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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抱天) 1막
유승진 지음 / 애니북스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포천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풀어나가기 앞서,
이 문장이 이 만화의 존재를 잘 말해주지 않을까 싶다.
"열 살 남짓한 네놈들도 알고싶어하는게 앞날이구나"
생귀(生鬼)라고도 불려지는, 이시경이라는 가상의 점술사를 조선시대에 만들어 놓음으로써 포천은 탄생한다. 훗날 대동여지도를 만들기위해서 백두산을 세번째 오르는 김정호가 비를 피해 들어갈 동굴에 글을 남기고, 흥선대원군을 비롯한 이토 히로부미와 박정희의 앞날을 아득히 예전에 이미 모두 예측한 이시경의 이야기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제 누이가 시집간덕에 얻어온 입막음 엿을 친구들과 나눠먹던 장돌이는 얼결에, 딸 하나 끼고선 옆에 있던 갓쓴 양반에게 엿점을 보게 된다. 허나 결과적으로 엿만 빼앗긴 꼴이 된 아이들은 울며 가버리고, 그 중에 남아서 말을 험악하게 했던 아이는 이 갓 쓴 '이시경'에게 붙들려 주막을 안내하게 된다. 국밥 두그릇 값대신 손님을 불러주겠다는 이시경은 손님들에게 점을 봐주고, 주막은 삽시간에 문전성시를 이룬다. 그 와중에 엿을 빼앗긴 장돌이의 고자질로 인해 으름장을 놓으려 온 장돌 아비를 통해 이시경은 장돌이의 대흉뿐만 아니라 호환으로 인해 상명(자식의 죽음)의 수를 읽는다. 이에 장돌 아비와 장돌이에게 일신의 안녕을 당부하러 아이 하나를 보내고, 이시경은 사람들에게 복채대신 산으로 돌을 가져오라고 이른다. 결국 장돌이의 누이는 호환을 당하고야 말지만, 이시경과 마을사람들은 벼락틀을 이용하고 서로 힘을 합해 겨우 호랑이를 잡고야 만다.
하지만 범을 잡으려다 상처를 입은 이의 약초를 가지러 가는 이가 이시경의 딸인 초희를 대동하다가 산적들에게 붙잡히게되고, 20년후의 임진왜란을 예측하며 민심을 흉흉하게 한다는 혐의로 이시경은 관가에 붙잡히게 된다. 관가에서 함께 투옥되어 있던, 백성들을 수탈하는 벼슬아치를 죽인 사형수에게 호의를 베푼 것을 통해, 무사히 딸을 되찾고 여비까지 받게된 이시경은 딸을 데리고 다시 스승을 찾아 길을 떠난다.
사실, 중간마다, 과거 이시경이 점쳤던 일들의 결과들이라던가,(율곡 이이가 살던 집에 있는 화석정에 기름을 발라놓아 훗날 왜란때 임금의 배가 도하할 수 있게 도와주는 등), 실제로 고종의 즉위를 맞추어 벼슬을 지내기도 했던 관상가 박유붕 등 이시경이 죽고난 후의 이야기들도 (아마도 훗날을 예언하는 점술가 이시경에 대한 이야기의 특성을 고려한 구성이라고 생각된다) 중간에 포함되기 때문에 이야기를 이렇게 요약하긴 부족하지만, 어쨌든 작가가 그리고 있는 이시경의 '현재'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역사에 박식하진 않은지라, 어디까지가 완벽히 픽션이고 어디까지가 팩트인지는 정확히 가를 순 없지만 분명한건, 팩트의 뼈대를 갖고 기가막히게 이야기를 짜맞췄다는 점은 분명하다. 예언이라는 현 과학에 부합하지 않는 요소만 제외하고 본다면,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만큼 앞뒤가 촘촘하며, 그 재미가 어떤 옛날 이야기 듣는 것만 못지 않다.
이 <포천>은 그림체가 꽤나 독특한데, 시대적 배경처럼 겉은 묵직한 테두리를 갖고, 그 선 또한 각진 모양이 많다. 그럼에도 왠지 굉장히 친숙한 분위기의 캐릭터를 그려넣은 것이 특징인데, 그것들이 이 허구적인 이야기들이 더 팩트와 구분되지 않게하는 요소가 되는 듯 싶기도 하다. 심플한 그림과 배경이지만, 캐릭터의 디테일과 그 입심을 표출하는 대사들이 시원시원하고 호탕하니, 보면서 왠지 무릎이라도 치고 싶어진다.
어쨌든, 점이라는 것, 하늘을 보고 사람의 앞날을 예측하는 주인공인 이시경이 펼쳐나갈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아마 이후에 펼쳐질 이야기들은 그것들과 더불어,
"사주불여관상 관상불여심상" 201p
사주는 관상보다 못하고, 또 관상이 아무리 좋아도 마음바탕보다 못하다.
이런 방향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지 않을까 싶다. 결국 점을 거스르는 이야기를 할 순 없을테지만, 그 속에 이런 역설적인 이야기 또한 내포하고 있지 않겠는가.
조선시대뿐만 아닌, 근현대사까지 망라하는 그(이시경)의 점괘는 이 이야기의 흥미를 극도로 끌어올림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것은 곧 독자에게 쏠쏠한 재미를 줌 또한 분명하다. 덧붙여, 우리가 흔히 잘못쓰거나, 혹은 어원을 모를만한 단어들이 극중 너무도 자연스럽게 등장하여 배움의 기회까지 제공하니, 역사적 사건과 인물에 대한 관심은 물론, 우리말을 가르치는 역할도 덤으로 톡톡히 하고 있다.
"회자정리 거자필반" 206p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고,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
점술가도 결국 제 사주에 엮여있다고 하니, 이시경의 앞날은 과연 어떻게 펼쳐질까.
서양의 점술보다 더 흥미로운 우리의 점술에 관한 이야기가 바로 여기에 펼쳐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