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주를 만지다 - 삶이 물리학을 만나는 순간들
권재술 지음 / 특별한서재 / 2020년 9월
평점 :
내게 있어 과학은 어렵다. 그 중에서도 천문학이나 물리학은 더 어렵다. 자연에 대해, 우주에 대해, 물질에 대해 과학자들이 뱉어내는 말들은 내겐 그저 외계어처럼 들릴 뿐이다. 아이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나 스티븐 호킹 박사의 블랙홀 등의 발견에 대해 과학자들이 놀라움과 감탄을 자아낼 때에도 나는 그 어떠한 공감도 공유할 수가 없다. 책 속 표현을 빌리자면 그 옛날 천동설을 믿던 중세인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나는 그냥 일반인일 뿐이다. <떨림과 울림>의 작가이자 카이스트의 유명한 물리학박사이신 김상욱교수님의 추천책인 <우주를 만지다>는 권재술박사님께서 자연과 우주에 대해 과학자들 만큼은 아니더라도 과학자들이 보고 믿고 경험하는 것들 중 일부라도 일반인들인 우리가 조금이나마 함께 느끼고 공유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쓰신 책으로, 과학에 대해 1도 모르는 과학초보인 내게 안성맞춤형 책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 <우주를 만지다>는 <충청타임즈>에 연재한 칼럼이 뿌리가 되어 출간된 과학상식에세이다. 논리적 근거와 사실에 바탕을 둔 물리학의 기초적인 상식들을 일반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감성적인 표현들을 사용해 재미있게 설명해주고 있다. 과학적인 상식을 일상적인 삶에 빗대어 표현함으로써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였고, 주제와 관련된 시를 함께 개제함으로써 물리학자의 시가 있는 과학에세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보여주어 김상욱 교수님과 같은 과학자는 물론 유성호 교수님과 같은 문학평론가, 함기석 시인, <시간을 파는 상점>의 작가 김선영 소설가 모두가 극찬한 책으로 소개되고 있다.
총 4장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1장 <별 하나 나 하나>에서는 별과 함께 시작한 인류의 역사를 시작으로 별과 우주, 그리고 지구의 이야기를 담았고, 2장 <원자들의 춤>에서는 물질을 이루는 원자와 분자에 대한 이야기 , 3장 <신의 주사위 놀이>에서 불확실성의 원리를 중심으로 한 양자역학과 존재유무애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차원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4장 <시간여행>에서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상대성 이야기를 과거로 미래로 혹은 우주로의 시간여행을 재미있게 그려놓았다. 또한 '미시세계, 작은 우주', '거시세계, 큰 우주', '세상을 설명하는 이론'이라는 3가지 주제를 부록으로 첨부하여 과학적이론과 논리적 설명을 좀더 자세히 추가하고 있다.
세상 모든 만물의 경계들이 멀리서 보면 분명할 수 있어도 가까이에서 보면 모호하다는 것을 인간 사이의 갈등과 빗대어 표현한 부분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이름과 마찬가지로 경계도 자연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것이다. 경계는 실체가 아니라 관념이다. 사물을 제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붙여진 관념이다. 모든 갈등은 이 경계를 사이에 두고 일어난다. 너와 나의 갈등, 나라와 나라의 갈등, 진보와 보수의 갈등, 모두 경계에서 일어난다. 이 허구인 경계를 없애면 갈등도 없어지지 않을까?'(p.47)
물체의 운동을 통한 착시현상으로 물체가 실제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생과 멸이 시공간 상에서 변하는 현상으로 설명하는 부분을 필멸의 인간이 불멸을 꿈꾼다는 인간사에 빗대어 표현한 부분은 상당히 문학적인 표현으로 들렸다.
'우리가 보는 것은 실체가 아니다. 삼라만상은 네온사인처럼 생과 멸이 반복하면서 만들어내는 허상일지도 모른다. 나는 한순간 존재하다가 사라지고 다음 순간 생겨난느 것이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다. 어제의 나는 이미 죽었고 오늘의 새로운 내가 태어난 것이다. 새로 태어난 나에게 어제의 나에 대한 기억이 있으므로 마치 어제의 내가 오늘까지 존재하는 것으로 착각할 뿐이다. (p.161)
또한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험'을 통해 어려운 양자역학을 설명하는 부분은 과학자들 역시도 이해되지 않음에도 확실하게 받아들여야 미시세계가 설명이 된다고 하면서 계속된 '반은 살아있고, 반은 죽어있는 고양이'는 중접적이고 모호하면서도 진실의 오묘함이라는 표현으로 언어유희를 느끼게 해주는 장면은 읽는 내내 즐겁고 유쾌했다.
우리 모두는 죽을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모멘토 모리'는 통해 개인이 느끼는 시간과 공간의 차이, 기원전 44년에 발생한 카이사르의 암살사건을 어느 별에서는 아직도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사건일 수 있다는 흥미로운 예시, 그리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의 몸이 보이지 않는 고양이의 모습과 우주여행에서 애인의 손을 놓치면 엄청나게 나이차를 겪으며 이후에 해후할 수 밖에 없게 된다라는 재미있는 예시를 통해 어려운 상대성이론과 양자학 이론을 아주 적절하면서도 쉽게 설명해준 부분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 세상에 이상한 세상은 없다. 우리는 우리가 경험하고 느끼는 이 세상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린아이는 이런 세상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는 것은 살아가면서 세뇌된 가짜일 뿐이다. 편견을 벗어야 진실이 보이는 법이다. '(p.255)
또한 망망대해의 수평선과 땅끝너머의 지평선을 통해 세상을 이야기하는 장면은 굉장히 시적으로 다가왔다.
'망망대해를 바라보면 수평선이 보인다. 지평선도 마찬가지다. 지평선 너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수평선이나 지평선 너머에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보이는 세상보다 보이지 않는 세상이 더 넓다. '(p.296)
게다가 '도둑처럼', '아내의 뒷면', ''슈뢰딩거의 고양이'. '아내의 차원'은 개인적으로 인상적이거나 마음에 들었던 시들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처럼 미시세계인 원자와 거시세계인 우주를 통해 하나둘씩 세상만물을 알아가며 느끼는 놀라움과 감동을 오직 과학자들의 전유물이 아닌 나처럼 평범한 일반들들도 이 책 <우주를 만지다>를 통해 조금은 전달되어 요 며칠은 인생이 좀더 풍요롭고 즐거워지는 듯한 느낌을 만끽할 수 있을듯 하다. 과학이 측정하는 것이라며 알려주신 빛의 속력인 299792458을 나도 한번 오늘 하루 라임을 넣어 근사하게 중얼중얼대며 책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