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풀한 교과서 세계문학 토론 - 세계사를 배우며 읽는 세계고전문학! 특서 청소년 인문교양 9
남숙경.박다솜 지음 / 특별한서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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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세계문학, 세계고전문학, 때론 줄여서 세문....여러 이름으로 부르며 늘 읽고 있고, 읽기 시작한 이후 수 십년이 지났지만 날로 새롭게 다가오는 세계문학은 평생의 벗이 되었다. 한 작품을 출판사별로 소장하기도, 역자의 차별점이나 읽히는 글맛의 차이를 살피기도 하며 세계문학 읽기는 오늘도 계속된다. 그러다보니 초 중등 친구들과 하는 독서 수업에도 취향껏 세계문학을 다루곤 하는데 당연하겠지만 친구들은 아무래도 나만큼 열광하지 않는다. 심지어 과연 읽어올 것인가’, ‘읽어만 주어도 좋겠다는 생각에 노심초사하며 수업을 맞는데 시행착오 끝에 결국은 단편 쪽으로 방향을 선회해서 모파상이나 오 헨리 등으로 작품 읽는 시간을 수업 중에 할애하곤 한다. ‘완독’, ‘정독은 무엇을 하건 전제되어야 할 기본이기 때문이다.


그런 고민이 있었기에 작품 창작 시기에 대한 배경지식을 쌓음으로써 고전을 보다 쉽게 읽도록 돕는 것이라는 저자의 집필 목적이 반갑게 다가왔다. 현재가 아닌 과거, 살아본 적 없는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온전히 이해하고 수용하고 나아가 현재의 나 자신에게 적용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단계가 필요하다. 여기에 일정 부분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옳지만 그럴만한 여유를 내기가 현실적으로 쉽지만은 않다. 또한 배경지식을 쌓는다는 것이 과연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 양과 질에 있어서 너무나 애매하다. ‘파워풀한 교과서 세계문학 토론은 그런 단계를 엄선된 세트 메뉴처럼 정성껏 펼쳐 보인다.


작품 선정이유를 통해서는 이 작품에서 무엇을 살필 수 있을지 주제를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작가의 삶을 짧게나마 들여다 보고 한 면으로 정리된 시대사 연표로 작품 출간 당시의 세계사와 동일 시점 한국사을 비교해 보게 된다. 본격적으로 작품 속 세계사 공부가 이어지는데 독자는 시공간을 거슬러 또 다른 면면을 만난다. 용어사전은 꽤 자세하게 핵심 키워드를 설명하고 있어서 찾아보아야 하지만 미심쩍게 넘어가고 마는 개념을 확실히 하도록 도와준다. 이해의 폭은 그만큼 넓어지게 된다.


쟁점과 토론에서는 인물관계도와 인물소개, 표로 정리한 쟁점 찾기와 마인드 맵, 토론 요약서와 입론서까지 한 작품을 충분히 깊게 해석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교과서 중심 세계문학 열 작품을 읽으면서 더 많은 작품들도 다루어 줬으면 하는 기대감도 생긴다. 이 책을 길라잡이 삼아 세계문학을 읽는 것이 비단 어느 시점, 어느 목적을 위한 읽기에서 더 나아가 벗이 되고, 동반자가 되는 세계문학 읽기, 질문하고 답하고 되묻는 자연스런 반복이 선순환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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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죄와 벌 1~2 - 전2권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이문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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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굴곡들의 가파름이 조금이라도 덜했다면 그리고 조금 더 오래 살았다면 도스토옙스키는 스스로에게 또 후대에 더 많은 것을 선사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더 아름다웠을까 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특히 동시대를 살았던, 태생부터 귀족이었던 톨스토이와 비교할 때 삶과 그 연장으로서의 작품은 전혀 다른 색깔을 보인다. 죄와벌을 처음 읽었던 20대 때를 돌아볼 때 생계로서의 글을 쓰며 페이지를 늘리느라 묘사에 묘사를, 서술에 서술을 쌓아올리는 남루한 도스토옙스키를 상상하곤 했다. 그럼에도 상황설명과 과도한 분석을 몇 번이고 반복하는 그의 문체가 옆에서 말을 거는것처럼 때론 다정하게 느껴졌다.


