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아름다운 옆길 - 천경의 니체 읽기
천경 지음 / 북코리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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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별로 사상과 논리를 깊이 파고들 수준까지는 못되지만, 상식 수준의 철학책 읽기는 매번 시도중이다. 읽을수록 재미와 감동보다는 어렵고 난해하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터라, 항상 수박겉핥기 선에서 크게 벗어나기가 어려운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포기를 모른채 철학책 신간코너 앞에서 서성이는 나를 보면 다시금 웃음이 난다. 이번에 새롭게 출간된 천경님의 <니체의 아름다운 옆길>은 니체의 진지한 철학 이야기를 작가만의 방식대로 읽고 쓰며 웃을 수 있는 재미있는 책이라는 서문의 소개글이 내 맘에 와 닿았다. 그렇게 이 책을 만났다.

이 책 <니체의 아름다운 옆길>은 니체의 전작을 읽고 2017년부터 정기적으로 '내외뉴스통신'에 <천경의 니체 읽기>라는 칼럼을 쓰게 된 것을 엮어 이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 속의 아름다운 니체의 문체를 통해 그가 말한 삶의 오류와 오독으로 이루어진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진실과 정답이 모두 제각각임을 작가나름의 방식대로 읽고 해독해가며 독자들로 하여금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해주고자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은 총 3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니체의 기본 사상과 철학적 이야기를 작가의 일상에서 경험한 이야기를 함께 실어 그의 사상과 철학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으며, 각각의 이야기들을 통해 공감과 흥미는 물론, 때론 그의 논리에 대한 반박과 논쟁을 유도하기도 한다.

제1장 <인식은 슬픔이다. 아니다. 인식은 웃음이다>에서는 니체의 기본 사상과 철학적 기본개념을 먼저 설명하고 있다. 살면서 생기는 문제와 물음들, 그리고 사유에 대한 그의 사상을 다양한 작가의 삶과 예시를 통해 비교 설명해 주고 있으며, 과거를 벗고 고독과 망각, 죽음을 통해 버리고 떠나 새로운 도전을 해나갈 것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도덕은 허구이며 오류임을 강조하여 비도덕주의를 강조하고, 무엇보다도 '신은 죽었다'며 기독교 윤리를 거부함과 동시에 현실의 참혹함과 인간한계를 인정해 모두가 각자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가며 자신의 삶의 결정권을 스스로 창조해나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현실주의에 입각한 사상임을 설명해주고 있다.

제2장 <공부하기 좋은 날>에서는 개인적인 삶을 통해 들여다본 니케의 철학적 사상을 1부에서 보다 좀 더 심도있고 깊이있게 파고들고 있다. 소크라테스와 알키비아데스의 사랑이야기를 통해 아름다운 것에 대한 사랑의 개념을 소개해주고 있으며, 니체의 이론의 핵심인 위버멘쉬의 경지에 도달을 통해 고양되고 상승시킴으로 인해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이유도 알려주고 있다. 예술을 삶을 위한 자극제로 봐 삶의 내재된 자기구현을 통해 새로운 산출물을 생산해내는 임산부로서의 역할도 강조한다. 무엇보다도 작가가 주장한 '마음학교'설립의 필요성과 당위성도 니체의 사상에 적절히 연결해 잘 설명해주고 있다.

마지막 3장 <아모르파티>는 부정과 저항의 정신을 통과해 스스로 만들어 가는 삶을 살 것을 주장하고 있다. 특히나 이 장에서는 작가자신의 개인적인 삶의 이야기를 니체의 철학과 사상과 빗대어 많이 다룸으로써 개인적으로는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삶의 방향과 자세를 우회적으로 알려주는 모습으로 비춰졌다.

사실 니체가 기독교자체를 부인하고 비도덕주의를 추구함으로써 서구의 전통사상을 깨부수는 가치관으로 나치에 의해 악용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박하지만 창조적인 의지를 강조하고 각자가 주체적인 삶을 이끌어나가는 것을 중시하는 현실주의에 입각한 사상은 개인적으로 긍정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과거나 복수의 감정에 얽매이지 않고 망각하는 인간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인간상은 본받아야겠지만, 삶이 힘들때마다 신을 찾게 되는 작가입장에서는 니체의 논리로는 작가가 노예정신의 소유자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에 강하게 반박하면서, 그녀가 니체를 전적으로 신봉하지 않는다는 개인적 소신을 밝히는 부분도 흥미롭게 읽었다. 또한 '젊은이'는 아무렇지 않지만, '늙은이'라는 단어의 어감이 주는 느낌에 대한 우리의 마음가짐에 대한 변화촉구, 그리고 자식을 키우는 부모로서의 느끼는 여러 사례들 역시 나 역시도 느끼고 고민되는 부분이라 절로 고개가 끄덕이게 했다.

