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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개가 달려가네요 ㅣ <5+5> 공동번역 출간 프로젝트 2
유리 파블로비치 카자코프 지음, 방교영 옮김 / 걷는사람 / 2020년 7월
평점 :
러시아하면 톨스토이나 도스트예프스키와 같은 전 세계적으로 위대한 작가들이 떠오르긴 하지만 막상 그들 외에는 읽어본 작품들이 나의 기억 속에 잘 떠오르질 않는다. 최근 한러 수교 30주년을 맞이하여 러시아와 우리문학시리즈 <5+5>를 한국문학번역원과 러시아문학번역원에서 협업하여, 도서출판 걷는 사람을 통해 출간을 하며, 양국 간의 외교 및 문화적 협력관계를 도모하는 프로젝트를 한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해들었다. 그 다섯 권의 러시아 문학들 중 러시아인들이 사랑한 '산문으로 쓰는 시인'이라는 불리우는 서정적 단편소설의 대가인 유리 파블로비치 카자코프의 단편선을 모은 <저기 개가 달려가네요>를 읽을 기회를 만나게 되어, 이 작품에 대한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 컸다.
이 책은 섬세한 문체와 특유의 감각을 통한 묘사기법으로 서정의 대가라 불리우는 유리 파블로비치 카자코프의 첫번째 한국어 번역서라 한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삶을 추구한 그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지닌 작가로서 현대인들의 고독과 소외, 무관심과 권태, 개인주의와 이기심을 표현한 1954년부터 1977년까지의 대표작 14편의 단편들로 묶어 출간된 책이다.
첫번째 단편 '파랑과 초록'(1954년)에서 릴리아와 알료샤의 사랑은 그저 어설프고 서투르기만 했다. 영원히 함께 할 거라고 여겼지만 그들의 헤어짐은 첫사랑이라 더 자연스럽게 느껴졌고, 누구나 한 두번씩 경험했었던 젊고 푸르렀던 옛 추억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해 보여주고 있었다.
- 모든 순간이 우리였고, 모든 순간에 항상 함께 했다. 과거도, 미래도, 기쁨도, 마지막 숨을 내뱉는 순간까지도 함께 할 것이다. 매일이, 아니 매 순간이 머리가 핑 돌아버릴 것처럼 행복하다. (p.34)
- 일 년이 지났다. 세상이 무너지거나 혹은 삶이 멈춰버리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릴리아를 거의 잊은 것 같다. 아니 잊었다. 솔직히 말하면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p.41)
태어날 때부터 눈이 보이지 않아 버려졌던 개를 데려와 아프크투르라는 이름까지 지어주며 키우지만 야생의 본성을 지니고 있었던 '사냥개, 푸른별 아르크투르'(1957년)와 서커스단을 탈출한 갈색 곰이 야생에서 서서히 본능을 통해 진정한 자유를 얻어가는 '테디'(1956년)는 자연 안에 위치한 고독과 소외를 통해 동물들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인간과 세상의 모습이 담겨져 있어서 읽고나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 자유란 위대한 것이다! 자유는 태양과 별로 가득한 광활한 하늘과 같다. 자유란 일정하게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이나 빠르게 소리를 내며 흘러가는 물과 같다.(p.120)
지극히 개인적인 행복만을 추구하다 관계가 단절되고, 주위에는 무관심하여 이 무관심으로 결국 인간 스스로 소외됨을 이야기하는 '저기 개가 달려가네요'(1961년)와 인간의 개인주의와 이기심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고요한 아침'(1954년)과 '못생긴 여자'(1956년)이야기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메세지를 전달해주는 느낌을 받았다.
'꿈 속에 넌 슬피 울었지'(1977년)과 '작은 초'(1973년)는 아들 알료샤와 아버지의 회상이야기를 조금씩 다른 이야기로 그리고 있다. 자식과 자신이 하나라고 여겼던 마음이 해를 거듭할수록 멀어지고 스스로 자신의 길을 살아가는 아들의 모습을 쓸쓸하게 바라보는 아버지의 모습이 담겨져있다. 환하게 빛나는 촛불과 아들의 모습을 비교하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인 장면으로 비춰졌다.
- 아들, 네가 바로 촛불 같구나!'(p.270)
'섬에서'(1958년), '참나무 숲의 가을'(1961년), '간이역에서'(1954년), 그리고 '12월의 연인'(1962년)작품은 사랑하며 행복을 느끼게 되다가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이별을 받아들이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무관심과 권태로움이 작가 특유의 필체로 담담하게 표현되어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 사람들은 보통 미래에 희망을 걸곤 하죠. 미래를 기대하며 시시하게 바쁘고, 재미없게 현재를 사는 겁니다···. 주위에서 그 어떤 좋은 것도 깨닫지 못하며 삶을 욕하고, 머지않아 행복이 찾아올 거라고 믿으며 그렇게 사는 것이죠. 모두가 그래요, 당신도 마찬가지고, 저 역시도···. 하지만 사실은 행복은 우리 모두에게 모든 곳에, 어디에나, 존재합니다. 행복은 지금 바로 당신과 제가 함께 앉아 차를 마시는 것이고, 제가 당신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당신도 아시겠지만, 좋아합니다···.(p.285)
매일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도 우리는 자주 외로움을 느끼고 철저하게 더 고립되어 가는 느낌을 받게 된다. 작가가 살았던 시대와 그 배경은 다소 다르지만, 예나 지금이나 우리가 느끼고 깨닫는 감정들은 모두 비슷한 느낌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과거를 살아왔고, 현재를 살고있고, 미래를 살아갈 것이다. 그러한 우리들의 삶의 이야기를 카자코프만의 서정적인 문체로 통해 진솔하게 만나볼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