 

 

 

그 첫 번째 만남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노파살해사건, 마치 영화 한 장면을 눈앞에서 보는 듯 생생했던 장면인데 이 공포는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닫힌 방문 너머 어디쯤에 혹시...하는 공상에 오랫동안 시달리게 했었다. 올 초, 두 번째 독서에서는 차라리 에필로그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유령같은 얼굴로 자백을 되풀이하는 라스콜리니코프로 이야기가 끝난다면 하고 가늠해봤다. 라스콜리니코프의 갑작스런 회심, 유형지에서조차 자신의 죄를 인정할 수 없었던 그가 한 순간 깨달음과 함께 새롭게 변하는 상황이 결국 소냐라는 빗물이 가 되었을 때 결국은 돌을 뚫는구나 이해하면서도 말이다.


 

 

 

세 번째 만남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끝내자 마자 읽었다는 배경 때문이었는지 은연중에 형제들과 비교하게 되었으며 단순하게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로 읽혔다. 가장 좋은 요약은 한 범죄에 대한 심리학적 보고서라는 작가가 칭했던 부제라 생각한다. 젊고 명민하며 빼어나게 잘생긴라스콜리니코프는 스스로를 벗어날 수 없는 감옥에 가둔다. 그 감옥은 질식할만큼 작고 더러운 방이라는 물질적, 육체적 옥죄임과 나폴레옹을 비롯한 선을 넘는 인물들과의 정신적 대결과 소통의 자발적 차단이라는 겹겹의 구조물로 이루어져 있다. 균형을 잃은 의식은 반복되는 우연의 일치와 꿈을 의미심장하게 해석함으로 자신의 이론을 입증하고자 행동하고 만다

 


 

 

 

행동 이후, 사건 직후부터 위에 말했던 심리학적 보고는 라스콜리니코프 뿐만 아니라 여러 인물의 입을 통해 작성된다. 처음부터 그는 ‘(중략)판단할 수 있었다면, (중략)가늠할 수 있었다면, (중략)이해할 수 있었다면, 분명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바로 자수하러 갔을 것이며, 그건 (중략)순전히 자기가 행한 일에 대한 끔찍함과 혐오감 때문이었을 것이다.(1125)’고백하는데 이 내적 갈등은 작품의 막바지까지 고통스럽게 이어진다. 불행하게 죽음을 맞은 마르멜라도프의 집을 나올때처럼 잠깐씩은 구원의 빛을 보기도 했다. 어떤 새롭고 무한하며, 갑자기 밀어닥친 충만하고 강렬한 생명의 느낌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 느낌은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 느닷없이 뜻밖의 사면을 받았을 때의 느낌에 비견할 만한 것이었다.(1290)”고 작가의 경험을 투영한다.


 

 

 

“(중략) 어쩌면 우리를 걱정하느라 몸을 망쳤는지도 몰라요. 너그럽게 대해야 하고, 많은 걸, 많은 걸 용서할 수 있어야 해요.(1372)” “걱정 마세요, 엄마, 마땅히 있어야 할 일이 있겠지요.(1372)” “엄마가 엄마라는 걸 기억해!(2240)”라며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는 여동생 두냐. 로쟈가 우리는 서로 다른 부류의 인간이라 말했고 자신의 이론과 동기와 결심의 과정, 생각이 병이된 과정을 처음으로 낱낱이 고백할 수 있었고, 그녀가 읽어주는 성경에 귀기울이고자 원했으며 결국 구원의 가능성이 되어준 소냐. 두 여성, 두냐와 소냐는 지혜와 사랑의 표본으로 다가왔다. 이들과 대조되는 반대측의 캐릭터들 중 스비드리가일로프에 대해서는 그렇다면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수수께끼야······(2274)“라는 문장에서 후에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이반 형은 수수께끼야라던 문장을 떠올리게 된다.


 

 

 

도스토옙스키 작품들 속에서 캐릭터들간의 공통점이나 유사한 지점 또는 발전된 형태를 예측해보는 것은 흥미롭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스메르쟈코프처럼 스비드리가일로프 역시 비슷한 길을 걷는다. 62장의 자수를 권하던 포르피리 페트로비치와 라스콜리니코프의, 마지막에 모든 실현가능성에 대한 예비책까지(”만일에 대비해서 청이 하나 더 있습니다.“-3298) 언급하는 대화 장면도 인상깊었다. 심리전과 반전, 지적대결 또는 말 겨루기등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이곳은 반쯤 미친 자들의 도시더군요. 우리에게 학문이란 게 있다면, 의사, 법률가, 철학자 들이 각자 전공을 살려 페테르부르크에 대해 아주 귀중한 연구를 할 수 있을걸요. 페테르부르크만큼 사람의 영혼에 음울하고 강렬하고 기괴한 영향을 미치는 곳도 드물 거요. 기후가 주는 영향 하나만 봐도 그렇지요! 무엇보다 이곳은 전 러시아의 행정 중심지니, 그 성격이 모든 것에 반영될 수밖에요. (2306)” 내가 오랫동안 동경하던 도시, 꼭 가보고 싶었던 페테르부르크를 문장으로 만난다.