나 역시도 편안하고 안락한게 좋고, 매일매일의 습관화된 일상의 삶이 좋기에, 그러한 삶을 지양하고 위험하게 살라는 삶의 대가로서의 니체의 주장과 인천초등학생 살인사건을 예로 들면서 범죄자를 비호할 생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죄자를 정신이 병든 자로 인식하며 범죄자로서보다는 치료의 중요성을 더 강조하는 병든자로서 인식을 주장하는 부분에서는 사회적으로도 여전히 논쟁이 되는 부분이면서도 나 역시도 개인적으로는 공감보다는 반감이 조금 더 가게 되는 주장으로 보이기도 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임에도 철학은 내가 느끼기에는 여전히 어렵다. 비단 그것은 나 뿐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도 대부분 그렇게 생각한다. 그 중 니체는 더더욱 그렇다. 어려운 니체의 사상과 철학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쓰기가 쉽지 않은데. 이 책 <니체의 아름다운 옆길>은 천경 작가님의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와 여정이 고스란히 녹아있어 더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듯하다. 그래서 작가님의 말처럼 읽으며 웃게 되는 책이 아닐까 싶다. 한번쯤은 우리도 니체에 빠져 함께 사색하며 그의 아름다운 길을 동행하며 걸어가는 상상을 하게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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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만지다 - 삶이 물리학을 만나는 순간들
권재술 지음 / 특별한서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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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있어 과학은 어렵다. 그 중에서도 천문학이나 물리학은 더 어렵다. 자연에 대해, 우주에 대해, 물질에 대해 과학자들이 뱉어내는 말들은 내겐 그저 외계어처럼 들릴 뿐이다. 아이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나 스티븐 호킹 박사의 블랙홀 등의 발견에 대해 과학자들이 놀라움과 감탄을 자아낼 때에도 나는 그 어떠한 공감도 공유할 수가 없다. 책 속 표현을 빌리자면 그 옛날 천동설을 믿던 중세인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나는 그냥 일반인일 뿐이다. <떨림과 울림>의 작가이자 카이스트의 유명한 물리학박사이신 김상욱교수님의 추천책인 <우주를 만지다>는 권재술박사님께서 자연과 우주에 대해 과학자들 만큼은 아니더라도 과학자들이 보고 믿고 경험하는 것들 중 일부라도 일반인들인 우리가 조금이나마 함께 느끼고 공유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쓰신 책으로, 과학에 대해 1도 모르는 과학초보인 내게 안성맞춤형 책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 <우주를 만지다>는 <충청타임즈>에 연재한 칼럼이 뿌리가 되어 출간된 과학상식에세이다. 논리적 근거와 사실에 바탕을 둔 물리학의 기초적인 상식들을 일반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감성적인 표현들을 사용해 재미있게 설명해주고 있다. 과학적인 상식을 일상적인 삶에 빗대어 표현함으로써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였고, 주제와 관련된 시를 함께 개제함으로써 물리학자의 시가 있는 과학에세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보여주어 김상욱 교수님과 같은 과학자는 물론 유성호 교수님과 같은 문학평론가, 함기석 시인, <시간을 파는 상점>의 작가 김선영 소설가 모두가 극찬한 책으로 소개되고 있다.

총 4장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1장 <별 하나 나 하나>에서는 별과 함께 시작한 인류의 역사를 시작으로 별과 우주, 그리고 지구의 이야기를 담았고, 2장 <원자들의 춤>에서는 물질을 이루는 원자와 분자에 대한 이야기 , 3장 <신의 주사위 놀이>에서 불확실성의 원리를 중심으로 한 양자역학과 존재유무애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차원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4장 <시간여행>에서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상대성 이야기를 과거로 미래로 혹은 우주로의 시간여행을 재미있게 그려놓았다. 또한 '미시세계, 작은 우주', '거시세계, 큰 우주', '세상을 설명하는 이론'이라는 3가지 주제를 부록으로 첨부하여 과학적이론과 논리적 설명을 좀더 자세히 추가하고 있다.

