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여수의 눈물
백시종 지음, 이준섭 그림 / 문예바다 / 2020년 10월
평점 :

지난 8월 광복절 전후로 의병과 독립운동에 관련된 도서를 연달아 읽으며 여순사건을 눈여겨보고 있던 차에 우연히 들른 독서까페에서 <여수의 눈물>이라는 책이 소개되는 글을 보았다. 우리 부모님 세대에서 겪었을 법한 사건임에도 아직까지도 근현대사에 대한 왜곡된 해석들이 너무도 많았던지라 어릴 때에는 단순히 여수와 순천으로 침투한 무장공비 저격사건정도로 알았는데 세월이 흘러 관련인물과 목격자들의 증언을 들어보니 이는 내가 알고 있었던 것과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여전히 이중적 잣대의 시선이 존재하긴 하지만 이념과 사상과 전혀 상관없는 무고한 시민들이 엄청나게 사살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므로 좀더 자세히 이 사건을 들여다보고 싶은 호기심이 동했다. 사실 혁명과 반란의 차이 역시 누가 어떠한 과정을 통해 어떠한 시선으로 기술하느냐에 따라 엄청나게 다른 결과물을 쏟아내기 마련이고, 역사기록은 대부분이 그 다음 권력들을 쥐고 있는 시각에서 쓰여지는 것이 일반적인지라, 객관적인 사실에 입각하기 보다는 권력자의 이익을 우선시 할 수 밖에 없음은 어쩌면 당연하다 할 수 있을것이다. 70년이 지난 현재의 시각으로 보는 그 때의 이야기, <여수의 눈물>이 기대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점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 <여수의 눈물>은 유년시절 10년을 여수에서 보낸 작가 백시종선생님이 53년만에 쓰는 고향이야기로, 반공법과 연좌제법이 존재한데다 피해자와 그의 가족들이 여전히 살아있어서 쓰고 싶어도 쓸 수 없었던 1948년 10월 19일의 여수순천사건을 다루고 있다. 책에서도 언급되는 수지중학교의 70년전의 흑백 사진이야기는 실제로는 모 박물관에서 작가님이 실제로 본 것으로, 여수경찰서 뒤뜰에서 누더기를 걸친 스물 여덟명이 생존자체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그 눈빛만큼은 놀라우리만큼 예리하면서도 매서움마저 느껴져, 이들의 이야기를 평생 사명감을 갖고 써야할 과제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여수순천 10.19사건'은 2000년에 들어서야 서서히 사람들의 관심을 갖기 시작하게 되었고, 1만 5천여명이나 되는 희생자 대부분이 군경이나 토벌군에게 학살당한 민간인들로 이유도 모른채 학살당한 피묻은 동백꽃이 만발했던 오동도에 대한 그 본질 찾기 운동의 일환으로 이 책 <여수의 눈물>이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인듯하다.