 

 

 

역자가 쓴 해설을 읽는 기쁨이 정말 컸다. 도박과 빚, 간질과 사형집행 직전의 감형 등 기존에 알고 있던 도스토옙스키 생애의 특징들이 구체적으로 연결되면서 조금 더 그의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송금을 구걸하는 편지를 쓰는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의 처음 몇 페이지를 쓰던 도스토옙스키를 상상해본다. 소냐와 알료샤에 버금가는 그리스도를 닮은 인간상이라는 백치의 미시킨 공작을 만나기 위해서도 그의 5대 걸작 중 나머지 세 작품을 빠른 시간 안에 다시 읽고 싶다. 죄는 무엇이고 벌은 무엇인지 라스콜리니코프와 함께 한 길고 고단한 여정을 마치며 역자 해설 말미의 죄와 벌 주석집도 읽을 수 있게 되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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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를 간호하는 간호사
오성훈 지음 / 경향BP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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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에서 간호사 공감 웹툰으로 이미 유명하고 특히나 환자수가 증폭했던 코로나 초기 자원봉사일지 코로나 전사의 일기로 여러 매체에 소개되었던 리딩널스 오성훈의 간호사를 간호하는 간호사가 출간되었다. 인기있는 TV속 의학 드라마에서도 간호사는 중심에서 조금은 빗겨있고, 일반인이 인지하는 간호사도 보이는 단면 만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감염병 최고 등급 팬데믹으로 선포된 코로나19, 그 현장의 참혹함과 어려움을 몇 컷의 사진으로 기사로 접하던 대중에게 코로나 전사의 일기를 비롯한 그의 노력은 사람들로부터 마음으로 결속하고 힘을 내게끔 지원하는 소중한 도구가 되어주었다.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온 간호사를 위한 간호사코로나 전사의 일기로 그 문을 연다. 제 일선에서 전투를 치르는 군사, 전사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은 순간들을 한 컷의 압축된 그림과 생생한 기록으로 만나게 된다. 뉴스로나 들었던 상황이 이토록 힘겨웠구나 그려지며 그 시간 그곳에 있었던 모든 분들, 그리고 여전히 헌신하고 있는 분들께 뭉클한 감동을 받는다. 2부는 어서 와, 간호학과는 처음이지?’라는 제목의 간호학 전공 학생의 4년을 그려본다. 재치있는 그림, 무엇보다 눈을 끄는 표정들, 글은 사실만을 가감없이 전달한다. 이 장에서는 웨이팅게일, 하고 싶은 거 다 하기무척 공감한다! 임상을 떠난지 좀 되었음에도 웨이팅기간은 내 인생의 꿀이었다고 뒤돌아본다. 출근하라는 전화 받고 울었던 기억도 생생하니, 혹시 웨이팅이 있다면 고농도로 응축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은 진리다!


 

3신규간호사 인계장은 막 입사한 신규간호사가 경험할 현장을 보여주고 4대한민국의 건강을 지키는 나의 이름은 간호사입니다는 본격적인 병원생활을 그린다. 설레임 반 고민 반의 적응기를 살피고 나아가 간호사로서 살아가는 일상을 엿볼 수 있다. 악명 높은 3교대 근무, 아직도 이런 번표가 있나 의아하기도 하며, 정신적 육체적 긴장을 풀수 없는 업무강도, 그러나 그 속에서 의미를 찾고 주변을 돌보는 일상 등 마지막 장까지 중간에 덮지 못하고 이어진다. 또한 파트가 끝날 때마다 알찬 내용을 가득 담은 정보 또는 노하우 코너가 있는데 당연해 보이는 조언까지도 꽤 실질적이고 중요하다. 미리 숙지함으로 자신감을 키우고 고민을 덜며, 지혜롭게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의 재능과 진심이 환자는 물론 제목처럼 임상에서 애쓰는 간호사를 위로하고 돕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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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세트 - 전3권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희숙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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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은 20대 초반의 겨울, 도스토예스키 작품을 가능한 많이 찾아서 읽던 중 한 해를 보내고 맞으며 읽었고 그날의 두근거림은 아직 잊히지 않는다. 두 번째 만남은 올해 초 함께 읽기다시 만날 절호의 찬스를 놓치지 않았다. 이번 세 번째 만남은 의외로 빨리 찾아왔다. 문학동네 도스토옙스키 챌린지라는 참신한 프로그램에 손을 든 덕분이다. 이렇게 세 세트, 세 출판사의 형제들을 소장하게 되었다. 어제 밤에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니, 그 전에 '이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작별하도록 하자.'는 역자의 마지막 문장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작별하고 싶지 않아요...‘중얼거린다. 끝나자마자 첫 페이지로 돌아가 다시 읽고 싶고, 읽어야 할 것 같다, 1권의 첫 장을 열었던 과거의 나를 진심으로 부러워한다. 내내 들었던 생각은 작가가 말하길 이는 첫번째 소설로 주인공의 청년시절 초기 한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했는데 영영 만나지 못하게 된 주된 소설두번째 소설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두 번째 소설은, , ! 아쉬워한다