세상 모든 만물의 경계들이 멀리서 보면 분명할 수 있어도 가까이에서 보면 모호하다는 것을 인간 사이의 갈등과 빗대어 표현한 부분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이름과 마찬가지로 경계도 자연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것이다. 경계는 실체가 아니라 관념이다. 사물을 제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붙여진 관념이다. 모든 갈등은 이 경계를 사이에 두고 일어난다. 너와 나의 갈등, 나라와 나라의 갈등, 진보와 보수의 갈등, 모두 경계에서 일어난다. 이 허구인 경계를 없애면 갈등도 없어지지 않을까?'(p.47)

물체의 운동을 통한 착시현상으로 물체가 실제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생과 멸이 시공간 상에서 변하는 현상으로 설명하는 부분을 필멸의 인간이 불멸을 꿈꾼다는 인간사에 빗대어 표현한 부분은 상당히 문학적인 표현으로 들렸다.

'우리가 보는 것은 실체가 아니다. 삼라만상은 네온사인처럼 생과 멸이 반복하면서 만들어내는 허상일지도 모른다. 나는 한순간 존재하다가 사라지고 다음 순간 생겨난느 것이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다. 어제의 나는 이미 죽었고 오늘의 새로운 내가 태어난 것이다. 새로 태어난 나에게 어제의 나에 대한 기억이 있으므로 마치 어제의 내가 오늘까지 존재하는 것으로 착각할 뿐이다. (p.161)

또한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험'을 통해 어려운 양자역학을 설명하는 부분은 과학자들 역시도 이해되지 않음에도 확실하게 받아들여야 미시세계가 설명이 된다고 하면서 계속된 '반은 살아있고, 반은 죽어있는 고양이'는 중접적이고 모호하면서도 진실의 오묘함이라는 표현으로 언어유희를 느끼게 해주는 장면은 읽는 내내 즐겁고 유쾌했다.

우리 모두는 죽을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모멘토 모리'는 통해 개인이 느끼는 시간과 공간의 차이, 기원전 44년에 발생한 카이사르의 암살사건을 어느 별에서는 아직도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사건일 수 있다는 흥미로운 예시, 그리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의 몸이 보이지 않는 고양이의 모습과 우주여행에서 애인의 손을 놓치면 엄청나게 나이차를 겪으며 이후에 해후할 수 밖에 없게 된다라는 재미있는 예시를 통해 어려운 상대성이론과 양자학 이론을 아주 적절하면서도 쉽게 설명해준 부분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 세상에 이상한 세상은 없다. 우리는 우리가 경험하고 느끼는 이 세상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린아이는 이런 세상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는 것은 살아가면서 세뇌된 가짜일 뿐이다. 편견을 벗어야 진실이 보이는 법이다. '(p.255)

또한 망망대해의 수평선과 땅끝너머의 지평선을 통해 세상을 이야기하는 장면은 굉장히 시적으로 다가왔다.

'망망대해를 바라보면 수평선이 보인다. 지평선도 마찬가지다. 지평선 너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수평선이나 지평선 너머에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보이는 세상보다 보이지 않는 세상이 더 넓다. '(p.296)

