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차가운희망보다뜨거운욕망이고싶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 - 청년 김원영의 과감한 사랑과 합당한 분노에 관하여
김원영 지음 / 푸른숲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이 많은 시장에 가면 가끔 보곤 했던 게 누워서 혹은 앉아서 리어카를 끌고 가며 물건을 파는 아저씨였다. 아저씨는 가끔 좁은 길에서 빽빽한 사람들 사이들 사이로 리어카를 돌리다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도록 끼이기도 했다. 그러면 이리저리 돌려가며 리어카를 빼려고 용을 쓰곤 했는데 무심한 사람들 사이에서 도와주려고 했더니 극구 사양하며 혼자서 해결하고 돌아갔다.

 그런 모습이 왠지 안타깝고 안쓰러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란 그 아저씨를 위해 마음속으로 응원하는 일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아저씨의 모습이 비굴하거나 무례한 점은 전혀 없었다. 그저 남에게 피해 안주고 스스로 해결하려는 아저씨의 모습이 내 마음의 딱딱한 곳을 건드렸다고 할까. 그 아저씨는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도 했다.

 어릴 때 내가 살던 동네는 아픈 사람이 많이 살고 있었고 전체적으로 궁핍함의 향기가 곳곳에 스며있는 곳이었다. 집에서 조금 걸어 나오면 일명 '또랑가'라고 불리던 썩은 물이 흐르는 얕은 시내가 저 아래에서 흐르곤 했었는데 거기에는 박쥐떼도 있었다. 덕분에 나는 박쥐와 동거동락한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 수 있다.

 또랑가 위의 다리를 건너면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불퉁불퉁하고 양 볼에 혹이 달린 빨간 얼굴의 혹부리 아저씨가 살고 있었고 그 근처 어딘가에는 다리 없는 아저씨가 살고 있었다. 두 다리가 없는 아저씨는 가끔 허전한 자리에 고무로 된 무언가를 끼우고 엎드려서 고무 슬리퍼를 손에 끼우고 밖을 나다니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아저씨는 가족도 없었던 것 같고 휠체어를 살만한 형편도 안 되었기에 그렇게 누워서 다녔던 것 같다.

 그리고 우리 반에는 몸에 화상을 입었고 얼굴이 조금 이상하게 생긴 여자 아이가 있었다. 나는 그 시절 그 아이가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우리와 조금 다르게 생겼고 좀 못생긴 편이라 남자아이들이 그 아이를 괴롭히거나 그 아이에게 친구가 없다고 생각했다. 여자 아이 이름은 '은지'였다. 나는 다른 아이들의 이름은 잊었지만 그 아이 이름은 결코 잊지 못했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는 은지 같은 아이들이 제법 있었다. 내가 아는 아이들로는 10명정도였던 것 같다. 그런데 같은 반이 아닌데도 나는 그 아이들을 알고 있었고 다른 아이들도 그랬던 것 같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은지'와 비슷한 '형주'라는 아이와 같은 반이었는데 이 둘을 알고 있는 아이들은 '은지'와 '형주'가 정말 잘 어울리는 커플이라고 놀리기도 했었다. 나는 그 아이들을 놀린 적은 없었다. 단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을 뿐이었다.

 중학교땐 내 학년 위로 난쟁이 언니가 학교를 다녔는데 이 언니는 분위기가 조금 어두웠던 것 같다. 나야 같은 학년도 아니었기에 그저 스쳐 지나치다가 마주치기만 했지만 그럴 때마다 그 언니의 얼굴은 무서우리만큼 어둡고 모든 사람을 경계했다. 내가 아는 정도는 그 정도랄까.

 생각해보면 내가 살아온 학교, 길, 동네에서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과 늘 함께 있었던 것 같은데 왜 어느 곳에서든 장애인 이야기가 나오면 마치 먼 사람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졌을까. 내 앞에 있는 삶의 무게 때문에 나보다 더 큰 삶의 무게를 가진 사람을 쳐다보지 못해서. 그럴려고 생각도 안해서?

 가끔 뉴스에는 사지가 멀쩡한 사람이 장애를 가진 사람을 이용해 자기 실속을 챙기거나 심하면 장애인들을 멋대로 부리기도 하는 장면이 목격된다. 여자일 경우는 성폭행 사건도 조용치 않게 보도되곤 한다. 그런 걸 보면서 인간이 얼마나 썩었고 나쁜 가에 대해 치를 떨기도 하지만 사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모르겠다. 그저 그런 소식을 들으면 분노를 터뜨리지만 다시 일상의 무관심한 생활로 돌아간다. 그런 건 무능한 정부에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 제법 긴 문장의 제목이지만 왠지 내 마음이 뜨끔해지는 문구이기도 하다. 책을 읽어보면 장애를 가진 삶이란 무엇인지 어떤 형태로 세상을 보는 눈이 열려있으며 세상은 그들을 어떤 시선으로 보는지, 여태까지 마음속에 담아두고 펼쳐놓지 못한 저자 '김원영'씨의 심경을 알 수 있다. 내가 그의 삶을 공감할 수는 없지만 이해할 수 있다면 거짓말일까. 솔직히 겉으로 장애를 가진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는 항상 내겐 어려운 숙제같다. 내 속에도 장애가 있다. 그러니 당신을 이해할 수 있다. 이게 위선이 된다면. 나는 어떤 말로도 그들을 이해시키지 못할 것 같다. 어쩌면 나는 어릴 때 가난함과 궁핌함속에서 살았고 고통의 깊은 맛이 무엇인지 아니 당신을 이해할 가능성이 더 많다고 하면 어떨까.

 어찌보면 수필이라고 볼 수도 있는 이 책은 그의 경험을 통해 이 세상에 당연히 있어야 할 권리에 대한 외침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직은 많이 꼬여 있고 복잡해서 어려운 문제는 풀려고 하는 사람만 있다면 언제나 시간을 두고 해결되게 되어있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열정이 더해지는 만큼 다른 사람에게 그 뜨거움이 전해질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가 책을 쓰면서 가진 열정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 열정이 식지 않아 계속해서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워갈 수 있도록 힘을 보내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런 그에게 응원을 보내주는 일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