 

 

처음 읽었을 때 감상을 요약한다면 이반에게 반하다였다. 그의 지적, 논리적 사고에, 내가 결코 닿을 수 없는 지점에 있는 그가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내 막내동생을 닮은 알료샤가 인상 깊었다. 두 번째 만남에서의 변화는 미챠가 내가 생각하던 미챠가 아니라는 것과 알료샤의 부각이었다. 이번에야말로 비로소 읽은 것 같다고 깨닫는다. 엉뚱하게도 정삼각형을 생각하게 되었고 세 개의 꼭지점이 바로 미챠와 이반과 알료샤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상은 정삼각뿔, 정사면체로 나아가며 아버지 표도르 파블로비치는 꼭지점 또는 밑면이겠군 했다. 카라마조프가의 세 형제는 말도 안되는 인생의 폭정 앞에 취하게 될 행동을 인간의 전형으로 생동감있게 구축함으로써 빈틈없는 서사를 보여준다. 그들이 과연 작품 속 인물인가, 시간이라는 조건을 덧붙이자 살았었던, 그리고 죽음을 향해 가는 (나를 비롯한)실존 인물과 치열함에서 한껏 앞서있는 책 속 인물들을 구분하는 일은 그만 무의미해진다.


 

무심하게 지나칠, ‘으레히 그러니까할 행동과 반응을 한 켜씩 분류하고 분석해서 그 심리의 원형을 독자에게 드러내 보여주는 방식을 도처에 사용함으로써 , 나도’, ‘정말 그런데...’각성하게 만든다. 이런 각성이 정확히 보지 못하기에 불편함을 참고 넘어가야 하는 나와 같은 독자에게는 시원함과 안도감을 선사한다. 최소한 불분명한 죄책감을 덜어내고 태도의 방향이라도 잡아가게 해주기 때문이다. 나 조차 모르는 나의 감정을 누구나 가진 낱말만을 진두지휘해서 선연한 문장으로 밝히 보여주니 말이다. 일화의 형식도 드러내 깨닫게 하기, 작가의 의도를 전달하기에 훌륭하게 작동한다. 이반은 학대받는 여섯 아이 이야기를 신의 초대장을 돌려주는 이유로 든다. 가장 빛나는 일화는 대심문관으로 세 가지 시험’, 지상의 양식인 빵과 무엇을 위해 사는가 하는 양심의 문제, 이분법적 대치와 떠나는 신이 드라마처럼 펼쳐지나 알료샤는 길고 복잡한 형의 고민에 단순하고 확신있게 답한다. 양파 한 뿌리, 비밀에 싸인 방문객, 호두 한 푼트, 인상적이었던 천 조 킬로미터 일화까지 계속된다.


 

도스토옙스키적 문장을 읽는 즐거움은 몇 번을 읽어도 줄어들지 않는다. 위에서 말한 감정을 드러내 보여주는 예 중에서 관조’, ‘관조자묘사도 들 수 있다. 1537우수를 이야기할때 어떤 존재나 물체가 어딘가에 비죽 불겨져나와 있는 느낌이랄까(238)’를 비롯한 감정의 정밀묘사도 모호함의 범위를 확실히 줄여준다. 사건 전달자로서 작가가 목소리를 직접 내는 장면들도 친근하다. 미챠가 호흘라코바 부인에게 돈을 꾸러 갔던 장면처럼 수학, 리얼리즘, 기적 등의 단어가 튀어나오며 연극적이고 유쾌할만큼 과장되어 보이는 장면 또한 좋아하는 그만의 스타일이다. 무엇보다 반전을 간직한 결말을 보여 준 후 한 걸음 더 들어가서 숨은 진면목, 적나라한 민낯을 태연하게 서술할 때 놀라지 않을 수 없다. 2권에서 비밀에 싸인 방문객이 죽음을 앞두고 내가 왜 들어갔는지 아는가?(69)’ 묻는 부분에서처럼 말이다.