게다가 '도둑처럼', '아내의 뒷면', ''슈뢰딩거의 고양이'. '아내의 차원'은 개인적으로 인상적이거나 마음에 들었던 시들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처럼 미시세계인 원자와 거시세계인 우주를 통해 하나둘씩 세상만물을 알아가며 느끼는 놀라움과 감동을 오직 과학자들의 전유물이 아닌 나처럼 평범한 일반들들도 이 책 <우주를 만지다>를 통해 조금은 전달되어 요 며칠은 인생이 좀더 풍요롭고 즐거워지는 듯한 느낌을 만끽할 수 있을듯 하다. 과학이 측정하는 것이라며 알려주신 빛의 속력인 299792458을 나도 한번 오늘 하루 라임을 넣어 근사하게 중얼중얼대며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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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의 눈물
백시종 지음, 이준섭 그림 / 문예바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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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광복절 전후로 의병과 독립운동에 관련된 도서를 연달아 읽으며 여순사건을 눈여겨보고 있던 차에 우연히 들른 독서까페에서 <여수의 눈물>이라는 책이 소개되는 글을 보았다. 우리 부모님 세대에서 겪었을 법한 사건임에도 아직까지도 근현대사에 대한 왜곡된 해석들이 너무도 많았던지라 어릴 때에는 단순히 여수와 순천으로 침투한 무장공비 저격사건정도로 알았는데 세월이 흘러 관련인물과 목격자들의 증언을 들어보니 이는 내가 알고 있었던 것과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여전히 이중적 잣대의 시선이 존재하긴 하지만 이념과 사상과 전혀 상관없는 무고한 시민들이 엄청나게 사살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므로 좀더 자세히 이 사건을 들여다보고 싶은 호기심이 동했다. 사실 혁명과 반란의 차이 역시 누가 어떠한 과정을 통해 어떠한 시선으로 기술하느냐에 따라 엄청나게 다른 결과물을 쏟아내기 마련이고, 역사기록은 대부분이 그 다음 권력들을 쥐고 있는 시각에서 쓰여지는 것이 일반적인지라, 객관적인 사실에 입각하기 보다는 권력자의 이익을 우선시 할 수 밖에 없음은 어쩌면 당연하다 할 수 있을것이다. 70년이 지난 현재의 시각으로 보는 그 때의 이야기, <여수의 눈물>이 기대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점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 <여수의 눈물>은 유년시절 10년을 여수에서 보낸 작가 백시종선생님이 53년만에 쓰는 고향이야기로, 반공법과 연좌제법이 존재한데다 피해자와 그의 가족들이 여전히 살아있어서 쓰고 싶어도 쓸 수 없었던 1948년 10월 19일의 여수순천사건을 다루고 있다. 책에서도 언급되는 수지중학교의 70년전의 흑백 사진이야기는 실제로는 모 박물관에서 작가님이 실제로 본 것으로, 여수경찰서 뒤뜰에서 누더기를 걸친 스물 여덟명이 생존자체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그 눈빛만큼은 놀라우리만큼 예리하면서도 매서움마저 느껴져, 이들의 이야기를 평생 사명감을 갖고 써야할 과제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여수순천 10.19사건'은 2000년에 들어서야 서서히 사람들의 관심을 갖기 시작하게 되었고, 1만 5천여명이나 되는 희생자 대부분이 군경이나 토벌군에게 학살당한 민간인들로 이유도 모른채 학살당한 피묻은 동백꽃이 만발했던 오동도에 대한 그 본질 찾기 운동의 일환으로 이 책 <여수의 눈물>이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인듯하다.

어린시절을 여수에서 보내다, 아버지의 7주기 제사 다음날 아버지의 유품가죽가방과 현찰을 들고 가족들과 야반도주를 하며 서울로 상경한 병수는, 어머님의 놀랄만한 사업수단으로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어마어마한 재력가이면서 유일한 상속자가 되어 같은 수준의 아내를 만나 결혼도 했고 외국에 살고 있는 딸도 있다. 서양화가이자 대학교수로도 잘나가던 병수는 은퇴 후 개인작업실을 알아보던 중 고향친구 김귀석을 통해 폐교수순을 밟는 수지중학교를 추천받는다. 그 곳에서 우연히 발견한 70년전의 28명의 누더기를 걸친 섬뜩한 표정의 사람들 사진을 발견하게 되어 휴대폰을 꺼내 찍으려던 찰나 왼쪽 귀퉁이에 배다른 형제인 어릴 적 형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밤에만 늘 어머니를 찾아와 밝은 데서 한 번도 본 적 없던 아버지가 양조장집 외동딸과 결혼한 사실을 알게 되고, 그러던 중 두루마기에 중절모를 쓴 아버지의 사형 집행을 형은 직접 목격하게 된다. 작업실을 오픈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당시 이승만과 김귀석의 숙부 김찬구씨가 살아온 해방정국의 발자취와 자칭 백두산 호랑이로 불리우는 김종원의 잔인무도한 행각을 알게 되고 친구 김귀석이 하는 '역사바로세우기'운동단체를 통해 그간에 관심조차 없었고 무지했던 여수사건의 실상을 조금씩 상세히 알게 된다. 그러던 중 치매로 입원중이신 어머님의 부고를 듣게 되고 어머님에게서 재정적 후견을 받아왔던 김학봉이 어머님의 유언으로 어버지를 국가유공자로 지정하는 일에 앞장서는 과정에서 아버지를 쏘아죽여 미전향장기수로 북에 이송된 박상돈에 대해 알고있다는 친구 김귀석의 숙부인 김찬구를 통해 아버지에 대한 놀랄만한 반전 과거사실이 밝혀지게 된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가슴 아픈 민족의 슬픔이 묻어져 있어 너무도 마음이 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여수순천사건에 대해 아는 바가 많지않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어 보였다.

