 유지해서 죽은 것에 대한 예의를 지켜주려는 그런 그들의 여행을 따라가다보면, 그들의 삶을 따라가게 된다. 그리고 삶을 따라가다보면 정말로 우리가 엄한데에 관심두고 살아가는것 아닌지 문득 질문던지게 된다. 희극파트를 담당한 미스터 한(한창훈 작가)를 필두로 어설프게(박남준 시인) 혹은 기괴하게 (이원규 시인) 풀어놓는 다양한 이야기들은 가슴에 '지잉' 하고 맺혔다가도 이내 '파핫' 이라는 탄성을 내지르게 하는데, 따뜻한 태도가 위트와 만나면 정말 행복한 웃음이 터져나오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중간에 짧게 실린 그들 각자의 '자연레시피' 는 그들이 그 재료들-자연들을 음식으로 만들어 먹는 그 순간까지도 '각자의 스타일대로' 얼마나 많은 자연과 생명을 배려하는지 느껴지기에 무척이나 독특하고 인상깊은 레시피로 기억되리라.

 

"그들의 이야기는 순식간에 깊숙이 파고들지만 그 진지함에 오래 머물지 않고 경쾌한 웃음과 함께 튕겨져 나온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뭔가 여운이 남는, 한 편의 시를 읽듯, 한 편의 소설을 읽듯, 나는 그들을 읽고 있다. 매물도, 당금 마을, 구판장에서."

 

그들이 풀어놓는 이야기, 그들이 지나가는 이야기, 그들의 짧은 3박 4일의 이야기가 어느 긴 여행이야기 못지않게 가슴에 남는다. 엎드려 책을 읽다가 펼쳐놓고 문득 잠이 들랑 말랑 했더니, 책에서 달래냄새와 바다냄새가 나는 것을 느낀 것도 같다. 무엇보다 잊을 수 없음은, 그들이 풍겼던 사람 내음이 아니려나. 아, 최화정 작가 참 부럽다. 정말로. (제목 별로란 말도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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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게모노 2
야마다 요시히로 지음, 김완 옮김 / 애니북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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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는 놈(효게모노)이 더 웃기게 돌아왔다! 명물욕의 화신 사스케의 개그는 더욱 진보하고, 전국시대 일본의 혼란은 본격적으로 묵직해지기 시작하는데..!!



무인에 관한 명예와 명물(돈으로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지금 같은 의미가 아닌, 정말로 못구하는)에 대한 열망 사이에서 늘 고민하는, 이성은 무인의 길을  걷는 것이 좋겠다 하지만 늘 명물욕에 대한 본능이 이기고야마는 이 후루타 사스케의 이야기가 2권 째로 접어들었다. 1권에서는 혼란스런 전국시대에서의 오다 노부나가의 호탕한 모습들과 그에 따른 사스케의 출세욕과 명물욕의 고민, 그리고 수면아래에서 꾸물거리며 올라오는 반란의 조짐들이 이야기를 구성했다면, 이제 2권은 자신의 명물욕과 또 그것을 '보는눈'을 활용한 사스케의 행보 와 오다 노부나가에 대한 반란의 거사가 드디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드디어 역사 드라마의 재미도, 웃기는 놈(효게모노)인 사스케의 명물욕과 나란히 진행되는 것!


2권의 초입에서 사스케는 1권과 마찬가지로, 전투와 정벌로 인한 공로 보다는, 회유와 설득의 역할을 중심으로 활약을 시작한다. 하지만 1권에서 나름 가능성있게? 활약했던 것 보다는, 꽤나 내동댕이 쳐지는게... (사스케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또 하나의 재미가 된다. 특히 오다 노부나가에게 반기를 든 세력을 회유하러 성에 들어가서 각 층의 적군을 하나하나 마주치는 과정은 마치, 롤플레잉 게임에서 성을 올라가며 레벨업을 하는 것을 연상케 하는데, 사스케가 이 과정을 활용하는 것과 그것이 상징하는 바는 재밌지만 무릎을 칠 정도로 의미심장했다. 명물을 볼줄 아는 눈을 갖고, 또 그 능력을 바탕으로 상대의 물욕을 다룰 줄 아는 사스케의 전략과 성욕에 관한 통과의례(?)는 막다른 골목에 가서도 외적인 것에 탐닉하는 인간 본성을 충분히 유머러스하게 비꼬아준다. 자신의 명물욕을 비롯한 인간의 근원적 본성을 철저히 이용할 줄 아는 사스케의 모습은 역시 그가 거품만 가득차 있는 인간은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그리고 그 이후, 오다 노부나가에 대한 하시바와 소에키의 반란은 점차 구체화를 띄어가며, 하나하나 착실히 진행되가는듯 보이지만, 그것은 독자가 '그렇게 진행될 것'이라고 예측하는 순간을 보기좋게 앞당기며 3권에서의 전개를 완전 기대하게끔 만든다. '이정도 진행에서 2권이 끝나겠지' 하는 생각이 확 뒤엎어지는 것! 3권이 너무 기대되는게... 마치 오래전에 끊었던 드라마의 다음화를 마음졸이며 기다리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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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라 2012-06-11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효게모노 잼있어요! ㅎ

기다리는 자 2012-06-14 20:55   좋아요 0 | URL
사람들이 왜 그렇게 좋아라하는지 알겠더라구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