2163, 관이 안치된 장로의 방에서 알료샤가 꾼 꿈과 2454쪽 모크로예에서 예심 중 미챠가 꾼 꿈은 다르지만 닮아 보인다. 꿈을 꾼 이후 알료샤와 미챠는 세상을 대하는 시각이 변하고 정화를 통한 내적 변화이자 미래에 대한 예표로 여겨진다. 그에 반해 또 하나의 예민한 정신 이반은 죄책감과 고통이 병을 만들고 단잠이 아닌 섬망이자 환각으로 스스로를 쓰러트린다. 미챠의 고군분투는 글로 읽어나가는 것 만으로도 내 체력이 소모되며 진이 빠지는 느낌이고 그와 반대로 이반은 스메르쟈코프로 인해 정신이 오염되어 간다. 이 복잡하고 불행한 가족에게 알료샤라는 선물은 축복과도 같다. 단 한 번도 가족의, 주위의 고통에 눈감지 않았고 원망하는 목소리를 내지 않았고, 비난의 자를 들지 않았다. 실질적인 행동으로 애쓰고 기도할 뿐이다. 대체 왜이래 하는 불평에 치여 죽을 수도 있을 만한 조건임에도 흐트러짐 없이 순전한 마음을 드러내고 움직인다. 서문에 나의 주인공인 알렉세이 표도로비치 카라마조프의 전기라는 작가의 말처럼 완벽한 우리 모두의 주인공이다.


 

작품속 언급된 카라마조프적 특징은 정리해보고 싶었다. ‘삶의 갈증으로 특징을 말하기도, 카라마조프적인 힘을 저열함의 힘과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대전제로, ‘모든 것을 무릎쓰고 카라마조프답게 막무가내로(2-456)’, ‘비열한 놈과는 정반대로 철학자다-철학자로, 진정한 러시아인, 카라마조프적인 본성은 드높은 이상의 심연과 저열한 타락의 심연의 부자연스런 혼합, 카라마조프는 언제나 현재의 순간만 산다, 카라마조프적인 조급함, 뻔뻔한 무절제 등으로 언급하고 있다. 인생에서 만나는 돌부리들, 표도르 파블로비치, 삼소노프, 스메르쟈코프의 우열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분명한 악의는 무력함과 씁쓸함을 남긴다. 미챠의 가구나 그가 밟고 다닐 양탄자가 되겠다 자진했지만 내밀한 분노를 곱게 포장해 가까스로 감추고 있다가 법정에서 가차없이 그 포장을 찢어버리던 순간의 카챠도.


 

이번에는 차례를 암기하면 좋겠다는 다소 과한 욕심도 들었다. 형제들을 명명했던 이름들도 정리해보고 싶다. ‘이반은 무덤이다, 이반 형은 수수께끼다...’. 언제쯤 다시 읽게 될지 모르겠다. 그때는 또 다른 얼굴, 다른 목소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 또한 늘 궁금했던 것 중 하나가 왜 선한 사람-죄없는 사람-이 고통받는가였다. 터무니없을 정도로 선한 사람이! 오래된 질문의 답을 성경 속에서 찾자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그렇게 받아들이자 하면서도 알료샤는 왜 고통당해야 하는가를 또 묻는다. 그러나 알료샤를 통해서 고통을 대하는 자세, 피할 수 없다면 당면했을 때 나는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인지 선택하거나 조절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사실을 배운다. 나를 옥죄고 있는, 여러 모양을 가진 3(루블)의 문제도 그렇게 풀어나가야 하지 않을까! 정말이지 카라마조프 만세다!