'유명대학교에서 이름을 뽐내다 은퇴하는 교수 신분인, 어쩌면 한국 대표 지성인 중의 한 사람이라고 자부해 마지 않는 내가 고작 한다는 게 왜 여순 '반란'이 아니고 '민중항쟁'일까 고개를 갸우뚱하고 말았을 정도였으니 나의 몰상식한 무지가 어떤 수준인지 충분히 가늠되고도 남는다. (p.171)

그런 가운데 친구 김귀석이 국가를 향해 던지는 이 한마디는 굉장히 큰 울림을 주고 있었다.

'우리에게 피해를 준 상대가 개인이나 단체가 아니라 국가라는 사실이 더 절망하게 만든 요인이었어. 외적으로부터 나를 보호해 줘야 할 나의 마지막 보루인 국가가 되레 총을 겨눠 부모와 형제와 자매와 혈육을 무자미하게 학살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는지도 모르지. 다시 말해 내가 유일하게 의지해야 할 최종 보호자인 아버지가 어머니와 공모하여 갑자기 나에게 총을 쏘고 대창으로 복부를 찔러 후비는 형국이었어.'(p.181-182)

또한 이 책이 다른 책과 다른 점으로는 바로 여수의 슬픈 사건을 재조명하는데 도움을 주는 그림들이 삽화가 이준섭씨의 작품으로 각 장마다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만화기법의 삽화들은 책의 내용을 좀 더 쉽게 이해를 돕게 해주고, 당시의 잔혹함과 비극의 순간을 그대로 재현해주고 있어서 넋을 놓고 보게 되는 매력이 있었다.

'여수순천반란사건'은 최근 '여순순천사건'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현재 작가는 '여수순천 민중항쟁'으로 바꾸고, 기념관과 기념탑 세우기에 일조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날의 비극적인 순간을 재현한 이야기를 이렇게 <여수의 눈물>이라는 글로 썼다고 한다. 분명한 건 제주4.3사건의 진압군으로 여수에 주둔한 14연대가 이 반란을 일으킨 사건임에 틀림이 없고, 색깔론이나 좌우익을 따지는 사상적인 견해문제로 여전히 많은 잣대를 가지고 논쟁의 대상이 되긴 하지만, 이 사건으로 인한 최대 피해자들 역시 바로 그 지역에 살고 있었던 주민들이라는 점은 명명백백해 보인다. 그래서 다시 한번 이 사건에 대해 논의가 활발히 이뤄어져 희생자들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을 쓴 작가님이신 백시종선생님이 22세때에 그해 신춘문예 두번 당선으로 시작해 수많은 작품상을 수상하셨으며, 2007년부터 이순이 지나면서부터 매 해마다 한 해도 거르지 않으시고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임하시고 계신다는 점에서 존경과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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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화염
변정욱 지음 / 마음서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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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광복절 기념식에서의 육영수여사 저격사건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재일교포 2세 문세광의 단독범행으로 결론이 내려져 사건이 있은지 두달 만에 바로 사형에 처해졌지만, 그의 배후에 대한 진실공방은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조총련계 공작으로 북한 김일성 배후설, 재일동포인 문세광을 통해 국교단절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한 일본배후설, 핵무기독자개발로 사이가 극히 나빴던 미국배후설 등 여러가지 추측이 난무했지만, 총 7발의 총성이 울려퍼진 1974년 8월 15일의 국립극장에서의 2분 22초의 짧은 시간은 각종 의문만을 증폭시킨채 여전히 사실인지 확인조차 안되는 조작된 진실만을 남긴채 우리 국민들에게 커다란 슬픔과 아픔을 안겨주게 했다. 그 날의 진실은 파헤친 소설 <8월의 화염>이 얼마전에 출간이 되었고, 곧 영화화되어 제작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 책 <8월의 화염>은 유명한 영화감독 변장호 감독의 아들이자 미국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있던 변정욱씨가 아르바이트 도중 강도에게 맞은 총탄 두발 제거 수술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되어 영부인 육영수 저격사건을 조사하다 영화화를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7년에 걸친 자료조사와 관련 인물들에 대한 인터뷰들을 통해 결정적 증언과 증거물을 확보해 본인이 직접 시나리오를 완성했으며, 각종 정치적 외압 등으로 그동안 중단해야만 했던 그날의 진실을 15년만에 비로소 직접 감독으로 제작준비를 하게 되었다는 소명을 밝히는 부분에서의 그간의 고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것 같았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실존인물들로 살아있는 상태이고, 수많은 의문점과 의혹들이 증빙되지 않은 주관적인 관점을 가지고 제작되었을 때의 도덕적 비난이나 법적책임은 온전히 작가의 몫일수 밖에 없기에 더욱 더 신중한 마음으로 조사했을 것이고, 거기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책을 쓰고 영화화하는게 어려웠을 것임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세광의 이야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쓰여져있다. 사건이 있은 후 왜곡된 진실과 숨겨진 사실을 밝히는 데에는 서울법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우수한 성적으로 사법시험을 패쓰했음에도 운동권이었다는 이유로 판사나 검사로 배정받지 못하고 17년째 인권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신민규변호사가 중심에 있다. 중부경찰서 조사계 배영진과 그를 따르던 말단 신입 강덕배형사는 국립극장행사의 경호업무책임에 물어 징계를 받아 해임된 후 신민규변호사를 함께 돕게 된다. 사건은폐의 핵심에 중앙정보부가 개입되어 있음을 알게되며 보이지 않는 손들로 재판의 증인들은 하나씩 사라지지만 계속된 추적과 탐문을 거듭한 끝에 사건은 다시 한번 재구성이 되면서, 음모의 실체가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며 밝혀지는 과정이 너무도 흥미로우면서도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했다.

