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묘하게 강한 인상을 남기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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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는 아니지만 - 구병모 소설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7월

 [고의는 아니지만]은 7가지 무지개 같이 각자 구별되면서도 이야기에서 베여나오는 느낌이 비슷비슷한 독특하고 신선한 책이다. 상징과 은유를 잘 드러내주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묘한 여운을 주면서 끝내는 단편들은 이 책에 수록된 이야기들의 공통점이다. 처음에 시작되는 '마치...같은 이야기'는 제목부터가 의미심장함을 지니고 있는데 다 읽고 나서는 더더욱 음미할만한 주제의식과 미묘한 비판의식까지 느낄 수 있다. 한때 희곡을 썼던 괜찮은 친구는 기회주의자가 되어 주류의 흐름에 맞는 생활방식에 빠져 정신없이 바쁘다. 건의를 하기 위해 시청에 갔지만 관리자는 말이 통하지 않는 괴물이다. 주인공은 시인이지만 사실 그는 부조리와 억압에 눌려져 있는 모든 시민을 대변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하필 시인으로 설정한 것은 시인은 낱말 속에 감성과 감정을 실어 언어를 압축시키지만 그 속에 모든 것을 내재하고 있다는 근원적 특징에서 대표로 꼽은 것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타자의 탄생' 또한 독특한 구성 속에서 성찰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는데 흐름이 너무나도 황당하지만 점점 읽을수록 익숙해진다는 점에서 작가의 뛰어난 필력이 엿보인다. 어느 날 갑자기 홀 속에 몸이 끼어버린 남자와 그의 주변에 일어나는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가하는 비현실성 보다는 실감나고 사실적으로 표현한 서사에 더 집중된다. '구멍은 어디에나 있어요'라고 말하는 남자의 말이 인상깊다. 소외된 인간을 바라보는 타자의 한계를 적나라게 드러낸다.  

 '고의는 아니지만'은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사명감을 가진 교사가 각자 다른 환경에서 자라고 성격까지 다른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겪는 문제들을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시선으로 묘사한다. 이 작품을 비롯해 '조장기'와 '어떤 자장가'는 직업을 가진 여성으로써 한계의 상황에까지 내몰리는 극한 현실의 상황을 잘 말해주고 있다. 현대 직업 여성의 고달픈 목소리가 '어떤 자장가'에서 소리가 높아지고 일자리가 없어 당장 그만 둘 수 없는 일을 하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스트레스에 짓눌린 '조장기'의 여성 모습은 잊혀지지가 않는다. 새에게 살점을 뜯어먹히는 사람을 부러워할만큼 삶의 무게에 지쳐 있는 모습이 낯설지가 않다.  

 '재봉틀 여인'에서 나오는 소재는 신비롭기까지 하다. 감정을 꼬매어 무감각해진다는 발상이 얼핏 낯설지만 생각해보면 그 무감각해짐이 많은 상처와 헤집음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이 서글프고 슬프다. 이 책이 치밀함과 나아가 치열함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작가의 감정이 느껴져 뭉클하다.  

 '곤충도감'은 가장 새로운 시각이었지만 공감하기는 쉽지 않았다. 작품 속에 나온 몇몇 문장들은 이 작품이 아닌 이상은 대입하기 곤란할만큼 애매한 도덕적 물음과 답이 있었고 그랬기 때문에 이 작품 이상은 뻗어나가지 못하는 심상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일상적 무감각과 전도된 가치관들에 치명적인 독성을 주입한다.'는 이 말이 이 책의 특징을 가장 잘 말해주는 문장이 아닌가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