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죄와 벌 1~2 - 전2권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이문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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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굴곡들의 가파름이 조금이라도 덜했다면 그리고 조금 더 오래 살았다면 도스토옙스키는 스스로에게 또 후대에 더 많은 것을 선사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더 아름다웠을까 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특히 동시대를 살았던, 태생부터 귀족이었던 톨스토이와 비교할 때 삶과 그 연장으로서의 작품은 전혀 다른 색깔을 보인다. 죄와벌을 처음 읽었던 20대 때를 돌아볼 때 생계로서의 글을 쓰며 페이지를 늘리느라 묘사에 묘사를, 서술에 서술을 쌓아올리는 남루한 도스토옙스키를 상상하곤 했다. 그럼에도 상황설명과 과도한 분석을 몇 번이고 반복하는 그의 문체가 옆에서 말을 거는것처럼 때론 다정하게 느껴졌다.


 

 

 

그 첫 번째 만남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노파살해사건, 마치 영화 한 장면을 눈앞에서 보는 듯 생생했던 장면인데 이 공포는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닫힌 방문 너머 어디쯤에 혹시...하는 공상에 오랫동안 시달리게 했었다. 올 초, 두 번째 독서에서는 차라리 에필로그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유령같은 얼굴로 자백을 되풀이하는 라스콜리니코프로 이야기가 끝난다면 하고 가늠해봤다. 라스콜리니코프의 갑작스런 회심, 유형지에서조차 자신의 죄를 인정할 수 없었던 그가 한 순간 깨달음과 함께 새롭게 변하는 상황이 결국 소냐라는 빗물이 가 되었을 때 결국은 돌을 뚫는구나 이해하면서도 말이다.


 

 

 

세 번째 만남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끝내자 마자 읽었다는 배경 때문이었는지 은연중에 형제들과 비교하게 되었으며 단순하게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로 읽혔다. 가장 좋은 요약은 한 범죄에 대한 심리학적 보고서라는 작가가 칭했던 부제라 생각한다. 젊고 명민하며 빼어나게 잘생긴라스콜리니코프는 스스로를 벗어날 수 없는 감옥에 가둔다. 그 감옥은 질식할만큼 작고 더러운 방이라는 물질적, 육체적 옥죄임과 나폴레옹을 비롯한 선을 넘는 인물들과의 정신적 대결과 소통의 자발적 차단이라는 겹겹의 구조물로 이루어져 있다. 균형을 잃은 의식은 반복되는 우연의 일치와 꿈을 의미심장하게 해석함으로 자신의 이론을 입증하고자 행동하고 만다

 


 

 

 

행동 이후, 사건 직후부터 위에 말했던 심리학적 보고는 라스콜리니코프 뿐만 아니라 여러 인물의 입을 통해 작성된다. 처음부터 그는 ‘(중략)판단할 수 있었다면, (중략)가늠할 수 있었다면, (중략)이해할 수 있었다면, 분명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바로 자수하러 갔을 것이며, 그건 (중략)순전히 자기가 행한 일에 대한 끔찍함과 혐오감 때문이었을 것이다.(1125)’고백하는데 이 내적 갈등은 작품의 막바지까지 고통스럽게 이어진다. 불행하게 죽음을 맞은 마르멜라도프의 집을 나올때처럼 잠깐씩은 구원의 빛을 보기도 했다. 어떤 새롭고 무한하며, 갑자기 밀어닥친 충만하고 강렬한 생명의 느낌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 느낌은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 느닷없이 뜻밖의 사면을 받았을 때의 느낌에 비견할 만한 것이었다.(1290)”고 작가의 경험을 투영한다.


 

 

 

“(중략) 어쩌면 우리를 걱정하느라 몸을 망쳤는지도 몰라요. 너그럽게 대해야 하고, 많은 걸, 많은 걸 용서할 수 있어야 해요.(1372)” “걱정 마세요, 엄마, 마땅히 있어야 할 일이 있겠지요.(1372)” “엄마가 엄마라는 걸 기억해!(2240)”라며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는 여동생 두냐. 로쟈가 우리는 서로 다른 부류의 인간이라 말했고 자신의 이론과 동기와 결심의 과정, 생각이 병이된 과정을 처음으로 낱낱이 고백할 수 있었고, 그녀가 읽어주는 성경에 귀기울이고자 원했으며 결국 구원의 가능성이 되어준 소냐. 두 여성, 두냐와 소냐는 지혜와 사랑의 표본으로 다가왔다. 이들과 대조되는 반대측의 캐릭터들 중 스비드리가일로프에 대해서는 그렇다면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수수께끼야······(2274)“라는 문장에서 후에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이반 형은 수수께끼야라던 문장을 떠올리게 된다.


 

 

 

도스토옙스키 작품들 속에서 캐릭터들간의 공통점이나 유사한 지점 또는 발전된 형태를 예측해보는 것은 흥미롭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스메르쟈코프처럼 스비드리가일로프 역시 비슷한 길을 걷는다. 62장의 자수를 권하던 포르피리 페트로비치와 라스콜리니코프의, 마지막에 모든 실현가능성에 대한 예비책까지(”만일에 대비해서 청이 하나 더 있습니다.“-3298) 언급하는 대화 장면도 인상깊었다. 심리전과 반전, 지적대결 또는 말 겨루기등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이곳은 반쯤 미친 자들의 도시더군요. 우리에게 학문이란 게 있다면, 의사, 법률가, 철학자 들이 각자 전공을 살려 페테르부르크에 대해 아주 귀중한 연구를 할 수 있을걸요. 페테르부르크만큼 사람의 영혼에 음울하고 강렬하고 기괴한 영향을 미치는 곳도 드물 거요. 기후가 주는 영향 하나만 봐도 그렇지요! 무엇보다 이곳은 전 러시아의 행정 중심지니, 그 성격이 모든 것에 반영될 수밖에요. (2306)” 내가 오랫동안 동경하던 도시, 꼭 가보고 싶었던 페테르부르크를 문장으로 만난다.


 

 

 

역자가 쓴 해설을 읽는 기쁨이 정말 컸다. 도박과 빚, 간질과 사형집행 직전의 감형 등 기존에 알고 있던 도스토옙스키 생애의 특징들이 구체적으로 연결되면서 조금 더 그의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송금을 구걸하는 편지를 쓰는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의 처음 몇 페이지를 쓰던 도스토옙스키를 상상해본다. 소냐와 알료샤에 버금가는 그리스도를 닮은 인간상이라는 백치의 미시킨 공작을 만나기 위해서도 그의 5대 걸작 중 나머지 세 작품을 빠른 시간 안에 다시 읽고 싶다. 죄는 무엇이고 벌은 무엇인지 라스콜리니코프와 함께 한 길고 고단한 여정을 마치며 역자 해설 말미의 죄와 벌 주석집도 읽을 수 있게 되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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