경찰의 방해와 왜곡된 수사들로 사건 속 진실은 덮으려 했지만, 작가의 말처럼 '이 세상에 알아서는 안되는 진실은 결코 없다.' (p.339) 말처럼 나 역시도 이 또한 언젠가 반드시 밝혀질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사실 변정욱감독의 조사자료와 노력들은 상당한 신빙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 김종필의원이나 김기춘과 같은 관련인물들이 알고있는 진실에 대한 재조명이 그들을 포함한 관련인물들의 증언을 통해 나왔더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다라는 아쉬움이 더 크게 남게된다. 이 책을 다 읽고나서 다시금 그날의 비디오를 찾아 돌려봤다. 여전히 국민들은 알아야 할 권리가 있고, 진실에 대한 목마름을 느낀다. 나 역시도 그랬다. 순식간에 읽어낼 정도로 몰입도가 상당했던지라 영화 속 이야기가 더 기대하게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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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 나쁜남자 편
최문정 지음 / 창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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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속에는 소위 말하는 로맨스 소설이 갖추어야 할 요건들이 모두 갖추어져있다. 왕좌를 지켜나가기 위한 끊임없는 권력투쟁의 승리를 통해 힘과 부의 상징을 의미하는 조선이라는 국가의 1인자로서 왕이 등장하게 되고 왕의 곁에는 항상 똑똑하고 영민한 왕비가 함께 해, 둘만의 사랑이야기를 만들어간다. 뒤이어 왕은 왕비 뿐 아니라 후궁도 여럿 거느리게 되는데 그들 속에 묘한 신경전은 질투와 시기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권력의 핵심인 왕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않고 자신이 마음가는 여인을 향해 사랑을 표현함으로써 이야기는 절정에 이르게 된다. 어떤 여인에게는 러브스토리로, 또 다른 여인에게 그는 분명히 '나쁜 남자'일 수 밖에 없다.