어린시절을 여수에서 보내다, 아버지의 7주기 제사 다음날 아버지의 유품가죽가방과 현찰을 들고 가족들과 야반도주를 하며 서울로 상경한 병수는, 어머님의 놀랄만한 사업수단으로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어마어마한 재력가이면서 유일한 상속자가 되어 같은 수준의 아내를 만나 결혼도 했고 외국에 살고 있는 딸도 있다. 서양화가이자 대학교수로도 잘나가던 병수는 은퇴 후 개인작업실을 알아보던 중 고향친구 김귀석을 통해 폐교수순을 밟는 수지중학교를 추천받는다. 그 곳에서 우연히 발견한 70년전의 28명의 누더기를 걸친 섬뜩한 표정의 사람들 사진을 발견하게 되어 휴대폰을 꺼내 찍으려던 찰나 왼쪽 귀퉁이에 배다른 형제인 어릴 적 형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밤에만 늘 어머니를 찾아와 밝은 데서 한 번도 본 적 없던 아버지가 양조장집 외동딸과 결혼한 사실을 알게 되고, 그러던 중 두루마기에 중절모를 쓴 아버지의 사형 집행을 형은 직접 목격하게 된다. 작업실을 오픈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당시 이승만과 김귀석의 숙부 김찬구씨가 살아온 해방정국의 발자취와 자칭 백두산 호랑이로 불리우는 김종원의 잔인무도한 행각을 알게 되고 친구 김귀석이 하는 '역사바로세우기'운동단체를 통해 그간에 관심조차 없었고 무지했던 여수사건의 실상을 조금씩 상세히 알게 된다. 그러던 중 치매로 입원중이신 어머님의 부고를 듣게 되고 어머님에게서 재정적 후견을 받아왔던 김학봉이 어머님의 유언으로 어버지를 국가유공자로 지정하는 일에 앞장서는 과정에서 아버지를 쏘아죽여 미전향장기수로 북에 이송된 박상돈에 대해 알고있다는 친구 김귀석의 숙부인 김찬구를 통해 아버지에 대한 놀랄만한 반전 과거사실이 밝혀지게 된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가슴 아픈 민족의 슬픔이 묻어져 있어 너무도 마음이 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여수순천사건에 대해 아는 바가 많지않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어 보였다.
'유명대학교에서 이름을 뽐내다 은퇴하는 교수 신분인, 어쩌면 한국 대표 지성인 중의 한 사람이라고 자부해 마지 않는 내가 고작 한다는 게 왜 여순 '반란'이 아니고 '민중항쟁'일까 고개를 갸우뚱하고 말았을 정도였으니 나의 몰상식한 무지가 어떤 수준인지 충분히 가늠되고도 남는다. (p.171)
그런 가운데 친구 김귀석이 국가를 향해 던지는 이 한마디는 굉장히 큰 울림을 주고 있었다.
'우리에게 피해를 준 상대가 개인이나 단체가 아니라 국가라는 사실이 더 절망하게 만든 요인이었어. 외적으로부터 나를 보호해 줘야 할 나의 마지막 보루인 국가가 되레 총을 겨눠 부모와 형제와 자매와 혈육을 무자미하게 학살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는지도 모르지. 다시 말해 내가 유일하게 의지해야 할 최종 보호자인 아버지가 어머니와 공모하여 갑자기 나에게 총을 쏘고 대창으로 복부를 찔러 후비는 형국이었어.'(p.181-182)
또한 이 책이 다른 책과 다른 점으로는 바로 여수의 슬픈 사건을 재조명하는데 도움을 주는 그림들이 삽화가 이준섭씨의 작품으로 각 장마다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만화기법의 삽화들은 책의 내용을 좀 더 쉽게 이해를 돕게 해주고, 당시의 잔혹함과 비극의 순간을 그대로 재현해주고 있어서 넋을 놓고 보게 되는 매력이 있었다.
'여수순천반란사건'은 최근 '여순순천사건'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현재 작가는 '여수순천 민중항쟁'으로 바꾸고, 기념관과 기념탑 세우기에 일조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날의 비극적인 순간을 재현한 이야기를 이렇게 <여수의 눈물>이라는 글로 썼다고 한다. 분명한 건 제주4.3사건의 진압군으로 여수에 주둔한 14연대가 이 반란을 일으킨 사건임에 틀림이 없고, 색깔론이나 좌우익을 따지는 사상적인 견해문제로 여전히 많은 잣대를 가지고 논쟁의 대상이 되긴 하지만, 이 사건으로 인한 최대 피해자들 역시 바로 그 지역에 살고 있었던 주민들이라는 점은 명명백백해 보인다. 그래서 다시 한번 이 사건에 대해 논의가 활발히 이뤄어져 희생자들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을 쓴 작가님이신 백시종선생님이 22세때에 그해 신춘문예 두번 당선으로 시작해 수많은 작품상을 수상하셨으며, 2007년부터 이순이 지나면서부터 매 해마다 한 해도 거르지 않으시고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임하시고 계신다는 점에서 존경과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