 

 

 

 

-그 열렬한 기도 속에서 그는 하느님께 자신의 혼란스러움을 해소해달라고 빌지는 않고, 다만 하느님께 찬양과 영광을 드린 뒷면 언제나 그의 영혼을 찾아오던 예전의 감동, 기쁨에 넘치는 그 감동만을 갈망했을 뿐이며, 잠자기 전에 드리는 그의 모든 기도는 보통 그런 것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1권 322쪽)

-알료샤의 마음은 이런 모호한 상태를 견딜 수 없었는데, 그건 그의 사랑이 언제나 실천적인 성격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는 수동적인 사랑이라고는 아예 할 수가 없었고, 일단 누구를 사랑하게 되면 즉시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1-377)

 

-하지만 난 알료샤라는 러시아 아이 하나만큼은 지독하게 좋아해.(1-472)

 

-“실은, 알료샤.” 이반이 확고한 목소리로 말했다. “끈적이는 어린 새잎들을 내가 정말로 사랑할 수 있다면, 오직 너를 떠올림으로써만 그것들을 사랑하게 될 거다. 네가 여기 어딘가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족하고, 삶에 실증을 내지도 않을 거야.”(1-534)

 

-그리고 너도, 조용한 너도, 나의 온유한 소년인 너도 굶주린 여인에게 오늘 양파 하나를 주지 않았느냐. 시작하거라, 얘야, 온유한 아이야, 네 일을 시작하거라······! (2-168)

 

-어쨌거나 이 일에 있어서는 미챠 쪽에 순진한 구석이 많았는데, 사실 그는 숱한 죄악을 저지르긴 했어도 매우 순진한 사람이었다.(2-180)

 

-왜, 왜 내 비밀을 털어놓아 나 자신을 욕되게 했을까!(2-438)

 

-“사회주의자라고요?”알료샤가 웃었다. “정말, 언제 그렇게 될 시간이 있었습니까? 아직 열세 살밖에 안 됐다고 한 것 같은데요?”(3-87)

 

-카라마조프들은 비열한 놈이 아니라 철학자야. 왜냐하면 진정한 러시아인은 모두 철학자니까.(3-156)

 

-내가 형한테 이 얘길 한 건, 형이 내 말을 믿을 테니까 그런 거예요. 나는 그걸 알아요. 나는 내 삶 전부를 걸고 형한테 이 말을, 형이 아녜요!라는 말을 한 거예요.(3-185)

 

-신은 있는 거냐, 없는 거냐?(3-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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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대학입시 합격전략 & 합격점수 컷
김기영.장광원.김영수 지음 / 리더스입시교육원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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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고 예측 가능한 일상이 펜데믹으로 흔들리고 나니 공부에 매진하고 일정 시점에 원하는 결과를 내야 하는 수험생은 물론 학생과 학부모 모두에게 불안감이 가중되는 것 같다. 긴 수업공백은 무력감과 초조함을 부채질 했는데 시간은 훌쩍 지나가 버렸다. 교내외 입시 설명회에 참여하고 인터넷 검색을 하는 등 입시정보를 수집하느라 기울이는 학부모의 노력 또한 적지 않다. 궁금한 몇 군데 대학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모집요강을 출력하고 비교하는 일도 만만치 않고 한정된 시간동안 어렵사리 이루어지는 면담에서도 급한 마음만 앞서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그런 경험이 아마도 ‘2021 대학입시 합격 전략& 합격점수 컷을 반기고 궁금해 했던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지역별 주요 대학의 입시 분석 및 합격 전략을 꽤 상세하게 담고 있는데 직접 검색품을 팔아 찾아다녀야 할 정보가 집중되어 있어 만족스러웠다. 서류평가와 면접평가에서 체크해야 할 부분도 사례를 곁들여 구체적으로 설명해준다. 입시전문 컨설턴트가 제공하는 자료라 다년간의 노하우를 세심하게 풀어주었음을 알 수 있다. 면접 예시 문항이나 영역별 유형은 학교별로 무엇에 중점을 두는지 찾아볼 수 있고 그에 맞춰 노력의 방향을 세워나가도록 돕는다


무엇보다 기대하지 않았던 후반부의 책 속 부록이 알차게 구성되어 있어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힘을 준다. ‘학종 궁금증과 대비방법 멘토링코너에서는 학생들의 질문을 그대로 보여줌으로 어려움을 해소하고 자신에게 적용함으로 조금이나마 불안을 덜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자소서에 대해서도 기본과 작성요령, 입학사정관의 평가시각, 작성의 실제까지 단계별로 따라갈 수 있도록 했다. 면접 노하우 또한 유용한 핵심을 정리하고 있다. 입시라는 피할 수 없는 숙제 앞에 열심을 내며 애쓰는 수험생은 물론 학부모에게도 필요한 도움이 되어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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