SBS주말드라마로 방영된 <바보엄마>의 작가인 최문정 선생님의 신작으로, 소설적 상상력을 동원해 생생하게 만날 수 있는 <소설로 읽는 조선왕조실록:나쁜 남자편>이 출간되었다. 학교선생님으로 한창 스트레스를 받아 휴직을 결심하게 되었고, 그 힘든 시간을 조선왕조실록을 읽으며 견딜수 있었다고 회상하고 있는 것처럼, 이 이야기 <소설로 읽는 조선왕조실록:나쁜남자>편이 '성공한 자가 아니라 실패한 자의 시각에서, 강한 자가 아니라 약한 자 입장에서 바라본 역사'적 관점으로 쓰게 된 당위성의 토로는 충분한 공감과 이유가 되어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소설은 내가 좋아할 만한 러브스토리가 가득해서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 책에는 총 7명의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면서, 철저히 자신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왕권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인간도리를 저버린 아버지를 보고 비뚫어지기로 결심하면서, 말도 안되게 안하무인으로 행동하고 여색을 탐하며 결국 왕위를 버리기로 한 조선건국의 왕 이성계의 손주이자 태종 이방원의 첫째 아들인 양녕대군의 이야기 <왕위를 버린 남자>, 역사를 통틀어 가장 사랑받은 왕 중 하나인 완벽한 성군 세종의 비로 완벽한 뒷바라지는 물론 시부모도 극진히 모셨으며, 다른 여인들에 대한 투기도 하지 않았으며 내명부 통솔능력도 탁월해 당시 흠잡을데 없는 완벽한 여인으로 칭송된 소현왕후의 이야기 <기도>, 그리고 유독 정이 가지 않았던 첫번째 세자빈, 동성애로 폐출된 두번째 세자빈, 그리고 죽은 후에야 사랑임을 깨닫게 된 단종을 낳은 순임이와의 인연을 통해 여인들과의 인연이 유독없음을 여실히 보여주며 결국 왕비없이 즉위한 조선 최초의 왕인 문종의 이야기를 담은 <나만 몰랐던 사랑이야기>가 펼쳐진다. 또한 정치개혁의지도 강했으며 정지척 감각도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다가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겪은 이후부터 폭력성을 여실히 보여주었던 연산군과 그의 모친 희빈장씨 이야기인 <붉은 적삼>, 연산군의 처남으로 당시 반란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버지가 숙청이 되면서 중종의 비가 된지 7일째에 폐위된 단경왕후가 38년동안 빈곤한 삶을 살며 중종을 기다리는 이야기를 담은 <다홍치마>, 우리 드라마나 영화 사상 가장 빈번히 제작발표된 소재로 알려진 인현왕후나 숙빈 최씨의 입장이 아닌 인심이 후해 궁녀들의 사랑을 받아왔던 희빈 장씨의 이야기를 철저히 궁녀 김원미의 시각으로 담은 이야기 <장옥정전>, 마지막으로 <강화도지리사>에 언급되어 민간에 전해진 이야기로, 조선왕조실록의 공식적 기록으로서는 마지막왕인 철종이 역적으로 몰려 귀양을 와서 만난 천민 봉이와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첫사랑>이 실려있다.

각 이야기는 모두 작가만의 특별한 상상력이 더해져 조선왕조실록을 근거로 해 모두 소설로 각색이 되었으며, 철저하게 주제와 관련된 주인공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또한 각 이야기가 끝이나면 '~~와 ~~, 그 밖의 이야기' 코너를 통해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한 평가와 기록들을 상세히 추가적으로 부연설명을 더해주고 있어 사실을 판단함에 있어서 객관적 근거를 제시해주는 듯해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또한 각 인물의 영정, 어보, 어필은 물론 관련된 능이나 묘, 당시 유명한 작가나 그림, 궁들을 포함한 소설 속 인물과 연관된 역사적 유물들을 사진과 함께 상세한 추가설명을 실어두고 있는 것도 굉장히 읽을 거리를 풍성하게 해주고 있다.

각 스토리마다 감미로운 로맨스를 기대하지만 사실 생각처럼 아름답게 보이지만은 않았다. 특히나 그들의 권력과 힘과는 상대적으로 왕이나 세자로의 삶, 그리고 여인으로서의 삶의 무게가 마냥 즐겁고 행복하지만은 않아 보였다. 끊임없는 권력암투에 대한 견제와 언제 식을줄 모르는 사랑에 대한 불안감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마저 들게 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회자되며 우리들의 기억에 각인되는 것은 그들만의 특별한 신분을 이용한 스토리자체가 우리의 역사이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알면 알수록 더 궁금해지고 재미가 더해지는 <소설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 나쁜 남자편>!! 작가의 말대로라면 '좋은 남자편', '나쁜 여자편', 그리고 '좋은 여자편'의 출간도 다시금 기대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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